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철길 해송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도
겨울비가 기차 레일 위에서 훌쩍여도 좋다
회비령에 진눈깨비 날리다 금세 폭설로 변해
오가는 사람들 발목을 덜컥 붙잡아도 좋다
역내에는 해연풍 같은 음악이 흐르고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궁글리며
주머니에 라이터가 없어도 허전하지 않겠다
철도신문을 뒤적이다 해국(海菊)같은 하슬라역을
배경으로, 한 잎의 시를 써 내려가도 좋다
따스한 커피를 건네는 역무원의 배려에
귤 두 개로 화답하며 시간 멈춰도 좋고
마구 퍼붓는 괘방산 함박눈에 혼을 빼앗겨
밤새껏 소금별 숫눈길을 헤매다녀도 좋다
눈 속에 파묻힌 기차 레일을 찾아내서
그대와 거리를 조율하듯 가깝게 좁혀놓고
해맞이 온 사람들 행선지가 바다로 향해도
밤 파도의 포말을 밀어내듯 발뺌하면서
심곡항 등대처럼 밤새 글썽거려도 좋다
하슬라역은 강릉의 옛 지명에서 유추한 상상의 역 이름이다. 그곳은 희망과 생성의 공간이고 번잡한 현실을 초월하는 곳이기도 하다. 각박하고 살벌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하슬라역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현대인에게는 단순한 현실도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위로와 휴식, 평화와 안식을 위해 꼭 필요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