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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본어 찌꺼기

일제가 한국을 식민통치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역사 뺏기`였고, 그 다음이 `언어뺏기`였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고대사 서적을 모조리 거두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을 질렀고,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우리 역사를 제 멋대로 썼다. 물론 조선인의 자존심·자부심·자긍심을 죽이는 방향이었다. 그 다음으로 한 일이 `조선언어 말살`인데, 일본어를 국어(國語)로 가르쳤다. 1942년 한 일본인 교사가 초등학생이 쓴 일기를 보게 됐다. “국어(일본어) 한 마디를 말했다가 정태진 선생에게 야단맞았다”란 귀절이었다. 조선어 말살정책이 성공했다고 믿고 있을 무렵에 일어난 일이라 일제는 큰 충격에 빠졌다. 곧 수사가 시작됐고, 한글학자 수십명이 잡혀갔다. 그때 한글학회 회원들은 조선어사전 원고를 집필 중이었는데, “그 원고의 행방을 대라”는 심문에 한글학자들은 굳게 입을 닫았고, 무참한 고문과 굶주림으로 여러 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원고는 후에 용산역 화물창고에서 발견됐고, 해방후 `조선어큰사전`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일제의 `언어교육과 조선어 말살정책`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지금도 곳곳에 일본어찌꺼기들이 남아 있고, 우리는 무심히 사용한다. 법률에서의 일본식 용어는 고질적 수준이고, 병영에서도 구보(驅步), 수입(手入), 잔반(殘飯), 나라시, 시마이 등이 통용되고 있다. 수산용어에는 유난히 일본어가 많이 남아 있다. 사시미, 스시, 마구로, 아나고, 세꼬시, 오도리, 사요리, 대하, 다시, 쓰키다시, 하모 등 우리말보다 일본어가 더 많다. 일제가 수산자원 수탈에 광분했던 영향이다.스포츠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프로야구는 엄청 심하다. 그 날 경기의 성적표인 `기록지`는 일본식 한문 일색으로 돼 있다. 야구가 일본을 통해 들어온 탓인데, 용어는 아직 안방 차지를 하고 있다. 프로축구나 프로농구 등 다른 분야 기록지와 선수 이름 등을 대부분 한글로 적는데, 유독 프로야구만 왜색(倭色)이다. 일본어찌꺼기부터 벗겨내는 일이 극일의 길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3

노벨문학상의 변신

노벨문학상과 도박사들 사이의 숨바꼭질은 `전통적`이다. `알아맞히기 게임`은 늘 빗나갔다.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맞힌 도박사이트는 오직 영국의 래드브록스 하나 뿐이었다. `벨라루스`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나라도 아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기생하는 분쟁국가도 아니고, 해적이 날뛰거나 내란이 벌어지는 국가도 아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는 국가다. 동쪽에 러시아, 서쪽에 폴란드, 남쪽에 우크라이나가 있고, 폴란드, 러시아, 독일의 지배를 거쳐 소련의 속국이 됐다가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됐다.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흰 피부를 가졌고, 흰 옷을 즐겨 입고 가옥의 벽도 하얗게 칠하는 족속이라 해서 `백러시아`라 불린다.이 나라의 67세 된 할머니 기자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가가 아닌 언론인인 알렉시예비치인데, 소설을 쓴 것이 아니고, 전쟁에 내몰린 여성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정리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상을 받았다. 논픽션 다큐멘터리가 문학 취급을 받은 것이다. 영국 수상 처칠이 쓴 역사서 `제2차세계대전`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과 닮았다. 문장이 너무나 문학적이란 이유였다.`전쟁은 여자의… `는 여성 전쟁영웅을 만들지 않고, 다만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고통과 고뇌만을 기록했다는 `결함` 때문에 출판사들은 “검열에 걸릴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고, 탈고 후 2년이나 묵혀 있다가 1983년 간신히 출간됐는데, 소련 연방이 해체돼 많은 주변국들이 독립하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200만부 이상 팔리는 이변을 낳았다. 그녀는 러시아 통치하에 있을 때 체제비판적 책을 써서 재판을 받기도 했지만, 자유진영으로부터는 평화상 등 몇가지 상을 받았다. 한림원은 늘 저항적·비판적 작가를 주목한다.`상상력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상황`도 문학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처칠 이후 다시 보여준 사례가 됐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같은 소재도 노벨문학상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2

국감장의 이변

국감장 `증인`들은 자식 뻘 의원들한테 훈계 듣고 호통당하며, 속으로야 더럽고 가소롭지만,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요, 납짝 엎드리는 것이 보통인 데, 이번에는 `반란`이 일어났다. 여당 의원들은 `증인 편`이 돼주는데, 이번 사태에서는 “저 사람 너무 한다”고 나무랄 정도다. 방송을 관리·감독하고 MBC 대주주인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 그는 사법시험 18회로, `부림사건`을 맡은 공안검사였으며, 2010년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자격으로 `친북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했다. 좌파정권이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자 MB정권은 친북인명사전으로 맞선 것. 그 책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몇몇 야당 의원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한 야당 의원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방문진 이사장이 되셔서 MBC 신뢰도가 올라가겠는가”라는 힐난성 질문을 하자, 그는 “의원님들도 신뢰도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맞대걸이를 한 것이 결정적이었고, 여당 의원들까지 “국회의원을 모독한 발언”으로 간주하고,`엄호사격`을 멈춰버렸다. 잘 나나 못 나나 `국민이 뽑은 의원`이 국정감사를 하는 자리인데, 참지 못 하고 속내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그리 슬기롭지 못했다.야당은 그를 고발했고, “메카시 광풍을 다시 보는 것같다” “나치시대의 괴벨스가 살아온 것같다”라 했고, “변형된 정신이상자”란 말까지 나왔으며,`방문진 이사장 해임결의안`제출과 함께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1950년 메카시 미 상원의원은 “국무부에 297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폭로했고, 그 후 4년간 205명이 해임됐다. 소련 암호를 해독한 결과 그 간첩명단은 사실이었다. 괴벨스는 히틀러의 지시를 받아 유대인들을 학살했는데, 고 이사장을 괴벨스에 비유한 것은 터무니 없다. 그가 누굴 학살했나. 메카시 의원이 근거 없는 소리를 했나.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거든 듣지 말라 했는데, 고 이사장의 `공산주의 발언`을 무시하지 않는 것을 보면, 새정련이 상당히 아팠던 모양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9

황당한 선무당들

미국 텍사스주의 한 초등학교 9학년(한국의 고교 1학년) 아흐메드 모하메드군이 과학지식을 발휘해서 시계를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학교에 가져갔는데 수업시간에 알람이 우는 바람에 들켜버렸다. 영어 교사는 시계를 보고 “폭탄같이 생겼다”면서 교장에게 보고했고, 교장은 곧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아이에게 수갑을 채워 유치장에 가두었고, 학교는 그에게 `위험물 교실 반입죄`로 정학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시계를 분해해보고 폭발물이 아님을 확인했지만 바로 풀어주지 않았다. 9·11테러 이후 이슬람계 미국인들은 `상추밭에 똥 눈 개`가 됐다. 모든 행동을 의심한다. 수단에서 이민온 모하메드의 아버지는 “과학재능을 발휘해서 좋은 물건을 만들었을 뿐인데, 이슬람 혐오증때문에 내 아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억울해했다. 이 일이 신문에 보도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아흐메드야, 그 멋진 시계 백악관에 기증하지 않겠니”라는 `멋진 글`을 올렸다. 괜히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차별받는 유색인종의 통분을 한방에 날렸다.결혼식날 신부 대신 신부의 언니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 대행`을 한 일이 인천에서 있었다. 결혼을 앞둔 처녀가 결혼자금을 마련하려고 보이스피싱에 들어가 `사기자금 인출·송금`을 도운 죄로 감옥에 가게 됐고 “그렇다고 결혼식을 안 할 수 없으니, 편법을 쓰자”고 양가가 합의한 것. 그러나 그 일이 무사할 수는 없었다. `축의금 수금`에는 차질이 없었으나 “사기 전과자와 살 수 없다”며 신랑은 혼인신고를 포기하고 파혼을 통고했다.사실상 `북한전문가`는 없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비밀인 폐쇄사회를 무슨 `자료와 근거`로 연구한다는 것인가.그런데도 대학들에 `북한학과`가 있다. 더 황당한 것은 `법전문 변호사`들이 TV에 나와 `남북문제 해설`을 한다. 위험한 망발이다. 남북관계는 극히 민감한 사안인데 `아무 실익 없이 북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을 내뱉는 바람에`파토내는`일이 없지 않았다. “선무당 생사람 잡는다”고 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8

꿩의 IQ

일본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傅義)`를 내세워 만주괴뢰국을 만들었고 1937년 12월 난징(南京)을 침공했다. 장개석 정부는 양면협공을 받는 처지였다. 모택동의 공산세력과 일본이 동시에 쳐들어오니 우왕좌왕 밀리기만 했다. 장 총통은 난징을 버렸고 일본군은 그해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6주 동안 `세계역사상 가장 잔인한 살륙전`을 자행했으니 이것이 난징대학살사건이다. 난징에는 `살륙기념관`이 있다. 죽은 아이를 안고 하늘을 우르러 울부짖는 어머니상이 뜰에 커다랗게 서 있다. 전시실에는 참혹한 장면의 사진들과 조각 작품들이 있다. 목이 잘리는 순간의 일그러진 여성의 얼굴, 잘린 머리를 들고 웃고 있는 일본군, 갓난 아기를 공중에 던져올렸다가 떨어지는 곳에 총검을 세워 꿰 죽였고 총탄을 아끼려고 생매장했으며 기름을 끼얹어 태워죽였다.이 사진들은 당시 일본 언론들이 보도한 것들이다. 그 참혹한 장면을 `자랑스러운 전과(戰果)`로 보도한 것. 원자폭탄 두 개 맞고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내 자랑이 됐겠지만 오늘날 그것은 고스란히 `치욕의 증거`가 됐다. 중국은 이 자료들을 모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물론 일본은 갖은 교활한 수단을 써서 방해하겠지만 중국도 지금은 힘 없는 중국이 아니다.소녀들을 봉제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꼬여 성노예로 만든 것 같이 일제는“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속여 조선 청년들을 탄광에 데려갔고 돼지죽 같은 음식을 주며 강제노동을 시켰다. 그 청년들은 속국의 포로였다. 굶주림과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다가 잡혀 죽도록 매를 맞았다.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죽었다. 일본 정부는 그 강제징용의 현장인 `군함도` 등 탄광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우리 정부도 그 참상들을 모아 등재신청을 준비중이다. 일본정부는 여전히 강제징용과 학대·학살을 부인한다. 꿩은 위기에 몰리면 머리를 덤불에 처박는다. 제 눈에 안 보이면 남도 못 보는 줄 아는 두뇌를 가졌다. 일본의 IQ도 꿩의 지능지수와 비슷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7

노인과 유기견

“아기는 엄마가 못 생겼다고 외면하지 않고, 개는 주인이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노자의 말이다. `아기와 개는 본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본성(本性)이란 `자연으로부터 받은 성품 그 자체`를 말한다. 편견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말하면서 노자는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道)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했다. 미국의 한 방송작가는 “대체로, 개는 사람보다 훨씬 품성이 좋다”고 했다. 지난 4월 일본에서 치료견 `치로리`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300여명의 추모객이 고견(故犬)을 애도했다. 치로리는 어느 비오는 날 강아지들과 함께 버려졌다. 주인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아 한쪽 다리를 절고, 막대기만 보면 온몸을 떠는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에 걸려 있었다. 유기견보호소에서 안락사시키려는 순간 새 주인이 나타났고, 환자의 벗이 돼주는 치료견 훈련을 받게 됐다. `실눈을 뜨고 입꼬리를 치켜올리며`웃는 그 모습에 환자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지었다. 웃음보다 좋은 보약은 없는데, 치로리는 그 `웃음보약`을 주었다. 애견의 발에 흙이 묻을까봐 줄곧 안고 다니고, 며칠 출타할 때 개를 맡기는`애견호텔`도 있다. 3천400만원짜리`개저택`도 있는데 TV, 에어콘, 스파, 러닝머신까지 갖추었다. 지난 8월 중국의 한 도시에서는 성대한 `반려견 장례행렬`이 시가지를 지나갔다.최고급 아우디 승용차 위에 `개 영정사진`을 달고,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에 작곡한 장송곡을 울리며 장지를 향해 갔으며, 추모객들의 승용차가 길게 뒤를 따랐다. 치료견이 죽자 장례비로 1천200만원을 쓴 환자도 있었다.대구시수의사회는 유기견 50마리를 모아 독거노인 반려·치료견으로 활용할 계획이다.버려진 개들을 안락사시키는 대신 치료·반려견으로 훈련시켜 독거노인들의 벗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유기견 사료값과 치료비로 연간 드는 비용 100만원은 수의사회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고, 유기견 건강관리와 훈련은 회원들이 재능기부하기로 했다. 시민들이 성원하고 협력할 가치가 충분한 일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6

강의료와 `뇌물`

뇌물을 주는 방법은 지능적이다. 추적이 가능한 수표를 뇌물로 받는 사람은 없다. 일본 기업인들은 공무원들과`마작판`을 벌여 돈을 잃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연회 강사로 초빙해서 강의료·원고료·거마비 명목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방법을 잘 쓴다. 그것은 합법적이어서 사법처리를 당할 염려가 없다. 새누리당 정수성(경북 경주)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원전 관련 기관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강사료를 받고, 한수원 용역을 받는 하청업체로부터 수월찮은 강사료를 챙긴 임직원이 많았다.한수원에도 `윤리행동 강령 및 외부강의 지침`이란 것이 있는데, 임원은 시간당 30만원, 2급 이상은 23만원, 3급이하는 12만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이것은 `벽에 붙여놓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60만원에서 90만원까지 받았다.이것이 `원피아`의 온상이다. `강사료 뇌물`로 맺어진 유착관계 때문에 위조·변조된 서류가 횡행하고, 비리에 눈을 감는다. 지난 5년간 징계를 받은 한수원 임직원만 90명이고, 금액도 31억여원이었다. 이러니 원자력발전소나 방폐장 건설 등이 심각한 반대에 부딪힌다. 비리는 신뢰를 허물어뜨리는 병균이다.공무원이 외부 강의를 할때 받을 수 있는 강의료에도 기준이 있다. 장관은 시간당 40만원, 차관급은 30만원, 4급이상은 23만원이다. 그러나 4급 서기관 A씨는 강의료에 원고료까지 받고 여기에 거마비 5만원을 보태 185만원을 받았다. 이러니 월급은 `껌값`이고, 한 해에 61차례의 외부강의를 나가서 수억원의 강사료를 챙긴 고위공무원도 적지 않다. 강의를 들어서 전문지식과 교양을 쌓자는 강연회가 아니라 `뇌물`로 `검은고리`를 맺기 위함이다.국민권익위가 뇌물성 강의료에 제동을 걸고 나서고, 인사혁신처는 부적격 공무원을 퇴출시킬 방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법과 제도`가 없어서 비리가 자란 것은 아니다. 만들어놓은 장치를 제대로 실천을 하지 않아서 비리가 비대해진 것이다. 부디 이번만은 엄포가 아니기를 바란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5

문화재의 자격

1962년에 완공된 `연구용 원자로 1호기`가 지난해 `등록문화재 제577호`에 올랐다. 건설·제작후 50년 이상된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가치와 활용가치를 심의해 문화재로 등록하는데 과학기술 연구시설이 등록된 것은 처음이다. 원자력연구원 안에 있는 이 시설은 미국 제너럴아트믹사 제품으로 본래는 열출력 100KW짜리였으나 우리 연구진이 250KW로 개선시켰다. 이 1호기는 95년까지 33년 간 국내 원자력 연구의 모태(母胎) 였는데, 그 해 우리 자체 기술로 만든 연구로(하나로)가 완성되면서 `임무교대`를 했다.이 원자로1호기도 당시 `철거위기`에 몰렸었다. `쓸모 없는 늙은이 고려장` 감이었다. 그러나 `머리 있는` 과학계 원로 50여명이 “원자로 1호기는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과기부와 산업자원부, 그리고 소유주인 한국전력을 설득했다. “한국 원전의 조상(祖上)을 없애는 것은 역사적 유물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란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방사능에 오염된 내부를 교체한 후 내년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문화유산 하나가 더 생긴 것.철로와 역사(驛舍)들이 많이 `퇴역`하고 있다. 대구선 열차가 중단되면서 `아양철교`도 퇴물이 됐다. 아양철교는 1917년에 건설돼 2008년 폐선되기까지 90여년간 일을 했다. 2010년부터 동구청은 리모델링작업을 시작해 지난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재탄생시켰다. 전망대, 디지털박물관, 명상원, 휴게공간 등이 철교위에 새로 생긴 것이다. 백명진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설계를 맡았고, (주)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사업비 53억원을 들여 완공한 후 동구청에 기부채납했다. 백교수는 올해 1월 독일에서 열린 세계디자인대회에 이 `아양 기찻길`을 `모범적 폐철교 재활용 사례`로 출품했다.101년의 찬연한 역사를 가진 구 포항역이 축소돼 `역사유적`이 아닌 `기념관`으로 추락할 전망이다. 문화재의 기본조건은 `그 자리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다. `모형`은 문화재가 아니다. 아, 옛 포항역의 가련함이여!/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2

미륵반가사유상

석가세존은 “내가 간 후 56억7천만년 후에 미륵이 세상에 와서 중생을 구할 것이다. 미륵은 `도솔천`에 살 것이고 `용화수`나무밑에서 성불한 후 내가 다 못 구제한 중생을 다 제도할 것이다. 미륵을 잘 믿고 수행하면 도솔천에서 만날 것이고, 미륵이 세상에 올때까지 지장이 대신해주기 바란다”라고 수기했다 한다. 그 미륵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불상이 바로`미륵반가사유상`이다.이 미륵신앙은 인도에서 중국 티베트 일본 한국 등에 전래됐고 한반도에는 3국시대에 도입됐는데 백제·고구려·신라 순으로 들어왔다. 미륵신앙은 서민층들에게 희망을 주는 `미래불`이었다. 신라 35대 경덕왕때 `하늘에 해가 둘 뜬` 이변이 일어났는데, 월명사가 꽃을 뿌리면서 “꽃들아, 도솔천에 가 미륵불을 모셔라” 노래부르자 이변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화랑 김유신은 낭도들은 `용화낭도`라 불렀고,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 주불이 미륵불이었다. 이 미륵신앙은 통일신라 이후 원효·원측 등 학승들에 의해 체계화됐다.7세기 백제 무왕과 선화왕비는 `미륵사`를 지어 `미륵3존불`을 모셨는데, 선화의 부왕인 신라 진평왕이 장인들을 보내 미륵사 건축을 도왔다. 백제는 미륵석불과 석가석불을 일본에 보내면서 아시아 전역에 미륵신앙이 퍼졌다. 이 미륵불은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내가 세상에 온 미륵”이라 하고 `미륵관심법`으로 남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숱하게 죽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내가 미륵”이라고 주장하는 사교(邪敎) 사기꾼들이 엄청 설쳤다.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7개국에서 온 불상 2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 중에서 예술성 뛰어난 미륵불이 국보 83호와 국보 78호이다. 78호는 다소 무디고 도식적인데 비해 83호 금동미륵불(경주박물관에서 잠시 전시됐던)은 날렵하고 생동감 있는 최고 걸작이다. 절망하고 있는 우리 청년들이 미륵불들을 만나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되찾았으면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1

사회주의 국가의 인권

미국에 망명중인 중국 인권단체는 9개인데, 미·중 정상이 만날때면 “구속돼 있는 중국 인권운동가들을 즉각 석방하고,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요구를 유혈진압한 일을 사과하라”며 시위를 벌인다. 또 남아공 출신의 투투 명예주교와 달라이 라마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12명은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구속중인 류사오보를 석방해달라”고 했다. 류사오보는 2009년 중국의 인권을 외치다가 `국가 전복 선동죄`로 11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노르웨이 한림원은 다음해 그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시상식에 갈 수 없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와 중국 사회주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놓여 있었다.시진핑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인권운동가 궈위산(郭玉閃)이 전격 석방됐다. 그는 북경대 정치·경제학 석사이고, 인권변호사 등과 NGO를 설립해 사회개혁운동에 나섰으며, 가택연금 중인 시각장애인 변호사 천광청의 미국 망명을 적극 도왔다. 전제군주국의 전통을 이어오는 중국으로서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생소할 뿐이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잡아들여 국가 전복 선동죄를 씌워 중형을 선고해왔는데, 이번 `귀위산의 석방`은 시진핑 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에 앞선 `정지작업`이라 하겠다.유엔인권이사회가 중국인권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보는 것이 북한인권이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유럽본부에서 `북한인권 토론회`가 열렸는데, 북한이 가장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핵과 인권이다. 이번에도 북은 “인권을 구실로 우리의 제도 전복을 노린 불순한 정치적 모략”이라 하고, 최근 여야가 북한인권법안에 일부 합의한 것에 대해 “국회에서 북인권법을 조작해보려고 날뛰는 것은 노골적인 도발”이라 했다.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에 설치됐는데 탈북자들의 증언을 수집 기록하는 일을 주로 한다. 사인 폴스 초대 소장은 “북의 반인권 범죄는 매우 조직적이고 광범하다”고 했다. 그러나 세습독재국가에서 `자유·인권`이란 매우 낯선 개념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30

등대(燈臺)의 추억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충남 태안 연안에 향도선(嚮導船)을 배치해 세곡선들이 무사히 항해하도록 했다. 물론 야간에는 횃불을 밝힌 배들을 배치해 세곡선 뱃길을 안내했으니, 이것이`신라의 등대` 였다. 1903년 6월 1일 팔미도 등대가 설치됐는데 이것이 근대식 등대의 효시다. 일본인들은 일찍 유학생을 보내 서구 선진기술을 배웠는데, 등대 건축술도 이때 습득했다. 1900년대 초에 콘크리트, 철근, 철골, 벽돌을 이용해 등대를 지었다는 것은 최첨단 공법이었으니, 등대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선진 기법이 총동원된`종합건축예술`이었다. 그리고 등대는 무선 기지국 구실도 했는데, 등대지기가 되려면 무선사 자격증을 따야 했다.서양에서는 그리스 신전을 본딴 등대가 당시 유행이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조랑말 형상의 제주도 등대, 거북선 모양의 한산도 등대, 젖병 모양의 기장읍 등대, 흰고래와 붉은고래 모양의 두 등대를 설치해서`그 사이로 가면 안전함`을 알려준 것이 바로 울산 정자항 등대다. 이처럼 등대는 그 지역의 특징과 상징성을 보여주는 건축예술품이었다.인천 팔미도 등대는 유형문화재 40호인데, 포항 호미곶 등대는 39호이다. 1907년 일본 수산실업전문학원 실습선이 구만리 인근 해역에 조사차 나왔다가 3각파도를 만나 침몰한 것이 계기가 돼 등대건설사업이 시작됐고, 이듬해 완공했다. 프랑스人이 에펠탑을 모티브로 설계했고, 중국 기술자가 벽돌로 지었다. 팔미도 등대는 높이가 7.9m인데 호미곶등대는 26.4m나 되는 6층 구조이고, 각 층마다 대한제국의 상징인`오얏꽃`문양을 새겼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경북도는 동해안 일원에`등대 해양관광벨트`를 조성한다. 호미곶 등대박물관을 중심으로 빼어난 동해안의 절경을 이용한`등대투어`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비치며/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가곡과 함께 아련한 추억을 만들 기회가 될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5

절망과 희망 사이

아부 마흐무드는 시리아 출신의 의사였다. 그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샌드위치 압박`을 받다가 탈출을 결심했다. 정부군은 “다친 반군을 치료해준 의사”라며 그를 체포하려 했고, 반군은 “너, 정부군 편이지?” 했다. 그는 쪽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했으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11시간 표류하다가 터키에 닿았다. 그는 거기서 의사를 포기하고 `난민 브로커 조직`에 들어갔고, 그리스로 가려는 난민들에게서 1인당 1천100 달러를 받았다. 이런 일은 당시 불법이므로 터키 경찰에게 적잖은 뇌물을 주었다. 마흐무드의 월 수입은 수천만원이다.그의 이름은 인터폴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이제 체포되지 않게 되었다. 3살짜리 소년의 죽음으로 `난민보트 운영과 브로커업`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독일과 미국은 경제가 빵빵하니 난민을 대거 받을 수 있고, 난민의 입국을 `불법`으로 취급하던 유럽의 나라들도 체면상 `죄인 취급`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리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다만 `입국 난민의 수`를 제한할 뿐이다.반군이 점령한 아르무크시를 정부군이 봉쇄하면서 이 도시에서는 수백 명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는데, 그 도시 길거리에서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며 희망을 전하던 청년이 있었다. 알아흐마드(27)는 어린이들과 함께 `형제여, 이 도시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를 노래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려 세계에 알렸는데, `음악은 이슬람율법 위반`이라며 수니파 반군이 피아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러버렸다.“내 생일날 친구 이상의 친구를 잃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결국 탈출을 결심했고, 의사 출신의 브로커 마흐무드의 도움을 받아 터키로 갔고, 거기서 작은 보트를 타고 그리스의 한 섬에 정착했다. 그의 소망은 “피아노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베를린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것. 언론을 통해 유명인이 된 그를 도울 독일인은 금방 나올 터. 어떤 경우에도 절망은 없다고 노래한 그는 바로 `희망의 빛을 쏘는 등대`가 됐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4

열린 국가들

예로부터 `되는 나라`들은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높았다. 통일신라는 인도양을 건너 아라비아까지 끌어안았고, 육지로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터키까지 오갔던 `초원의 길`이 있었다. 아랍사람 `처용`은 신라조정에서 벼슬을 살았고, 저 유명한 `처용가`를 남겼다. 아라비아의 고지도에는 `SILLA`가 뚜렷이 그려져 있고 `황금의 나라`라는 설명까지 붙어 있다. 이것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힘이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힘도 넓은 교류와 포용력에서 나왔다. 고려 개성의 벽란도는 송나라, 베트남, 태국, 요나라, 여진국, 일본 등지를 오가는 국제항만이었다. 정치에는 막대한 돈이 드는데, 고려 왕건은 광범한 국제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것이 정치권력으로 이어졌으며, 그의 오지랍 넓은 포용력은 삼국을 통합하는 구심체가 되었다. KOREA란 이름도 이때 `고려`에서 나왔다. 자유연애를 묘사한 고려가요 `쌍화점`의 주인은 회회아비(아라비아 회교도)였다.중국 역사에서 가장 번영했던 국가가 당나라인데, 외국인을 등용하는 과거제도 `빈공과`가 있었다. 고려는 송나라 학자 `쌍기`를 `인재 선발 기관장`으로 임명해서 국내외적으로 인재를 모았는데, 이때 요직을 맡은 중국인이 40명 넘었고 몽골, 아랍인도 국정에 참여했으며, 귀화한 일반 외국인 수는 `고려 전체 인구의 8.5%`나 되었다. 이와같은 개방과 포용력은 고려를 `명품국가`로 만들었으니, 고려청자·팔만대장경·최초의 금속활자·고려 한지·나전칠기·고려불화(佛畵) 등이 그 물증이다.오늘날 개방과 포용으로 번영하는 나라가 독일과 싱가포르이다. 독일은 히틀러의 인종차별정책에 교훈을 얻어 `다양성 교육`에 집중했고, 시리아 난민 수용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GNP 5만3604달러인 싱가포르는 9년 연속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로 뽑혔다. 우리나라는 10년째 GNP 2만달러대에 묶여 있는데, 악성 이기주의와 정치권의 발목잡기와 편가르기가 `족쇄`를 채웠기 때문이다. `개방과 관용정신`만이 족쇄를 푸는 열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3

적자 공기업의 돈잔치

과거 왕조시대에도 흉년이 들면 임금도 고통분담을 했다. 반찬 가지수를 줄여 소박한 수라상을 받았고, 가뭄이 심하면, “왕이 부덕한 소치”라며 곤룡포를 벗고 상복(喪服)을 입었다. 상복이란 죄수복이었다. 삼베로 지은 험한 옷을 입고 하늘을 가릴 삿갓을 쓰고 외출했다. 태종 이방원이 비를 기다리며 대궐 뜰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내시들이 급히 우산을 씌우려 하자 왕은 “우산 걷어라. 곤룡포에 떨어지는 빗방울 자욱보다 더 아름다운 무늬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박근혜 대통령이 취업난으로 신음하는 청년들과 고통을 나눈다. 7가지를 포기한 `7포 청년`을 도울`청년희망펀드`를 만들고, 2천만원을 낸 후 매월 월급의 20%를 기부한다. 총리, 장관, 공공기관장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 기부 분위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인데, `대기업 명의로 된 고액 기부금`은 사양하기로 했다. 다만 `기업인 개인 명의의 돈`은 받는데,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이 개인명의로 20억원을 약정했다. `기부금의 액수`보다 전 국민이 관심 있게 동참하는 `십시일반의 정신`이 더 중요하다.이 기부문화 확산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기업을 적자로 경영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임·직원들과 귀족노조원들이다. 회사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경영층은 억대 연봉을 받는 공기업이 70%나 됐고, 그 중에 `김대중컨벤션센터`도 포함됐다. 직원의 평균연봉이 6천만원 안팎이 되는 지방공기업 중에 대구도시공사(6천548만원)과 대구도시철도공사(5천582만원)도 들어갔다. 그리고 울산지역 귀족노조들의 임금은 매년 임단협과 파업을 통해 계속 오르다가 지금은 생산성을 훨씬 앞질렀다.바로 이런 사람들이 누구보다 먼저 청년 일자리 펀드에 기부해야 한다. 나라경제야 어떻게 되든 나 하나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 망국적 사고방식을 확 뜯어고치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국민혈세 도둑·국가경제 훼손자`란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2

음서(蔭敍)

인도에 카스트제도가 있는 것같이 우리나라에도 `계층구조`가 있었다. 신라때는 골품제도가 있었고, 고려·조선때는 양반계급과 음서가 있었다. 신라의 골품은 태어날때 부터 결정됐다. 6두품이었던 최치원은 소년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해 신분의 한계를 극복했다. 고려와 조선의 음서제도는 `법전`에 그 규정이 상세히 적혀 있다. “매년 1월에 음서를 뽑고, 20세 이상이 대상이며, 종실이나 공신 중 5품 이상 관리의 아들·손자·사위·동생 중 단 1명만 음서 대상이며, 음서로 등용된 자의 임명장에는 반드시 蔭(그늘 음)자를 써서 그 표시가 평생 따라다녔으며, 음서로 등용된 자는 당상관 이상 올라갈 수 없고, 홍문관·예문관·사헌부·사간원 등 청요직에는 갈 수 없다”는 내용이다.생원과와 진사과에 급제해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대과(大科)에 자꾸 낙방한 자들이 주로 음서를 선택했는데, 양반의 자식들 중에도 `글읽기를 몹시 싫어한 자`들은 애당초 음서로 출사(出仕)해서 하는 일 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월급을 받았다. 음서 중에는 “인사기록카드에 蔭자가 붙어 다니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며 계속 과거를 봐서 결국 그 음자를 뗀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 제도도 조선 초기에는 경국대전의 규정대로 잘 지켜졌으나 후기에 오면서 각종 부정부패가 들끓는 와중에 음서제도 또한 탁류에 휩쓸렸고, 장사해서 돈 번 부자들이 실권자들에게 돈을 주고 벼슬을 사거나 천민신분을 벗었다.2013년 국감때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179개 공공기관의 단체협약 내용을 분석했는데, 그 중 33개 기관이 고용세습을 허용했으며, 그 중 19곳은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뿐 아니라 자살·정년퇴직자의 가족도 `우선채용`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 그때 `현대판 음서`라며 많이 시끄러웠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의 국감에서도 같은 소리가 난다.`힘센자`의 자식들은 좋은 자리에 `전화 한 통`으로 들어가고, 인사기록카드에 蔭자가 붙지도 않는다. 조선이 망할 무렵의 인사난맥상이 오늘날에도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1

노사정 대타협?

영화 `연평해전`은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애국심을 고취한 효과를 냈다면, `베테랑`은 악덕재벌과 그 2세의 `정신병적 악행`에 맞서 싸우는 베테랑 형사의 집념을 그려`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웅변했다. 그리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관객들은 “돈이 자식을 버리는구나” “재물이 재앙이구나” “재벌이 아니라 죄벌이구먼” 그런 생각을 굴리며 영화관을 나선다.`노사정 대타협`이란 활자가 신문에 크게 찍혔다. 우리나라 만큼 기업에 대한 반감이 많은 나라도 드물고, 귀족노조에 대한 혐오감이 심한 나라도 드물고, 정치·행정에 대한 불신이 높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삐걱거리는 나라가 이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실로 기적이라 할만한데, 그것은 `세계1류기업`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재벌을 크게 밀어준 덕분이다. 재벌개혁이니, 경제민주화니, 법인세 현실화니 하는 야권쪽의 아우성을 외면한 채 외길 질주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그리고 이번에 `노동개혁`이라는 묵은 숙제를 놓고 우여곡절 끝에 노사정이 `서명`을 하게 됐고, `대타협`이란 표현을 썼지만, 그게 과연 완전한 타협일까? 정부·여당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할 쾌거!”라 하고, 야당은 “노조 팔만 비튼 엉터리 노사정 합의안”이라 하고, 경제5단체는 “매우 부족하다. 별도의 국회 입법청원을 통해 노동개혁을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겠다”고 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합의안을 수용키로 최종 결정한 것은 분명 `대타협`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입법`을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국회가 법을 매끈하게 만들어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험난한 악산`이다.야당은 “줄어든 임금, 쉬운 해고, 기업측에만 유리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타협안”이라 비난하는데, 기업측은 “청년일자리 해결을 위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들기에 부족하다”며 입법청원을 들고 나온다. 국민은 정부·여당에 국정 책임을 맡겼다. “발목잡기 때문에….”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지금은 책임과 임무를 완수할 때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8

국감 무용론

1948년 제정헌법 제43조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하며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에 의해서 국정감사는 비롯됐다. 영국과 미국은 `상시청문회 제도`여서 매일 국정을 감사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일년치를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기형적인 변종이다. 그런데 검찰이 서류 제출과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검사의 기소권 행사에 대한 국회의 간섭은 사법권의 침해로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5·16 이후 “다만 재판과 진행중인 범죄수사·소추에 간섭할 수 없다”란 단서조항을 붙였다.1972년 유신헌법에 의해 국감이 폐지됐다. 감사원의 감사권만 남고, 국회의 국정 감사·조사권은 “실효도 없으면서 너무나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없앴다. 당시 국감이 요구한 서류는 7만3천695건으로, 서류 한 건 검토에 5분씩 잡는다 해도 280시간이나 걸리니, 20일 정도의 국감 기간에 다 읽을 수도 없다. 그래서 불거진 것이 `국감무용론`이었고, 유신정권은 이 여론을 받아들였다.그후 16년만인 1987년 노태우정권이 국감을 부활시켰다.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인 6·29선언에 의해서였는데, 지금도 국감무용론은 꾸준히 고개를 든다. 13시간 기다리게 해놓고 13초 질문하고, 종일 기다리게 해놓고 그냥 돌려보내고, 국회의원 갑질용으로 “증인채택하겠다” 협박한다. 이번 국감에서는 경찰총수를 불러놓고 모형권총을 주면서 “조준 격발을 시연해보라”고 요구한 국회의원도 있었다. 아이들 골목대장놀이도 아니고, 경찰청장 망신주기도 아니고, 시정잡배나 마피아 행동대원 훈련도 아닌 일이 자행됐고, 전국 경찰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국방위원회 국감에서는 국가기밀이 마구 폭로됐다. 비공개로 해야 할 말을 공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적행위를 한 것이다. 수준·자질미달 국회의원들 때문에 국감때 마다 무용론이 불거진다. 국회의원이 엉뚱한 짓을 하면 뽑아준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 `말 없는 다수`의 무서움을 보여줄 때가 됐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7

역사해석의 다양성

국사교과서는 광복 직후 검정으로 출발했다가 박정희 대통령때부터 30여년간 국정으로 했고, 노무현정권시절인 2007년 이후 검정으로 바뀌면서, 좌파 사가들이 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편찬하게 됐다. 박근혜정부는 다시 국정으로 돌아가려 한다. 새누리당 이정우 대변인은 최근 “좌파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역사교과서의 편향성과 反대한민국 정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좌파 사가들의 역사관이 계속 교과서에 반영된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 했다.지금 많은 논자들이 국정을 반대한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토론하는 것은 문명국의 보편적 상식이고, 그래야 다원적 가치와 창조성, 상상력이 확대되는데, 역사 해석의 권리를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이 모든 장점을 포기하자는 얘기라 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 말은 `원론적으로`만 맞다.`실제`로는 정반대로 나타난다.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만든 교학사 국사교과서가 처음 나왔을때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당시 몇몇 학교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 그러자 곧바로 그 학교들은`집중공격의 대상`이 됐다. 일부 학부모들까지 부화뇌동해서 “교학사 국사책으로 가르치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겠다”고 압박했고, 학교에는 쉴새 없이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심지어 “죽여버리겠다”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이같은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해 “교학사 교과서를 쓰지 않겠다”고 항복을 했고, 결국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단 한 곳도 없게 됐다. “검인정으로 해야 다양성과 개방성과 창의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는 완전 허구임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것이다.좌파 입맛에 맞는 국사교과서만 살아남는 것이`검정 교과서의 현실`이다. 노무현정권때 검정으로 돌아선 이유가 있다. 국사교과서 만큼 좋은 `혁명 투쟁의 무기`가 없다. 그래서 사생결단하고 국정을 반대한다. 그러나 국정도 변해야 한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사항들을 분단극복을 위해 부분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6

불신 합병증

1957년 모택동은 `반우파 투쟁`을 벌인다. “공산당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 사회주의의 나쁜점을 말해달라”했다. 지식인 55만명이 바른말을 했다. “그래, 그것이 너희들 본심이지? 네놈들은 우파야”그들은 탄압당하고 숙청됐다. 毛는 이것을 `인사출동(引蛇出洞: 뱀을 유인해 동굴에서 나오게 한다)`의 묘수라 했지만, 그 후 지식인들은 입을 닫아버렸다. 지식인의 의무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중국인들은 지금도 `속에 있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게 됐다. “나무는 겉껍질이 벗겨질까 두려워하고, 사람은 속마음을 다칠까 두려워한다”란 중국속담도 여기서 생겼다. 공자는 “국가경제, 국방, 신뢰, 이 셋 중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신뢰”라 가르쳤지만, 毛는 문화대혁명 당시 공자를 비판하면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그 결과 중국의 발전을 30년 이상 발목잡았고, 그 거대한 대륙이 작은 섬나라 일본에 먹히는 비운의 제국이 되기도 했었다. 나라가 불신받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不信不立)란 말은 영원한 진리다.의심 많고 시기심 가득한 선조(宣祖)는 툭하면 `선위파동`을 일으켰다. “임금자리를 내려놓겠다”선언해놓고는 “어떤 놈이 찬성하나”하고 살핀다. 대놓고 동조는 안 해도 `적극 반대하지 않는 자`도 찍힌다. 이순신 장군도 그런 대상이 됐고, 명량대첩 후 전사함으로써 `전쟁후의 더러운 꼴`을 피할 수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선조를 조선조의 대표적 암군(暗君)으로 꼽는다. 임진왜란도 불신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불신으로 가득한 나라는 허약해지기 마련이다.1949년 4월 오제도 검사의 제안으로 `보도연맹`이 만들어졌다. 좌익활동을 한 사람이라도 이 연맹에 가입해 재교육받으면 보호하고 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가입했다. 그러나 다음해 6·25가 터지자,“이런 자들이 북한에 동조할 것”이라 의심해서 상당수의 연맹원들을 죽였다. 최근 대법원은 포항 유족 143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불신의 골`을 메우는 일이라 다행스럽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5

국가기밀 유출죄

어떤 독재국가에서 한 남자가 재판소에 잡혀왔다. “우리 수령님은 바보다”그 한 마디 한 죄였다. 판사는 15년형을 선고했다. 국가원수 모독죄로 5년, 10년은 `국가기밀 유출죄`였다. 유머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나라를 거덜내는 바보를 `신`으로 만드는 정치쇼를 통박한 풍자가 재미있다. 노무현정부 시절 경찰청장을 지낸 허준영씨가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종북 세력을 두더지 잡듯 분쇄하는 일은 중단없이 계속돼야 한다”는 취임사를 한 것이 이번 국감에 걸렸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한국대표로 참석해서 김일성 주석과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 `통일의 꽃`으로 국빈대우를 받았던 임수경 새정련 의원이 그 취임사를 걸고 넘어진 것.“종북의 개념이 뭡니까. 저도 종북입니까” “문재인 대표는 종북입니까”라고 따지는데,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뱉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 지 알 수 없는 일. 문 대표에 대해서는 “그런분이 아니다”라고 했고, 임 의원에 대해서는 “연구해보겠다”고 답변했다. 경륜과 관록이 쌓인 허 회장이라 `가장 무난한 피난길`을 찾은 것. 당시 임 대표는`김일성 선물`인 여우목도리를 호텔방에 그냥 두고 왔고, 첨단 공산품 전시장에서 안내원이 `계산기`를 자랑하자 “이런것 우리집에도 있어요”해서 머쓱하게 만든 일이나, 북한의 어느 대학생이 남한의 학생대회에 무단으로 참석했다가 돌아갔다면 그 당장 총살당할 일이지만, 임씨는 지금 국회의원이 돼 있으니, “역시 한국은 자유국가”란 인식을 북에 심어준 `공로`는 있다.그런데 새정련 진성준 의원은 국감 자리에서 국가기밀을 마구 폭로했다. `900연구소``다물부대``3·1센터` 등등 존재 자체가 기밀인 정보기관들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입에 올렸다. 지난해 진 의원은 사이버사령부 산하 모 부대를 공개하는 바람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직을 바꿔야 했다. 이번에도 교체 비용을 낭비하게 생겼다. 이런 이적행위조차 국회의원의 특권이라면, 이는 자유과잉 아닌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