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멓게 녹아내린 것 보았다
그렇다면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쇳덩이가 불을 만나 종을 얻었는데
종이 다시 불을 만나 쇳덩이가 되었다
좋은 불과 나쁜 불
너무 슬퍼하지 말자
종은 없어 졌어도 종소리는 있다
산새가 기억하고 산바람이 추억하고
산 메아리가 저장했다가
산이 외로울 때 한 번씩 저러렁 내놓을 게다
대구의 시인 이규리가 쓴 동시다. 몇 해 전 불타버린 낙산사 동종을 보고 그 안타까움이 배인 정겨운 작품이다. 동종은 불타버렸지만 그 소리만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그 천년의 소리야말로, 아니 영원으로 흘러가는 종소리야말로 산새들에게 기억되거나 산바람 속에, 아니 푸른 역사 속에 선명한 아름다운 소리로 남아있을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