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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집

등록일 2012-08-03 21:29 게재일 2012-08-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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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창 환
대추나무 가지 눈높이에

누군가 빠져나간 집 한 채 있다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집

저 안에 하나의 세계가 꿈틀거리며 일어났고

대낮의 폭염, 한밤의 얼음별, 눈 못 뜨는 칼바람

시간의 깊은 여울 건너

주인은 어디론가 떠났다

어디로 갔을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번 집 나간 그가 돌아오는 걸 본 적이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렸거나

온 세상이 모두 그의 집이 되었기 때문일까

그가 스쳐 지나간 것은

그를 안아 잠재워 준 대추나무가 아니라

돌아올 길을 지우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물살이었을까

대추나무 가지 눈높이에

누군가 서둘러 빠져나간 집 한 채 있다

대추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텅 빈 매미집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시간을 읽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땅 속에서 수 년을 기다렸다가 이 땅에 유리같은 투명한 집 한 채를 빌려 태어나는 매미. 그 집을 벗고 나와 일 주일 가량을 온 힘을 다해 울다 툭 떨어져 죽어버리는 매미. 짧은 한 생을 살다가지만 최선을 다해 공명통이 된 몸을 소비하고는 가는 매미의 시간에서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쏜살 같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을 말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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