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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순해지는 어느 날...박두규

등록일 2012-01-31 21:50 게재일 2012-01-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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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귀가 순해지는 어느 날이면 한적한 시골에서 동네 노자(子)들의 지붕이나 고치며 끄적끄적 살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정처없는 것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어느 산모퉁이 하얀 꽃으로 피거나 그 꽃의 그림자로 흔들려도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남은 이승의 끄트머리라도 그리 보내는 것이 그나마 실속 있겠다고 생각해본다.

거북등처럼 붙어있던 껍질을 벗고 민달팽이 맨몸으로 어느 우거진 풀숲의 그늘을 슬슬 기어 다니고 그러다보면 달이 중천에 떠 있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시절은 그 시절의 바람이 또 불지 않겠는가.

이순(耳順), 귀가 순해진다는 인생 60을 일컫는 말이다. 아무리 고령화사회가 도래했다하더라도 인생 60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욕망과 패기로 열정을 다해왔던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며 이제는 어느 산모퉁이의 하얀 꽃으로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여유와 관조의 정신이 이 시 전체에 깔려있어서 참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욕심을 다버리고 자연의 한 부분으로 돌아가겠다는 겸허한 마음을 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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