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절을 밟고 지나간다
귀뚜리는 나를 보아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는다
차운 돌에 수염을 착 붙이고
멀리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다
어디선가 받아 읽는 가을의 사람은
일손을 놓고
한동안을 멍하니 잠기고 있다
귀뚜리의 송신(送信)도 이내 끝나면
하늘은 바이없는
청자(靑瓷)의 심연이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 무렵 가을을 깊이 묘사하는 신동집 시인의 대표시이다. 귀뚜리의 울음이 끝나는 것을 생명의 종말로 여기는 시인은 청자의 심연같은 적막의 순간을 미리 내다보고 있다. 가을을 조락(凋落)과 죽음, 마지막의 의미로 받아들이며 생명의 시효가 끝나가는, 죽음이 임박해오는 것을 `신호`로 표현하는 시인의 깊은 눈을 느낄 수 있는, 명상의 시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