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차가운 바람이 손발을 저리게 했다
민소매와 반바지 위에 두꺼운 잠바를 입었다
나는 여자보다 가을의 서늘한 날씨를 더 사랑했지만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사랑하는 가을이 사라져버렸다
남산 전망대에 서서
사라진 계절을 찾아 방황하는 새들을 보았다
반바지와 민소매를 입고
아주 잠깐 먼 데를 보고 있는 사이에
초록이 지고 흰 눈이 내기기 시작했다
생의 전망대에서 탄알처럼 휙휙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시인의 가슴에 겨울바람이 스미고 있다.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아주 잠깐 먼 데를 보고 있는 사이에 자연의 시간도 우리네 인생의 시간들도 아무 것에도 걸림없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사느라고,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거기에 몰입하다 허리 펴고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듯 머물러 있을 것 같던 많은 것들이 곁에서 멀어지고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세월을 쏜 살이라고 했던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