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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불쾌지수

오늘도 불쾌지수가 80이 넘는다고 한다. 이번 주 며칠 동안 계속 일기예보에서 불쾌지수가 나오고 있다. 80이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불쾌지수는 기상청에서 매년 6~9월 일 8회 생산하여 제공되는데 날씨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기온과 습도를 조합하여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덥고 습한 날이 많은 요즘 어쩌면 짜증내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특히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 더위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그런데도 자주 부대끼다 보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나의 감정을 폭발해 나의 기분을 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이렇게 한 뒤에 생각나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이다.짜증내는 그 순간 내 감정은 풀릴 수 있겠지만 그 짜증을 묵묵히 받고 있는 상대방을 보면 후회가 바로 든다. 특히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 내 맘대로 짜증을 낼 때도 그렇다. 비록 내 잘못이 아니라도 그 짜증을 받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은 어떨까?그럼에도 참 쉽지 않은 것은 사람의 감정이다. 상대방 기분을 해칠 것을 알지만 자신의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좀더 쉽게 나의 감정을 풀려고 할 수 있다.그 사람의 역사와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 사람도 누군가의 아빠, 엄마이며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란 것을.어느 곳에서는 불쾌지수가 80 이상일 경우에는 업무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한단다. 요즘은 효율성의 잣대를 아무데나 갖다 대지만 일의 능률을 위해 불쾌지수를 고려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직 우리네 많은 곳에서는 이런 호강도 누리기 쉽지 않다.그렇다면 내 맘을 고쳐먹는 수밖에.불쾌지수는 모를 때보다 알 때 사람들은 더 짜증을 낸다고 한다. 땀 흘리는 것도 모르는 정도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할 때 열심히 하고 잠시의 휴식을 누리는 수밖에.묵묵히 모든 것을 견디며 서 있는 큰 나무를 보며 부끄러워진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7-28

S씨의 여름 저녁

정신보건센터의 S씨는 모처럼 안정된 표정을 보였다. 작년 가을부터 한참씩 안 보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병원에 있었노라 했다. 얼굴이 부어있거나 체중이 갑자기 늘기도 하고, 대답도 잘 하지 않아 대화가 힘들었다. 우울증으로 정신보건센터의 관리를 받고 있다. 립스틱 색깔이 짙은 50대 중반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몇 해 전이다. 식당에서 며칠 일해서 돈을 벌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조증이 염려되긴 했지만, 즐겁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것은 다행이었다. 우울한 기간이 길어지고 입퇴원을 반복하더니, 일 년여 사이 눈에 띄게 쇠락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랬던 그가 오늘은 단정한 매무새에 모처럼 화장도 한 얼굴이다. 먼저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대답을 해주는 것이 참 고마울 정도다. 여름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멍석 깔고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었어요. 큰 오빠가 녹음기 갖다 놓고 아버지부터 쭈욱 차례대로 노래 부르게 해서 녹음하고 다시 들었어요.”특별히 우울했던 운동회 날의 기억도 꺼낸다. 모두들 맛있는 도시락을 펴놓고 가족들과 함께 먹는데, 한 가지 반찬뿐인 시커먼 도시락을 혼자 먹는 일이 창피해서 울었다고. 늦게 들어온 엄마는 운동회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셨다고.현재까지 연구된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원인의 세 가지가 있다. 스트레스만으로 주요 우울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증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노출되었던 기억을 오래 가지고 있거나, 우울한 기분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덮는 것은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쓸쓸했던 운동회 날의 어린 S씨를 충분히 이해하고 토닥여주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혹은 수많은 그런 날의 기분을 혼자서 억누르지 않고 표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길게 남는다. 오래전 여름 저녁, 식구들이 녹음기 앞에서 불렀던 노래 제목까지 이야기하는 S씨는 오늘 참 편안한 얼굴이었다./윤은현(수필가)

2015-07-27

초점

사진을 찍다보면 흐릿하게 나올 때가 있다. 초점이 안 맞아서 생긴 경우다. 초점을 맞추기는 좋은 사진을 얻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초점을 맞추는 일은 삶에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한 생애에는 두가지 위대한 날이 있다. 태어날 날과 왜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는 날이다. 삶의 목적을 바로 아는 것은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초점 맞추기이다. 인생에서 초점은 사명감이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또 다른 나`이고 행복의 근원이다.최근 갤럽은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행복한 나라`순위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는 118위인 하위권에 머물렀다.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계층에서 과거보다 불행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전체가 총체적인 우울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크게 떨어졌는가? 많은 사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이 세대에 대표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불확실성의 증가로 꼽고 있다. 자신들의 삶과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보니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우리 사회에 깊은 불행감을 심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엄청난 사건들을 경험했다.매번 `기상관측 이후 최대`라는 수식어를 갈아치우는 이상 기후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를 집단적 충격으로 몰고 간 세월호 사건, 최근에 메르스 사건 등 갖가지 위기의 연속이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설파했던 `위험사회`에 살게 된 것이다.현대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든든한 안전장치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장치를 마련해도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 일생을 몰두할 수 있는 사명감을 찾는 일, 그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근원적 비결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불행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삶의 초점 맞추기로 사명감과 행복의 선순환의 구조로 살기를 희망한다./곽규진(목사)

2015-07-24

옥고를 기다리며

어쩌다보니 몇 해 전부터 아동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았다. 그래서 기고 혹은 투고된 원고교정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때 많은 오탈자가 있는 원고를 읽으면 그 작가의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한다. `뭔 글을 이렇게 써서 보내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전화라도 한 번 걸어볼까`하는 마음을 먹는다. 혹시 첨부 파일을 잘못 보낸 건 아닌지 싶어서. 대개의 경우 초고 파일과 최종본 파일을 잘 관리하지만, 몇 번 수정과정을 거치다보면 이 파일이 헷갈릴 때가 있다. 물론 이것도 작가의 잘못이긴 하지만. 학위를 금방 받았을 때 모 대학교에 근무하던 선배가 `00논총`에 글을 하나 실어주겠다면서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 기쁜 마음에 앞뒤가릴 것 없이 급하게 메일로 원고를 보냈다. 그런데 한 참 뒤에 그 선배가 내게 원고 출력본을 내밀며 “김 선생 원고는 이번에 뺐는데….”라는 것이다. 말끝을 흐리면서 다시 이어가는 선배의 말은 “교정을 좀 보지 그랬어.” 했다.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하면서 선배가 내미는 출력본 원고를 받았다. 아뿔싸, 파일을 잘못 보냈음을 그제사 알았다. 초고파일이었다. 학위를 받은 직후 비록 유명학술지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나오는 논총에 내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은 글이 실린다는 생각에 흥분했던 모양이다.순간 내 불찰을 탓하기 보다는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그냥 뺄 것이 아니라 전화라도 한 번 하시지.` 문제는 이후이다. 당시 그 논총을 책임지고 편집했던 선배의 동료 교수는 내가 글을 지독히도 못 쓰는 인물로 낙인찍지나 않았을까하는 걱정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지금도.가끔 선배와 함께 그 교수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하는 사이지만, 여태 나는 내 실수를 변명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데 굳이 내가 그때 그 원고는 초고라서 교정이 안된 상태로 보낸 것이라며 변명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차후 내가 쓴 몇 편의 논문을 그 교수에게 전해주었지만, 처음 각인된 나의 글쓰기 능력은 `개판`이라는 생각을 가질게 뻔하다는 생각에 아직도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든다.오늘, 가을호 원고청탁을 마쳤다. 작가들의 잘 교정된 옥고를 기다린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23

미안하고 감사한 이유

몇 년 전 내가 다녀온 북경은 소위 `럭셔리`한 도시가 아니었다. 한국인 관광객은 소매치기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특히 대한민국 여권이 거금으로 거래되니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한국어를 하는 잡상인을 볼 수 있었고, 구걸을 거절당한 여인은 아이를 들이밀어 매달리게 했다. 윗옷을 훌렁훌렁 벗은 남자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돌아다니는데 그야말로 천연 가죽점퍼라 할 만 했다. 어른들은 낡은 점퍼, 아이들은 새 점퍼.왕후징 거리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꼬지냄새가 심했다.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것들을 찾아먹는 노숙자도 있었다. 그 날이 중국 여행의 첫날 저녁이었는데 중국에서의 대부분 식사시간마다 그 분위기를 떨칠 수가 없었다.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미국계 대형마트만 가도 지름이 7~80센티는 될 것 같은 피자가 흔하다. 수도처럼 생긴 꼭지를 돌리면 무진장 제공되는 양파며 피클, 무한정 리필 되는 콜라에 공중 화장실마다 손 닦는 종이 타월까지 넘쳐난다. 이렇게 함부로 사용하고 막 버리는 것은, 굶고 있는 제 3세계 어린이들을 생각해서도 환경을 생각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중국만 보아도 너무한 일이었다.한국식 노래방, 한국식 다방 커피 등 한국어 간판이 눈에 띄기도 하는 백두산 아래 숙소 상황도 불편했다. TV에서는 우리나라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만 왜 그리 먼 곳의 이야기로 들리던지. 음식도 여전했다. 웬만하면 잘 먹는 작은 아이도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식당 바로 앞 복도에서는 한국산 노란색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담아 한 잔에 우리 돈 천 원에 팔고 있었다.어젯밤 도로 휴게소에서 샀던 중국 과일을, 커피 값으로 지불되었을 천 원과 함께 얌전히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나왔다. 내가 가방 챙기는 동안 객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팔다리가 가느다란 호텔 종업원과는 우리말로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처음 먹는 아침, 아이들이 불만을 표시하려 했지만 나는 당당히 말했다.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먹어!” 그 생각을 하면 오래오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 것 같다./윤은현(수필가)

2015-07-22

극기(克己)가 평천하(平天下)다

대연(大衍)학당에서 주역(周易) 강의를 듣는 중이다.“최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인 지금 인성 또한 거칠고 모질어졌습니다. 선천(先天)에서 후천(後天)으로 바뀌는 21C의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녕 극기(克己)입니다.” 강사의 말이 석화(石火)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두려움마저 일어난다. 요즘 도로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끼어들기 보복 운전을 보며 솟구치는 감정이다. 고속도로에서 급정거로 추돌 사고를 유발하여 사상자를 내는가 하면, 17톤 대형 트럭으로 승용차를 가로막아 작정하고 사망 사고를 촉발하더니, 급기야 사람을 보닛에 매단 채 질주하는 운전자까지 나타났다.최소한의 도리와 상식마저 내팽개쳤다. 지난해 서울에서 담배를 피우는 10대 학생들에게 충고하다가 50대 가장이 맞아 죽은데 이어, 얼마 전에는 전주에서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60대 후반 노인을 마치 축구공처럼 두들겨 팬 10대 청소년이 등장했다.막말의 진화는 촌철살인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여성을 향한, 특히 국가 원수를 겨냥한 상말이 가히 점입가경의 수준이다. 지난 대선 때 여성 후보에게 “그년”을 “그녀는”의 줄임말이라며 어느 국회의원이 국어 실력을 뽐내더니, 지난달에는 어느 단체의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마약을 했는지, 보톡스를 했는지”청와대를 뒤져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말을 했다.말세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말세는 불교의 삼시(三時)와 기독교의 재림에서 나온 말로 ― 공자와 도척이 살던 이천오백여 년 전에도 말세라는 말을 했다는데 ― 수치(羞恥)와 절제를 상실한 현세가 진정 말세라는 암울한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극기복례(克己禮)라는 말이 나온다. 욕망이나 사(詐)된 마음을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한 방울의 물로 사막을 모두 적실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물이 없으면 사막을 다 적실 수 없다. 이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극기를 다하여 평천하(平天下)를 만들어 가야할 때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20

신념교육

영국의 런던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가르쳤고, 학술원 회장을 지냈던 찰스 핸디는 그의 책 `헝그리 정신(The hungry sprit)`에서 “오늘날 문제는 돈이 아니라 정신의 빈곤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믿고 따라가는 정부가 아니라 믿음이다”라고 했다. 곧 믿음 있는 사람이 앞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일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갖는 것이야 말로 그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덕목이 있다. 먼저 결단력이다. 또 자기 일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까지 참고 인내하는 모습도 있다. 또 믿음을 가진 사람은 추진력이 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꿈과 비전이 있다. 결단력이나 헌신, 인내, 추진력, 꿈, 사실 이것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오늘날 교육의 과제가 있다면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 좋은 일에 헌신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치교육과 신념교육을 힘써야 한다. 지식위주의 교육은 원래의 교육 목표에서 우선 순위가 어긋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덕·체 교육은 원래 존 로크에게서는 체·덕·지 순서였다.존 로크는 건강 교육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들고, 위기 상황 대처능력을 키우고 창의성 교육,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 교육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지식교육을 해야한다고 했다. 오늘날 지식주입교육은 청소년들을 허약하게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 학과 점수로 비교되기 때문에 모두가 불행하다.최근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성교육에 대한 과외가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성도 또 다른 교과목이 되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인성교육도 학원에서 과외 받아야 할 또 하나의 교과목이 되는 것이다. 정보를 많이 축적하거나 기술을 가지는 것 만을 목표로 해서는 실현 할 수 없다. 따뜻한 마음과 올바른 태도를 갖게 하는 교육이다. 바른 신념을 가진 믿음직한 사람들이 그립다./곽규진(목사)

2015-07-17

도찐개찐

한 중학교 교문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앞머리를 빗어 내리는 아이, 교복 치마를 당겨 올리는 아이, 저마다 정신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하교하는 여학생들의 입술에는 진홍빛 립스틱이 칠해져 있고, 무릎 위로 쑥 올라간 치마는 허벅지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몸에 꽉 끼는 상의는 팔도 제대로 못 흔들 정도이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기말고사가 끝난 교문 앞 풍경이다. 제대를 하고 대학원에 복학했던 90년대 초, 나는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말을 처음 들었다. `오렌지족`은 1990년대 초 부자 부모를 두고 화려한 소비생활을 누린 20대 청년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해외 명품을 소비하고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유흥을 즐겼다. 오렌지족이라는 말은 당시 막 수입되기 시작한 과일 오렌지에 빗대어 그들의 과소비행태를 비꼰 것이다. 그들의 소비를 따라가지는 못하면서 흉내를 낸 젊은이들은 따로 `낑깡족`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말들은 90년대 초반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은어였다.그 무렵 마광수는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자유문학사), 에세이집`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자유문학사)에 이어 소설 `즐거운 사라`(1992, 서울문화사)를 출간하여 급기야 예술인가, 외설인가 하는 논쟁의 한 복판에 서기도 했다. 여기에 대한 법적 판단은 그를 구속시키고, 소설은 금서로 지정됐다. 아마 `이념의 시대`에서 `향유의 시대`로 가는 진통이었나 보다.수많은 부정적인 시각과 비판을 한 몸에 받던 `야타족`들의 젊음의 행렬은 오늘날`홍대입구`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오렌지족`세대가 벌써 마흔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지금 교문앞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학생들은 이들의 자녀 벌 되는 아이들이다. 딸아이의 치마 길이를 걱정하는 중년의 어머니들, 그들 역시 젊은 한 때는 치마길이를 짧게 걷어 올리는 반란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이었다. 도찐개찐이다. 아이들 걱정할 필요가 없다. 탓할 이유도 없다. 세월 따라서 생산양식이 변하고, 삶의 스타일이 달라졌고, 생각도 달라졌다. 변화와 보수는 이렇게 꼬리를 물고 변증법적 지양을 거듭하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16

나르키소스의 오만

누구의 승리였을까. 사퇴 기자회견을 하며 앙다문 원내대표의 입술은 비장미가 넘쳤고,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결의에 찬 대목에서는 장엄미마저 비쳤다. 그래서였을까. 여론 조사에 의하면 그는 단숨에 차기 여권 대선 주자 1위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의 동구, 그의 지역구에서 그에 대한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다.언론 등의 추세를 미루어 보면 짐작 못 할 일도 아니었다. 대다수 신문 사설이나 칼럼 따위에 그를 두둔하고 미화하는 글들이 줄곧 다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흐름이 그를 13일 동안 꿋꿋하고 의연하게 지켜준 원동력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서너 해 전 일이다. 남양주소방서에서 녹화된 경기도지사와 근무자의 음성이 전파를 탔다. 도지사는 아홉 차례 신분을 밝혔으나 근무자는 시종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했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통화는 이어지지 못했고 경기도소방본부에서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는 근무자의 전화 응대를 문제 삼아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났다. 도지사의 권위 의식을 욕하는 글이 도배를 하고 도청 홈페이지가 마비되었다. 급기야 도지사는 인사 조치를 취소시키고 남양주소방서를 방문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른데 있었다. 도지사가 신분을 밝혔으면 그 소방관도 당연히 신분을 밝혀야 했다. 그게 의무다. 당시 나는 현직 소방관이었다.나르키소스(Narcissus)는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이다. 그는 동성과 이성은 물론 님프들에게 구애를 받았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날 목이 말라 샘을 찾아간 나르키소스는 물속만 들여다보다가 탈진하여 죽었다. 실연의 고통으로 메아리만 남게 된 에코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빌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도록 만든 결과였다.통치와 정치가 같을 수 없다. 그는 헌법 운운하기 이전에 국정의 파트너로서, 대통령에 대한 예도(禮度)로서 본분에 충실해야만 했다. 그는 논어의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문구를 다시 한 번 더 새겨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15

진선미

며칠 전 미스코리아 선발이 있었다. 예전에는 TV 공중파에 중계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지만 오늘날엔 그만큼 요란하지는 않다. 이제 한국의 미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져서 일까? 아니면 이제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일까? 어쩌면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거세져서 일지도 모른다.이런 많은 논란에도 미스코리아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왜 미스코리아를 진선미로 나누어 뽑을까? 사람들마다 미의 기준이 다른데 왜 1, 2, 3등을 진선미로 뽑을까? 미스코리아라면 당연히 `미`가 1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선미에 위계가 있고 이를 미스코리아에 적용한 것일까?철학에서 뭘 배우는지 종종 사람들이 묻고 한다. 그러면 그들에게 미스코리아에서 무엇을 뽑는지 물어본다. 진선미라고 대답하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아주 예전엔 진선미는 하나였다. 즉 참된 것이 좋은 것(선)이며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막스 베버가 말하듯 서양 합리주의가 발전하면서 진선미는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합리화과정을 그는 인지적, 미학적, 도덕적 영역들을 서로 분리시키는 전문가 문화가 유럽에서 출현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 구성요소들은 각기 진리문제, 취향문제, 선의 문제로 전문화된다. 그래서 우리가 전문가에게 많은 권위를 주는 이유는 그만큼 그들이 세분화된 영역에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점점 세분화되고 깊어짐으로써 그들의 전문적 영역은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말로 되어 갔다. 서양에서는 이런 과정을 합리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그러나 한 분야에서만 깊이 아는 전문가는 외눈박이일 수밖에 없다. 옛날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을 보고 헛똑똑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철학이 철학자만의 어려운 이야기가 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요즘 학문에서는 융합과 통섭이 화두이다. 통섭은 여러 사물에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어쩌면 학문뿐만 아니라 사람도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적 인격이 더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7-14

아, 대한민국!

그랜드캐니언은 대단했다. 상상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우주가 만들어낸 작품을 경비행기를 타고 돌아보았다. 콜로라도 강줄기를 마치 미니어처 속의 풍경처럼 볼 수 있게 만든 미국인의 노력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오, 잇츠 그랜드! 너무나 대단해서 부르던 그대로가 지명이 되어버렸다는데 가히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내게는더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이 있었다. 경비행기에서 헤드폰을 쓰면 나오는 5개 국어 안내 방송에 한국어가 당당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상혼이라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기까지 미치는 영향력이라고 받아들이니 로키산맥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 만으로 흐른다는 콜로라도 강의 길이와 후버댐에 관한 설명도 느긋하게 들렸다. 그뿐 아니다. 그곳에서 놀랍게도 콩나물 해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해발 4천미터가 넘는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는 산악열차를 갈아타면서 올랐다. 스위스 농가에서 방목하는 소들이 우리나라 워낭의 열 배는 돼 보이게 큰 목걸이를 걸고는, 마치 바위덩이처럼 앉아서 자고 있었다. 알프스의 산기슭에서 그들이 뒤척일 때마다 떨거덩거리는 워낭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친 것 같다. 한여름의 복장으로 출발해서는 만년설 속에 내려야 했으니, 가져간 모든 옷을 다 껴입어도 콧물이 흐를 듯 추웠다. 그곳에서도 매력적인 일은 또 하나 있었다. 매운 냄새만으로도 코가 뻥 뚫리는 한국산 빨간 컵라면이 꽤 비싼 가격의 유로로 팔리고 있었다. 내려와서는 석회가 많이 섞여, 만년설 녹은 뿌연 물빛보다 더 짙은 곰탕과 김치며 고추장 비빔밥까지 먹을 수 있었다.며칠 전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딸에게 된장찌개를 준비했다. 모처럼 두부까지 반듯반듯 정성들여 썰어 넣었다. “먹어봐, 그립지 않았어? 엄마표 된장찌개!” 아이는 말했다. “웃기지 마세요, 아침마다 `장모님 해장국` 먹었거든요”.오, 필승 코리아! 우리의 힘, 세계가 좁을 지경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에는 착취당한 우리 조상들의 피와 한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윤은현(수필가)

2015-07-13

미니수박

충북농업기술원이 소비자 기호에 맞는 2kg 이하 미니수박의 재배를 시험 연구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애플수박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문경, 음성, 논산 등 일부지역 농가에서 도입하여 재배하고 있으나 마땅한 지침서가 없어 일반수박을 기준으로 재배하면서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겪어왔기 때문. 미니수박은 모양도 예쁘고, 크기도 앙증맞을 뿐 아니라 쓰레기 발생량이 적어 대다수의 소비자가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트에서 종종 속이 훤히 보이는 수박 반 통을 본 적 있지만, 미니수박을 이제 마트에서 구입할 날이 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출아하면 1~2인 가족에게는 기존의 대형수박에 비해 수요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과거에 큰 수박 한 통을 가운데 두고 대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한 조각씩 나누어 먹던 풍경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점점 사라질 것이다.미니수박의 등장은 과학기술이 만든 농업분야의 발전이지만 사회상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마트에는 오래전부터 개인이 가볍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등장하였고 미니수박도 그와 유사하게 한 두사람이 한번에 먹을 수 있는 소포장 제품인 셈이다.원래 가족이라 하면 부모와 형제들이 최소한 5인은 기본수였는데, 최근에는 3인 가족, 2인 가족, 심지어 혼자 사는 가정도 많다. 그래서 자녀가 셋인 5인 가정은 다복가정이라 하여 복지 혜택도 주고 있다. 농업인구도 점점 줄어 5%대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로 핵가족시대를 지나 국가의 장래가 인구감소문제로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에 처한 농업과 현재의 가정형태가 미니수박의 등장으로 귀결되었다.영어의 가족이라는 단어 `family`는 그 첫 스펠을 따라 아버지(father), 그리고(and) 어머니(mother) 나(I) 이 세 사람이 사랑하는(love you) 형태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너무 인위적인 해석일 수 있으나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정서가 느껴진다. 우리의 옛말 `식구(食口)`라는 말은 함께 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인 가족형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미니수박을 사 먹는 시대, 대가족이 큰수박을 함께 나누어 먹던 시절이 그립다./곽규진(목사)

2015-07-10

한국식 이력(履歷)

영화 `부러진 화살`이 연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15일 밤 9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법무법인 사무실 앞에서 한 남성이 퇴근 중이던 박영수 변호사(63)에게 공업용 칼을 휘둘러 목 부위에 12㎝ 가량의 상처를 입혔다. 그 남성은 재판과정에서 `전관예우`가 작용했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났다고 보고 이른바 보복의 흉기를 휘둘렀단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은 하나같이 `변호사`인 박영수 피해자를 `전 고검장`이라 표기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변호사`보다 `고검장`이 더 나은 모양이다. 김승희의 시 `한국식 죽음`에서도 이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김금동 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 씨(서울 초대 병원 병원장), 김금남 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부친상, 박영수 씨(오성물산 상무 이사) 빙부상 - 김금연 씨(세화 여대 가정과 교수) 부친상, 지상옥 씨(삼성 대학 정치과 교수) 빙부상, 이제이슨 씨(재미, 사업) 빙부상 = 7일 하오 3시 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서 발인 상오 9시 364-8752 장지 선산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김승희, `한국식 죽음`전문시의 형식이 낯설지만 어렵지 않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속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담겨 있다. 부고임에도 불구하고 망자에 대한 명복이나 상주에 대한 위로는 없다. 오직 상주의 사회적 레테르가 중요할 뿐이다.공교롭게도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영수`이다. 시적 상황은 박영수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의 처가는 시쳇말로 빵빵하다. 처남들이 검사장, 병원장, 신문사 차장 등이다. 동서들도 잘 나가는 자리에 있다. 대학교수, 사업가 등이다. 그의 부인 김금연씨도 가정과 교수이다. 그런데 처제들은 별 볼일 없는 모양이다. 이름 석 자 없는 것을 보니.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는 부고에도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 오직 중요한 것은 상주든 망자든 사회적 영향력이다. 아들아, 아버지는 이런 세상을 살았다. 내가 너한테 공부하라는 이유를 알겠느냐?/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09

이카로스의 날개

정국이 혼탁하고 볼썽사납게 치닫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촉발된 사태에 대하여,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여당 원내대표는“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며 허리를 숙였지만 어깃장을 감추지 않았다.예견된 양상이었다. 친박계는 즉각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고 비박계는 20여 명의 의원들이 원내대표를 옹호하고 나섰다. 민심도 갈렸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원내대표 사퇴에 대한 찬성이 45%에 이른 반면, 새정치연합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56%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당 지지층의 성원을 받는 여당 원내대표가 탄생한 것이다.스스로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그는 원내대표 취임 이래 대통령 대선 공약 사항과 정부 정책 등에 대하여 수시로 엇박자를 놓더니,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하지 말라는 정부의 당부까지 묵살했다. 그런 그를 어떤 언론에서는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고 조명했다. 그러나 그는 선을 넘어섰다.팔공산 `왕건 올레길`이다. 쉼터 벤치에 칠십대 중후반 노인 대여섯 명이 앉거나 둘러선 채로 설왕설래하고 있다. 점차 톤이 높아지고 격앙되더니 “분수를 모르는 자, 숙맥불변(菽麥不辨)인 자”로 의견이 모아진다. 여당 원내대표를 질타하는 목소리들이다. 대구의 동구, 여기는 그의 지역구다.이카로스(Icaros)는 그리스의 신화 속 인물이다. 그는 미노스의 미궁에 갇혀 있다가 명장(名匠)인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이어 붙여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아올라 크레타섬을 탈출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내려 날개가 해체되면서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그의 부상(浮上)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대구 동구 지역구에서의 정치적 생명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대다수의 여론이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아마도 그는 새정치연합의 지지층 쪽으로 정치 영역을 변경해야만 될 것 같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08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진주에 일이 있어 차를 몰고 다녀왔다. 예전엔 몇 시간, 며칠이나 걸리던 길이 이제 1~2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새로 닦은 남해고속도로는 훨씬 시간을 단축하게 만들었다. 아니 뿐만 아니라 더 편안하게 갈 수 있게 만든다. 편안함과 편리를 추구하는 길이 과학기술의 목적이 아닐까? 끝이 없이 진행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얼마나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예전에 그렇게 찾아다녔던 공중전화가 이제는 내 호주머니 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그러나 예전보다 빨리 갈수 있고 편하게 전화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삶은 점점 더 바빠지는 것일까?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지고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더 불편해질까?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모모가 찾아주듯이 우리 또한 시간을 누군가에 의해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은 더 풍요로워지고 더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더 바빠지고 마음은 더 불편해졌을 수 있다.과학기술이 발전해 우리 삶과 세상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반면에 과학기술은 결국 우리 세상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과학기술이 유토피아를 만든다는 과학기술에 대한 긍정적 입장과 과학기술이 디스토피아를 만들 것이라는 부정적 입장이 있는 것이다. 아니면 과학기술은 중립적이며 이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문제라는 입장도 있다. 원자력처럼 좋게 쓰면 전기를 만들 수 있고 나쁘게 사용하면 폭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어쩌면 과학기술은 나와 상관없이 계속 발전하게 될 것이다. 내가 긍정적 입장이든 부정적 입장이든 이제 과학기술의 발전은 고삐 풀린 망아지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슬로시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왜 사는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슬로시티란 느린 삶,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영상보다는 사진이, 사진보다는 그림을 그릴 때 우리는 그 대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법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7-07

엘리베이터를 `삐대다`

엘리베이터는 깨끗하다. 비누 얼룩이 금방 생겨나는 내 집 욕실 거울보다 깨끗하다. 비상계단도 언제나 깨끗하다. 계단 끝 모서리마다 금속선이 반짝이는 것이 내 집 현관보다 반들하니 주부로서 곤혹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청소하는 할머니는 상냥하기도 하다. 입주민인 내가 불편하지 않게, 밝고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며칠 전까지의 익숙한 얼굴이 아니다. “새로 왔어요….”, “어머나, 수고가 많으시겠네요. 잘 부탁합니다.” 별로 상냥하지 못한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알 수 없는 힘까지 있다.아침 시간 허둥대며 엘리베이터를 들어서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후다닥 발을 들여놓고 보니 금방 닦인 바닥은 보송하게 마르고 있고 할머니는 몸을 기울여 벽면을 닦고 있다. 가방을 고쳐 메고 신발을 제대로 신다가 놀라 주춤한다. 내가 디딘 자리마다 발자국이 꾹꾹 나 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금방 닦아놓은 바닥을 막 `삐댔나`보네요.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요. 금방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밟아야지 안 밟고 우짭니까?”역시 깔끔하고 상냥했던 지난 번 청소 할머니가 생각난다. 더 좋은 곳으로 옮겨 갔다고 들었다. 부지런하고 깔끔하기로 유명했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바쁘게 쓸고 닦는 모습으로 기억되던 그 할머니, 조금의 얼룩도 용납하지 않을 듯 깔끔하던, 그러나 나는 그가 불편했다. 청소하는 옆을 지날 때마다 슬쩍슬쩍 느껴지던 무거운 마음을, 자기 일을 열심히 완벽하게 하는 사람 앞에서 당연히 느껴야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견뎌왔었다.훌륭한 사람들은 나를 왜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어릴 적 착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도, 얼굴이 예쁜 친구도, 운동회 날은 달리기 잘하는 친구까지 능력 있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순전히 나의 열등의식 때문일까? 훌륭하다는 것은 이런 마음조차 헤아릴 수 있는 것이진 않을까? 깨끗하고 반짝이는 자리, 청소하는 사람의 손길을 언제나 느낄 수 있는 그 자리에 내가 편안함을 누릴 공간은 부족했다. 조금만 더 속 깊은 성실이었다면, 그런 불편함도 느끼지 않을 배려가 있었을까? 새로 온 청소할머니가 참 편안한 아침을 열어준다./윤은현(수필가)

2015-07-06

공의가 강물처럼

기미년 만세운동 직후 조선총독부는 1919년 3월 22일 선교사 9명을 초청하여 만세운동 재발 방지를 위한 좌담회를 열었다. 조선의 봉기를 선교사들이 막아 달라고 협조를 요청한 셈이다. 이에 대하여 선교사들의 입장은 단호했다. 선교사들의 주장은 `조선인은 의(義)를 중요시하며 실천되지 않는 의는 곧 불의를 보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막으려는 것보다 대의명분이 서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100년 전의 조선인상은 배고파도 의롭게 사는 것이었다.해방 70년을 맞은 오늘날 우리 한국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배가 고파도 의롭게 살던 선배들에 비해 배가 불러 의를 외면하고 있다. 스포츠의 상업화, 컴퓨터 게임의 대중화 및 각종 영상문화의 보급으로 점차 구경꾼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 결과 나 혼자의 만족에 취한 `구경 중독`에 걸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사회자본`이라고 할 때 사회자본의 발전이 민주주의의 밑거름인데 그 쇠퇴는 우리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고 있다.충청도 어느 지역을 여행하다가 어느 군 문화예술회관을 방문했다. 마침 건물 리모델링으로 분주했다. 그 지역을 소개하는 돌 비석이 그 본래 자리에서 뽑혀 건물 가장자리에 방치되고 있었다. 아마 새롭게 자리를 잡고 새 단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고장은 의(義)를 숭상하는 지역이라는 비문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과거의 의로운 조상들을 기리고, 독립운동가의 버려진 묘역을 정비하는 것 등은 후손들의 마땅한 일이다.그러나 한편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생명과 재산을 바친 선조들의 의로운 정신을 실질적으로 계승하는 일이다. 그들의 치열했던 독립운동 역사를 오늘의 통일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분단 70년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의 새날이 도래하기를 바란다.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 역사적 대의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그 돌비석이 곧 제자리를 다시 잡을 것처럼 우리 사회에 개인적인 이기심을 넘어 공동체적 의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바람이 불기를 희망해 본다.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통합사회, 통일조국이 그립다./곽규진(목사)

2015-07-03

산수공식

요즘 우리 축구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전력을 가다듬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평가전에서 염기훈이 선제골을 터뜨렸고 이어 이용재, 이정협이 추가골을 넣었다. 3대0으로 시원스럽게 완승을 거뒀다. 모두 낯선 이름들이다. 곧바로 이 신인들은 매체에 오르내리며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깜짝 발탁`된 선수들이라고.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슈틸리케 감독이 뽑았다는 것과 `깜짝`뽑혔다는 것이다. 이 `깜짝 발탁`이라는 말이 참 중의적이다. 하나는 이들 세 선수의 실력에 만족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어느 날 느닷없이 대표팀이 되었다는 비아냥거림이다. 어느 경우든 산수공식을 제대로 대입하지 않고 얻은 의외의 값이라는 의미가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히딩크는 박지성, 김남일 등 무명선수를 깜짝 발탁했다. 이에 대해서 비난과 감독 교체설 등이 나돌았다. 그러나 막상 당시 우리 대표선수들은 의외라 할 정도의 놀라운 경기능력을 보여주었다. 히딩크의 산수공식은 정확한 답을 찾아냈다.지난 6월11일 치른 평가전에서 우리 선수들은 만족스런 경기를 펼쳤다. 특히 깜짝 발탁된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이렇듯 해외파 두 감독의 산수공식의 핵심은 `눈`이었다. 그렇다면 국내파 감독들은 선수를 보는 `눈`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들의 산수공식에도 눈은 있다. 히딩크나 슈틸리케 감독은 오직 선수를 보는 `눈`만 가지고 있다. 그 외의 학연, 지연 등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국내파 감독은 `눈` 이외에 학연, 지연 등의 또 다른 것들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눈±선수±학연±지연=발탁`같은 산수공식 말이다. 그래서 `눈`으로 선수의 활약 이외의 다른 것들도 보기 때문에 `깜짝 발탁`이 매우 힘든 모양이다.정치도 그런가 보다. 국민 행복 이외의 다른 그 무엇으로 만든 산수공식을 적용하여 현안을 풀고 있나보다. 진영논리나 내년 총선 등 그들만의 산수. 최근 이들이 더하고 뺀 산수의 값은 황교안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 국회법 거부권 행사, 여당대표의 사퇴 압력 및 버티기 등./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02

산길에서 만난 편작(扁鵲)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장년기에 들어서며 하나둘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0대 초반 명치를 찌르는 십이지장궤양의 통증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비가 내려도 눈이 와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새벽 산행으로 1년 후 득의의 해방감을 얻었다.50대 후반 어느 날 잠결에 엄지발가락의 촉감이 이상했다. 젖히고 오므리자 극심한 아픔이 전해 왔다. 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통풍이로 구나. 새벽 5시 엄지발가락 주위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양말을 신으며 까무러친 고통은 등산화에 발을 밀어 넣자 기어이 눈물이 솟아나왔다. 어금니를 악물고 절뚝절뚝 두어 시간 남짓 산길을 걸었다.다음날 새벽 5시 스치는 이불자락에 자지러져 선잠을 깼다. 발등까지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꿀꺽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등산화에 발을 집어넣었다. 망치로 내리쳐 버리고 싶은 깨어지는 질통, 스물여덟 개 치아 꽉 깨물고 비탈길을 오르며 뚝뚝 가슴속에 더운 눈물이 흘러내린다.이튿날 새벽 의외로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들여다보니 엄지발가락에 가느다란 주름이 3개나 생겼다. 환한 얼굴로 산길에 들어서자 어제 그제는 들리지 않던 산새 울음소리가 더없이 명징하다. 서너 발자국 앞서 폴폴거리는 까치 한 마리가 더없이 이채롭고 정겹다.편작(扁鵲)은 중국 전국시대 명의다. 죽은 사람마저 살려냈다고 하니 실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갈관지`에서 그는 자기 맏형은 사람의 표정과 음색으로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해 주고, 중형은 병이 미미한 발병 초기에 치료해 주는데, 자신은 병이 깊어져 사람들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비로소 치료해 주기 때문에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말한다.빗물에 씻긴 창밖 풍경이 티 없이 말갛다. 뒷짐을 지고 까치발로 무게 중심을 지긋이 옮겨 본다. 발가락이 발등이 깃털처럼 가볍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에겐지 모를 탄성이 봉선화 씨앗처럼 터져 나온다. 창밖 이팝나무 꽃송이가 눈부시도록 하얗다. 이 무모한 발상을, 이 지독한 선택을, 사람들은 의사는 뭐라고 할까. 나는 이렇게 기원전 6세기의 편작을 산길에서 다시 만났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01

자연

가뭄이 심하다고 모두들 걱정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 아직은 가뭄을 해소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가뭄이나 홍수는 하늘의 일이기에 아직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예전에 가뭄이나 홍수 때 자연이나 신에 기원하듯이 오늘날에도 하늘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을까?그러나 전지구적으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과연 이것이 단순히 자연의 섭리만인가는 의문이다. 인간이 세계를 자신과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것과 대립할 때 인간 밖에 놓인 세계는 단지 인간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은 자연을 우리가 살기위한 하나의 먹잇감이거나 정복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서양의 전통은 나와 남을 분리하고 나와 바깥 세계를 분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살리기 위한 역사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의 끝에 남은 것은 자연파괴와 인간성 파괴이다. 따라서 오늘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그 피해가 인간에게 오기에 우리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이 생각엔 여전히 사람이, `나`가 중심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런 환경보호론을 인간중심주의적 견해라 칭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우리 인간 세상을 파괴하기에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자연파괴나 생물의 멸종은 허용되는가? 어쩌면 지금도 이름 모를 식물이나 동물은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중심주의에 반대해서 자연중심주의적 환경보호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자연도 인간과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다. 극단적 자연보호로도 흐를 수 있는 이 생각엔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 숨어 있다.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나의 뜻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거슬리지 않는 것. 공자가 `논어`에서 나이 50에 하늘을 뜻을 알게 되고, 70세에 종심이라 말한 경지일까? 무엇이든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자연의 원리를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자연이고 `인간 속의 자연`을 회복하는 것이 좋은 삶일지도 모른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