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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민들레처럼 별처럼

권정생 어린이 문학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를 선생 1주기에 맞추어 다녀온 기억이 있다. 당신을 추모하는 어떤 일도 말리셨다지만, 고무신 한 켤레 놓여있던 댓돌에 영정 사진 놓고, 소박하게 모인 사람들이 국화꽃 한 송이씩을 바쳤다. 그저 선생을 기억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은 여느 추모식장과는 분위기를 달리했다. 먼 길 마다않고 찾아온 독자들, 혹은 아이들, 아니면 동네 할머니들이 슬리퍼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마당가에 앉았다간 눈물을 닦으며 코를 길게 소리 내어 풀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몰랐다고 했다. “고무신 신고 추리닝 입고 망태기를 들고 다니면서, 이웃들을 잘 도와줘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아했지만,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장례식 때 몰려온 사람들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선생은 평생 교회종지기로 사셨지만, 이 땅 위의 우상과 마귀는 마을 앞 서낭당이나 성주단지 혹은 고시레와 까치밥, 차례상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전쟁 혹은 핵무기와 독재와 폭력과 자기밖에 모르는 욕망이며 독선이라고 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느냐`는 나무푯말이 그가 치던 종탑 아래에 아직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우리가 고루고루 잘 살려면 많이 벌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적게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다. 내 것을 나눠준다는 자선이란 말을 정당화하면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다고도 했다. 그저 남 탓이나 하고,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퇴락해가는 탑이 있는 작은 마을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중심이 되는 것을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남기신 뜻대로 고인의 유골이 뿌려진 빌뱅이 언덕을 돌아내려왔다. 바람이 눈비를 몰고 지나갔을 테지만, 한때는 선생의 몸을 이루었던 하얀 가루가 꽃씨처럼 강아지 똥처럼 힘없고 작은 모습 그대로 발밑에 남아 있었다. 또 다시 민들레꽃을 피우고 별빛이 되어 흐르고 있을 것이다./윤은현(수필가)

2015-06-01

섬김과 나눔

그녀는 홀몸노인들에게 10년째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고 있다. 이 마을 유일한 고등학생인 그녀의 아들은 준비해 놓은 식재료와 야채들을 다듬고, 씻고, 칼로 자르고, 빻는 일을 돕는다. 그리고 잔심부름도 하고 완성된 반찬을 통에 담아서 배달한다. 집에서는 잘 해보지 않는 일이라서 학생에게 그리 쉽지는 않다. 한 가지의 반찬이 만들어지기까지는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가정마다 배달할 때 이 학생은 참 보람되고 뿌듯하다. 할머니들은 반갑게 맞이해 주며 손을 꼭 잡고 열심히 공부하라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챙겨놓은 과자도 주고, 빨간 앵두를 따서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주기도 한다.겨울이면 연탄불을 피우는 분들이 있어서 연탄불을 갈아주기도 하는데, 덤으로 해 드리는 그 만의 서비스이다. 말로만 듣던 연탄불 갈기. 뚜껑을 열면 연탄가스가 마구 올라온다. 손으로 입을 가린 뒤 아궁이에 있는 연탄을 꺼내고 새 탄을 넣는다. 가스냄새를 맡아야 하고 뜨거운 불을 가까이 하는 일이 매우 힘든다.한 분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다. 걷지도 못하는 그 할머니가 교회에 가고 싶어 하신다. 그녀의 유일한 외출 기회다. 미안해서 누군가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워 한다. 학생이 반찬을 나누면서 주위 어른들과 협력하여 휠체어를 밀어드리기 시작했다. 귀가시간이 되면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서 차로 이동한 후 집에 도착하여 다시 휠체어에 태우고 집안까지 모셔 드린다. 할머니는 그에게 “학생 고생시켜서 미안해”라는 말로 고마움의 인사를 하신다. 휠체어 봉사를 통해 장애인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가까이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할머니들은 반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립다. 이 학생은 반찬을 드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빈 반찬통에 할머니의 사랑을 가득 담아 돌아온다. 작은 나눔은 큰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효(Hyo)는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조화이다(Hamony of Young Old).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효도가 세대간 섬김과 나눔으로 실천 확산되기를 바란다./곽규진(목사)

2015-05-29

지식의 설사

한 문학 강연회에서 월북 아동문학가 윤복진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청중이 질문을 했다. 윤복진은 월북했는데, 그 사상을 검토하지도 않고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곤란하지 않느냐고. 그래서 일제 강점기 남한에서의 문단 활동과 월북이전의 작품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았냐고 답을 했다. 그래도 그는 월북동기를 따져야 하고, 월북이후 친북 성향의 활동까지 포함시켜 판단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언쟁이랄 것도 못되지만, 그 사람과 불쾌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설사를 떠올렸다. 이른바 설사는 내 몸 안에 들어온 음식이 소화를 못할 때 생기는 `배탈`이다. 아랫배가 살살 도는 게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괴롭다. 이 청중은 지금 `지식의 설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식의 설사는 머리에 들어온 정보를 충분히 곰삭히지 못한 채, 과시욕을 부리며 들어온 말을 자기방식대로 내뱉는 `뇌탈`이다. 그는 자기의 문학적 소견이 넓은 것을 과시하듯이 몇몇 유명시인의 시를 줄줄 외워가며, 누구는 어떻고 또 누구는 친일을 했으니 반역이라고 했다.설사는 장 속에서 흡수가 안 되는 물질에 의해서 발생되기도 하지만, 염증 등 장 질환에 의한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지식의 설사도 두뇌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어려운 용어들이 들어와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주장 등 이데올로기적인 증상인 경우도 있다. 설사에 대한 처방은 약물로도 가능하지만, 끼니를 굶고 따뜻한 보리차 등으로 장을 달래주면 된다. 지식의 설사도 마찬가지다. 현학적인 용어를 받아들이지 말고,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나 개념 등을 차분히 곰삭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서 뇌를 달래주면 된다.소화가 덜 된 음식의 설사는 구린내를 풍기기는 하지만 본인 혼자만 괴롭다. 그러나 지식의 설사는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정작 본인은 즐겁다. 최근 각종 문화강좌가 확대되면서 강사도 청중도 뇌탈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 오늘 내 강연이 지식의 설사는 아니었는지, 그 청중을 보며 돌이켜본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5-28

도인(道人)들의 나라

아침 산행길이다. 삼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여인은 고개를 살짝 숙여 목례를 보낸다. 촉촉한 머릿결이 흡사 오월의 산자락처럼 풋풋하고 싱그럽다. 여인은 내리면서 다시 고개를 숙여 목례를 보낸다. 목례가 이처럼 고상하고 우아하게 느껴진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오월의 밝은 햇살아래 서너 발 앞서 걸어가는, 스커트에 감춰진 여인의 커다란 엉덩이가 더없이 건강해 보인다.산길은 각양의 사람들이 마주하는 공간이다. 때로 정감이 가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중 산에 비견되는 풍도(風度)를 갖춘, 80대 초반 신사 할아버지와 명랑 할머니를 만났다. 인사말을 건넬 때마다 할아버지는 절도 있는 거수경례로, 검은빛 선글라스를 낀 할머니는 두 옥타브쯤 높은 톤으로 답례를 한다. 산새들이 후드득 날아가고 “안·녕·하·세·요!….” 한껏 높아진 할머니의 고성은 작은 파편 조각으로 흩어져 산자락 바위 절벽에 콕콕 들어박힌다.편부 슬하 스물여섯 살 청년이다. 대학생인 그는 학비 충당을 위해 방학 때마다 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와 저녁을 함께 했다. 3일 휴가를 받아서 행복하다는 그는 명절 때마다 친가와 외가 할머니에게 용돈과 선물을 잊지 않는다. 고된 일을 하다 보니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발심이 든다며, 이십 대의 나이를 부모에게 기댈 나이가 아닌 부모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될 나이라고 했다.경제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힘든 시절이다. 비정규직과 파트타임을 전전하는 갓 서른의 여성으로 다시 백수가 된지 한 달여 가까이 된다. 그럼에도 그는 오륙 년째 매달 삼사만 원을 불우 이웃 돕기에 희사해 오고 있다.일상이 도(道)라는 말이 있다. 중국 명(明)시대 왕간(王艮)의 “백성일용즉도(百姓日用卽道)”라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 도란 산속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침에 잠을 깨어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일상 속에 도가 있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 국회(國會)스러운 사람들을 제외해 보면 ― 대한민국은 알게 모르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도인(道人)들이 모여 사는 나라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5-27

성년의 날 선물

몇 일전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는 데 꽃을 파는 분들이 많이 보였다. 어버이날도 지나고 스승의 날도 지났는데 왜 꽃이지 하며 잠시 궁금했었다. 나중에 동료가 이야기해 준 사실이지만 성년의 날이란다.우리나라는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기념한다. 그런데 올해는 그 성년의 날이 5·18 민주화운동기념일과 겹치게 되었다. 1980년, 그때의 광주에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스러졌지만 그 중에는 성년이 막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우리가 기념일을 정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5·18, 그날의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또 하나는 새로운 동료가 된 성인의 미래를 축복하기 위해. 누군가의 현재 모습을 알고 싶다면 우리가 물어볼 것은 그의 과거이다. 과거를 보면 지금의 그를 알 수 있다.왜냐하면 나의 지금 모습은 과거에 내가 했던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미래의 자기 모습을 궁금해 한다. 그러나 굳이 점을 볼 필요까지 없다. 지금 내가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무엇을 가장 많이 노력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는 현재의 내가 모인 결과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현재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우리가 5·18을 얼마나 기억하고 보존하며 계승했는가에 달려 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지 본다면 미래의 세상도 알 수 있다. 만약 민주화 운동이 단지 정부나 정치권의 연례행사에 지나지 않는다면 올해 성년이 된 미래의 주인공들이 누릴 세상도 민주화된 세상과 거리가 멀 것이다.성년의 날 선물은 장미와 향수, 키스라고 한다. 장미는 젊음의 열정과 사랑을 계속하길 바라며, 향수는 타인에게 좋은 의미를 주는 사람이 되고, 키스는 책임감 있는 사랑을 바란다는 의미란다. 사랑, 책임, 매너가 있길 기원하는 것도 좋지만 민주화된 사회를 물려주는 것도 좋은 선물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며 사랑일 것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5-26

막말

막말논란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개그맨 장동민이 그렇고, 한 정치인이 그렇다. 그 개그맨은 과거에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쌍욕, 여성비하, 삼풍백화점 피해자 모욕 등이었다며 비난을 받고 있다. 또 국회의원 정청래는 공식회의 자리에서 상대 의원을 향해 `공갈치는` 등의 막말을 하였단다. 그런데 이 두 경우는 그 정도에 차이가 있다. 전자가 사고 피해자인 약자를 겨냥한 발언이었다면, 후자는 회의과정에서 예의를 갖추지 못한 발언이라는 점이다. 또 그 발화의 의도도 다르다. 개그맨의 막말이 웃기려는 의도였다면, 정치인의 막말은 실천 없이 말로만 하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 의도가 강해 보인다.그러나 다르면서도 같은 점이 있다. 개그맨은 안일하게 `재미`만을 생각했단다. 그런데 정치인은 그 의도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러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서 생각해 보면 `작정`하고 한 말 같다. 이것은 다른듯하지만, 막말을 통해 지지자(혹은 팬)를 모으는 인기몰이의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약자를 조롱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개그가 될 수 없으며, 독설에 가까운 막말로 정의를 세우려는 것은 비판이 될 수 없다. 어쨌든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치욕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언어폭력이다.그런데 막말을 `솔직한 발언`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독설`과 `직언`을 혼동하여 동일시한 나머지 그것이 마치 정의를 말하는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타자이해를 바탕으로 문제적 상황을 지적하는 용기와 타자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처지(인기 혹은 이기)만을 생각하는 막말은 다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이런 막말이 `용기 있는 직언`으로 오인되어 그 행태가 사회전반으로 번지는 듯하다. 정치인, 연예인, 그리고 시민단체 회원들까지 그 층위도 다양하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막말을 일삼고, 그 말을 되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5-22

무지의 감옥

영국 빅토리아시대 여성작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은 사람에게 다섯 가지 감옥이 있다고 했다. 감정의 감옥, 근심의 감옥, 향수의 감옥, 비교의 감옥, 증오의 감옥이 그것이다. 이기적인 감정, 생의 염려, 지난날에 대한 집착, 타인에 대한 부러움, 누군가에 대한 증오는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무형의 감옥이다.이 창살 없는 감옥은 자신의 편견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리고 그 편견의 뿌리는 생에 대한 무지, 지혜의 결핍이다.매를 좋아하는 왕이 궁궐에서 애완용 매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새로 임명된 신하가 왕궁의 뜰을 거닐다가 매를 보았다. 한 번도 매를 본 적이 없는 그는 그것이 못생긴 비둘기인 줄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위를 가져다가 매의 발톱을 깎고 부리를 잘라 주었으며 깃털도 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그런대로 볼만하군. 왕궁의 사육사가 그동안 게으름을 피웠던 모양이야!”옛말에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한밤중에 길을 가는 것과 같다(人生不學,如冥冥夜行)`고 했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가끔 나이가 든 사람이 평생 교육의 일환으로 모종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학위가운을 입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찍는다. 즐겁고 흐뭇한 일이다.그러나 자칫 그가 받은 어떤 수료증이 배움에 대한 만족감과 안도감을 주고 심지어는 교만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제 다 배웠으니 더 이상 배울게 없다는 식으로 겸손함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지식은 추가했으나 지혜의 문은 오히려 닫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학자가 자신이 배운 것이 도리어 편견을 만들고 다시 스스로 무지의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배움과 익힘을 통해 인생의 무지를 밝힐 등불, 무지의 감옥을 환히 비추는 지혜의 빛을 찾자.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 乎).` 진리가 우리를 언제나 자유케 한다. 날마다 진리의 등불을 들자./곽규진(목사)

2015-05-21

알고 짓는 죄, 모르고 짓는 죄

나흘 후가 사월 초파일이다. 부처님은 2천559년째 이 땅에 자비와 광명,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대중들을 피안의 세계로 이끌어 왔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더욱 뜻깊은 을미년의 오월,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본다.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종교 단체가 있다. 2003년 이들은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1987년 대한항공 폭파 사건의 “김현희는 가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온갖 매체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6개월여 동안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그러나 2005년 국정원 과거진상규명위원회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에서 이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판명 났지만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 사죄한 적이 없다.일본이라는 나라는 더욱 가관이다. 역사 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현 정부 들어 그 정도를 넘어섰다.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 연구서다. 저자는 일본인의 모순적인 이중성을 부각시키면서 한 손에는 평화라는 국화를, 한 손에는 전쟁이라는 칼을 쥐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국화와 칼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논리와 노예근성이다.“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는 말이 있다. 불교 경전 해설서인 `Milinda王問經`에 나오는 말이다. 죄를 알고 행하는 사람은 망설임과 뉘우침의 여지가 있으나, 죄를 모르고 행하는 사람은 잘못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벌겋게 달아오른 쇠붙이를 예로 들었는데 일면 타당한 것 같으면서도 수긍할 수 없는 괴리가 숨어 있다.시절이 달라진 것일까.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세상 모두가 아는 잘못을, 저 혼자 아니라고 우겨대며 꾸역꾸역 죄를 더해가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원전 2세기 후반, 서북 인도에서 불교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은 `미린다왕`과 `나가세나 존자`는 분명 21세기의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몰랐음에 틀림없다./전병덕(수필가)

2015-05-20

직업에 대해

여름이 가까워졌다. 아이스크림이나 아이스커피를 찾는 나에게서 여름을 느낀다.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인터넷에 스승찾기가 요란하다. 그러나 이제 많은 선생님들은 이 날이 조용히 지나가길 기대한다. 한편에서는 스승찾기가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교사를 폭행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도 있기 때문이다.아마 많은 직업 중에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모두가 함께 기념하는 직업은 교사뿐일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직업을 갖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직업의 의의는 생계유지, 자아실현, 사회봉사로 이해된다. 여기에 한때 서양에서는 직업이 신이 부여한 것이라는 직업소명설이 있었다.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신의 소명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직업 활동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직업소명설은 서양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맞물려 자본주의를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했다.오늘날 직업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생계유지와 자아실현일 것이다. 돈이 우선일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졸업생 1천500명을 대상으로 직업 선택 동기에 따른 부의 축적을 추적조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SBS 다큐멘터리에서도 방영된 것인데, 돈을 보고 직업을 선택한 1천245명이 83%,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255명이 17%. 그러나 20년 후 101명이 백만장자가 됐는데 그 중에 100명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17%에서 나왔다는 내용이다. 이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이 남진 않았지만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지 않을까? 이 세상에 이유 없이 던져진 우리는 스스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직업을 통해 이를 실현해야 한다.오늘날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알기 어려운 세상이다. 진로교육, 직업교육은 많지만 진정한 자아실현으로서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휴대폰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이상형(철학박사)

2015-05-19

찾아주세요, 사례하겠습니다

바짓단을 물고서 살랑살랑 봄바람을 맞으러 나가자고 보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듯 그윽한 눈, 쳐다봐 달라고 찡찡거리는 연약함, 한 번 안으면 내려놓기 싫어지는 포근함, 딱딱한 것을 숨기고 있으면서도 보들보들한 발바닥은 꽃가루라도 밟고 온 것일까, 예쁜 발자국을 남긴다. 냉장고 밑에 오줌을 싸놓고 소파 밑을 자신의 비밀공간으로 만들어 놓아도 특별한 이의 없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땀을 뻘뻘 흘리며 젖을 먹고 난 후 아기는 곤히 잠든다. 성가시게 굴던 일을 금방 잊어버리고 깨워서 놀고 싶어진다. 뿅뿅 소리 나는 신발을 신고서 통통한 엉덩이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유치원 간다고 집을 나설 때 꽃잎처럼 팔랑거리며 흔드는 조그맣고 하얀 손, 온 놀이터의 모래를 다 실어 나를 듯 현관 바닥을 어지럽히던 번잡함도 잠시, 어느새 쑥쑥 키가 자라는 아이들, 세상 어떤 것이 이처럼 순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보신 분 연락바랍니다. 사례하겠습니다.` 며칠 전 나들이 다녀오는 길에서 본 현수막이다. 인상착의를 보여주는 사진 속 주인공은 강아지였다. 옆자리의 친구는 “개 꼬라지하고는….”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강아지가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안정은 반려견이라는 품위 격상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집과 먹이를 제공해주고 바라보는 만족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 등 그들의 가치를 재인식한 것이다. 당연히 찾아나서야 할 일인데, 왜 무던한 내 친구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일까.OECD 국가이면서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라는 오명은 어쩔 것이냐며 친구는 말머리를 돌린다. 그 책임이 오롯이 내게 있는 듯 친구는 목소리를 높이고 나는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버려지는 아이의 수는 늘어나고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한 여전히 만만찮다고 한다. 자신의 선택과는 전혀 무관하게 유기되고, 자신의 행복을 오로지 타인에게서 기대해야 하는 아이들, 허기진 세상 곳곳에 엄마를 심고 싶다는 책 속 한 구절이 생각난다. 무엇보다 부모가 제 손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한다. 가정의 달 5월, 지난 11일은 입양의 날이었다./윤은현(수필가)

2015-05-18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

B에서 시작하여 D로 끝나는 것. 어떤 실존철학자가 인생을 표현한 말이다. 탄생(Birth)을 의미하는 B와 죽음(Death)를 의미하는 D 사이에는 인생의 내용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다. 알파벳 B와 D 사이에는 C가 있다. 인생의 내용인 C를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어떤 사상가는 그의 주저에서 인간의 본질을 그리스 신화를 빗대어 기술한 적이 있다.쿠라(염려)가 강을 건널 때 점토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빚기 시작했다. 유피테르(쥬피터)가 혼을 불어넣어주자 그 후 서로 자기 이름을 붙이고자 다투게 되었다. 텔루스(대지)도 자기의 몸 일부가 제공되었으니 자신의 이름을 붙일 것을 요구했다. 이들이 모신 재판관 사투르누스(시간)는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유피테르는 혼을 주었으니 그가 죽을 때 혼을 받아가고, 텔루스는 육체를 제공했으니 육체를 받아가라. 하지만`염려`는 이 존재를 처음으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살아있는 동안 그대의 것으로 삼아라. 그러나 그것이 후무스(흙)로 만들어졌으니 `호모(인간)`라 불러라.” 이 신화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의 본질은 염려라 할 수 있다.어버이날 지인들로부터 생일 축하가 쇄도했다.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과분한 생일축하인사도 받았다. 어버이날이 생일이니 어머님에게 내가 최고의 선물이 되었겠다고 어떤 분이 말했다.생일날 저녁에는 문상을 갔다. 95세의 할머니는 정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피부가 좋고 총기가 좋았다고 70세 상주가 회고한다. 영정사진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망자의 인생을 빛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염려를 본질로 하는 인생에서도 행복감이 그녀의 인생을 빛나게 한다. 6남매를 모두 훌륭하게 키우시면서 인생을 밝게 살고, 고통을 참으며,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가족들을 향해 베풀었던 부단한 사랑이 행복의 원천이었다. 사랑은 모든 염려를 이기게 하는 힘이다. 인생을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다./곽규진(목사)

2015-05-15

그냥

얼마 전에 시집을 한 권 냈다. 출판사가 책값을 정했는데, 내가 들인 공과 창작에 걸린 시간 등은 전혀 고려치 않고 1만원으로 정했단다.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으니까 `그냥` 대체로 이정도 가격으로 한단다. 시집 한 권의 값이 너무 비싸면 독자가 외면할 것이고, 또 이보다 싸면 좀 그렇고…. 출판업자의 답변이다.그렇다. 책값이 수요공급의 원칙과 경제학적인 법칙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해지듯이 우리는 지금 객관성을 결여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현대인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정치도 사회문화적 현상도 그냥 보고 있다.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다.언제부터인가 TV에서 아기를 출연시킨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삼둥이, 쌍둥이`들이 인기를 얻고 난 이후에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는 연예인들이 자기 자식을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청자들은 그냥보고 있다. 그 아이들이 특별한 끼나 재주를 가진 것이 아닌데도, 그냥 누구의 아들딸이라는 사실만으로 출연을 하는데도 말이다.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치열하게 오디션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학에서 아니면 학원에서 그들의 끼를 찾아 보여주기 위해서 수 년 간에 걸쳐 땀을 흘린다. 그리고 눈물도 흘린다. 그런데도 유명 연예인의 아이들은 그냥 출연한다. 이들이 가지는 프리미엄은 가격으로 계산할 수 없다. `특실`의 자리에 무임승차하는 격이다. 그리고는 거기에 주어진 온갖 혜택을 누린다. 나는 그냥 걱정이다. 이들에게서 `갑 의식`이 싹 틀까봐.각종 부정과 비리 의혹에 휩싸인 정치인들이 그냥 버틴다. 민생관련 법안이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국회에 그냥 쌓여있단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뜻도 모를 매체언어를 남발하면서도 그냥 재미있단다. 이렇게 우리는 그냥 서 있다. 버스 정류장을 그냥 통과하는 시내버스도 그냥 두고 봐야 할 것인지 `그냥` 한번 생각해 봤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5-14

익은 감자

정의의 어원을 생각해 본다.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정의를 행복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의 추구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사건 사고에는 언제나 두각을 나타내는 단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노총은 팽목항을 찾아와 대통령에 분노하라는 유인물을 뿌렸고, 전교조는 희생된 학생들을 `김주열·박종철`에 비유하는 선동과 함께 대통령 퇴진 운동을 호언장담했다. 자칭 `엄마의 노란 손수건`과 `세월호 참사 시민 촛불 원탁회의`라는 단체에서는 대통령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정의를 부르짖었다.정의가 반드시 양심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과 일본 극우 세력들의 혐한 시위를 보며 떠올린 감정이다. 이스라엘의 남부 도시 스데로트 언덕에는 밤마다 주민들이 소파를 들고 와 불꽃놀이를 감상하듯, 팔레스타인의 비명을 듣는다고 한다. 일본에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수시로 확성기를 튼 차량을 타고 한국인 초등학교에 몰려가 “김치 냄새난다” “쳐 죽여라” 등의 폭언을 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한다.통합진보당 의원 이석기가 있다. 검찰은 그에게 내란음모 등의 혐의를 적용, 항소심에서도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그보다 하루 앞서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등이 서울고등법원에 이석기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유로 그들은 사회의 화해와 통합, 평화와 사랑을 실천할 기회, 누구의 어떤 죄라도 용서하는 것이 종교인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그들에게만 통하는 그들만의 정의다.어릴 때의 기억이다. 군불에 감자를 구워 먹은 적이 있는데 조급한 마음에 감자를 빨리 꺼내면 겉은 익고 속은 익지 않은 설익은 감자가 되고 만다. 설익은 감자는 비리고 아린데 행복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의 추구라는 세 가지 관점을 벗어난 정의는 바로 설익은 감자와 다름없다./전병덕(수필가)

2015-05-13

기억에 대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몸이 바쁜 것만큼이나 마음까지 덩달아 바쁜 날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날들을 기념하게 되었을까? 이렇게라도 정해놓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살면서 그만큼 많은 것을 잊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은 어쩌면 각자가 마음대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예전 미국에서 기억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14세 소년을 모아 인터뷰를 한 후 34년이 지나고 그때의 일을 기억하게 했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그들이 기억한 10대의 일과 그 당시 기록이 일치하지 않았다. 부모와 사이가 매우 좋았다고 기억한 이는 실제로 10대에는 부모와 갈등이 많았다고 기록했었다. 또한 10대에 외향적이었다고 기억한 이의 기록에는 자신을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다고 적었다. 왜 이럴까? 기억에 현재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은 통째로 저장되지 않고 조각으로 분류돼 저장되며 현재의 필요에 따라 짜 맞추어 끄집어낸다. 그렇다면 기억은 현재의 내가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그럼에도 계속해서 기억을 들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과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살았던 순간과 내가 경험한 것은 오로지 나의 기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점차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의 삶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내 삶의 흔적들은 나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이 세계에서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전 친구들을 만나면 끊임없이 기억을 회상하려 한다. 같은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과 그 순간을 기억함으로써 내가 살았음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어쩌면 우리는 지금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또는 어떤 이는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지나길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이 세상에 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이가 자신의 과거를 따뜻하게 기억할 수는 없을까?/이상형(철학박사)

2015-05-12

귀싸대기를 쳐라

극단 파피루스의 `귀싸대기를 쳐라`공연을 보았다. 사회의 부조리한 인간들, 권력을 이용하고 법망을 피해가며 비열하게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속 시원하게 귀싸대기를 때려주는 블랙 코미디이다. 기획을 맡은 곽 선생에게서, 배우들이 귀싸대기를 많이 맞는다며 무척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는 얘기는 미리 들었다. “저런 놈은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붙여야 하는데”라고 생각해 온 사람이 있다면 순간순간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특별히 맥줏집 장면에서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되어 배우의 귀싸대기를 힘껏 치게도 된다. 대학로에서 이 극이 공연되지 못하는 이유는 배우의 안전문제 때문인데 실제로 고막이 파열된 적도 있다고 하니 충분히 수긍이 간다. 마지막 공연을 마친 극단 파피루스팀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필자에게 큰 호사였다. 특히 일인다역으로 귀싸대기를 맞았던 멀티맨 역의 배우 김훈진씨의 이야기는, 웃고 있었지만 눈물겨웠다. 키 크고 잘 생긴 배우가 사정없이 귀싸대기를 맞았다. 연습 때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거의 100대를 맞았다고 한다. 더구나 어느 날 즉석에서 캐스팅된 관객은 차지게 한 대 후려갈기는 것으로 부족했던지 거의 평소 쌓인 울분을 토해내는 수준으로 연타를 날렸다니.나쁘고 얄미운 인간 군상을 찾아 속 시원히 귀싸대기를 치는 기발하고 통쾌한 주제도 좋고, 열악한 지방 연극무대를 꿋꿋이 지켜오는 문화 이야기도 충분히 거론할 만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 남짓, 배우 김훈진의 소회이다. 그는 지금껏 살면서 잘못한 모든 일에 대해 다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혹시 자기도 모르는 채 넘어왔던 모든 잘못에 대한 회개라니.어쩌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휘청할 것처럼 여리고 얼굴 하얀 청년이,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을까. 맡은 배역이야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모르고 저질렀던 크고 작은 잘못에 대한 반성, 혹은 맞아야 했지만 곱게 넘겨 용서해 주셨던 분들께의 찬란한 헌사라니. 그는 평생 맞을 것 이번 기회에 다 맞았으니, 앞으로 누구에게도 귀싸대기 맞을 일 하지 않고 아름답게 살 것이다. 그나저나 조심해야겠다. 언제 귀싸대기를 맞을지 모른다./윤은현(수필가)

2015-05-11

균형추

네팔 강진으로 1만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어서 대만 동해안의 지진 소식이 있었다. 지난 주 타이베이를 방문하여 초고층 빌딩 `타이베이101`에 올랐을 때 지진을 견디는 내진설계인 `댐퍼보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댐퍼보이는 타이베이101의 87층에 있는 대형 추로 지진이 발생해 건물이 흔들리면 반대쪽으로 기울어 건물의 진폭을 줄여주는 내진설계 장치다. 지름 5.5m, 무게는 660t, 제작비는 400만 달러(약 43억원)에 달한다. 2002년 3월 31일 대만 북부 지역에서 7.1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 인근 저층 건물들이 쓰러진 반면 타이베이101은 공사 중이었음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완공 후에도 수차례 큰 지진이 났지만 현재까지 피해를 본 적은 없다.지난 세월호 참사도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배 밑창의 바닥짐(ballst)인 평행수를 제거하고 선상에 짐을 과적한 것이 가장 큰 화근이었다. 균형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잡히고 그 지향점은 낮은 곳을 향한다. 본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빌딩의 안전을 보장해 준 내진설계처럼 우리의 인생을 지탱해줄 균형추는 무엇인가? 만약 인생의 내진장치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더구나 인생의 큰 집을 지으면서 균형추가 없다면 고난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인생이라는 긴 항로를 항해하는 배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배 밑에 있는 바닥짐 때문이다. 그것은 힘들고 거추장스럽더라도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진리이다.우리의 삶을 보다 견고하게 할 뿌리는 있는가? 신앙이든 학문이든 예술이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균형 잡을 수 있는 본질적인 영역,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가 일상 속에서 균형추로 혹은 바닥짐으로 존재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중심 추의 부재는 인생과 사회에 위기를 초래한다.백화점이 무너지고 대교가 끊어지는 것은 본질을 잊고 외부만 치장하는 어리석음이 빚어낸 과오였다. 자유로운 진리, 정직한 소망과 겸손한 사랑이 절실한 요즘이다./곽규진(수필가)

2015-05-08

쓸데없는 소리

해마다 5월이면 떠들썩하고 바쁘다. 메이데이(May Day)부터 시작해서 무슨 날이 참 많은 달이다. 4일이 월요일이니까 그날 하루만 휴가를 내면 1일부터 5일까지 이른바 징검다리 연휴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학교도 한몫 거들었다. 대부분의 초중학교가 어버이날인 8일 전후까지 약 10일 내외의 `단기방학`을 하였다. `연휴`보다는 가족의 의미를 새겨보라는 교육적 취지가 더 컸으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정부도 이 시기에 맞춰 `봄 관광주간`(5월1~14일)을 정했다. 자녀를 집에 남겨두고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노동자의 무거운 발걸음을 보며 `복지`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또 `봄 관광주간`이 단기방학기간과 겹치는 것을 두고 `경제 특수`를 위한 꼼수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는 결정이겠지, 설마…. 오비이락(烏飛梨落)일거야.그런데 일부 학원에서 이 기간 동안에 단기 특강반을 만들어 호황을 누렸다는 소식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단기방학`이 `단기학원집중기간`으로 바뀐 셈이니, 그 많은 빨간 날 속에 정작 우리 아이가 쉴 시간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 단기방학이 매년 지속된다면 5월은 사랑 넘치는 가정의 달이 아닌 입시경쟁이 치열한 사교육의 달로 바뀌지 않을까. 이런 현실 앞에서 가정의 달, 단기방학 등은 모두 쓸데없는 소리에 불과하다.바쁜 5월이 더 바빠졌다. 어린이도 챙겨야 하고, 부모님도 찾아뵈어야 하고, 관광도 해야 하고, 게다가 이제 자녀들 시험 준비도 시켜야 한다. 시험 답안지에 “어제는 시골 할머니를 뵙고 오느라 공부를 다 못했습니다”라고 쓸 수 없기에, 시골에 있는 부모에게 “어머님, 애들 시험기간이라서….”라며 우물쭈물하는 전화 안부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학교 밖에서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단기방학,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른들께 인사할 수 있는 가정의 달, 일상을 벗어나는 힐링의 관광 주간이 `쓸데없는 소리`가 아닌 의미 있는 소리가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5-07

동리·목월 생가

경주 모량리에 복원된 목월(木月) 생가는 초가집 안채 사랑채 방앗간 장독대 등 목월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모습을 갖추기는 했으나 앞으로 손 볼 일이 적지 않다. 고창 선운사 인근의 미당 서정주 고향은 온통 국화천지다. `국화옆에서`를 모티브로 온 들판에 국화를 심었다. 선운사와 미당 생가와 기념관을 연계한 관광벨트가 형성된 것이다. 경남 통영의 청마 유치환문학관도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미항과 기념관이 어울어져 통영관광의 중심이 돼 있다. 춘천의 김유정문학관은 마을 전체가 기념관이다. `봄봄`에 나오는 장소들이 다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소설 속의 장소를 현장에서 돌아보는 즐거움을 누린다.이같은 문인들의 기념관·문학관에 비해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은 관광자원화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불국사 앞에 있는 동리목월문학관은 동리의 생가와는 8㎞가량 떨어져 있고, 목월의 생가와는 16㎞ 밖이니, 동리·목월의 체취를 느낄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국사에 있는 문학관은 문학강좌나 세미나, 문학강연장으로 사용하고, 동리 목월 생가를 중심으로 관광자원화 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동리의 생가는 경주 시내에 있고, 근처에 `무녀도`의 현장인 금장대와 애기청소가 있다. 독일 라인강변의 롤렐라이언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로렐라이언덕은 시인 음악가 화가들이 열심히 작품을 제작해 온 세계에 보급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지만 금장대와 애기청소는 `무녀도`이래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목월의 시에는 산도화, 박꽃, 느릅나무, 밀밭, 사슴, 목련, 청노루 등이 나온다. 그런데 목월 생가에는 이런 것들이 아직 없다. 박넝쿨 한 포기, 손바닥만한 밀밭 등이 있을 뿐 산도화 할 그루 없고, 오히려 외래종 꽃이 더 많이 심어져 있다. 목월 시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생가로 만들어야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낄 것이다. 지역의 우뚝한 문화예술인들을 선양하는 일이 지역발전의 요체임을 경주시와 경북도가 알고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5-06

안 해본 일

중간고사가 끝났다. 공부 아닌 것이면 무엇이든 다 즐거울 듯 지루했지만 시험은 결국 이렇게 끝이 예상된 일이었다. 조심스럽고 반짝이던 신입생들의 눈빛이 조금씩 흐트러지고 살짝 오만한 표정을 들키기도 한다. 이제 저들은 느긋하게 걸을 것이고, 이른바 자체휴강으로 한 번쯤 강의실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 삼삼오오 왁자하게 떠들면서 학관사이를 오가고 체육대회며 축제를 즐기다 순식간에 기말고사를 맞기도 한다. 그렇게 몇 번 학기를 반복하며 대학생활도 청춘의 한 때도 지나간다. 언제부터인가 재방송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폭죽을 터뜨리듯 피어나던 봄꽃에 놀라는가 싶었는데 세상은 어느새 연두 빛이 가득하다. 새 달력을 거는 일도, 그 첫 장을 넘기는 일도 새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 성큼 지나버린 시간에 놀라며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다시 한 번 마음을 정비하는 것도 잠시, 이 한 해도 금방 다가고 말리라 예감한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누군가는 가까이 혹은 멀리로 떠나간다. 그때마다 처음인 듯 가슴이 써늘하지만, 이 역시 가끔씩은 마주치게 되는 일이다.계절이 바뀌는 동안 감기도 된통 앓게 된다. 사정없이 콧물을 훌쩍이며, 체면을 구기는 일도 잊을 만하면 꼭 한 번씩 찾아온다. 뻔히 아는 것에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 분하긴 해도, 감기 역시 그렇게 나를 곯려 먹는 일에 익숙한 듯하다. 언감생심 도전과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어제와 같은 이 고요는 안녕이며 평화일지도 모른다.익숙한 일상 속에서 안 해 본 일은 피하고 싶거나, 미룰 대로 미룰 만큼 성가시고 두렵다. 그러나 반짝이는 저 한 때, 안 해본 일은 살아있음의 뜨거운 확인이며 내 세계를 바꾸는 중요한 기록이 되기도 했다.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은 놀랍고 두렵기도 하다. 게으른 시간과 얕은 정신이 독자들께 실망이나 폐를 끼칠까 걱정된다. 그 조심스러움에 기꺼이 마음을 맡기기로 한다. 두 달 전 신입생들을 만나며 혹여 소홀했던 일상을 반성한다. 중간고사를 끝낸 그들이 일찍 핀 보랏빛 꽃향기를 흩으며 지나간다./윤은현(수필가)

2015-05-04

할랄과 하람

코란 제5장 3절에는 “너희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있으니, 피와 돼지고기와 알라의 이름으로 잡은 고기가 아닌 것. 목 졸라 죽인 것과 때려서 잡은 것과 떨어져서 죽은 것과 싸워서 죽은 것과 다른 야생이 일부를 먹어버린 나머지와 우상에 제물로 바쳤던 것과 화살에 점성을 걸고 잡은 것이거늘, 이것들은 불결한 것이라” 했는데, 할랄과 하람은 여기서 유래됐다.마호메트의 `선언`을 근거로 세부적인 이슬람 법률이 제정되는데, 샤리아가 그 대표적이다.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시행령을 만들면서 `문제성 있는 음식`들도 구분하는데, 가령, 장어 같은 비늘 없는 생선은 금한다든가, 술은 돼지고기만큼 금지된 음료라든가, 빵을 만드는 이스트 또한 술을 만드는 효모라 해서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또 짐승을 도축하는 방법을 기록한 것이 `다비하`인데, 도축할 가축의 머리를 메카쪽으로 누인 후, 신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는 기도문을 외면서, 가장 짧은 시간에 단숨에 참수해서 동물이 느낄 고통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참수한 후에는 거꾸로 매달아 `부정한 피`가 빠져나가게 한 후에 비로소 조리할 수 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삼겹살을 엄청 좋아하는데, 이슬람이 보면, 신의 뜻을 거역한 `악행`이다. 중국이나 유럽 사람들도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잘 먹고, 인도인들은 소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데, “소는 전생의 어머니”라 믿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모친상을 당한 사람이 “전생에 우리의 경을 싣고 다니던 소가 죽었다”는 부고를 전하는 기록이 있다. 인도불교의 영향이다. 석가모니가 돼지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열반에 든 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불자들도 있지만 다들 별로 가리지 않는데 이슬람에서는 유별나게 돼지를 저주한다.세계 인구 40%가 무슬림이고, 할랄시장은 1천500조원 규모여서 한국 기업들이 군침을 삼킬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길에 MON을 체결해 할랄시장에 진출할 길을 열었다. `할랄 인정`을 받으려면, `무슬림의 다름`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