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경 미
가시 박혔을 때, 비싼 음식이 맛없을 때, 돈 꾸고
갚기 싫을 때…. 무조건 부르라며
막무가내 폭력배 대표인 듯이
황금빛 은행잎들 소공녀처럼 쏟아지는 창가
명함을 건넸다 폐인된다 십 몇 년만이었는데 명함 속에
공사 끝나가는 붉은 벽돌 성당이 환했다 십자가
다 올려지면 가서 좀 뉘우치리라 슬쩍 명함 던지자
마당의 덜 지은 성모마리아 두 손 벌려 그 흰 눈
다 받아든다
명함, 이름과 직함, 주소와 연락 받을 수 있는 각종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가 빼곡한 직사각형 종이조각. 그 명함 조각에 실린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아닐진대 우리는 얼마나 그 명함을 손쉽게 내밀고 받기도 하면서 거들먹거리고 혹은 그것에 동의하면서 살아오고 있는가. 한번쯤 명함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