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모퉁이에서 마주친 바람
그에게선 산하를 떠돌다 온 행려의 냄새가 났다
온몸 부딪쳐 쌀뜨물 같은 안개 속에 누워있는
새벽의 부시시한 머리채 흔들어
저마다의 색과 형체를 깨우는 것
보이는 것을 흔들어 보이지 않는
저의 육체를 증명하는 것
가난한 골목과 닭장집과 공장 굴뚝을 지나
마침내 허허벌판에서
저를 지우고 저가 지나온 길을 지우고
마침내 아직 가보지 못한
먼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몇 해 전 엄청난 육체적 아픔을 겪은 시인이 투병 중에 쓴 시이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시를 써온 시인은 병상에서 자기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있다. 애증과 아픔으로 점철된 시간이 흘러온 길과 시간을 쓸어안으면서 다시 일어나 힘차게 걸어가야할 길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