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학교 교문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앞머리를 빗어 내리는 아이, 교복 치마를 당겨 올리는 아이, 저마다 정신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하교하는 여학생들의 입술에는 진홍빛 립스틱이 칠해져 있고, 무릎 위로 쑥 올라간 치마는 허벅지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몸에 꽉 끼는 상의는 팔도 제대로 못 흔들 정도이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기말고사가 끝난 교문 앞 풍경이다. 제대를 하고 대학원에 복학했던 90년대 초, 나는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말을 처음 들었다. `오렌지족`은 1990년대 초 부자 부모를 두고 화려한 소비생활을 누린 20대 청년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해외 명품을 소비하고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유흥을 즐겼다. 오렌지족이라는 말은 당시 막 수입되기 시작한 과일 오렌지에 빗대어 그들의 과소비행태를 비꼰 것이다. 그들의 소비를 따라가지는 못하면서 흉내를 낸 젊은이들은 따로 `낑깡족`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말들은 90년대 초반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은어였다.그 무렵 마광수는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자유문학사), 에세이집`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자유문학사)에 이어 소설 `즐거운 사라`(1992, 서울문화사)를 출간하여 급기야 예술인가, 외설인가 하는 논쟁의 한 복판에 서기도 했다. 여기에 대한 법적 판단은 그를 구속시키고, 소설은 금서로 지정됐다. 아마 `이념의 시대`에서 `향유의 시대`로 가는 진통이었나 보다.수많은 부정적인 시각과 비판을 한 몸에 받던 `야타족`들의 젊음의 행렬은 오늘날`홍대입구`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오렌지족`세대가 벌써 마흔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지금 교문앞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학생들은 이들의 자녀 벌 되는 아이들이다. 딸아이의 치마 길이를 걱정하는 중년의 어머니들, 그들 역시 젊은 한 때는 치마길이를 짧게 걷어 올리는 반란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이었다. 도찐개찐이다. 아이들 걱정할 필요가 없다. 탓할 이유도 없다. 세월 따라서 생산양식이 변하고, 삶의 스타일이 달라졌고, 생각도 달라졌다. 변화와 보수는 이렇게 꼬리를 물고 변증법적 지양을 거듭하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