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순간을 우리는 살고 있지만시간은 언제나 젊음을 선사한다꽃이 피는 소리처럼 즐겁게 다가왔다가가는 비 손길처럼 살며시 가 버리는기약 없이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리는 것힘찬 희망으로 내일은 달려오지만차마 느끼지 못하는 사이 가버리는 나날이 짧은 흔적들을 어디에서 찾을까우리들 가슴속에서 무너지는 하얀 불꽃맞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무너지는 하얀 불꽃같은 것이 세월인지 모른다. 꽃이 피는 소리처럼 살며시 스미듯 다가와서는 가뭇없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이 세월이다. 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세월을 그냥 흘러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순간순간의 의미를 찾고 희망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간다면 무상한 세월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닐까.시인
2012-07-17
아이들이 냇가 풀밭에서 놀고 있었다물 속으로 들락거리는 아이도 있었다하얀 물오리들이 아이들 곁에서 푸들거리며 놀고 있었다자전거를 세워놓고 짙은 버들 그늘에 앉은 사람들이그 모양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물살은 무심히도 아이들을 감싸 흘렀다바람도 그 곁을 흔적없이 스쳐나갔다둥글고 붉은 저녁 해가 그 진귀한 풍경을 물들이는 걸창유리를 사이에 두고 내가 보고 있었다잠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릴 적 옛 고향에 다녀오듯그 길에서 만난, 슬프고 정겨운 그림 한 폭을나는 기억세포의 칸칸마다 꾹꾹 눌러 담아 두었다.평양의 저녁 풍경, 아이들이 풀밭에 있고 물에 들어 풍덩거리고 오리가 같이 헤엄치고…. 이 얼마나 평온하고 평화스런 풍경인가. 이념과 사상이 다를 뿐이지 우리가 어릴 적 경험한 그런 정겨운 풍경을 우리는 본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딘들 다를 바가 있겠는가 마는 다만 그 풍경들을 물끄러미 차장 안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시인의 젖은 가슴을 읽는 마음이 아프다.시인
2012-07-16
절집 처마 아래 메주가 마른다금강경 독경 미륵존여래불 염불소리가 들려온다염불을 들어야 메주가 잘 뜨거든곰팡이가 알맞게 피어오르거든정지에서 나온 보살님이 메주 아래 합장을 한다겨울 햇살과 바람과 먼지와 눈 내리는 소리까지눈 속에 먹이를 구하러 내려온 산짐승 울음까지몸속에 두루 빨아들여 피워내는 메주 곰팡이나무아미타불, 자연 발효시킨 부처님이시다메주를 자연과 인간이 함께한 합일과 조화의 상징으로 느끼는 시인의 시안이 깊다. 메주는 보살님의 합장과 겨울 햇살과 바람 먼지와 눈, 눈 내리는 소리,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한 데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거기다가 스님의 독경소리까지 스며들어 잘 발효된 한 덩어리의 메주가 되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작은 세계 속에서 생명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시인
2012-07-13
송신(送信) 부호가 얼마나 왔다갔는지 나는 모른다경사 급한 절개지로 강제 이주당한삶이다 저 애송나무의 가파른 생애가내게로 건너온 어느 날나무의 푸른 몸짓이 흐린 눈을 씻겨내던그날, 우리는 만난 것이다관계를 맺는다는 것은상대의 상처에 참여하는 것이다네 속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내 몸의 상처를 만질 수가 있었다지친 내 몸누일 수 있는 푸른 나라비탈에 옮겨 심어진 어린 소나무의 질기디 질긴 생명력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깊다. 척박한 비탈과 같은 삶이 어디 어린 소나무에게만 있으랴. 이 차가운 겨울을 건너가는 가난하고 순한 이웃들의 바람찬 한 생애들을 바라보자. 물러나지도 내려서지도 않는 당당한 저 푸른 소나무같은 이웃들의 가멸찬 삶이 도처에 살아있는 이 땅은 그래도 희망 있다. 희망 크다.시인
2012-07-12
너하고 나하고 그해 늦봄 저물녘에 선운사에 왔었네나는 혼자 또 이 가을에 선운사엘 왔네동백 없어도 동백에 끌렸겠지피거나 지거나 목청 붉은 비린내여필 때 화들짝 뛰어오른 꽃, 질 때 거침없이 뛰어내린 꽃그 반동에 놀랐네 친구여너는 죽어나는 살아하늘에, 따에, 그 엉덩방아를 기억하네, 기억하네고창에 있는 선운사는 동백으로 유명한 절집이다. 사찰 뒤편 산자락에는 수 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울창한데 화재로부터 절을 보호하기위해 조성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동백꽃이 활짝 피어나는 즈음 선운사와 그 동백꽃이 질 때의 선운사는 시인의 말처럼 충격적이라할 만큼 대단한 풍경과 정서를 자아낸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시인
2012-07-11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도 내 곁인 듯 내 몸 안인 듯백 리 밖에서 서성이는 당신의 숨결이 들려요꽃처럼 환한 미소 맞으려 목이 화하도록 불어낸 입김백 리 밖에서 묻어나는 당신의 향기가 느껴져요주체 못할 마음 낮추어도 설렘은 가뭇없이 번져요함께 있어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랑이 아니라함께 하지 못해도 함께 하는 사랑의 뿌리 내리려몰래 불어오는 바람에 몸은 자지러지다가도마음은 바람보다 먼저 달려가요 그대 백리에 있어도백 리 밖에 서성이는 당신의 숨결을 들을 수 있는 눈도 귀도 있었으면 좋겠다. 주체 할 수 없는 그리움과 기다림은 당신의 향기를 백리가 아니라 천리 밖에서도 맡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한 포기 백리향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한다. 하물며 미물도 그렇거든 사랑을 위해 끝없이 목말라 하는 우리는 백리향이 아니라 천리향 만리향이 아닐까.시인
2012-07-10
나무를 보면서가녀린 물기 피워 올림이땅 속 깊게 숨긴 나무의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봄을 맞는 움과 싹이 바로나무의 눈뜸인 것을 몰랐다나무 그늘 아래앉아 있으면서도바람이 나무에만 불어 온다는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바람과 더불어 이루는나무의 숨소리가 바로나무의 깨우침인 줄 몰랐다나무에 깃든 생명의 질서를 읽어내는 시인의 눈이 예리하다. 나무의 생육을 보면서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느끼고 있다.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자. 그 나무의 숨결에 귀기울여보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각성에 이르를지 모른다. 나무에 스치는 바람마저도 나무의 호흡에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하는 시인은 존재에 대한 각성, 생명 운행의 질서 같은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시인
2012-07-09
백련사 저녁종 소리에눈앞이 환해졌어요대웅전 앞 배롱나무 꽃송이들입안 가득 종소리 머금었다 뱉어주니수천의 동백 잎 좋아라 입맞춤합니다손사래 치는 초록향기 받아먹고구강포 바닷고기 몸을 불려 튀어 오르면동심원을 그리며 미소를 띄웁니다둥근 소리로 구르면서나도 깨우고 너도 깨우고구르고 굴러 지구도 돌리고꿈틀 거대한 힘으로 살아서 우주를 돌리는백련사 저녁 종, 그 환한소리 소리 소리절집의 저녁 종소리가 둥글게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가는 모습을 둥근 소리의 힘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종소리는 그냥 청동의 표면을 떠나는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라 배롱나무의 꽃을 피우고 구강포 바닷고기의 몸을 불리며 나도 너도 깨우는 생명의 소리이고 영혼의 소리인 것이다. 이런 소리를 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이 깊고 밝다.시인
2012-07-06
어머니를 배웅하던 대문 앞에삐걱거리는 녹슨 못이 마중을 나와 있다오래된 감나무가 매달아 놓은 감기운 없이 축축 떨어져 퍼질러진다친구 삼아 의지한 중풍끝끝내 한 몸이 되었던가간장을 담그고 메주를 만지던 손이장독대 위로 쓰러진 지 몇 해어머니 걸음걸이 따라 심겨진덩굴장미 절룩절룩 꽃이 핀다거미가 제 식솔들을 마음껏 풀어놓고어머니의 그림자를 문지르고 다닌다중풍에 걸린 어머니. 그 어머니가 벌여놓은 세간에 묻어나는 따스한 모정을 느낄 수 있는 시이다. 간장 담그고 메주를 만지던 손이 불편한 어머니. 그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스며있는 담장이며 그 담장 아래의 장독대에는 때를 따라 넝쿨장미가 피어나고 거미들이 찾아와 함께 싱싱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2-07-05
소나무 두엇 서 있다재실을 비껴서 흐르는 강물 위삐죽이 나온 돌에햇살이 길게 찢어진다아무도 없는 마당에서멀리 눈 덮인 천왕봉을 본다쭉 뻗어서 몹시 차가운혼자 가는 길산천재는 경남 산청군 덕산에 있는 중종 때 유학자 남명 조식이 지은 서재로서 그의 말년을 보낸 은거지다. 중종 때 시끄러운 정치판을 떠나 훌쩍 떠나와 학문과 수신의 길을 홀로 가셨던 남명선생의 재실에서 시인은 혼자 가는 길의 외로움과 단단히 자기를 단속하며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본다. 눈 덮인 천왕봉처럼, 소나무처럼 말이다.시인
2012-07-04
내가 잠깐 먼 데를 보고 있는 사이에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차가운 바람이 손발을 저리게 했다민소매와 반바지 위에 두꺼운 잠바를 입었다나는 여자보다 가을의 서늘한 날씨를 더 사랑했지만한 눈을 파는 사이에사랑하는 가을이 사라져버렸다남산 전망대에 서서사라진 계절을 찾아 방황하는 새들을 보았다반바지와 민소매를 입고아주 잠깐 먼 데를 보고 있는 사이에초록이 지고 흰 눈이 내기기 시작했다생의 전망대에서 탄알처럼 휙휙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시인의 가슴에 겨울바람이 스미고 있다.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아주 잠깐 먼 데를 보고 있는 사이에 자연의 시간도 우리네 인생의 시간들도 아무 것에도 걸림없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사느라고,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거기에 몰입하다 허리 펴고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듯 머물러 있을 것 같던 많은 것들이 곁에서 멀어지고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세월을 쏜 살이라고 했던가.시인
2012-07-03
도랑물 흐르는 고운 소리 위로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산골 암자의 단출한 방안, 일렁이는 촛불 바람 앞에 두고 비구니 스님과 우전을 마시는데 물소리보다 엷은 바람결에 난() 대궁이 소리 없이 흔들리고 희미한 어둠 속 스님 얼굴이 맑은 찻잔처럼 둥그렇게 떠올랐다. 빡빡 깎은 머리, 무명의 장삼뿐이련만 어찌 그리 고우신가. 내 오랜 세월 줄곧 씻고 닦고 가꿔온 것이 머잖아 한 줌 재로 사라져버린 것들, 밤은 깊어가고 다(茶) 맛은 달고도 환했건만시인은 은은한 난 향과 맑은 다향으로 화장을 하고 있다. 산사의 비구니 스님과 마주앉아 볼 기회를 누구나 가질 수 없지 않을까. 시인은 스님과 함께 한 청정한 시간을 음미하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 아침 시인이 만난, 세속을 떠나 정진 수도하는 구도자의 깨끗한 마음과 장삼자락을 보며 홍진에 더럽혀진 우리의 소매를 보자. 은은한 난향과 맑은 다향으로 화장을 하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2-07-02
구만리 바람은 ㄱ자로 분다바닷가 언덕 너덧 그루 소나무일제 때부터 골절돼 ㄱ자로 자라고영기 할매는 스무 해 넘도록ㄱ자로 굽은 허리로 물질 다니신다구만리 샛바람은 ㄴ자로 분다겨울 날품 팔러갔던 상모 삼촌은일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밤낮 없이 몰아치는 파도 앞에ㄴ자로 팔 꺾어 소주잔 들이킨다구만리에서는 바람이한글 자모 몽땅 뒤엉켜 불기에세상 무슨 말하는지 들리지 않는머리 숙여 뱃일 밭일만 하며 살아온소나무도 아예 허리 꺾어서 산다세상 끝 변방 바람은 그렇다바람 세기로 치면 호미곶의 구만리 바람만한 것이 없다. 마치 국경에 부는 거친 바람의 모양으로 바닷가 해송도 그 소나무 아래 거친 한 생애를 살아가는 노인네의 허리도 ㄱ 자로 굽었고 한 방향으로 굴절되어 있다. 물결과 바람을 견디며 싸우며 살아가는 바람 많은 호미곶 사람들의 꺾이지 않는 질긴 삶을 읽어내기에 알맞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2-06-29
한 며칠 오지게도 눈이 폭 내렸는데요온 동네를 둥글게 뭉쳐놓고 눈 그친 날 토실토실한밤송이 대나무가 슬쩍 눈덩이를 털어 낸다는 것이아차!자해인 듯 그도 아니면 자진인 듯 제 배를 쩍따개는 것이었습니다그러면서 생의 마지막 숨을 헉 토해 놓는데요순간대밭이 출렁뻥 뚫린 하늘로 까마귀 떼 우 쏟아져 나와박혀드는 것이었습니다대종천이 있는 감포바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설화가 바탕이 된 아름다운 작품이다. 눈 내린 대숲에서 시인은 쌓인 눈이 쏟아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생의 경이로운 순간과 접합시키고 있다. 대밭이 출렁/ 뻥 뚫린 하늘로 까마귀 떼 우 쏟아져 나와/ 박혀든 것이었다/ 순간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이 깊고 푸르다.시인
2012-06-27
기억의 남쪽 바다 십자성과 야자수는 노래 속에 있다 진한 박하와 따뜻한 망고향 흐르는 노래 하얀 조개 껍질 같은 섬들 돈벌레처럼 미끄러지는 통나무배들 수시로 끓는 납덩이 같은 노래의 추억은 내 속에서 해저 화산처럼 폭발한다 진흙을 싸 발라 구운 원숭이 두개골처럼 이승의 붉은 털이 다 빠지고도 남을 노래, 그러나 노래가 알지 못하는 이승의 기억은 시퍼런 강물이 물어뜯는 북녘 다리처럼 발이 시리다추억은 노래를 동반하고 노래는 추억을 거느린다고 하면 말이 될까. 우리는 수많은 추억의 연속 속에 살아가고 있다. 유형의 혹은 무형의 추억 속에서 우리의 삶은 환희와 슬픔의 실로 짜여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추억 중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추억을 건지는데 `시퍼런 강물이 물어뜯는 북녘 다리`라는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시인
2012-06-26
오늘 하루만 살려고그토록 발버둥치며 담쟁이는담을 기어오르지 않는다누군가 목덜미를 잡아 끌어내리려 해도그 자리에서 끄떡없다담쟁이는 제 가는 길이 천직임을 안다담장이 울퉁불퉁 해도 함부로 탓하지 않는다제 온몸이 비틀려도제 갈 길을 멈추지 않는다푸르게 푸르게 제 삶을 꾸리며오늘도 쉬지않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다담쟁이는 어디로든 뻗어나간다. 멈칫멈칫하지 않는다. 다만 새 순을 만들며 끝없이 뻗어나가는 것이다. 몸을 붙이고 오르는 담장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거기에 반응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뻗어가며 푸르름을 만들며 간다. 여러 가지 생의 여건들을 탓하며 멈칫하고 불평하고 좌절해버리는 우리 인생들이 담쟁이의 생육을 가만히 들여다 볼일이다.시인
2012-06-25
내가 아직 너의 문간에 이르지 못했으니이곳에서 그냥 밤을 세우고 말리라오늘 하루 얼마나 걸었을까지는 해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여문을 잠근 그대여너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테지이 길의 두근거림(…)문을 잠근 그대여 나는 아네언젠가 내가 너의 문간에 이르렀을 때너무 단단히는 잠그지 않고조금씩 조금씩 삐걱거려주리라는 것을끝끝내 열리지 않아 그 곳에 나의 무덤을 짓더라도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게너의 숨결엔 듯 흔들리며 삐걱거려주리라는 것을흰 감자꽃이 핀 길을 걸으며 땅 속에 알알이 맺혀가는 알갱이들을 생각하는 시인은 우리네 인생이 한 여정을 생각한다.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애틋하고 가슴 아픈 일인가. 빈 집의 문이 기척 없이 어느 숨결엔 듯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며 삐걱거려 주리라는 것을 생각하는 마음 속에는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소망이 스며있는 시이다.시인
2012-06-22
푸르고 맑은 물이 지친 몸을 적시네굽이굽이 흘러 우리 사랑도 저러할 때연초록 능수버들로 다시금 눈떠올까한 번 접힌 그 세월 되돌릴 수 없겠지만철철철 강둑을 넘어 오랜 슬픔 지울 건가잊지 못한 사람들 저기 강돌로 돌아눕고일어나라! 일어나라! 잠 깨우는 물소리이 밤이 이울고 나면 강심 다시 깊어지겠지몇 해 전 가을 나도 동강 연포에 간 적이 있다. 정선 아리랑을 가슴에 품고 간혹 세상을 향해 꺼내 던지시곤 하는 베르또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한 많은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일생동안 흘러보내고 살아온 그 할머니의 깊은 눈을 잊지 못한다. 이 시도 그런 한과 설움이라는 정서에 충실한 작품이다. 아직도 푸른 뗏목이 그 강에는 눈물과 한으로 묶인 채 흘러오고 있을 것이다.시인
2012-06-21
산업연수 온 조선족 재철이가금 간 대형유리원판을 들어내다 동맥이 끊어졌다앰뷸런스에 실려 가면서도 새파랗게 질려있자 걱정마라괜찮다, 괜찮다고!팔목보호대를 확 풀어헤쳤다어림잡아 수십이나 되는 봉합수술의 바늘자국을 내비쳤다신출내기였을 때 나의 사수인 일급재단사가팽팽한 먹구리빛 팔뚝을 직접 보여주듯이팔랑팔랑 꿈틀거리는 나비문양의 팔뚝을 문득 보여주었다도처에 산재한 산업공단에 일하는 제3세계에서 온 노동자들을 가끔 만난다. 우리말에 익숙친 않지만 그들과 대화하다보면 그들 가슴 속에 들끓고 있는 소위 코리언드림을 발견하곤 한다. 더러는 산재를 당하더라도 그들은 돈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강렬한 의욕을 본다. 조선족 재철이에게서 지난 시절 중동으로 떠나갔던 우리의 젊은이들을 다시 본다.시인
2012-06-20
어머니 커다란 독에 갇혀 우시네 엉덩이가 펑퍼짐한 어머니텅 빈 독 속에 갇혀 우시네또아리 틀고 들어앉아우시네 자식을 일곱이나 낳은어머니 아랫배가 홀쪽한 어머니배암으로 우시네 두꺼비로 우시네마른 바람의 혓바닥으로 우시네텅 텅 독을 빠져나갈 수가 없어서텅 텅 텅 텅 빈 독 두드리며 우시네속절없이 먼 하늘 바라보며 우시네일흔 살 어머니 두드리면댕그랑 댕그랑 맑은 울음 울리는 빈 독나, 손마디로 두드리며 묻네간장 같은 된장 같은 어머니, 거기 계셔요?우리의 어머니는 어디에 갇혀 울고 계시는가. 우리의 어머니도 빈 독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 자식들에게 다 줘버리고 자신이 빈 독이 되어 빈 젖, 허물어지는 육신으로 쓸쓸히 독에 갇혀 계시지는 않으신가. 이 푸르른 계절 우리의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 생각해 볼일이다.시인
201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