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유리에 달라붙은 반투명의 아우성
떼 지어 엉키며 부풀리며 퍼져나가며
쉴 새 없이 휘돌며 되울리는 메아리조차 자욱하다
고요가 이렇게도 소리칠 수 있다니
고요의 목청이 이렇게도 깊고도 요란할 수 있다니
고요의 목소리가 내설악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다니
귀를 틀어막고 우왕좌왕하다 보니
먼데 산봉우리 하나가 모가지만 내놓은 채 허우적거린다
세상은 거대한 안개바다
깊이 모를 대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아우성만
끼리끼리 휘돌며 메아리치고 되받아친다
한나절을 기다려 나가보니
산자락 자락마다 선혈이 낭자했다
단풍은 절정,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터였다
밝은 시인의 귀에는 쉴 새 없이 휘돌며 되울리는 아우성이 들린다. 그것을 시인은 고요의 메아리라고 일컫는다. 깊고 요란한 고요의 목청이 온통 내설악을 집어삼켜버린 것에 놀라고 있다. 날이 밝고 산을 오를수록 그 고요는 가을 내설악의 아름다운 단풍바다로 다가오고 있다. 밝은 시인의 마음의 귀와 역동적인 시인의 시상전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