벌레들이 운다
벌레들이 푸른 울음판을 두드려
울려내는 청명한 소리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반야봉 하나를 뒤덮고
마침내 그 봉우리 하나를 통째로 떠메고
조금씩 떠나는 게 보인다
새벽이 깊을수록 더 깊어진 울음의 강이
산을 싣고 흐르는 게 보인다
아래쪽 산자락을 잘팍잘팍 적시면서
벌레 소리에 떠가는 산
골짜기의 절간까지, 싸리나무 일주문까지
벌레들이 울음소리로 떠메고
남해 바다로 가고 있는 게 보인다.
벌레들이 울음소리를 떠메고 남해바다로 가고 있는 것을 본 시인은 삶의 무게를 떠메고 어딘가로 가고있는 우리의 생애를 보고 있다. 새벽이 깊을수록 더 깊어지는 울음의 강은 시인이 지리산 반야봉에서 바라본 섬진강 물뿐이겠는가. 푸르른 숲이 인간의 마을까지 내려와 조금은 덮일 법도 한 여항간(閭巷間)에 흐르는, 질기게도 흐르는 우리네 눈물을, 이 아침 젖은 눈으로 다시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