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남노당 봉기`는 미미했고, 6·25 발발 10일만인 7월 5일 일본에 있던 미 24보병사단 예하 `스미스 부대`가 참전했다.
김일성은 당황했고, 미군 참전 3일만인 7월 8일 그는 스탈린에게 친필서한을 보냈다. “소련군 군사고문단을 우선 25~35 명 정도 보내달라”는 내용.
당시 북한군에는 `공군`이 없었고 `현대전`을 치를 능력도 없었다. 그들은 이승만의 외교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즉시 미 행정부를 움직였고, 미국은 바로 UN 안보리를 소집했으며, 프란체스카 영부인은 조국 오스트리아에 전투기를 요청했고, 대구 경북의 학도병은 인민군을 낙동강·형산강에 묶어놓아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김효선(60) 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의 별명은 `이승만의 딸`이다. 그녀는 인터넷을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온통 이승만을 비난하는 글로 도배돼 있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언론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된 것만으로도 초대 대통령은 존경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그를 분단고착의 원흉이라며 욕하고 조롱하는 짓은 결코 정상이 아니라 생각하며 `이승만 연구`에 착수, 매달 포럼을 열고 있다.
지금 좌파들의 필독서는 `김일성 자서전`이다. 이 책을 그들은 바이블로 여기며 숭앙하지만, 이승만이 감옥에서 쓴 역사서 `독립정신`이란 책에는 관심도 없다. 교도소에 갇혀 있은 RO(혁명조직) 조직원에게 김의 자서전을 다른 소포로 위장해 반입하기도 했다.
남침 전범(戰犯)을 숭배하는 `이념전쟁`이 끝날 날은 언제인가.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