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조락(凋落)의 계절 가을을 맞아 내적충실을 갈망하는 기도형식의 시로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고독의 시인인 김현승의 대표적인 시로 좀더 깊은 생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명상적, 기구적인 분위기와 어조가 시대를 초월해서 참 편안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물질지향적이고 찰라적이고 욕망적인 삶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신선하고 진중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시인
2011-11-02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난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한 때 음률을 타고 대중가요로 불리어 져서 더 유명한 시이다. 우리의 존재는 수많은 별들로 떠올라 살아가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또 지금도 끝없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시인
2011-10-28
식량주의자였던 아버지 평생 농사꾼으로 산다논과 밭과 한 몸으로 연민할 것을사랑할 줄 아는 아버지의 연대쌀 보리 밀 콩 감자 고구마를 위하여일흔, 하고도 네 해 동안 보급 길 걸어왔다뜨거운 숨을 내뱉으며땅속에 낙원이 들어앉길 바라진 않았지만똥막대기보다 못한 농사가 뭐 그리 대단해폐농의 논과 밭 밟지 않고사월과 오월 사이거침없이 자운영꽃 자청한 검붉은 울음아직도 토해내는 것인가새파랗게 빛나는 농사는 어디에도 없는데우리들의 아버지는 모두가 식량주의자였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한 평생 논과 밭, 그리고 쌀 보리 밀 콩 감자 고구마를 향한 연민과 사랑을 일관되게 실천해오신 분들이 바로 아버지다. 지금의 농촌 현실은 어떤가 시인의 말처럼 폐농의 위기에 처해 있다. 묵묵히 고향의 전답을 지치며 식량을 생산해내는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거수경례를 부치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1-10-25
느려도 끈질기게흔들려도 당당하게업보인 양 숙명인 양뻗고 잡던 손과 손이한여름뜻 맞춰 얽히며푸른 꿈을 키웠다풀무질에 가마솥 달 듯어기찬 갈바람에온벽이 익어가던어느 날담쟁이는그 붉은 선혈을 뿜어붉은 벽을 덮었다이 시에서 붉은 벽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가 안고가는 운명이랄까 업보 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 인간이 영위해가는 삶은 우여곡절의 연속이고 갈수록 난형난재의 삶이다 그런데 담쟁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한여름 땡볕에도 그 붉은 벽을 어기차게 기어오르고 있다. 자신이 안고가는 기막힌 운명, 그 숙명을 거부하지 않고 처절하리만큼 붉은 선혈을 뿜어 오르고 또 오르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1-10-21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둥근 표정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빗방울 맺힌 토란잎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맑고 따스하다. 궁글궁글 노닐다가 햇빛에 사라지고 마는 이슬, 그 투명한 모습 속에서 시인은 사랑의 묘함을 느끼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픔 당하고 상처받는 우리들, 한 번 쯤은 토란잎에 구르는 이슬을 들여다 볼 일이다.시인
2011-10-20
하루일 끝마치고황혼 속에 마주 앉은 일일 노동자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그 김 모락모락 말아올릴 때남도 해 지는 마을저녁 연기 하늘에 드높이 올리듯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무량하여라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탁배기 한 잔에 어스름이 살을 풀고목메인 달빛이 문앞에 드넓다어스름이 지피는 황혼녘, 달을 서서히 떠오르고 밥그릇을 비추는 한 폭의 그림, 사진을 연상하게 하는 참 편안한 분위기의 시이다. 세상의 모든 밥은 아름답고 소중한 생명에게로 흘러든다. 서러움으로 혹은 고되고 힘든 가슴으로 맞이하는 한 그릇의 밥. 저무는 하늘 아래에서 가만히 들여다볼 일이다.시인
2011-10-10
불 타버린 낙산사 동종꺼멓게 녹아내린 것 보았다그렇다면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쇳덩이가 불을 만나 종을 얻었는데종이 다시 불을 만나 쇳덩이가 되었다좋은 불과 나쁜 불너무 슬퍼하지 말자종은 없어 졌어도 종소리는 있다산새가 기억하고 산바람이 추억하고산 메아리가 저장했다가산이 외로울 때 한 번씩 저러렁 내놓을 게다대구의 시인 이규리가 쓴 동시다. 몇 해 전 불타버린 낙산사 동종을 보고 그 안타까움이 배인 정겨운 작품이다. 동종은 불타버렸지만 그 소리만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그 천년의 소리야말로, 아니 영원으로 흘러가는 종소리야말로 산새들에게 기억되거나 산바람 속에, 아니 푸른 역사 속에 선명한 아름다운 소리로 남아있을 것이다.시인
2011-10-07
시끄러워 잠이 깼다창유리에 달라붙은 반투명의 아우성떼 지어 엉키며 부풀리며 퍼져나가며쉴 새 없이 휘돌며 되울리는 메아리조차 자욱하다고요가 이렇게도 소리칠 수 있다니고요의 목청이 이렇게도 깊고도 요란할 수 있다니고요의 목소리가 내설악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다니귀를 틀어막고 우왕좌왕하다 보니먼데 산봉우리 하나가 모가지만 내놓은 채 허우적거린다세상은 거대한 안개바다깊이 모를 대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아우성만끼리끼리 휘돌며 메아리치고 되받아친다한나절을 기다려 나가보니산자락 자락마다 선혈이 낭자했다단풍은 절정,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터였다밝은 시인의 귀에는 쉴 새 없이 휘돌며 되울리는 아우성이 들린다. 그것을 시인은 고요의 메아리라고 일컫는다. 깊고 요란한 고요의 목청이 온통 내설악을 집어삼켜버린 것에 놀라고 있다. 날이 밝고 산을 오를수록 그 고요는 가을 내설악의 아름다운 단풍바다로 다가오고 있다. 밝은 시인의 마음의 귀와 역동적인 시인의 시상전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시인
2011-10-05
아버지가 달을 가르키며 물었다저 달을 드러내면 하늘에 뭐가 남겠느냐?글쎄요…. 저 달을 드러내면하늘에 구멍 하나 남지 않겠느냐너는 작가가 아니냐모든 사람의 생애는 구멍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있느니그 구멍을 오래 들여다 보거라개울물소리 소슬바람소리 들릴 것이니어찌 구멍만이 구멍이겠느냐저 달을 드러내면저 달을 드러내면인간의 한 생애가 끝나면 무엇이 남을까. 시인은 조그만 구멍 하나 남기고 갈 것이라고 인생을 관조하고 있다. 결국은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고 갈 우리네 짧디 짧은 한 생애인 것을…. 너무 사람의 일들로 가슴 아파하고 상심하지 말 일이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집착하고 욕심 내지 말아야 할 일이다.시인
2011-09-27
매라도 바람을 걱정한다천둥을 걱정하고 둥지에 두고 온새끼를 걱정한다날 수 있다고 함부로 날지 않고함부로 떠나지 않는 매를 생각한다바람에 별들이 흩어지는 날날기를 주저했던 기억이 사라진다면바람도 천둥도어느 날엔가는 둥지도 없이하여 어느 날엔가는 착륙하지 않는 날개가 되리라고나는 매처럼두 깃에 서린 근육의 두께를생각한다착륙하지 않는 비상(飛翔)에 대한 열망과 날기를 주저했던 일상에 대한 애착, 이 두가지 가운데서 갈등하는 매를 형상화한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한 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열망으로 들끓는 이상과 버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애착 사이에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기로에 설 때가 있다. 이것들은 어느 한 쪽도 버릴 수 없는 것이며 우리의 삶의 의식을 고양시켜주는 두 힘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1-09-22
수리개가 선회하는 정밀한 오후이 소곡에는새의 노래도 한 떨기 꽃도 없이녹음이 깃들이고 있나니원하여 애(愛)의 성(性)을 그려보거늘오늘도 마음은둔한 벌레가 되어 외로이 풀잎에 기다자신을 둔한 벌레로 비하시키면서 시인은 자신의 무기력함을 절감한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 자신은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우주 중에서 미물인 한 마리 벌레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짧디 짧은 일생동안 우리는 무욕의 삶, 베풀고 더불어 살아가는 정겨운 삶,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시인
2011-09-21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높게날카롭게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아스라한 그 정수리에선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냉혹함으로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고나아아 절벽!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에 나오는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부분에서 느꼈던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시다. 투철하고 준엄한 존재의 절벽 앞에서 강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왜곡되고 부정한, 더러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꺾이지 않는 시인의 정신이 빛나는 작품이다.시인
2011-09-19
어둠의 먹이를 기억한다생뚱맞게도 그걸 먹고 자란 어둠이 켜 놓은캄캄한 내 족보를 읽고 말았다한 번도 뵙지 못한 증조할머니 산소에 내린 그늘처럼짙은 어둠 금간 골짜기마다피어나는 저 꽃독이 익어 시푸른 약으로 환생하는 밤내리쬐는 달빛이 하늘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이유를제 몸 쪼개어 꽃 피워본 사람은 안다그늘진 기억에서 더 환하게 꽃대 밀어올리는 진실,핀다.좀 특별한 소재인 푸른 메주꽃을 이용해 불행했던 가족사를 살짝 보여주고 있다. 미당 서정주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원죄의식 같은 것이 바탕에 깔려있는데 한(恨)의 정서가 `그늘` 이라는 시어에 내포되어있어 뭔가 서러운 정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시인
2011-09-15
생각이 깊으면 군살도 없어지는 걸까삶을 속으로 다지면 꽃도 수수해지는 걸까줄기와 잎이 저렇게 같은 빛깔이라면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묵상이 필요할까물 밖으로 내민 몸 다시 물속으로 드리워제 마음속에 흐르는 물욕을 다 비추는겸손한 몸짓이 꽃의 향기까지 지우네향기를 가지지 않는 풀. 갈대의 속성을 헤아리면서 시인은 늘 반성하고 기도하는 삶의 진지한 태도,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기 위해 작은 욕심까지도 다 드러내 보이는 순수함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절제와 겸손, 끝없는 자기 성찰, 이런 겸허한 삶의 태도를 푸르게 흔들리는 갈대를 통해 배운다.시인
2011-09-14
떠돌며 사는 것이 그의 운명뿌리 있어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질척한 물의 자리 흘러다녀야 했다부패가 그의 양식폐수로 터질 듯한 복수찬 배 부레삼아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시궁이 그의 거쳐더러움 걸러 푸르디 푸른 목숨 피워냈다연보랏빛 향기 뿜어낸다오염되고 더러운 물을 정화하는데 곧잘 쓰이는 수생식물 중에 부레옥잠이 있다.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며 생을 이어가며 더러운 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부레옥잠같은 생이 이 땅에는 많다. 비록 여러 삶의 조건들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자기의 한 생을 살다가는, 세상의 한 쪽을 깨끗하게 하고 아름다움을 낳는 그런 삶이 우리 주변에는 있어서 희망 있고 아름다운 것이리라.시인
2011-09-08
열매를 들고 섰는 늙은 감나무가지가 휘도록 맺힌 그 사랑사랑은 익어서 홍시가 되어도익지 못한 자식의 떫은 자식의 효성어머님 영상인가 휘여진 감나무죄로운 내 마음에 그늘이 지네중국 연변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시인의 작품이다. 고향에 있던 오래된 감나무를 떠올리며 어머니를 감나무에 빗대어 표현한 감동적인 시이다. 감나무에 열린 붉은 홍시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의미하는데 홍시가 될 정도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을 느끼게 한다.시인
2011-09-05
속 보이지 않는 얼음 연못내 머리를 처박고 싶은생이 겨울 연못처럼 고적할 때가 있다고요의 내면엔 독이 가득하다 독 있는 자들은 자신을 먼저 독에 묻는다 손대지 말라 나는 이미 위험하다 나를 가둔 얼음 연못 잎 진 나무의 가지들이 헝클어진 길을 그리고 있다언 연못 함부로 건들지 말라모든 사랑은 치명적이다세상이 온통 독(毒)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인식의 바탕을 이루는 작품으로 얼음, 고요, 사랑 같은 순백의 이미지가 이 시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속의 독(毒)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적화자 자신도 이미 독을 품은 위험한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랑마저도 치명적인 독에 감염되어 있음을 말하는 역설이 눈부신 시다.시인
2011-08-31
견우 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 주고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서정성 깊은 시를 쓰는 시인이 겪은 사랑하는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서가 넘치는 안타까운 작품이다. 아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의 무거움을 새로이 깨닫게 되고 자칫 엄청난 감상에 빠져 중심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그 슬픔을 감당해 내려는 극복의 서정과 희망의 정서도 잘 표현된 시이다.시인
2011-08-30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가을 들어 쑥부쟁이꽃과 처음 인사했을 때드문드문 보이던 보랏빛 꽃들이가을 내내 반가운 눈빛 맞추다 보니은현리 들길 산길에도 쑥부쟁이가 지천이다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꽃이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이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맞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보인다. 시인은 그가 살고 있는 은현리 길가의 보랏빛 쑥부쟁이꽃과 눈 맞추면서 인간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름을 알면 보이고 이름을 부르다보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눈길을 건내다보면 뜨겁고 선명한 사랑에 이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꼭꼭 숨어있어도 사랑이 보인다는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봄직한 아침이다.시인
2011-08-25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흰나비로 상징되는 순진하고 낭만주의적인 정서에 젖은 나약한 존재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에 나갔다가 상처받고 좌절해버리는 현실인식이 강한 작품이다. 시인은 무한 한 바다와 한갓 미물에 불과한 흰 나비의 대조를 통해 역사 혹은 운명같은 거대한 힘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시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시인
201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