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모종 성급히 내다 심고
찬 별밭에 내려섰다
연이어 꽃눈 지져대더니
저만치 가던 겨울이 황사바람에 밀려 뒤돌아 오던 날
두덕두덕 천년 집을 지어주고
매무새 수없이 고쳐 줬지만
침묵하는 봄
눈망울 톡톡 붉은 어린 것
소쩍새 울음 얼어붙은 새벽
내 발 밑에 서릿발 칼날 세웠다
환청처럼 들려 온 소리
어린 내면에 핏줄 터지는 저 소리, 소리들
춥지 않았니
돋을 볕 황망히 달려와
그래, 그래
무사했구나
시인은 겨울 건너온 꽃눈과 거기에 달라붙은 목숨을 걱정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 그 무사함에 안도하면서 내면에 핏줄 터지는 소리들을 듣고 있다. 어디 겨울을 맨발로 건너온 꽃눈뿐이겠는가. 삼동을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건너온 가난한 이웃들의 쾡한 눈을, 그 바람 숭숭 들어 차가운 관절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 가슴 속에서 따스한 핏물이 생생히 살아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