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최우등생의 공부비법`이란 연구결과가 있다. “교수의 강의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필기하고 암기해서 시험지에 옮겨놓는 것”이 그 비결이었다. 자기생각을 곁들이면 감점된다. 교수의 강의와 다른 답안을 적어넣는 것은 `반역`에 해당한다. 중 고등학교식 방법을 대학이 그대로 답습한다. 이른바 `정답주의`다.
엘런 랭어 하버드대 교수는 `정답의 역설`을 설명하면서 “정답이 정해지면 사람들은 그 이상을 찾으려 하지 않고 생각을 멈춘다” 했다.
왕조시대의 과거(科擧)는 `경서 외우기` 위주였으나, 최종시험은 책문(策問)이었다. 현안문제를 제시하고 “해결방안을 말해보라”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그 책문으로 장원급제자를 선발해 집현전에 배치했고 그 학사들이 문화융성시대를 열었다. 지금 우리는 세종시대의 찬란한 업적을 찬탄할 뿐 그 방법을 배우지 않고 오히려 뒷걸음질 친다. 우리가 GNP 2만불대까지는 고속 질주해왔지만 선진국 문턱에서 허덕이는 것도`정답의 역설`이란 함정에 빠진 교육이 한 원인이다.
`공부중독`이란 책이 나왔다. 정신과 의사와 사회학자의 공저이다. “명문대 입학·안정된 직장·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기 위한 정답 찾기 암기교육에 매몰돼 학생들의 생이 망가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자유학기제`가 내년부터 전면 실시된다. 대구 영남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영어 해설사` 수업을 하고 있다. 역사를 수집해서 영어로 번역하고 외국인들에게 문화재를 해설해주는 과제를 수행한다. 여기에는 `정답의 역설`이 없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