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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촌 김용주

해촌(海村) 김용주(1905~1985)는 함안에서 태어나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포항에 있던 식산은행에 취직하면서 `포항사람`이 됐다. 그는 기업인으로,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활동했고, `포항의 현대사를 주도한 지사`였다. 그는 은행원을 사직한 후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영일만 일대에는 어업이 크게 발달했는데, 정어리와 청어 산란지였다. 구만리 해변은 까꾸리로 고기를 끌었다 해서`까꾸리깨`라 불렀다. 그는 사업 초기 `三日商會`란 간판을 내걸었다. `三一 상회`라 짓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일제가 허가를 해줄 리 없었다. 해촌은 독립의지를 속으로 감추며 三日이라 지어 `작심3일`을 연상시키는 기업으로 위장했다. 그러나 그의 어업활동은 최첨단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어군(漁群)을 탐지했는데, 공중에서 어군을 발견하면 어선들에 통지하고, 그때 어선들이 떼지어 몰려드는 퍼레이드는 장관이었다고 한다.1933년 당시 포항읍의 인구는 3만 여명으로 대구시에 버금갔다. 그런데 학교는 공립보통학교 1개와 기독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립보통학교 1개 뿐이었다. 그러니 초등학교 입학에도 시험을 봤는데 당시 경쟁률이 8대1이나 됐다. 의무교육제도가 없을 때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나마도 오래 지탱하지 못했다. 일제는 교회에 대해 “신사참배하라. 일장기를 게양하고 경례하라”고 명령하는데, 우상숭배를 금하는 기독교가 따를 수 없었으니, 탄압이 극심해져 결국 교회학교는 문을 닫았다.그 학교를 인수한 사람이 해촌이었다. `학교`라 하나, 건물은 없고, 예배모임이 없는 시간대에 학생들이 교회로 와서 공부를 했다. 해촌은 사업으로 번 돈 절반을 떼내어 판자집 학교를 지었으니 이것이 영흥초등학교였다. 그는 어업에서 운수사업으로 규모를 확장하고, 정계에 진출해 민선 경북도의원이 됐으며, 조선총독부를 비난하다가 `포항지역 총살 대상 1호`로 지목되기도 했다. 해방후 해촌은 상당한 땅을 주민들에 나눠주었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해촌의 아들이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했던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26

포항 연극의 정신

포항시가 2016년도 `문화특화지역`으로 지정됐다. 문화도시 사업은 “지역의 특화된 문화자원을 창조적으로 발굴 육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21세기는 문화경쟁시대이고, 문화가 경제를 선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상상력의 산물이고, 창조경제 또한 상상력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와 경제는 `함께 가는 동행자`일 수밖에 없다.포항의 문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포항의 연극`이다. 3·1만세운동 3년 후인 1922년 포항 영일 출신 유학생회는 동빈동 가설무대에서 5막극 `은하수를 아십니까`를 공연했고, 출연진 19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그들은 20일간 잔혹한 고초를 겪었는데, 이것이 한국인 최초의 `연극인 구속사건`이다. 연극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독립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가려는 움직임을 일제는 철저히 차단했다. 그러나 포항의 연극운동은 면면히 이어졌으니, 1925년 대송면 출신 동경유학생들이 여름방학때 `순회연극`을 감행했다. 특히 김정진은 문맹퇴치운동을 병행, 부녀자 120여명에게 한국어와 한국사를 가르쳤다. 그 무렵 포항 여성청년회와 기계청년회도 `연극은 통한 계몽운동`에 나섰다.이같은 연극정신은 60년대 초 신상률, 최동주, 김삼일로 이어져 포항연극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김삼일은 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며 포항 최초의 `소극장운동`을 펴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때 포항문화의 근간은 연극에 있고, 그 근원적인 정신은 고려조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효정신과 임진왜란 당시 김현룡 창의대장의 저항정신과 구한말 최세윤 의병장의 구국정신에 닿아 있다.포항시가 문화특화도시 조성사업에 선정돼 5년간 예산지원을 받는다면, 포항의 소극장운동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연극인 중의 극히 일부라도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연극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포항문화의 특화`를 바로 짚어나가는 방향이 될 것이다. 광복 70년·한일국교정상화 50년이 되는 올해, 포항연극정신을 되새겨본다.  /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25

이상한 한국인

삼성의 사회봉사단인 `드림캠프`가 여름방학 동안 농어촌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지도를 하려고“참여할 학생을 모집해달라”고 하자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은 “삼성의 기업이미지를 주입시킬 목적”이라며 거절했다. 3년 전에는 관내 마이스트고와 특성화고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에 우리 전북지역의 학생들을 취업시키지 말라”고 지시했고, “재벌은 온갖 추악한 가면을 쓰고 국민을 기만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국정감사장에서 삼성전자 노트북을 사용했다. 한 네티즌은 “나쁜 기업 삼성 노트를 쓰시네요” 비아냥거렸다.현대중공업이 7분기 연속 적자를 보고 있다. 해양부문 해외 현장 설치 공사비는 불어나고, 일부 공사는 공기가 지연되는 탓으로 올해 2분기 영업손실 1710억원을 기록했고, 2013년부터 7분기 동안 연속 영업적자이고, 지난해의 적자 총액은 3조원으로 창사 이래 최악이다. 그런데 노조는 기본급 6.77% 인상, 성과급 250%, 직무환경 수당 100% 인상, 고용안심협약서 등등 여러 가지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겠다고 한다. “회사는 임금동결 등 기존 제시안을 철회하고 납득할 만한 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별다른 진전이 없으면 결의에 찬 행동에 나설 것”이라면서 `날짜별 파업계획`까지 발표했다.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가졌고,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는 `대한민국 사람`인데,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되나”란 우스개소리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과연 `우리나라 사람`인지, 참 이상한 한국인이다. 사상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겉과 속이 다른 사례가 또 있다. 영덕군 `바르게살기협의회`가 “바르게 살자” 구호를 내걸고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회장은 바르게 살지 않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매년 군·도비 3천300여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데, 회장의 회계부정 의혹 등으로 회원간 마찰을 빚고, “독선적 운영을 하는 회장 물러가라”는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과거 어떤 여성 탈렌트가 노래했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24

장수 수당

공식적인 은퇴나이는 60세지만, 실질적인 은퇴는 71세다. 11년을 더 일해야 겨우 먹고산다는 뜻이다. 80세 넘을 때까지 노동시장을 헤매는 비율도 16%나 된다. 천대 받아가면서 값싼 일자리를 기웃거리고, 폐지를 줍는 빈곤노인이 그렇게 많다는 말이다. 이런 막일조차 못하는 병든 노인들은 자살을 택한다. 자식 바라지에 모든 것을 던져넣느라 자신의 노후대책은 뒷전에 밀린 탓이다. `새벽 노동시장에 나가는 노인, 집에서 노는 대졸 아들`이 있는 `캥거루 가정`이 드물지 않다.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8% 넘는데, OECD국가 중 가장 높다. 또 고령자 간 소득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국회의원 등 권력층은 `현대판 음서(陰敍)`로 좋은 일자리를 독점·세습하지만, 힘 없는 서민층은 가난밖에는 물려줄 것이 없다. 권력층이 돼버린 10%의 귀족노조는 제 몫을 지키기 위해 임금피크제도 반대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반대한다. 대기업·공기업·공공기관에 들어가야 `귀족`이고, 중소기업에 가면 `천민` 취급 받은 지가 오래다.조선시대에는 `기로연`이 있었다. 70 이상 노인을 모셔다가 잔치를 베푸는 경로효친 행사였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 지자체들은 `장수수당`제도를 만들었다. 전국 87개 지자체가 80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2~3만원씩 용돈을 주는 제도이다.그런데 정부 사회보장위원회가 이 제도를 없애라고 압박을 가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복지제도가 중복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장수수당이란 것이다. “장수수당을 없애지 않는 지자체에는 기초연금 지원금을 10% 깎겠다”고 한다.80세 이상 노인들은 `노조`를 조직할 힘이 없어서 `조직적 반대`를 할 수 없고, 선거때가 돼도 `거동이 불편`해서 투표장에 가기 어렵다.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공짜점심을 주면서, 그 알량한 장수수당은 줬다 뺏는다. 선거때 마다 `무상복지`를 외치는 소리는 높지만 노인복지 소리는 없다. “그저 늙으면 죽어야 돼” 탄식만 들릴 뿐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21

상주 곶감테마공원

옛이야기를 지역마케팅에 활용하는 대표적 사례가 남원의 `춘향전`이다. 해마다 춘향제를 열어 `올해의 춘향`을 뽑고 국악대전을 연다. “춘향은 남원 사람이지만, 이몽룡은 강원도 사람 성이성이다” 해서 강원도가 `이몽룡제`를 열고, `김삿갓`이 살았던 곳이 강원도라 해서 `김삿갓마케팅`을 벌인다. 심지어 `조선시대 대표적 음란물`인 `변강쇠`를 두고도 경쟁한다. `청석골`이 경기도와 전라도에 있는데, 두 곳이 “변강쇠가 살았던 곳이 여기”라며, 불에 그슬린 장승을 `증거`로 들이댄다.아이가 하도 울어서 할머니가 “울면 호랑이가 물어간다”고 협박했으나, 울음을 그치지 않자, 할머니가 “곶감 주랴?”하자 뚝 그쳤다. 문밖에서 이 말을 들은 호랑이가 “곶감이란 자가 나보다 더 무섭구나” 생각하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아는 것과 활용하는 것은 다르다.곶감으로 유명한 곳이 `씨 없는 반시감의 청도`와 `항아리 같이 생긴 동이감의 상주`인데, 이 동화를 `활용`한 곳은 상주다.상주시에는 감연구기관인 경북도농업기술원 감시험장이 있는데, 여기서`상주감 품종보호 출원`을 했다. 201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협약` 발효에 따른 조치다. 출원을 해두면, 아무도 함부로 상주 동이감 종자를 가져가 재배하지 못하고, 반드시 로얄티를 내야 한다. 상주감시험장은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전역의 감나무 유전자원 274종을 수집 보존하면서 그 특성을 조사, 우량종을 선별해 품종보호 출원을 했다.또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곶감테마공원`을 개장했다. 이 곳은 720살 먹은 `하늘아래 첫 감나무`라 불리우는 `감나무 조상`이 있는 마을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을 테마로 하고, 범모형 7개와 곶감모형 6개를 세우고, 우는 아이 `연지`와 호랑이 그림을 벽에 그렸고, 감따기 체험을 위해 모형 감나무도 만들었다.옛이야기 `곶감과 호랑이`를 상주시가 발빠르게 선점해버렸으니, 아이디어 경쟁 시대에 청도군은 그만 한 발 늦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20

창업정신

창업1세대들은 `신화`를 창조했다. 이병철 삼성회장은 해마다 `동경구상`을 했다. 세계적 경제학자들의 경제전망 레포트를 받아 보고 이를 투자에 참고했다. 당시 73세이던 이 회장은 `반도체 투자`를 결심한다. `처음 가는 길`이고, “기술도 없는 작은 기업이 과욕”이란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당시 산업은행 김준성 총재와 의기투합해서 `험난한 바다`에 들어섰고, 오늘날 세계1위의 삼성전자를 이뤄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의 `해봤어?! 정신`앞에 불가능은 없었다.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며 “우리에게 투자하면 갑절로 불려주겠다”고 큰소리를 쳤고, 결국 차관을 이끌어냈다. 기술도 없고 시설도 없는 허공에 지은 회사가 `유조선 2척 주문`을 얻어낸 것은 기적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대중공업은 오늘날 세계1위에 올랐다.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우향우 정신”도 영일만의 기적을 일궈냈다. 현장사무실 오른쪽이 바다인데,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모두 바다에 빠져죽자!”는 것은 목숨 걸고 종합제철소를 건설하자는 결의였다. 당시 대부분의 정관계 인사들은 “반대”였고, “그 철공소 대못이나 만들겠지” 했다. 박정희-박태준 `양박`의 `이순신 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기술력 1위, 조강생산량 5위`도 없었을 터.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기업정신은 “남들이 안 한 것 중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산 라디오 1호 `A-501`이 탄생했다. “라디오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첨단산업이라 힘듭니다”란 임원들의 반대를 제치고 만든 라디오가 팔리지 않자 그는 5천대를 농촌에 그냥 주었고, 그것이 `라디오방송시대`를 열었다.지금 IT인재들이 `창업` 대신 김밥집을 `개업`한다. 성공 보장이 없고, 한번 실패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실패도 `자산`인데 정부는 계속 지원에 인색하다. 창업1세대들은 다들`무모한 출발, 실패, 재도약`이란 과정을 거쳤다. 우리의 인재들이 이런 창업정신을 이어받을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19

증거는 차고 넘친다

중국 산시(山西)성 `위현`은 청나라 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는 두매산골이다. 이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퇴직한 장솽빙(62)씨는 “이 깊은 산간벽지에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 수백 명이 숨어 산다”는 말을 듣는다. 장씨가 지금 하는 일은 이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일이다. “억울하지도 않느냐. 한국 할머니들은 낱낱이 증언해서 일본의 간악한 범죄를 고발한다. 사과를 받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설득끝에 127명의 증언을 익명으로 녹취했고, 최근 한국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해서 이를 공개했다.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전쟁때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 혹은 “성 매매 여성”으로 왜곡 비하하지만,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거짓말로 회유하거나, 강제로 나포해서 끌고간 그 악행을 증명할 증거는 계속 나온다. 중국 위현의 일도 장씨의 노력이 없었다면 영원히 묻힐 뻔했다. 중국은 이런 증거들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일본이 사과에 인색한 만큼 중국은 더 많은 증거들을 캐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철증여산(鐵證如山)이다. 쇠같이 야문 증거가 산처럼 쌓였다는 뜻이다.독도가 한국땅임을 입증하는 사진 한 장이 최근 발견됐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휴전협정 다음해인 1954년 8월 10일 독도 동도에 세워진 등대가 점등됐다. 이 등대를 1956년 7월 사진작가 김근원이 찍었다. 이 사진 속에는 등대 벽에 ROK(Republic Of Korea·대한민국)란 영어가 크게 씌어 있고, 다른 한 벽에는 성걸봉(聖傑峰)이라 쓴 한자가 뚜렷하다. 울릉도에 있는 성인봉(聖人峰)과 짝을 이룬 봉우리란 뜻이니,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란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입증하는 지도와 사진이 실로 `철증여산`인데, 일본은 여전히 억지를 부린다.“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등지에 조선인 위안부 시설이 없는 곳이 없었다”는 당시 일본군 군무원의 증언도 나왔다. 손바닥으로 자기 눈은 가릴 수 있어도 하늘을 가릴 수 없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18

독립투사의 후손

최근 `인터넷 고서 경매`에 1953년에 쓰여진 편지 한 통이 올라왔다. 수신인은 당시 국회의장이던 신익희였고, 발신인은 서왈보의 유가족 서진동이었다. 서왈보는 함경남도 원산 출생의 한국 최초의 비행사였으며,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김원봉의 의열단 단원이었고, 1926년 항공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 신익희와 형님 동생하던 사이였다. 편지에서 서진동은 신익희를 백부(伯父·큰아버지)라 불렀다.서진동은 당시 부산 신애원(信愛院)에 있었다. 전쟁 고아 중에서도 장애인들을 수용했던 복지시설이다. 6·25전쟁이 휴전될 당시 서진동은 장애인으로 이 고아원에 살면서 신 국회의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백부 대인 각하에게”로 시작된 편지는 “저에게 돈 1만원만 주시옵기를 피눈물로 간절히 바라옵니다”로 끝맺었다. 국회의장에게 취직을 부탁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도장 파는 재주를 익혀 도장포를 내려 해도 돈이 없으니, 1만원만 달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후의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독립운동가의 집안은 3대가 망한다 했다. 숨어 다니는 처지라 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되고, 재산은 모두 독립운동 자금에 투입했으니 교육받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수 배호의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였는데, 부산 피난시절에 굶어죽다 시피했고, 배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노래를 불러 생계를 이어갔지만, 서왈보의 아들 진동은 장애인으로 도장포 하나 낼 형편이 못됐다.`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3년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해외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에게 주택알선, 정착훈련, 국민연금 가입 등 지원을 확대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독립운동가의 손자·손녀에게도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도 2년이나 국회에 묶여 있다. 보상금 외에 생계급여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의 유가족들에게 한국국적을 주는 일만 겨우 시작하고 있다. 이들이 정착할`돈 1만원`을 줄 형편은 되는데도 말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17

해방 70주년의 비애

올해 8월15일은 해방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는 물론 민간단체서도 자축행사를 풍성하게 준비하고 있다. `해방 70주년 기념사업 준비 위원회`까지 만들어놓고 또 외교적으로는 일본 수상인 아베 신조의 정치적 메시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휴전선 철책을 수색하던 우리 장병 두 명이 지뢰를 밟아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북한군의 소행이란다. 70년 전 해방이 가져온 분단의 비극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은 독립을 위해서 목숨도 마다않고 내놓았다. 이 한복판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다. 실질적인 독립운동을 지휘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어갈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었을 때 정작 임정은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때 임정요인들은 왜 미군정에 대해 제2의 독립투쟁을 하지 않았을까. 조선총독부에는 온몸으로 저항을 했던 그들이 미군정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너그러웠을까? 또 궁금하다. 전범국인 일본은 천황도, 국토도 그대로 두고 피식민지국가로써 피해당사자인 우리나라는 왜 국왕도 없애고, 국토마저 분단시켰는지. 열강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말은 `남의 탓`에 불과하다. 무장 항일투쟁도 불사했던 임정으로서는 더 강력한 저항을 하여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찾았어야 했다. 당대 지도자들은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그러지 못 했다.해방직후의 이런 정국을 이원수는 그의 동시`돌다리`에서 “비는 개었지만 물이 불어서,/ 건너가는 이마다 옷 적시는 시냇물”에 비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압제자는 갔으나 감시자가 더 많아진 조국의, 자리 잡혀지지 않은 질서 위에 이욕(利慾)에 눈이 시뻘개진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노예근성을 가진 벼락 장군처럼 사방에서 큰 소리를 치고, 또 권세와 재물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나의 문학 나의 청춘`중)라고.그날의 이욕 때문인지 무능 때문인지 몰라도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오늘날 휴전선에서 지뢰가 터지고, 대북확성기가 울분의 소리를 터뜨리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것이 해방 70주년을 맞아 축하 이벤트에만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이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8-13

광복 70주년, 대한의 산상 노인을 찾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부침의 격변 속에서도 세계 10위권 경제국으로 발돋움한 사실만은 높이 평가해야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질긴 당쟁의 사슬에 얽매여 갈팡질팡하고 있는 현 정세(政勢)는 안타까움 바로 그 자체다.국회의원들의 속내가 자못 궁금해진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에서 300명인 국회의원 수를 369명으로 증원(안)을 내자 원내대표가 즉각 390명으로 화답하고 나섰는데 요지는 36명인 비례대표를 서너 배 늘리자는 발상이다. 국민들의 시선이 차갑다. 국가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한심함과 대리운전 기사 폭행 등 사건과 막말의 중심에 항상 비례대표 의원들이 첨병처럼 포진해 왔기 때문이다.세월호대책위원회 예산안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금년 6개월 분 요구 예산 160억원이 동호회비 등 절사로 89억 원으로 삭감된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9·11테러조사위원회가 21개월 동안 165여억원을 쓴 것과 비교해 보면 진위의 파악이 어렵지 않다. 참척의 슬픔은 크다. 그러나 그만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어쨌든 그들이 독립군이나 천안함 전사자 등에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당시 유치원생 사상자 28명과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사상자 343명의 경우도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한다.산상 노인은`하산 사바흐`의 별호다. 그는 11세기 말 이란 엘부르즈산맥에 알무트 요새를 구축한 후 칭기즈칸의 손자 훌라구칸에게 함락될 때까지, 정예 암살단을 이끌며 배후에서 160여 년 동안 중동의 질서를 지배했다. 혼돈을 넘어 그만의 정의와 가치의 깃발을 드날린 것이다.신중년이라는 용어가 대두되고 있다. 60~75세의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그만큼 수명이 증가했다는 표증이리라. 그러나 이면에는 노인들의 생활고와 각종 범죄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나는 기대해 본다. 노인들 중 그 누구라도 한 사람, 대한의 산상 노인이 되어 탕평보다는 질서를, 방자보다는 염치의 힘찬 깃발을 세워 주기를./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8-12

인문학협동조합

며칠 전 인문학협동조합에서 정의(正義)에 대해 강의했다. 그때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예전에 회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어떤 상사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개인의 업적에는 좋을 수 있으나 조직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참으로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성과급제가 되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기도 하니,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 이런 개인의 행복추구가 다른 이의 행복을 방해하기도 한다. 나의 행복이 공동체 전체의 복지에 관련될 때 정의문제가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의 행복추구가 정의를 해치거나 정의로운 사회에서 개인은 불행해질 수도 있을까?협동조합은 아무래도 조합원뿐만 아니라 사회에 봉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협동조합의 정의에 의하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체를 통해 조합원들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 결사체를 말한다. 따라서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 민주적 관리, 자율과 독립, 협동조합 간의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의 원칙을 가진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고 지금까지 수많은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다. 그전부터 있던 소비자중심의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문화협동조합, 예술협동조합, 사회적 협동조합 등 협동조합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얼마 전에는 협동조합을 가장해 조합원의 돈을 가로챈 다단계업체가 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그럼에도 협동은 원래 서로의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정신은 자기의 개인의 이익을 공동의 이익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내가 생활하는 곳을 잘 살게 하면 나도 곧 잘사는 것이 아닐까? 나의 행복추구가 공동체의 행복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8-11

요정은 없을까요

영화 `극비수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범인을 잡고 공적을 올리고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아이를 찾고 구하기 위해 극비수사를 선택하고, 형사와 도사는 콤비를 이룬다.소위 도사라고 불리는 무속인 김중산은 사주풀이를 통해 유괴된 아이가 살아있음을 확신하고 또 `공길용 형사의 사주여야만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길용이 유괴 사건을 맡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공개수사를 종용할 때, 소신을 굽히지 않고 공길용의 뒤에서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다.빙의된 처녀 귀신이야기, `오 나의 귀신님`도 장안의 화제다. 역시 무속적인 소재에서 출발하는 환타지다. 주인공 나봉선은 평소에는 이성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다가 처녀 귀신과 함께라면 낯 뜨거운 돌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늘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봉선. 저렇게 소극적이고 유약하다면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고 나쁘게 만드는 죄가 될 것 같다. 무거운 고개를 푹 숙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걷던 아가씨가 씩씩하고 적극적으로 눈빛부터 달라지는 것을 보면 오히려 신이 난다. 아주 밝고 활기찬 요정이 여리고 착한 주인공의 사랑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드라마가 재미있어졌다. 스마트폰 하나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손바닥 안에서 확인하는 세상에 이 무슨 역설인가? 종교적으로도 전혀 용납 안 되는 이야길 수도 있겠다.하지만 요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요정이 없다면 마음이 무너질 듯 답답하고 쓸쓸하던 산책길 숲 속의 위로는 누가 들려준 것일까? 꽃잎이나 바람 속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목소리와 손길은 또 누구의 것일까?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아이를 자라게 하던 주인공들은 다 누구일까? 오늘 같은 날 여기저기 얼음 요정들이 둥둥 떠다녔으면 좋겠다. 덥고 짜증나는 마음이 시원해졌으면 참 좋겠다. 만만찮은 납량특집이겠다./윤은현(수필가)

2015-08-10

웰다잉

웰빙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웰다잉(Well-Dying) 논의가 한창이다. 웰다잉 교육이 정부 차원에서 실시된다. 죽음을 이해하고 존엄을 유지하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미리 준비시켜주는 체계적인 죽음 준비 교육 프로그램을 정부산하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아름답고 존엄한 나의 삶`을 주제로 6주짜리 죽음준비교육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바꾸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 또한 중요하다. 동물과 다르게 인간만이 죽음을 선취하여 존엄한 최후를 선택할 수가 있다. 그래서 삶을 채우는 열정 못지않게 죽음을 준비하는 열정 또한 아름답다.연일 폭염이 대지를 달구고 있다. 결실을 위한 자연의 마지막 열정이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의 죽음을 아름답게 할 인생의 컨텐츠는 무엇인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열정은 무엇인가?열정이라는 말의 영어 `enthusiasm` 은 보통은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 `속에 있던 것을 밖으로 화끈하게 내보는 것`을 뜻한다. 즉 `out` 을 가리킨다. 그러나 영어 `enthusiasm` 은 `en`이란 말과 `thusiasm` 이란 말의 합성어이다. en은 `in` 이란 뜻이고 `thusiasm`은 `theos`에서 나왔다. 즉 열정은 `신(神) 안에 있는 것`이다. 신적 영감 속에서 신명나게 사는 것 못지않게 신적 위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인생을 행복한 열정으로 채우는 것이리라.죽음을 너무나 아름답게 맞이한 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난다. 내가 집을 방문했을 때 말기암으로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을 하루 앞둔 고통 가운데서도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와 나의 가족들의 건강을 염려해 주었다. 주머니에 고이 간직한 몇 장의 지폐를 꺼내어 주면서 나의 어린 자녀들에게 과자를 사 주라고 했다. 임종 몇 개월 전의 어느 새벽에는 예배당에 혼자 남아 천국에 대한 소망을 담은 긴 노래를 끝절 까지 부르기도 하였다. 환한 오전 햇살이 비치는 날 그녀는 영원한 세상으로 떠나갔다./곽규진(목사)

2015-08-07

4일 오전에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육군 장병 7~8명이 통상적인 수색작전을 벌이던 중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육군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어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다리에 파편이 박히거나 일부가 절단되었단다.바로 하루전인 3일에는 인천의 한 의무경찰이 훈련도중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3박4일간 진행되는 하계야영훈련 중이었는데, 훈련의 일환으로 축구 경기를 했단다. 그날 인천지방의 기온은 30.3℃였단다.이번에는 작전과 훈련 중에 사고가 터졌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 크고 작은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군부대 내의 사고는 더 애잔하고 비통하다. 우리가 굳이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이 땅의 건강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에 그렇다. 또 하나 그 비통함이 큰 이유는 국가와 민족 앞에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다않고 수행하던 중이었다는 점이다.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여 요리조리 군복무를 기피한 자들에 비하면, 이들은 분명 애국자이다. 그러나 애국자라는 이름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병역 기피자들이 일간지에 잠시잠깐 오르내리고는 곧 사라져 평온한 일상을 되찾는 것에 비하면 이들의 희생은 `의무`라는 이름에 묻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이 또한 우리를 슬프고 안타깝게 한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부분) 이 동시 한편이 단순히 반어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평화와 애국을 위한 인간의 행동이 반(反)자연적인 욕망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애족자 없이 꽃과 연인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영원히 잡히지 않는 무지개인가./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8-06

우울한 계절 그리고 그 사람들

열대야 찜통더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그 폭염경보 속, 건설 현장과 논밭에서 열사병 사망자가 벌써 5명이나 발생했다. 와중에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 발표가 나왔다. 중부권 등에서는 제법 많은 비가 쏟아졌으나 대구에는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장마가 끝났단 말인가. 푹푹 찌는 폭염의 낮과 밤이 더없이 우울해진다.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교사 5명이 지난 2년여 동안, 여학생 20여 명에게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을 일삼다가 적발되었다. 교사들 중에는 `성고민 상담교사`는 물론 교장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심지어 여교사도 피해 학생들 중에 끼어 있었다.서울 올림픽 때 이야기다. 탁구 결승전에서 우리 선수끼리 맞닥뜨렸다. 선배는 차분한 표정이었으나 후배는 달랐다. 괴성을 질러대며 마치 외국 선수와 경기라도 하는 듯한 양태를 보였다. 결국 승리를 쟁취한 후배가 시뻘게진 얼굴로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이 된 사람이다. 그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의 대선 후보 경선에 불복하며 탈당을 했고 당적 변경만도 열세 차례나 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21C 대한민국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힘든 시절이다. 그럼에도 딴 나라 사람들처럼 행세하는 곳이 있다. 30개의 공기업들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그들은 작년 총부채가 430조원에 이르는데도 지난 3년간 연평균 직원은 1천400만원, 기관장은 8천500만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나눠가졌다고 한다.우르릉, 쾅쾅! 실로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다. 하늘이 검게 변하는가 했더니 금세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햇살 사이로 약해진 빗줄기는 땅바닥만 적시고 이내 사라졌다. 그래, 장맛비가 아니어도 좋다. 국회의원 숫자가 200명으로 대폭 줄었다는 희망 섞인 희소식처럼, 잠시라도 찜통더위를 거둬가고 말끔히 산하를 씻어 내는 거센 장대비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간절해진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8-05

가로등 만들기

무척 무더운 날이다. 폭염경보, 폭염특보, 폭염주의보라는 문구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참 덥네`라며 넘길 수 있는 것도 경보, 주의보라는 말에 더 움추러드는 기분이다. 더위를 피한다고 몸부림치다가 아이들과 계곡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역시 더위는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미 계곡은 더위에 지친 많은 분들이 모여 계셨다. 부대끼다 보면 없던 일도 생기나보다. 폭염은 갈등과 충돌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윤리를 배우는 이유는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혼자살 수 없는 동물이고 공동체는 이미 우리 인간 삶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공동체라는 말에 갈등과 충돌은 필연적이기에 윤리 또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것이 왜 나만 배려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어느 예능프로에서도 자주 외치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문구에 쉽게 동의하는 나를 볼 수 있다. 윤리를 지키면 손해일 뿐이며, 최소한 법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나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가로등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있다. 만약 우리 집 골목이 어두워 가로등을 건설하고 싶다면 첫째 방법은 내가 돈을 내고 내 이웃들이 돈을 내고 해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내가 돈을 내고 남들은 돈을 내지 않으며, 세 번째 방법은 내가 내지 않고 남들 모두가 돈을 내며, 네 번째는 나도 내지 않고 남들도 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몇 번째 방법을 선택하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세 번째 방법을 가장 선호할지도 모른다. 나는 돈을 내지 않지만 가로등은 만들어지니 말이다. 이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남들도 나와 같은 정도로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남들도 모두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면 결국 최종적으로 네 번째 방법이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첫째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고 함께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공동운명체인 것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8-04

무섬마을을 지나며

한 걸음 빨랐나 보다. 정선을 출발할 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빗속을 헤쳐 나와야 했다. 긴 터널을 지나자 길바닥이 보송하니 소나기구름이 미처 소백산 자락을 넘지 못하나 보다 짐작했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를 반쯤 건널 때 내달려온 굵은 빗줄기를 만났다. 너무 무심했던 것일까. 영주는 여러 번 다녀갔지만 무섬마을은 처음이다. 낙동강 지류가 산에 막혀 떠 있는 섬, 수도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고택들의 오래된 지붕이 가지런한 마을, 외나무다리가 350년 시간을 간직한 채 휘돌아나가는 물 위에 떠있다.책보 메고 건너던 아이가 새신랑이 되어 장가를 가면서도, 세상 떠나는 날은 상여를 타고도 건넜다는 다리.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받쳐놓은 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어쩌면 더 쉽게 사랑하게도 될 것 같다. 마주 오다 뒷걸음질 치는 아이를 가볍게 안으며 비켜 건넜다. 오늘 같은 날이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강바닥으로 샌들 신은 발을 사뿐히 내려서서 비켜줄 수도 있겠다.점심은 미리 검색해둔 `무섬 골동반`을 먹었다. 향토음식 사업장으로 지원되고 있었다. 댓돌 아래 가지런히 정돈된 검정 고무신 두 켤레가 마치 장난감 같다. 멋 부리지 않은 툇마루가 소박하고 정갈하다. 그 위로 소나기에 젖은 발을 덥석 올리지 못하는 길손에게 잘 마른 수건을 내밀 때 벌써 음식 맛을 예상했던 것 같다. 다른 자리로 음식을 나르면서도, 먹고 있는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높은 문지방을 넘어 마루를 돌아서 가는 배려가 느껴진다. 옆자리 손님이 먹고 간 자리도 소리하나 없이 어느새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비오는 마당을 잠시 내려다보았다.마을 어귀에 정자가 있다. 비를 긋는 것도 좋지만 몇 시간 째 혼자서 운전하는 동행이 잠시라도 눈을 붙여주었으면 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다. 외나무다리에서 노는 손자들을 기다리는 노부부가 쉬는 한편에서 오목을 두었다. 차창 가득 소나기에 후드득 떨어져 누운 회화나무 꽃잎을 쓸어내고 출발했다. 두고 온 마음 한 자락은, 십리를 돌아나가는 푸른 강물 위에서 반짝이며 흐를 것이다./윤은현(수필가)

2015-08-03

더불어 사는 삶

최근 한적한 한 시골 마을로 전원주택을 짓고 이사하였다. 건축 완공 후 인터넷 설치를 하였는데 설치비용문제로 어려운 일을 만나 설치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광케이블 인터넷을 무사히 설치하였다. 이제 이곳 산촌 마을에서도 블로그를 운영하며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망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현재 모든 영역에서 급속히 네트워킹 되어 가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 까지만 해도 개인의 탁월함이 사회생활의 성공 요소로 꼽혔지만 지금은 대인관계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5.5명만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과 연결된다고 한다. 그만큼 세상이 좁아진 것이다.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함께 살아야 한다. 굳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인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인간관계지수를 높이기 위해 특별히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항상 우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네가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다는 생각을 하고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고 너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그리고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공동체가 함께 가기 위하여 또 모두의 성공을 위해서는 특권층이 그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나 옥스퍼드대에 가면 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먼저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바친 동문들의 사진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 학교의 자랑이요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특권층은 많은 것을 누리기만 한 것 같으나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먼저 달려가 목숨을 던져서 책임을 다하였다.최근 귀농 귀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정착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지자체들의 지원과 본인들의 노력도 중요하고 이웃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문화적인 차이와 그로 인한 삶의 불편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나는 타인과 사귐으로 존재할 뿐이다`는 실존주의 문구가 귀농 귀촌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빛나는 고백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곽규진(목사)

2015-07-31

집밥

마이카 시대가 자리를 잡아가던 1990년 중반 무렵, 여성운전자들도 늘어났다. 이때 여성운전자들의 서툰 운전을 “집에서 밥이나 하지, 여자가 운전은 무슨~”이라며 비아냥거린 적이 있었다. 이 말에는 밥은 여자가 한다는 고정관념과 함께 밥은 집에서 먹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또 여자만 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점심으로, 저녁은 `편의점식`김밥으로 때운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또 동네 골목까지 파고든 식당은 외식을 일상식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외식의 번창이 `집밥`을 불러냈다. 새로운 어휘가 생기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새 물질이 생겼거나, 아니면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후이다. `집밥의 결핍`으로 `집밥`이 대세다. 텔레비전에서는 요리 레시피가 스토리텔링화 과정을 거쳐 버라이어티 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먹방`과 `cook방`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결핍 이외에 또 다른 것들이 덧붙어 방송을 흥행시키고 있다. 즉 재미와 가벼움, 그리고 찰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다. 요즘 `먹방 cook방`은 가벼운 우리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선된 재료의 소개와 조리방법을 순서대로 친절하게 설명하던 옛날 그 요리프로그램은 너무나 진지하다. 사람들은 이런 프로그램은 외면한다. 어떤 설명도 이제는 재미와 이야기거리를 가미해야 듣는 세상이 됐다. 세상이 이처럼 재미를 찾고 한편으로는 가벼워졌다. 그런데 그 가벼움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진득한 그 무엇보다는 순간적인 반짝임을 찾고 있다. 요즘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순간적으로 캡처(cap ture)한다. 그리고 잠시뒤 곧바로 삭제한다. 순발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여기에 창의적인 생각이 들어가면 대박이다.`집밥` 프로그램은 진지함을 싫어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동시에 창의적인 사고와 재미있게 일을 처리하는 새로운 문화를 반영한다. 그 존재의 가벼움은 스마트시대 우리들 삶의 방식이다. 고민하는 이성보다는 즐기는 감성, 진득함보다는 빠름의 생활 태도가 그것이다. 이제 이 스마트한 삶에 예리함을 추가할 때이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30

네 개의 기둥, 삶을 관류하다

칠월이 가고 있다. 을미(乙未) 새해의 시작이 바로 어제 같은데 진즉에 반환점을 돌아서더니 바로 코앞이 팔월이다. 숨 가쁘다. 삶의 속도는 진정 나이에 비례하는가.“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프랑스 시인 오스탕스 블루의 `사막`이라는 시를 웅얼거리며 나를 돌아본다.해마다 연말이면 각 기관 또는 단체마다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데 초점을 두기도 하고 다음해를 기약하는 염원을 담기도 한다. 나도 2008년부터 나름대로 혼자만의 사자성어를 정하여 실천해 오고 있는 중이다.2008년은 건곤일척(乾坤一擲)으로 정했다. 그럴듯한 문학상이라도 한번 타 보자는 의도에서였다. 2009년도에는 다시 도전한다는 의미의 권토중래(捲土重來)로, 2010년도에는 초연함을 의미하는 목계양도(木鷄養到)로, 2011년도에는 술 마시는 양을 알맞게 줄이고 늘 떳떳한 마음을 지닌다는 절음(節飮)과 항심(恒心)으로 이어졌다.2012년도의 화두는 `二十年, 그 새로운 始原`이다. 정년을 마무리하고 줄잡아 20년쯤을 제2의 인생으로 보고 그 기틀을 닦는 해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도에는 `하나를 덜어내고 다시 하나를 채워 넣는다`로, 2014년도에는 `아내에게 언성 높이지 않기`로, 2015년도에는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불진에로 정했다.극히 간략했지만 더없이 강렬했던 세기의 연설을 떠올려 본다. 2차 대전 직후 윈스턴 처칠의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다. 그는 중간중간 특유의 침묵을 베이스 삼아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라는 세 문장으로 연설을 마쳤다.다시 오스탕스 블루의 `사막`이다. 과연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비워 내고 무엇을 채워 넣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내에게 언성 높이지 않기도, 불진에도 아직은 꿈결처럼 아득하고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도 어떤가. 의도만은 순수하고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 포기하지 말자.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