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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 그 너른 들에서...강 윤 후

등록일 2012-04-03 21:46 게재일 2012-04-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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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표시하는 몇 개의 숫자들과 더불어 산다

간혹 집 전화번호나 통장 비밀번호 같은 것을 잊고서

청어 대가리처럼 어리둥절해 한다

먼 도시의 지인(知人)들 사이에 떠도는

나에 대한 소문들을 듣기도 한다

소문에서 나는 무엇에 대단히 화가 나 있거나

누구를 아주 미워한다 행복한 가장이 되어

세월을 잊고 세상일마저 모른 체 지낸다고도 한다

소문만으로도 내 근황이 충분하므로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듯 일없이 달력이나 넘겨본다

아무 징조도 없이 계절이 바뀌고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는데 문득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 너른 들판 어디쯤에선가 나도

그렇게 시동이 꺼질 것이다

갑작스레 멎을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생에 대한 의욕이나 의기가 빠져나가고 참으로 재미없어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닐까. 멀리서 들려오는 자신에 대한 풍문마져도 별로 관심하지 않는 덤덤한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시인은 아주 사실적인 필치로 보여주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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