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수수방관 얼어버렸다땅이 속수무책 얼어버렸다그 사이 은현리 수도꼭지혼자 깨어 얼지 않으려고혼신의 힘을 다해 물 한 방울또르르 굴려 똑, 떨어질 때저 뜨거운 피엄동설한에 얼어버린 천지를 본다. 그런데 은현리 시인의 거처에 있는 수도꼭지는 그 추위 속에서도 한 방울 한 방울 혼신의 힘을 다해 떨어뜨리고 있다. 스스로 깨어있어 얼어붙지 않기 위해서다. 이 사소한 일에서 시인의 인생의 진리를 발견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위기를 뚫고 나아간다면 아름다운 성취에 이르를 수 있지 않을까. 밤 새 똑 똑 떨어지는 수돗물, 저 뜨거운 피를 보면서 시인은 무언의 웅변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시인
2012-05-15
천 만 리머나 먼너의 하늘엔그 날의 햇살아직도 눈부신데오늘 여기나의 하늘엔분분한 눈송이꿈결처럼흩날리누나이승과 저승 도저히 극복되어지지 않는 거리에서 시인은 그 시간의 깊이를 절감하며 그와의 시간들을 추억하고 있다. 그날의 햇살은 아직 눈부신데 그는 가고 없고 그 하늘에 다시 눈이 치기 시작한다. 우리들 아득한 시간들을 추억해보면 햇살 눈부시던 하늘로 하얗게 눈이 내리지 않을까. 그 눈 속에 그리운 그이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을까.시인
2012-05-14
푸르스름하게송두리째 다 푸르스름한 게 아니라푸른색이 간간 찐하게 뻗어간 그 푸른 길로뻗어 가다가 막힌,저 푸른빛이 왜 멈춘 걸까왜 막힌 것일까 막히기 시작한 그 자리에서자해하듯 내밀기 시작한 가시들, 가시들가시야나는 내가 무겁다너는 너조차도 무겁구나나도 내가 무겁다너는 네 안에서 무겁다너는 네 안에서 공(空)을 친다너는 네 안에서 죽을 쑨다너는 네 안에서 구겨진다이제까지 공쳐 온 말과죽 쑤어 온 말을무(無)로 번역해무의 꽃을 피워 낸다자면서 울고 있는네 잠의 눈물을 보며나는 눈물방울을 닦아 줄 말을 생각해 낸다푸른빛을 죽인다는 뜻의 살청이라는 말은 찻잎의 초록 기운을 없앤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살청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푸른빛을 없앤다는 것은 다른 어떤 힘에 의해서 없애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푸른빛을 죽인다는 뜻이다. 철저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헛된 욕망과 이기심을 스스로 제어하고 없앰으로 고요한 평정심과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시인 정신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2-05-11
흔히 한 장의 백지가그 위에 쓰여지는 말보다더 깊고,그 가장자리는허공에 닿아 있으므로 가엾는무슨 소리를 울려 보내고 있는 때가 많다거기 쓰는 말이그 흰 종이의 숨결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상품이고허공의 숨결로 숨을 쉰다면, 명품이다우리는 어느 순간 백지를 눈앞에 대할 때 숨이 턱 막히는 걸 느낄 때가 있다.백지의 가장자리가 허공에 닿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간들은 백지를 백지로 남겨두지 못하고 뭔가 백지를 메워나가고 써내려 간다. 때로는 그 백지를 백지로 남겨두고 침묵하는 우리의 자세가 더 아름다울때가 있지 않을까.시인
2012-05-10
버려둔 시골집의 안채가 결국 무너졌다 개망초가 기어이 웃자랐다 하지만 시멘트 기와는 한 장도 부서지지 않고 고스란히 폴삭 주저앉았다 고스란히라는 말을 펼치니 조용하고 커다랗다 새가 날개를 접은 품새이다 알을 품고 있다 서까래며 구들이며 삭신이 다치지 않게 새는 날개를 천천히 닫았겠다 상하진 않았겠다 먼지조차 조금 들썽거렸다 일몰이 깨금발로 지나갔다 새집에 올라갈 아이처럼 다시 수줍어 하는 기왓장들이다 저를 떠받쳤던 것들을 품고 있는 그 지붕 아래 곧 깨어날 새끼들의 수다 때문이 아니라도 눈이 시리다 금방 날개깃 터는 소리가 들리고 새집은 두런거리겠다시골집 안채. 가족사, 그 끈끈한 사람의 정이 고스란히 간직된 서사의 보고다. 형제 자매들이 태어나 자라고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이 깃든 요람이다. 오랜 역사를 붙들고 서 있던 고향집이 쇠락해서 무너져내린 것이다. 시인은 그 풍경 속에서 새로운 생명감과 시작의 의미를 찾고 있다. 비록 낡고 헐어서 무너졌지만 거기서 날개깃을 터는 새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2-05-09
현란한 깃발의 흔들림이 파도처럼 포기하지 말아라 하네허물어진 자유의 한편에는늘 양심이 도사리고 있네자유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입에서 나온 말들은너무도 선명한 상처를 남기고포도에 흘리는 붉은 피나부끼는 깃발 아래파도처럼 몰려가는 대열에서는아무 것도 볼 수가 없네어깨를 걸고 흔들리지 말자는 다짐가녀린 손이 어깨를 만지며 우네바지랑대 끝에 아슬히 앉아 있는잠자리 한 마리 미동도 않네맞다. 참으로 아슬한 세상이다. 연대는 있어도 뜨거운 열정은 사라진 수많은 대열을 본다. 본질이 가려지고 혹은 왜곡되어 전혀 보이질 않을 때도 있다. 함성만 공허하게 광장에 흩어져 버리는 안타까운 연대들을 본다. 오랜 세월 올곧게 교육운동에 헌신하는 시인의 안타까운 시선이 선명한 시이다. 시인
2012-05-08
말 잊은 지 이미 오래다그 덕분에졸참나무 숨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흐르는 물 앞에서손주 눈망울처럼 빛나는물의 눈빛도 볼 수 있게 되었다말을 잊었다는 거,그것은 제주 사려니 숲길에서 만난어린 노루의 신성한 눈빛처럼이 숲이 내게 준 선물이다사람의 입에는 독이 있다고 했던가. 우리가 하는 말은 남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감사하고 치유하는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말 때문에 엄청난 악이 생산되고 남을 해치고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숲에 파묻혀 말을 잊고, 자연의 소리들을 듣고 가슴에 담으면서 생활하는 시인의 고백이 오롯이 담긴 시이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언어를 떨쳐버리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시인은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맛본다는 고백에 귀 기울여봄직하다.시인
2012-05-07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 같은별과 달과 해와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손 저어 대답하면서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별과 달과 해와모래만 보고 살다가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길동무 되어서노시인의 인생을 달관하는 정서가 진하게 깔린 작품이다. 삶과 죽음에 초연한 마음으로 여생을 결산하는 목소리가 깊고 그윽하다.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다고 하는 부분의 어리석은 사람 하나는 바로 시인 자신일 것이다. 무욕의 삶을 살아온 시인의 목소리가 오늘 아침 바람 속에 선명하게 들려온다.시인
2012-05-04
돌 돌 돌들이오보록이 일어서 있는 벼랑홀로도 푸르른 바다머리 내밀며 잿빛 기슭으로 기어 나와햇무리에 자오록히 섞인다자맥질해온 까당한 목소리들돌베게 사이 다닥다닥 붙어별처럼 흩어져 나뒹군다(…)사철 하얗게 포말이 부서지는 마을, 강축도로의 석리 바다 벼랑에 서서 시인은 끝없이 밀려와 부딪히고 하얀 물거품을 물고 밀려나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다. 저토록 간절히 밀려와 바다벼랑에 온 몸으로 부딪히며 뭔가를 말하고 있는 파도와, 거센 해풍과 파도 앞에서도 당당히 저들의 한 생을 살아가고 있는 바다마을 사람들의 옹골찬 삶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영원의 자연 앞에 꿋꿋이 맞서는 유한한 인생의 질기고 어기찬 삶의 모습들, 그 질박한 풍경들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있다.시인
2012-05-03
마주 오던 사람하고 살짝 한번 부딪쳤다오래 쓰던 안경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한쪽 다리 떨어진 안경그만 버릴까, 주저하다 근처 안경점에 들렀다안경점 남자는이게 풀렸군요, 하면서나사 하나를 돌려 박아 주었다참, 간단하다이렇게 감쪽같을 수도 있네요! 고개를 갸우뚱했더니나사니까요, 한다꼭꼭 조인 다음 보는 세상은훤했다말짱했다언제부터 너는 내게 천천히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풀리기 시작했던 거다나사니까나사는 틈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부딪침은 관계의 균열에 이르는 단초가 된다. 그것은 결국 파열과 파국에 이르게 하고만다. 시인은 안경의 나사 하나에서 인간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나사가 풀려져나가 떨어진 안경을 버릴까 생각하다가 버리지 않고 나사를 끼워 그 관계를 복원하면서 사람 사이의 화해와 관계의 복원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사소한 얘기를 펼쳐나가고 있다.시인
2012-05-02
12/31에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집사람과 영주에 내려와 있었다.그들은 가고….어두운 문을 여는 순간 기댄 자세의 내가 쏟아진다그 며칠,나는 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함부로 기댔었나 보다야구 식으로 말하면 가정은 홈베이스이고 가족은 팀원들이다. 투타의 모든 것이 홈으로 집중되는 경기가 야구다. 끝내 홈을 밟아야 득점에 이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깊은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팀웍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물론 부모에게 기댄다. 부부도 서로 기대고 의지하려고 한다. 아니 가족은 서로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 생래적인 본능이다. 가족, 이보다 더 소중하고 든든한 것이 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시인
2012-05-01
지구의 회전판을 잠시 멈출 수 없을까날마다 넘겨지는 일력한 쪽쯤 까치밥으로 남겨둘 순 없을까눈 속 봄동이 파릇 입맛 돋우듯스무 살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을까호호백발 저 노인들을 위해단 하루만이라도활화산처럼 다시 뜨거워질 순 없을까처녀지로 밀봉해 남겨둔그날, 그 거리로 돌아가곡정초처럼 무성해질 순 없을까서까래 검댕이가 슬고관절 삭정이 툭툭 부러질 때오월의 빛깔로뜨겁던 사랑 되찾을 순 없을까한생의 후반부에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토해놓는 시인의 희구와 회한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생명의 푸르름이 절정인 오월. 그 아름다운 빛깔 속에서 빈 겨울 벌판의 곡정초를 살려내는 시인의 눈이 깊고 절절하다. 활화산의 그 뜨거움 같은 생의 열정을 노인에게 북돋워주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시인
2012-04-30
엄마가 쌀을 빻아왔다 고목나무보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돌아오신 것이다가으내 들일로 참깻대가 된 손에 찹살가루 버무린다 엄마는 내년쯤 돌아가실 예정팥 한층 쌀가루 한층 설설뿌리시며 야 떡 먹구 싶냐, 파도 부서진 물보라 처마에 쌓인다늦은 눈, 봄눈이 내리는 시골집 마당을 떠올려보자.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처럼 하얀 찹쌀가루를 빻아 오신 늙으신 어머니, 그 쌀가루에 팥 한 층 올려 시루떡을 안치는 어머니, 이제는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않은 어머니지만 봄눈 내리는 날 아들에게 떡을 해 권하는 어머니의 따스하고 정겨운 사랑과 정성이 눈물겹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걸어온 길이다.시인
2012-04-27
매운 바람매어 놓은소.울지도 못하고비치적거리다간 데 없는….멍에 벗은몸.끊긴매듭 한 마디소슬하게 남았다심우도(尋牛圖)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 속을 헤매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처음 수행을 하려고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禪)이 무엇인지 참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인데, 결국은 자기 자신을 찾고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시인의 간결한 언어들에서 치열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시인
2012-04-25
지난 봄 새순 말려 띄운작설(雀舌)을,늦가을 해어름에 비로소 뜯네기다려도 올 이 없는 산 중 삶인데고이고이 간직해온 심사는 뭘까뒤뜰엔 산수유 열매가 붉어메꿩 몇 마리 부리 쪼는데찌르레기 샘물 찍어 하늘 바래듯늦가을 홀로 앉아 차를 마시네기다려도 올이 없는 외진 산방(山房)에가을 산과 대좌하여 드는 작설은지난 봄 이슬에 젖은 찻잎이오늘은 서릿발에향기도 차네새봄의 작설 한 줌을 늦가을 산방에서 울궈마시며 시인은 외로움과 기다림에 눈을 감는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득한 그리움 끝을 물고 새들은 날아갈 것이고 쓸쓸히 가을꽃들도 떨어질 것이다. 서릿발 차가운 시간을 건너가는 머언 기다림은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아침이다. 시인
2012-04-24
이중창과 방범창까지 닫힌 집 속에서 길 하나가탈장처럼 빠져나온다그 길 속에서 타다 만 사내와 개가 미끄러져 나온다성기를 덜렁 내놓은 사내도꼬리가 반쯤 탄 개도 모두 납작해져 있다안테나가 헐거워진 집을 단숨에 잡아당긴다집은 그 흔한 뿌리도 구근도 매달지 않았다뿌리까지 다 내어놓고도 나무는집과 길 밖에다 새를 감추어두고 있다집은 허공의 날개가 되었다집은 여행 중이다흔히들 집을 안락과 휴식, 정주의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일반적인 인식을 초월한다. 앞부분의 화재가 안집의 공간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중창이나 방범창으로 닫힌 집은 외부로 부터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내면을 구속해 버리는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2-04-23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부산형무소, 소년의 앳된 얼굴도 끼인 수백 명의 홑바지 차림의 죄수들이 허리에서 허리가 한 줄의 오라에 묶인 채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막 호송되고 있다.저것이 학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인간의 기본권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하는 것일까. 한 줄의 오랏줄에 묶인 채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호송되는 일군의 무리들. 그들이 한국전쟁이 포로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범죄자들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리고 그들이 어디로 호송되어서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나 시인은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어 기본권마저 유린될 지도 모르는 한 장면 앞에서 학살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항변하고 있다.시인
2012-04-20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물며 신마저도 그렇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러니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시인은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적당한 외로움은 오히려 인간을 더 성숙한 경지에 이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외로움은 오히려 인간에게 위안을 주고 자유로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시인
2012-04-19
창문에 뭉툭한 손이 내려오네시골에서 보내온 감자를 삶아먹는 밤어머니 한숨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네새벽을 기다리네거미가 가등에 달라붙어 새벽이 터지는 빛살들로날개 한 벌 짜려고 하네꼼짝도 않고 기다리네먼 훗날, 감자 껍질을 벗겨 희디흰 속살 먹는소녀의 창가를 엿보리무서리 저리 내리는 날날개를 반쯤 펴고젖어서, 가만히 딸의 창문에 비치리어머니의 화신인 하현달을 보면서 자기가 그렇듯이 자기 자식의 먼 훗날을 그리는 시인의 눈이 젖어있다. 어머니와 딸, 운명처럼 흘러내리는 그 무엇이 있어 우리의 가슴도 시시로 젖는다. 연민 혹은 처연한 아름다움이 진하게 배인 이 작품은 읽는 이를 상념에 잠기게 한다.시인
2012-04-1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은 사람이다사람과 사람사이로 난 길 따라소소소 가을 바람 부니살살이꽃에서 풍기는살 내음이 황홀하다사람이여살터온 우주에새녘 동터오는새빛 같은 사람이여샘밑 맑디맑은 영혼이여사람이어서 우리는서로서로심알을 맺나니사람살이 한평생이 빛이거니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은사람이다누군가 노래했듯이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가장 순수한 가치이고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시선은 인간에게로 향해있다. 바람의 뼈 같은 투명한 시혼이 먼 사막을 달려온 달갑게 달려온 순례자의 귀로, 순도 높은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은 가장 아름다운 빛이 아닐 수 없다. 시인
2012-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