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면 새잎이 나고 꽃들이 새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 잎이 나는 나무며 풀들은 마치 운동회 날 뜀박질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같았고
새로 피어나는 꽃들은 마치 장마당에 모여 북적대는 장꾼들 같았다
아이들도 비를 맞으면 키가 큰다고 좋아했다
요즘도 초록 봄비는 내린다
그러나 그 초록 봄비는 화살촉 같은 날카로운 혓바닥을 숨긴 초록 봄비다
산성비이고 방사능비라는 이름을 가졌다
어른들은 절대로 밖에 나가서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아이들은 창 안에서 맨몸으로 초록 봄비를 맞고 있을
나무며 풀들을 걱정한다
봄비를 초록봄비라고 부르는 시인의 가슴 속은 연두빛 연초록빛이 가득하리라. 어릴 적 봄비가 내리면 앞다투어 피어나던 봄꽃들, 그 봄꽃 스러진 자리에 돋아나는 초록빛 새순들을 바라보노라면 이가 시려옴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봄비는 산성비이고 방사능비라 할 만큼 지구는 오염되고 변질됐다. 우리 인간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자연물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가 돼버린지 오래됐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