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파 모택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만 신봉해서 “공산주의만이 나라를 살린다”고 생각했고, 프랑스 유학파 등소평은 “누군가가 먼저 부자 돼야 그것이 확산돼 전체가 부자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수정주의자`로 찍혀 무참한 수난을 당했다. 모택동은 홍위병을 일으켜 등(鄧)의 가족을 풍비박산시켰고, 등의 장남은 척추장애인이 됐다. 그러나 모(毛)가 죽고 등이 정권을 잡으면서 중국은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나아가 오늘날 G2국가가 됐다.
북한의 김정은도 등소평 따라하기를 2010년부터 시도했다. 金도 스위스에서 유럽물을 먹어본 사람이다.
한국·일본·대만이 미국과의 교류로 과학 기술 진흥, 자본축적, 선진교육을 이루었고, 중국도 미국과의 핑퐁외교를 통해 `이념적 적대관계`를 청산함으로써 국부 축적이 가능했다는 것을 金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누군가 먼저 부자가 되면….”이라는 鄧의 노선을 따라가는데, 지금 북한에는 `부자`가 자꾸 생겨난다. 무역이나 밀수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버는 계층이 두껍게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부자가 `감시·숙청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외화벌이 일꾼`이다.
그러나 金은 鄧처럼 성공하지 못할 우려가 높다. 김에게는 책사(策士)가 없기때문이다. 책사란 쓴소리 하는 사람인데, 공포정치는 `정권의 안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충고해주는 사람을 사라지게 만든다. “30대 초반의 초보가 혼자 멋대로 나라를 운전하면…”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적으로는 공포정치, 외교적으로는 미인계`라는 정책도 근래 들어 삐걱거린다.
모란봉악단이 `최고존엄 찬양과 로켓 발사 자막`을 고집하다가 철수한 것이 `철 없는 짓`의 한 사례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미녀응원단을 보내 “남조선 남자들의 혼을 쏙 빼놓겠다”는 미인계도 `비용과 옹고집` 때문에 실패했었다.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핵무기에 막혀서 `국제 문제아`로 외톨이가 된데다가, 목숨 걸고 충고해주는 양신(良臣)은 없고 `닥치고 광신도`만 있으니, 이것이 북한의 한계다.
/서동훈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