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이는 누구일까봄날에도 창을 닫아걸고 방안에만 들어앉아한구석만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는이런 날은 창을 열어야 쮸쮸 찌이찌이 동박새 시가꽃 찾아 날아 돌어온다는데창을 벽으로 닫고 제 몸을 뒤져서 시를 꺼내려하고 하는 거역의, 아새를 기다릴 줄 모르는, 동백 봄 장님이 되어야만,사각의 골방에 자신의 거치장스런 육신을 한 짐 부려 놓아야만열꽃 같고 두드러기 같고 종기 같은검붉은 시가 살갗을 뚫고 돋아 나오는 이,어둠의 섬뜩한 손톱으로 피가 나도록 시의 봉창을 크윽큭 할퀴어대는저이!이르고자하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때로는 세찬 바람 불고 거친 비가 쏟아지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눈이 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가야한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건지기 위해 봄날 봉창을 닫아걸고, 골방에 거추장스런 이승의 짐을 부려놓고 어둠속 손톱에 피가 나도록 봉창을 할퀴어대는 투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우리네 한 생의 소담스런 결실을 위해서는 열꽃 같고 두드러기 같고 종기같은 시를 건지기 위해 애쓰는 시인처럼 어떤 어려움도 감내해 나가야 할 것이다.시인
2012-08-16
이 저녁엔 노을 핏빛을 빌려 첼로의 저음 현이 되겠다 결국 혼자 우는것일 테지만 거기 멀리 있는 너도 오래 전부터 울고 있다는 걸 안다네가 날카로운 선율로 가슴 찢어발기듯 흐느끼는 동안 나는 통주저음으로네 슬픔 떠받쳐 주리라 우리는 외따로 떨어졌지만 함께 울고 있는 거다오래 말하지 못한 입, 잡지 못한 손가락, 안아보지 못한 어깨, 오래 입맞추지못한 마른 입술로….바람 속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를 향한 누군가의 애가가 끝없이 들려오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닫혀있고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에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바람 부는 언덕에 홀로 서 있는 우리를 향해 누군가 눈물 흘리며 가슴 찢어발기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의 메시지를 날려보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바람 찬 언 땅 위에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시인
2012-08-14
그대는 바둑을 두되물처럼 순리처럼법대로 흐르는 것을 따르지만모든 수가그렇게만 되는 것은 아니네가다가 한 수를삐끗 잘못 두는 바람에자연스럽게 운영되는 것이무서운 비바람을 만나어지럽게 헝클어지기도 하느니요컨대하늘의 한결같은 운행에어긋나는 것도결국은 운명처럼 귀결되네바둑을 두면서 인생의 이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물 흐름처럼 순리대로 법대로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세상사는 그게 전부는 아님을 바둑을 두는 일에서 깨닫게 한다. 한 수를 잘못 두어 어려움에 부닥치는 바둑처럼 인생사도 무서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역경에 들기도 하는 것이기에 그것마저 운명이라 생각하고 감내해 내야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시인
2012-08-13
가려워 죽갔시오 바위의 등은 버짐 투성이담쟁이는 시퍼런 손으로 긁어주었다멍이 들 때까지가을바위의 등은핏줄까지 붉게 달아올라절정의 순간우리의 사랑도 고개를 떨구었지바위의 검은 버짐 투성이를 긁어주는 담쟁이의 손. 상생의 아름다움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상생, 연합과 연대는 엄청난 힘도 만들어내지만 자잔한 사랑도 생성한다. 그 절정의 순간은 진정한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사람 사이가 요즘처럼 척박하고 갈라져있는 때에 울림이 큰 작품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2-08-10
저녁밥 짓는 연기 낮게낮게 깔리는 골목길눈에 자꾸 밟히는 꽃밭 있지이 빠진 사발과 깨진 접시, 빈 술병과 찌그러진 깡통집 나온 갖가지 살림살이, 돌담 아래 납작 엎디어길과 빈터 아우르는 꽃밭 있지시골에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네골목골목 등불 켜는 꽃밭 있어이웃끼리 울타리 갖고 다투는 일 없는 것을조붓한 길섶의 접시꽃, 봉선화, 살살이꽃 피고지고길과 담장, 땅과 하늘의 경계 스러지는 것을접시꽃 봉선화 코스모스 같은 꽃들이 피어있는 골목 안의 풍경들이 정겹다, 이 집 저 집 경계가 없어지고, 신뢰와 사랑이 깔린 꽃울타리가 지금도 시골에 가면 남아있을까. 계절마다 갖가지 꽃등이 켜지는 정겨운 이웃들의 울타리. 서로 위하고 아껴주는 넉넉한 덕담과 인정이 넘나드는 그런 울타리 꽃밭이 지금도 남아있을까.시인
2012-08-09
그 눈빛 다 닳도록 내 시린 맘을 퍼낸다습성처럼 고이는 기다림이 꽃을 키우고쉼 없는 삶을 여미어소생케 하는 불길퍼낸 어둠보다 더 밝아지는 꿈의 바다하나의 씨앗으로 천년을 아우르는 하늘찰나도 머물러 남지 않고창세기를 여는 비경어제를 벗어놓고도 늘 내게로 오는 그대참회로 다 태우고 나면 무아뿐일 이 가슴하나씩 오직 하나씩만 쌓는내 삶의 아름다운 이유어제를 벗어놓는 일이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곧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참회에 이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간은 아름답고 화려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찰라에 지나지 않는 반짝이다.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순간 순간의 아름다움을 잘 갈무리하고 뒤틀리고 흔들렸던 순간들은 뉘우치며 지워 버리고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시인
2012-08-08
나는 이제 너를그윽하고 투명하게 띄워주고 싶어말들을 붙들어 가두지 않고어둡고 무겁게 질식시키지 말고말의 고삐들을 하나하나 풀어주고 싶어사닥다리까지 놓아주고 싶어너는 언제나 침묵의 한가운데서또 다른 침묵으로 가는 길 위에서설레며 눈을 뜨지만, 나는그 순간들을 낮게 그러안고 있지침묵만이 말의 깊은 메아리를 낳듯그 메아리가 은은하게 퍼져나가듯침묵 위의 은밀한 비상을 위하여너를 위하여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나는 진정 이제 너를투명하고 그윽하게 보듬고 싶어시 속에 표현된 시인의 언어들이란 은은하게 퍼져나가기도 하고 누군가의 가슴에 화살로 날아가 꽂히기도 하는 것이리라. 혹은 어떤 파동도 없이 읽는 이에게 번져가는 침묵의 메아리이기도 한 것이리라. 그윽한 감동의 울림이 오래오래 퍼져나가는 시를 위해 시인은 수없이 지웠다가 다시 쓰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리라.시인
2012-08-07
한 소리 또 하고또 하고당숙은 죽어서 산새가 되었다한 노래 또 하고또 하고맞다. 유독 문중 어른 중에는 말이 많은 분이 있기 마련이다. 연세 높을수록 하신 말씀 또 하고 또 하시는 어른이 있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법도를 타이르시는 다변의 어른들은 죽어서도 새가 되어 우리들 삶의 가까이에서 계속해서 그 말씀 던지시고 있다. 살면서 흐트러지기 쉬운 오지랖 잘 여미고 살아가라고 오늘 아침도 아파트 앞, 이파리 다 벗은 벗나무 가지에서 당숙은 새가 되어 귀에 쟁쟁한 그 말씀 툭툭 던지고 계신다.시인
2012-08-06
대추나무 가지 눈높이에 누군가 빠져나간 집 한 채 있다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집저 안에 하나의 세계가 꿈틀거리며 일어났고대낮의 폭염, 한밤의 얼음별, 눈 못 뜨는 칼바람시간의 깊은 여울 건너주인은 어디론가 떠났다어디로 갔을까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는한번 집 나간 그가 돌아오는 걸 본 적이 없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렸거나온 세상이 모두 그의 집이 되었기 때문일까그가 스쳐 지나간 것은그를 안아 잠재워 준 대추나무가 아니라돌아올 길을 지우며 빠르게 흘러가는시간의 물살이었을까대추나무 가지 눈높이에누군가 서둘러 빠져나간 집 한 채 있다대추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텅 빈 매미집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시간을 읽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땅 속에서 수 년을 기다렸다가 이 땅에 유리같은 투명한 집 한 채를 빌려 태어나는 매미. 그 집을 벗고 나와 일 주일 가량을 온 힘을 다해 울다 툭 떨어져 죽어버리는 매미. 짧은 한 생을 살다가지만 최선을 다해 공명통이 된 몸을 소비하고는 가는 매미의 시간에서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쏜살 같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을 말이다.시인
2012-08-03
나무들이 두 팔을 벌려어서 오라 어서 오라 손짓하길래슬그머니 숲 속으로 들어갔더니배가 노란 새 한 마리하늘 한 쪽 베어물고는사뿐히 가지에 내려와 앉네나보다 먼저 숲에 안기네남은 하늘 한 쪽이 시린 눈송이로가만히 내 어깨에 앉네겨울 숲에 들어 눈송이를 맞으며 숲과 새와 하늘의 호흡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마음이 참 따스하게 번져온다. 세상의 중심이 사람의 일들로 분탕스럽고 어지러이 흔들려도 여기 조용한 생명감으로 촘촘히 살아있는 겨울 숲에는 안온한 평화가 살아있다. 비록 차가운 눈바람이긴 하지만 오늘 아침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평화로 일렁이는 겨울 숲의 냄새가 진하다.시인
2012-08-02
질통 매는 저 중늙은이노모는 어디 두고 공사판에 혼자 있나병든 아내 어디 두고홀로 모래짐 지나어두운 얼굴빛끙끙 힘쓰는 소리아침 길 위에 엎질러지는데중늙은이 등짐 위에늙은 어미병든 아내집 나간 자식얹혀져야 힘 가뿐하게 쓸텐데전남 영산포 출신의 의사 시인 나해철의 시적 관심은 소위 민중들의 곤궁한 삶의 모습들에 주로 머문다. 출근길에 차창을 통해 보이는 한 장의 풍경. 공사장에서 질통을 지고 끙끙대는 중늙은이의 힘겨운 한 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중늙은이의 질통 속에는 늙은 어미도 병든 아내도 집 나간 자식에 대한 책임과 부양의 몫이 가득한 것이어서 그리 끙끙대고 있는 것이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인은.시인
2012-08-01
무거운 가방이 귀찮을 때, 손톱 밑에가시 박혔을 때, 비싼 음식이 맛없을 때, 돈 꾸고갚기 싫을 때…. 무조건 부르라며막무가내 폭력배 대표인 듯이황금빛 은행잎들 소공녀처럼 쏟아지는 창가명함을 건넸다 폐인된다 십 몇 년만이었는데 명함 속에공사 끝나가는 붉은 벽돌 성당이 환했다 십자가다 올려지면 가서 좀 뉘우치리라 슬쩍 명함 던지자마당의 덜 지은 성모마리아 두 손 벌려 그 흰 눈다 받아든다명함, 이름과 직함, 주소와 연락 받을 수 있는 각종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가 빼곡한 직사각형 종이조각. 그 명함 조각에 실린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아닐진대 우리는 얼마나 그 명함을 손쉽게 내밀고 받기도 하면서 거들먹거리고 혹은 그것에 동의하면서 살아오고 있는가. 한번쯤 명함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시인
2012-07-31
나의 제사는 태양을 향한 것도 영원을 향한 것도 아닙니다어둠길 함부로 잊혀진 달개비를 찾아 구부린 꿈입니다문득 깨어 물그릇처럼 앉아 있는 밤산그늘 닮은 당신, 검불 많은 당신의 제사를 봅니다당신의 기적은 유월 낮달을 기르고 버려진 것들을 불러 앉힙니다나의 기적은 모퉁이 창가에서 그런 당신과 마주 절하는 것아프리카의 봄이 불현 듯 툰드라에 꽃대 세우듯나의 제사, 당신의 제사 마주 앉으면 지상 가득 개구리밥 피어납니다푸른 제삿밥, 소붓합니다시 속에 등장하는 `나`의 간절한 바램과 `당신`의 간절한 바램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지향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의 제사는 잊혀진 달개비꽃 같은 미미하고 소외된 것들이지만 밝고 고운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구라면, 당신의 제사는 산그늘이나 많은 검불 같은 어둡고 거친 것들에 대한 옹호와 그리움이다. 나와 당신의 제사가 마주 앉으면 푸른 제삿밥 같은 한층 성숙되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가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시인
2012-07-30
이전과 이후가 달랐다. 내가 태어난 건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는데,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쾅!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에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더군수평선은 생후 12년 뒤 내 눈앞에 나타났다. 태어난 지 만 하루였다가, 36년전의 그날이 12년 전의 그날이다가,수평선이다가,저 바다 너머에서 해일이 마을을 덮쳤다. 바로 그 순간 생일이 찾아오고,연인들은 슬픔에 빠지고, 죽어가는 노인이 고개를 떨어뜨리고,케이크를 자르듯이 수평선을 잘랐다. 자동차의 절반이 절벽 밖으로 빠져나온채 바퀴가 헛돌았다사람 뿐만아니라 사물이나 자연물에도 모두 생년월일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그 첫 시작의 순간들이 한 번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시인은 믿고 있다. 어떤 계기랄까 전환의 순간이 바로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초시간적, 시간의 역전을 통한 시인의 논리가 재밌게 읽히는 시이다.시인
2012-07-26
저녁 무릎이 나를 보던 저녁도 있고 당신 이마가 나를 보던 저녁도 있고당신 가슴이 당신 손이 당신 어깨가 당신 입술이 당신 구두가 당신 가방이나를 보던 저녁도 있었지 그러나 이런 시는 이제 쓰지 말자 쓸 수도 있지만쓸 수도 있지만 추운 저녁 아무도 없는 방에서 성냥을 켜네함께 했던 아름다운 것들, 정겨웠던 것들, 하여 외롭지 않았던 것들 다 떠나버린 추운 저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쓸쓸하다. 어쩌면 그 외로움 속에서 그는 더 단단한 삶의 끈을 말아 쥐는지 모른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성냥을 켜는 시인의 마음은 아름답고 혹은 아팠던 지난 추억들을 태워 현실의 밝은 빛을 구하는 의지인지도 모른다.시인
2012-07-25
큰 산 하나가 잠긴고요 속에서고즈넉이 피어 있는 산국을누가 보고 있는가보는 이가 보는 이를 보며꽃잎과 함께한 줄기 투명한 바람이 될 때저 산국을 누가 보고 있는가고즈넉이 피어 있는 산국을 보고 있는 이는 누구이며, 보고 있는 이를 보는 이는 또 누구란 말인가. 특정하지 않은, 이 우주를 움직이는 어떤 보이지 않는 실체일 것이다. 이 세계 전체를 관장하는 어떤 실존적 존재일 것이다. 시인의 운명론적 세계관과 유유자적한 인생관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시인
2012-07-24
시푸 시푸시 - 씨 - 씨팔팔푸 - 우 - 피 - 이 - 익돌다 금세 멎어버린경운기가 그렇고분수처럼 자꾸만자꾸만 하늘로 치솟는약대가 그렇고아무리 곧게 펴도활처럼 휜 칠순의 허리가그렇다 이제는힘에 부치는 줄바람에 팔락이는 잎새가먼저 알고꿩 - 꿩 - 꿩경운기 소리에 놀란산꿩이 먼저 안다.힘들여 지어놓아도 돈 안 되는 피폐한 농촌의 풍경을 풍자의 의성어를 통해 꼬집고 있다.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허리 휜 칠순의 노모가 경영해 가는 수경 농업, 늙은 아버지의 과수원 농사, 그들의 힘겨운 농사를 바람에 팔락이는 잎새가, 경운기 소리에 놀란 산꿩이 먼저 안다는 시인의 말에서 우리는 그 깊은 아픔과 서러움을 다시 본다.시인
2012-07-23
어느 고을이나 한 집쯤은감칠맛 나는 곰탕집 하나 명성 자자하지꼬박 석 삼일을 고으고 또 고아진골 다 빼내주고구멍 송송 뚫린 우족장작불, 그 보송보송한 빛깔로뿌옇게 우러나숟가락 놓고도 온 몸 휘감겨드는 맛시도 모름지기 그럴 거야시도 인생사가 다 그런 것 아닐까. 석 삼일을 고으고 또 고아 그윽하고 감칠맛 나는 곰탕처럼 그윽하고 깊이 있는 생의 향기가 묻어나는 한 생이나 한 편의 시가 더 가치롭고 멋진 것이 아닐까. 숟가락 놓고도 온 몸 휘감겨드는 맛을 내는 곰탕처럼 죽고 나서도 그의 그윽한 생의 향기를 오래도록 남기는 시나 한 생이 바람직한 것은 아닐까.시인
2012-07-20
세월 간다고 모든 나무들의 몸통이 굵어지는건 아니다어떤 나무는 세월이 가도 몸통이 굵어지지 않는 나무도 있으니까세월이 가면서 몸통이 굵어지는 나무는 믿음직스럽다 든든하다키까지 자라 하늘 높이 오르는 나무는훤칠하니 자랑스럽다 그늘 또한 강물같이 장하다더러는 몸통이 굵어지고 키까지 자라면서 환하게 빛이 나는나무도 있다 황금나무다나무 안에 스스로 집 한 채 짓고 꺼지지 않는등불 하나 밝힌 나무도 있다그 역시 황금나무다시인이 말하는 황금나무는 불멸성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잘 읽히는 작품이다. 풍상을 견디고 몸통이 굵은 나무가 된 현실의 나무와 이에 투사한 화자의 인생과 어떤 불멸성을 획득한 깨달음의 나무를 상징하는 황금나무가 융합된 나무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우리도 한 그루 황금나무로 설 수 있을까.시인
2012-07-19
나는 육지인 줄 알았다저기 떠 있는 섬이 등대를 세워깜박깜박 신호를 보낼 때까지는나 또한 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뱃길 닿지 않는 섬에 등대를 밝혀밤배의 길을 밝혀주는 젖은 마음을 파도라고 하면섬 아닌 사람이 누구이겠는가만조는 이별의 선례가 되어서바닥난 체력만으로도 어깨가 기울고떠나가는 섬이 가뭇가뭇한 수평선에한 섬이 다가오며 늘 그러하듯이안개 낀 밤에 종소리를 뚫고 다가와오래 동행하여 서로 육지가 되었다우리는 모두 섬이다. 홀로 존재하고 홀로 하나의 섬이 되어 사람들의 바다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들 하나하나는 깜박거리는 불을 켠 등대 하나씩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인생이란 안개 낀 밤에 종소리를 뚫고 다가와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시인
201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