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지산등성이에 누런 엉덩이를 내려놓고꼼짝하지 않는다쉬 -를 보려나누래진 마음이 보름달보다 크게 부풀어오른다검은 소나무 숲 사시나무 몇 그루엉덩이를 꽉 부여잡고도대체 놓아주질 않는다슬렁슬렁구름에 가려지는 달보름달이 뜬 풍경, 그 절대 평화의 경지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그윽하고 등성이에 떠오른 보름달을 의인화한 표현들이 재밌다. 행운유수(行雲流水)라는 말을 실감케하는 정경이 정겹고 자연스럽다. 사물을 보는 눈들이 저렇듯 발랄하고 재밌으면 세상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시인
2012-04-16
아침에 눈을 뜨니마당에 웬 물고기 떼들이 가득하다조것들이 조것들이왜 이 마당엘 올라와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놀고 있는가아침 햇살에 빛나는 비늘들이 싱그럽다내 인생의 뜰엔풀꽃도 아닌, 잡풀도 아닌, 낙엽도 아닌우물가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지나는 바람도 아닌물고기 떼들이 몰려와길을 물을 때가 있다환각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이 시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담담한 회한과 성찰이 깔려있는 조금 어려운 작품이다. 그렇다 우리는 때때로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까지 가야할지, 왜 가야하는 건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에 봉착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이것이 어디를 왜, 분명히 가기 위한 삶의 절실한 몸짓인지 모를 일이다.시인
2012-04-13
나무들은 저마다 각도를 잰다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향해 뛰쳐 나오려고땅 속에서 저절로 배운다은행나무 가지도 60도층층나무는 90도로 뻗고뿌리 뻗기 60도, 잎 내밀기 120도봄날 햇볕 쪼일 각도 다르고한여름 땡볕 가릴 각도 다르다(···)우수날은행나무 한 그루 되어 눈꽃의 무게를 감당하면서살아남을 각도로손을쭉 뻗는다우수 날 한 그루 은행나무의 몸짓에 눈이 간 시인은 지난겨울 북풍한설의 시련을 견딘 은행나무의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새로운 모색을 하고 싹을 틔우고 잎과 가지를 뻗을 각도를 재는 것은 비단 나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네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묵언의 웅변을 우리에게 던지는 아침이다시인
2012-04-12
사람이 울고 있다한 사람이난 처절하게 울지마, 라고 했다그래도 울었다겨울비가 오고 있는데까마귀도 울고까치도 상큼하게 울었다먹구름 아래 수도 없는 까마귀떼들날이 개자 정겨운 까치 울음소리사람은 웃었다 즐겁게아니 미치도록 울었다그러나 울고 웃는 사람은 내 곁에내 방에서 울고 있었다눈을 뜨니 시계소리만 들리고아무도 없었다겨울비는 내리고 까마귀는 울고 극도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다. 아니다 사실은 까마귀와 까치와 누군가가 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계절을 건너가는 우리 모두가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시대가 아프다고 감동이 없는 황량한 이 시대의 겨울을 건너가면서 서럽고 서러워서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시인
2012-04-11
폭죽 터지는 꽃그늘 아래 서러운 봄이 갔다 하늘 끝까지 푸른 사닥다리 펼쳐진 절정의 여름이 갔다만산홍엽에 기대 흔들리는 가을이 갔다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었던 겨울도 갔다그 자리 빗물 고이고나뭇잎 떨어지고바람 다녀가고흰 눈 쌓였다 녹고잃어버린 기억 더듬어 찾아온 어릴 적 고향집잘생긴 오동나무 한 그루눈부신 꽃등 하나사계절의 변화, 그 아름다운 변신은 아름다운 무늬가 아닐 수 없다.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도 그 자연의 변화에 따라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지나온 것이리라. 어릴 적 고향마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그 계절의 바뀔 때마다 그려지는 잊지못할 풍경만큼이나 우리네 가슴 속에 새겨진 무늬는 선명한 아름다움으로 새겨져 있으리라. 시인
2012-04-10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꽃이었다 한다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다(…)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 나왔든가시인은 꽃이 야채로 된 건 인간의 입에 달았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이 맘 편하게 먹어치우기 위해 꽃의 아름다움을 애써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이다. 조금은 논리를 내세운 듯 하지만 그 속엔 아득한 그리움, 모든 사물들의 본래성, 정체성, 생명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스며있어 깊이 곱씹어 볼만한 작품이다.시인
2012-04-09
꼬막은 힘으로 벗기는게 아니다 지문으로 리듬을 타서 벗겨야 한다고 갯벌식당 아줌마는 배시시 일러준다 여자만(灣) 개펄이 길러낸 벌교 사람들은 깊고도 찰지다 뻘 같은 세상 속에서 한겨울 꼬막처럼 일찌감치 속살이 찼다 양식이 안되는 참꼬막같이 탱탱한 벌교 사내들 앞에서는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개펄같이 푹푹 빠져드는 벌교 아낙의 말씨는 꼬막처럼 쫄깃쫄깃하다 널배로 기어 다니며 피었다 지는 아낙들, 갯비린내 물쿤물쿤 나는 뻘이라는 말의 안쪽에는 빨아 당기는 힘이 있다 질긴 목숨들이 무수히 들러붙어 있다 벌교의 꼬막은 찰지고 맛이 일품이어서 유명하다. 뻘밭에 엎드려 꼬막을 캐는 여인네들이 한 생이 얼마나 찰지고 힘이 있는지 모른다. 그들이 캐내는 그 꼬막 속에는 갯벌 사람들이 야무진 삶이 소복 담겨있다. `뻘이라는 말의 안쪽에서 빨아 당기는 힘`을 찾아내는 시인의 통찰력이 놀랍다.시인
2012-04-06
춥지 않니오이모종 성급히 내다 심고찬 별밭에 내려섰다연이어 꽃눈 지져대더니저만치 가던 겨울이 황사바람에 밀려 뒤돌아 오던 날두덕두덕 천년 집을 지어주고매무새 수없이 고쳐 줬지만침묵하는 봄눈망울 톡톡 붉은 어린 것소쩍새 울음 얼어붙은 새벽내 발 밑에 서릿발 칼날 세웠다환청처럼 들려 온 소리어린 내면에 핏줄 터지는 저 소리, 소리들춥지 않았니돋을 볕 황망히 달려와그래, 그래무사했구나시인은 겨울 건너온 꽃눈과 거기에 달라붙은 목숨을 걱정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 그 무사함에 안도하면서 내면에 핏줄 터지는 소리들을 듣고 있다. 어디 겨울을 맨발로 건너온 꽃눈뿐이겠는가. 삼동을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건너온 가난한 이웃들의 쾡한 눈을, 그 바람 숭숭 들어 차가운 관절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 가슴 속에서 따스한 핏물이 생생히 살아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시인
2012-04-05
감잎 크자 열매 난다 그 크는 속의 이치를, 더는 이수할 수 없는 열매들은 알아서 떨어져 아이들처럼 감나무 아래서 논다. 그늘 밖으로 나가지 않고 종일 올망거리며 논다뭐 하러 배 터지게 낳아 이름도 짓지 못 하는가늙은 마을의 아이가 거기서 잠들었다 떨어진 열매들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아이 뺨이 그늘에 올려져 싱싱하다어린 것들끼리 관심이 되어 주는 감나무 아래바람도 방을 들였다. 여전히 늙은 마을의 아이는 잠을 잔다아무 것도 모른 채 살려고 잔다저 잠의 문을 따면 천 가지 무지개 쏟아지리라오방색 흔들리며 늙어 가는 마을의 살을 붙들어 매는 신약처럼우리들의 오래된 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고향마을의 오래된 감나무 아래는 땡감이 떨어져 올망졸망 굴러다닌다. 땡감뿐만 아니라 마을의 어린 아이들도 그 오래된 감나무 아래서 뛰어놀면서, 홀로 잠들며, 점점 성장해간다. 둥글게 휘어지던 무지개를 가슴에 품고 그들의 미래를 열어간다. 정감어린 한 풍경을 보는 아침이다.
2012-04-04
나를 표시하는 몇 개의 숫자들과 더불어 산다 간혹 집 전화번호나 통장 비밀번호 같은 것을 잊고서청어 대가리처럼 어리둥절해 한다먼 도시의 지인(知人)들 사이에 떠도는나에 대한 소문들을 듣기도 한다소문에서 나는 무엇에 대단히 화가 나 있거나누구를 아주 미워한다 행복한 가장이 되어세월을 잊고 세상일마저 모른 체 지낸다고도 한다소문만으로도 내 근황이 충분하므로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듯 일없이 달력이나 넘겨본다아무 징조도 없이 계절이 바뀌고 그러다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는데 문득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이 너른 들판 어디쯤에선가 나도그렇게 시동이 꺼질 것이다갑작스레 멎을 것이다나이 먹을수록 생에 대한 의욕이나 의기가 빠져나가고 참으로 재미없어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닐까. 멀리서 들려오는 자신에 대한 풍문마져도 별로 관심하지 않는 덤덤한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시인은 아주 사실적인 필치로 보여주고 있다. 시인
2012-04-03
너 때문에 목이 말라서 마실 물 한 잔을 따랐는데, 그릇 안에 별모양 같은 게 떠서 어른거린다. 무슨 수로도 건져내지 못하고 말았다어쩔 수 없다마른 목 속으로 천천히 별 물을 들이키고 말았다. 그때부터 손바닥에도, 손바닥이 스치는 뺨 위에도 틈만 나면 묻어나오던 별의 기척을 어쩌나. 너 든 가슴은 또 어쩌나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에게 베이고 상처받는다. 그러나 그 상처가 상처로 인식되는데는 그의 마음이 베였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부터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는 날 동안 수없이 상처받지만 상처로 인식되기 전에 아물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면서 상처를 극복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상처에 대한 통증과 핏물을 지금 느끼고 본다면 그 현실이 얼마나 불행하고 새삼 아플 것인가. 비록 그 때는 아픔으로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지라도 적절하게 잊고 살아간다면 그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닌 것이다.시인
2012-04-02
사람이 때로 외로워지면저문 날 강가에 앉아무심히 풀잎을 따서부질없이 물위에 내던진다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하염없이,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풀잎은 느닷없이 몸이 죽어강물을 따라서 흘러가지만억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부질없는 말, 해서 무엇하나사람들의 아픔 혼자서 싣고봄날은 간다, 노래부르며먼 타향으로 흘러서 간다강물에 떠서 흘러가는 것이 어디 물뿐이겠는가. 우리의 설움도 사랑도 그 아픔도 다 강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현재이지만 그것은 아득한 과거로 혹은 미지의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다. 다만 흐름이란 현재에 정지해 있거나 고착돼있지 않다는 점에서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다림과 기대에 기대게 해준다. 아픔보다는 희망적이다. 꽃피는 봄날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 것은 성장(盛裝)의 여름도 풍성한 결실의 가을도 기약되기 때문이다.시인
2012-03-30
아직 쌀쌀한 봄날꽃을 보러 화본역에 갔지구멍 난 급수탑이 있는 승강장엔바닥에도 꽃들이 피어 있었네짧게 멈추는 기차를 타기 위해승객들은 뒤꿈치를 들고꽃 사이로 걸어가고괜히 볼 일도 없으면서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처럼서성이는 사람들을 보았지이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과자판기 커피 한잔하고 싶었네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엄동을 견딘 자연물도 사람도 움츠림에서 기지개를 켜고 아름다운 생명감을 피워 올리는 때이다. 꽃이 피어있는 화본역에는 사람들이 꽃을 구경하느라 바쁘다. 저만치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처럼 괜히 서성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규정할 수 없는 설레임과 희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희망이 크다.
2012-03-29
돌아보니 참 쓸쓸하구나먼 산늙은 살구나무 그림자빈 가지에 얹혀 있는 낮달한 점돌아보니 참 아득도 하구나젊은 시절 독재세력에 온몸으로 싸웠던 작가이면서 시인인 김영현의 최근 시이다. 불꽃같이 젊음을 민주화를 위해 바쳤던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고 쓸쓸한 현실을 인식하는 시인의 눈은 아득함에 젖는다.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시인은 그가 가야할 더 먼 곳의 아득함 때문에 쓸쓸해 하는지 모른다. 그의 과거 현실 미래가 다 아득하고 쓸쓸할 뿐이다. 우리네 삶이 다 그런 건 아닐까.
2012-03-28
베란다 선인장 아래 쪼그려 앉아가슴 저미는 시를 읽는다TV속 주인공의 실연에 아내는 눈물을 찍고아들놈 자판소리가 탁탁대못을 박는다아내와 아들은 다른 세상과 교신 중불시착한 외계인처럼시집을 넘기며지나온 별을 회상한다말 붙일 사람 하나 없고바람 한 점 없는 베란다에 홀로 쪼그려 앉아시 한 소절에 잠 못 이룬다인간의 근원적 고독에 대해 쓴 이 시는 쉽게 편하게 읽혀지는 작품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친구라 할지라도 각각의 존재에는 온전히 함께 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그 틈을 경계로 각각은 절대적인 개인이며 고독의 존재다. 개체의 삶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시는 무언가 모를 씁쓸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시인
2012-03-27
상처와 통증은 서로 다른 곳에서 온다상처가 있는데 통증이 없을 수도 있다통증은 있는데 상처가 없을 수도 있다보통 통증은 상처보다 늦게 온다내가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대개 통증은 없다그 시절, 나는 얼마나 평온했던가칼날이나 칼날 같은 것이살갗을 베고 지나간 후바로 들여다보면 상처가 잘 보이지 않는다그때는 아프지 않다조금 더 기다리면 통증은 배어나는 핏물과 함께 온다상처는 피로 증명되고 피가 나면 통증은 온다그 아침, 피를 보지 말아야 했다고개를 돌린다고 다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다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에게 베이고 상처받는다. 그러나 그 상처가 상처로 인식되는데는 그의 마음이 베였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부터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는 날 동안 수없이 상처받지만 상처로 인식되기 전에 아물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면서 상처를 극복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상처에 대한 통증과 핏물을 지금 느끼고 본다면 그 현실이 얼마나 불행하고 새삼 아플 것인가. 비록 그 때는 아픔으로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지라도 적절하게 잊고 살아간다면 그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닌 것이다.시인
2012-03-26
무섭다 나뭇잎들이저리 소리 없이 지고 있으니나는 너무나많은 말들을 주절거리는데바다 속 같은연꽃 같은저 깊은 무언의 가르침무욕의 눈빛그게 온통 나를 찔러파르르작둣날 위 선 것 같다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자기반성, 성찰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인식은 바로 자연에 비롯되고 있다.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별로 눈여겨 보거나 느끼지 못했던 자연을 통해 진정한 우리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시인
2012-03-23
구름에 가려 찬란한 일출을 보지 못하고동해안 철길 해송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도겨울비가 기차 레일 위에서 훌쩍여도 좋다회비령에 진눈깨비 날리다 금세 폭설로 변해오가는 사람들 발목을 덜컥 붙잡아도 좋다역내에는 해연풍 같은 음악이 흐르고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궁글리며주머니에 라이터가 없어도 허전하지 않겠다철도신문을 뒤적이다 해국(海菊)같은 하슬라역을배경으로, 한 잎의 시를 써 내려가도 좋다따스한 커피를 건네는 역무원의 배려에귤 두 개로 화답하며 시간 멈춰도 좋고마구 퍼붓는 괘방산 함박눈에 혼을 빼앗겨밤새껏 소금별 숫눈길을 헤매다녀도 좋다눈 속에 파묻힌 기차 레일을 찾아내서그대와 거리를 조율하듯 가깝게 좁혀놓고해맞이 온 사람들 행선지가 바다로 향해도밤 파도의 포말을 밀어내듯 발뺌하면서심곡항 등대처럼 밤새 글썽거려도 좋다하슬라역은 강릉의 옛 지명에서 유추한 상상의 역 이름이다. 그곳은 희망과 생성의 공간이고 번잡한 현실을 초월하는 곳이기도 하다. 각박하고 살벌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하슬라역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현대인에게는 단순한 현실도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위로와 휴식, 평화와 안식을 위해 꼭 필요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시인
2012-03-22
뿌리가 없는 겨우살이는 다른 나무에 가지를 붙여 수분과 영양을 뺏어먹고사는 기생식물이며 잎은 비늘 모양으로 퇴화되어 있고 가지는 서로교차하여 갈라지지만 사시사철 푸르고 한겨울에 꽃과 열매를 맺는 끈질긴생명력으로 사람의 간을 치유하는데 특효라는 기사를 언제인가 신문에서본 적이 있다.안성매표소를 지나 눈 쌓인 덕유산을 오르는 길에 메마른 새들의 먹이가되는 파릇한 겨우살이를 본 뒤로 가끔씩 나는 그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들고는 한다시인이 말하는 뿌리 없는 겨우살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식물인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견디며 생육하다가 그 파릇한 싹을 겨울을 건너가는 새들에게 내주는 생태의 모습을 본다.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이 이 시의 겨우살이 식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시인
2012-03-21
때론 그대 삶에각색이 필요하다평생 쪼아 살아도주머니가 가벼워추위에 부리를 닦는날갯짓이뜨겁다새 중에서 가장 몸집이 작은 새가 굴뚝새가 아닐까. 비록 크기가 여느 새들 같지 않다 할지라도 뜨겁게 한 생을 살다 간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생명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최선을 다해 한 생을 살다가는 자연속의 미물에게서 마저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한다. 시인
2012-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