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언덕 너덧 그루 소나무
일제 때부터 골절돼 ㄱ자로 자라고
영기 할매는 스무 해 넘도록
ㄱ자로 굽은 허리로 물질 다니신다
구만리 샛바람은 ㄴ자로 분다
겨울 날품 팔러갔던 상모 삼촌은
일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밤낮 없이 몰아치는 파도 앞에
ㄴ자로 팔 꺾어 소주잔 들이킨다
구만리에서는 바람이
한글 자모 몽땅 뒤엉켜 불기에
세상 무슨 말하는지 들리지 않는
머리 숙여 뱃일 밭일만 하며 살아온
소나무도 아예 허리 꺾어서 산다
세상 끝 변방 바람은 그렇다
바람 세기로 치면 호미곶의 구만리 바람만한 것이 없다. 마치 국경에 부는 거친 바람의 모양으로 바닷가 해송도 그 소나무 아래 거친 한 생애를 살아가는 노인네의 허리도 ㄱ 자로 굽었고 한 방향으로 굴절되어 있다. 물결과 바람을 견디며 싸우며 살아가는 바람 많은 호미곶 사람들의 꺾이지 않는 질긴 삶을 읽어내기에 알맞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