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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방 70주년의 비애

올해 8월15일은 해방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는 물론 민간단체서도 자축행사를 풍성하게 준비하고 있다. `해방 70주년 기념사업 준비 위원회`까지 만들어놓고 또 외교적으로는 일본 수상인 아베 신조의 정치적 메시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휴전선 철책을 수색하던 우리 장병 두 명이 지뢰를 밟아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북한군의 소행이란다. 70년 전 해방이 가져온 분단의 비극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은 독립을 위해서 목숨도 마다않고 내놓았다. 이 한복판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다. 실질적인 독립운동을 지휘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어갈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었을 때 정작 임정은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때 임정요인들은 왜 미군정에 대해 제2의 독립투쟁을 하지 않았을까. 조선총독부에는 온몸으로 저항을 했던 그들이 미군정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너그러웠을까? 또 궁금하다. 전범국인 일본은 천황도, 국토도 그대로 두고 피식민지국가로써 피해당사자인 우리나라는 왜 국왕도 없애고, 국토마저 분단시켰는지. 열강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말은 `남의 탓`에 불과하다. 무장 항일투쟁도 불사했던 임정으로서는 더 강력한 저항을 하여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찾았어야 했다. 당대 지도자들은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그러지 못 했다.해방직후의 이런 정국을 이원수는 그의 동시`돌다리`에서 “비는 개었지만 물이 불어서,/ 건너가는 이마다 옷 적시는 시냇물”에 비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압제자는 갔으나 감시자가 더 많아진 조국의, 자리 잡혀지지 않은 질서 위에 이욕(利慾)에 눈이 시뻘개진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노예근성을 가진 벼락 장군처럼 사방에서 큰 소리를 치고, 또 권세와 재물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나의 문학 나의 청춘`중)라고.그날의 이욕 때문인지 무능 때문인지 몰라도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오늘날 휴전선에서 지뢰가 터지고, 대북확성기가 울분의 소리를 터뜨리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것이 해방 70주년을 맞아 축하 이벤트에만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이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8-13

광복 70주년, 대한의 산상 노인을 찾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부침의 격변 속에서도 세계 10위권 경제국으로 발돋움한 사실만은 높이 평가해야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질긴 당쟁의 사슬에 얽매여 갈팡질팡하고 있는 현 정세(政勢)는 안타까움 바로 그 자체다.국회의원들의 속내가 자못 궁금해진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에서 300명인 국회의원 수를 369명으로 증원(안)을 내자 원내대표가 즉각 390명으로 화답하고 나섰는데 요지는 36명인 비례대표를 서너 배 늘리자는 발상이다. 국민들의 시선이 차갑다. 국가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한심함과 대리운전 기사 폭행 등 사건과 막말의 중심에 항상 비례대표 의원들이 첨병처럼 포진해 왔기 때문이다.세월호대책위원회 예산안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금년 6개월 분 요구 예산 160억원이 동호회비 등 절사로 89억 원으로 삭감된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9·11테러조사위원회가 21개월 동안 165여억원을 쓴 것과 비교해 보면 진위의 파악이 어렵지 않다. 참척의 슬픔은 크다. 그러나 그만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어쨌든 그들이 독립군이나 천안함 전사자 등에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당시 유치원생 사상자 28명과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사상자 343명의 경우도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한다.산상 노인은`하산 사바흐`의 별호다. 그는 11세기 말 이란 엘부르즈산맥에 알무트 요새를 구축한 후 칭기즈칸의 손자 훌라구칸에게 함락될 때까지, 정예 암살단을 이끌며 배후에서 160여 년 동안 중동의 질서를 지배했다. 혼돈을 넘어 그만의 정의와 가치의 깃발을 드날린 것이다.신중년이라는 용어가 대두되고 있다. 60~75세의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그만큼 수명이 증가했다는 표증이리라. 그러나 이면에는 노인들의 생활고와 각종 범죄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나는 기대해 본다. 노인들 중 그 누구라도 한 사람, 대한의 산상 노인이 되어 탕평보다는 질서를, 방자보다는 염치의 힘찬 깃발을 세워 주기를./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8-12

인문학협동조합

며칠 전 인문학협동조합에서 정의(正義)에 대해 강의했다. 그때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예전에 회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어떤 상사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개인의 업적에는 좋을 수 있으나 조직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참으로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성과급제가 되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기도 하니,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 이런 개인의 행복추구가 다른 이의 행복을 방해하기도 한다. 나의 행복이 공동체 전체의 복지에 관련될 때 정의문제가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의 행복추구가 정의를 해치거나 정의로운 사회에서 개인은 불행해질 수도 있을까?협동조합은 아무래도 조합원뿐만 아니라 사회에 봉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협동조합의 정의에 의하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체를 통해 조합원들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 결사체를 말한다. 따라서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 민주적 관리, 자율과 독립, 협동조합 간의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의 원칙을 가진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고 지금까지 수많은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다. 그전부터 있던 소비자중심의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문화협동조합, 예술협동조합, 사회적 협동조합 등 협동조합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얼마 전에는 협동조합을 가장해 조합원의 돈을 가로챈 다단계업체가 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그럼에도 협동은 원래 서로의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정신은 자기의 개인의 이익을 공동의 이익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내가 생활하는 곳을 잘 살게 하면 나도 곧 잘사는 것이 아닐까? 나의 행복추구가 공동체의 행복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8-11

요정은 없을까요

영화 `극비수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범인을 잡고 공적을 올리고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아이를 찾고 구하기 위해 극비수사를 선택하고, 형사와 도사는 콤비를 이룬다.소위 도사라고 불리는 무속인 김중산은 사주풀이를 통해 유괴된 아이가 살아있음을 확신하고 또 `공길용 형사의 사주여야만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길용이 유괴 사건을 맡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공개수사를 종용할 때, 소신을 굽히지 않고 공길용의 뒤에서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다.빙의된 처녀 귀신이야기, `오 나의 귀신님`도 장안의 화제다. 역시 무속적인 소재에서 출발하는 환타지다. 주인공 나봉선은 평소에는 이성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다가 처녀 귀신과 함께라면 낯 뜨거운 돌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늘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봉선. 저렇게 소극적이고 유약하다면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고 나쁘게 만드는 죄가 될 것 같다. 무거운 고개를 푹 숙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걷던 아가씨가 씩씩하고 적극적으로 눈빛부터 달라지는 것을 보면 오히려 신이 난다. 아주 밝고 활기찬 요정이 여리고 착한 주인공의 사랑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드라마가 재미있어졌다. 스마트폰 하나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손바닥 안에서 확인하는 세상에 이 무슨 역설인가? 종교적으로도 전혀 용납 안 되는 이야길 수도 있겠다.하지만 요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요정이 없다면 마음이 무너질 듯 답답하고 쓸쓸하던 산책길 숲 속의 위로는 누가 들려준 것일까? 꽃잎이나 바람 속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목소리와 손길은 또 누구의 것일까?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아이를 자라게 하던 주인공들은 다 누구일까? 오늘 같은 날 여기저기 얼음 요정들이 둥둥 떠다녔으면 좋겠다. 덥고 짜증나는 마음이 시원해졌으면 참 좋겠다. 만만찮은 납량특집이겠다./윤은현(수필가)

2015-08-10

웰다잉

웰빙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웰다잉(Well-Dying) 논의가 한창이다. 웰다잉 교육이 정부 차원에서 실시된다. 죽음을 이해하고 존엄을 유지하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미리 준비시켜주는 체계적인 죽음 준비 교육 프로그램을 정부산하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아름답고 존엄한 나의 삶`을 주제로 6주짜리 죽음준비교육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바꾸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 또한 중요하다. 동물과 다르게 인간만이 죽음을 선취하여 존엄한 최후를 선택할 수가 있다. 그래서 삶을 채우는 열정 못지않게 죽음을 준비하는 열정 또한 아름답다.연일 폭염이 대지를 달구고 있다. 결실을 위한 자연의 마지막 열정이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의 죽음을 아름답게 할 인생의 컨텐츠는 무엇인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열정은 무엇인가?열정이라는 말의 영어 `enthusiasm` 은 보통은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 `속에 있던 것을 밖으로 화끈하게 내보는 것`을 뜻한다. 즉 `out` 을 가리킨다. 그러나 영어 `enthusiasm` 은 `en`이란 말과 `thusiasm` 이란 말의 합성어이다. en은 `in` 이란 뜻이고 `thusiasm`은 `theos`에서 나왔다. 즉 열정은 `신(神) 안에 있는 것`이다. 신적 영감 속에서 신명나게 사는 것 못지않게 신적 위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인생을 행복한 열정으로 채우는 것이리라.죽음을 너무나 아름답게 맞이한 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난다. 내가 집을 방문했을 때 말기암으로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을 하루 앞둔 고통 가운데서도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와 나의 가족들의 건강을 염려해 주었다. 주머니에 고이 간직한 몇 장의 지폐를 꺼내어 주면서 나의 어린 자녀들에게 과자를 사 주라고 했다. 임종 몇 개월 전의 어느 새벽에는 예배당에 혼자 남아 천국에 대한 소망을 담은 긴 노래를 끝절 까지 부르기도 하였다. 환한 오전 햇살이 비치는 날 그녀는 영원한 세상으로 떠나갔다./곽규진(목사)

2015-08-07

4일 오전에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육군 장병 7~8명이 통상적인 수색작전을 벌이던 중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육군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어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다리에 파편이 박히거나 일부가 절단되었단다.바로 하루전인 3일에는 인천의 한 의무경찰이 훈련도중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3박4일간 진행되는 하계야영훈련 중이었는데, 훈련의 일환으로 축구 경기를 했단다. 그날 인천지방의 기온은 30.3℃였단다.이번에는 작전과 훈련 중에 사고가 터졌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 크고 작은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군부대 내의 사고는 더 애잔하고 비통하다. 우리가 굳이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이 땅의 건강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에 그렇다. 또 하나 그 비통함이 큰 이유는 국가와 민족 앞에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다않고 수행하던 중이었다는 점이다.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여 요리조리 군복무를 기피한 자들에 비하면, 이들은 분명 애국자이다. 그러나 애국자라는 이름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병역 기피자들이 일간지에 잠시잠깐 오르내리고는 곧 사라져 평온한 일상을 되찾는 것에 비하면 이들의 희생은 `의무`라는 이름에 묻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이 또한 우리를 슬프고 안타깝게 한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부분) 이 동시 한편이 단순히 반어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평화와 애국을 위한 인간의 행동이 반(反)자연적인 욕망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애족자 없이 꽃과 연인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영원히 잡히지 않는 무지개인가./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8-06

우울한 계절 그리고 그 사람들

열대야 찜통더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그 폭염경보 속, 건설 현장과 논밭에서 열사병 사망자가 벌써 5명이나 발생했다. 와중에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 발표가 나왔다. 중부권 등에서는 제법 많은 비가 쏟아졌으나 대구에는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장마가 끝났단 말인가. 푹푹 찌는 폭염의 낮과 밤이 더없이 우울해진다.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교사 5명이 지난 2년여 동안, 여학생 20여 명에게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을 일삼다가 적발되었다. 교사들 중에는 `성고민 상담교사`는 물론 교장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심지어 여교사도 피해 학생들 중에 끼어 있었다.서울 올림픽 때 이야기다. 탁구 결승전에서 우리 선수끼리 맞닥뜨렸다. 선배는 차분한 표정이었으나 후배는 달랐다. 괴성을 질러대며 마치 외국 선수와 경기라도 하는 듯한 양태를 보였다. 결국 승리를 쟁취한 후배가 시뻘게진 얼굴로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이 된 사람이다. 그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의 대선 후보 경선에 불복하며 탈당을 했고 당적 변경만도 열세 차례나 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21C 대한민국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힘든 시절이다. 그럼에도 딴 나라 사람들처럼 행세하는 곳이 있다. 30개의 공기업들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그들은 작년 총부채가 430조원에 이르는데도 지난 3년간 연평균 직원은 1천400만원, 기관장은 8천500만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나눠가졌다고 한다.우르릉, 쾅쾅! 실로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다. 하늘이 검게 변하는가 했더니 금세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햇살 사이로 약해진 빗줄기는 땅바닥만 적시고 이내 사라졌다. 그래, 장맛비가 아니어도 좋다. 국회의원 숫자가 200명으로 대폭 줄었다는 희망 섞인 희소식처럼, 잠시라도 찜통더위를 거둬가고 말끔히 산하를 씻어 내는 거센 장대비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간절해진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8-05

가로등 만들기

무척 무더운 날이다. 폭염경보, 폭염특보, 폭염주의보라는 문구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참 덥네`라며 넘길 수 있는 것도 경보, 주의보라는 말에 더 움추러드는 기분이다. 더위를 피한다고 몸부림치다가 아이들과 계곡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역시 더위는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미 계곡은 더위에 지친 많은 분들이 모여 계셨다. 부대끼다 보면 없던 일도 생기나보다. 폭염은 갈등과 충돌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윤리를 배우는 이유는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혼자살 수 없는 동물이고 공동체는 이미 우리 인간 삶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공동체라는 말에 갈등과 충돌은 필연적이기에 윤리 또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것이 왜 나만 배려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어느 예능프로에서도 자주 외치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문구에 쉽게 동의하는 나를 볼 수 있다. 윤리를 지키면 손해일 뿐이며, 최소한 법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나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가로등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있다. 만약 우리 집 골목이 어두워 가로등을 건설하고 싶다면 첫째 방법은 내가 돈을 내고 내 이웃들이 돈을 내고 해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내가 돈을 내고 남들은 돈을 내지 않으며, 세 번째 방법은 내가 내지 않고 남들 모두가 돈을 내며, 네 번째는 나도 내지 않고 남들도 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몇 번째 방법을 선택하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세 번째 방법을 가장 선호할지도 모른다. 나는 돈을 내지 않지만 가로등은 만들어지니 말이다. 이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남들도 나와 같은 정도로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남들도 모두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면 결국 최종적으로 네 번째 방법이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첫째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고 함께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공동운명체인 것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8-04

무섬마을을 지나며

한 걸음 빨랐나 보다. 정선을 출발할 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빗속을 헤쳐 나와야 했다. 긴 터널을 지나자 길바닥이 보송하니 소나기구름이 미처 소백산 자락을 넘지 못하나 보다 짐작했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를 반쯤 건널 때 내달려온 굵은 빗줄기를 만났다. 너무 무심했던 것일까. 영주는 여러 번 다녀갔지만 무섬마을은 처음이다. 낙동강 지류가 산에 막혀 떠 있는 섬, 수도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고택들의 오래된 지붕이 가지런한 마을, 외나무다리가 350년 시간을 간직한 채 휘돌아나가는 물 위에 떠있다.책보 메고 건너던 아이가 새신랑이 되어 장가를 가면서도, 세상 떠나는 날은 상여를 타고도 건넜다는 다리.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받쳐놓은 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어쩌면 더 쉽게 사랑하게도 될 것 같다. 마주 오다 뒷걸음질 치는 아이를 가볍게 안으며 비켜 건넜다. 오늘 같은 날이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강바닥으로 샌들 신은 발을 사뿐히 내려서서 비켜줄 수도 있겠다.점심은 미리 검색해둔 `무섬 골동반`을 먹었다. 향토음식 사업장으로 지원되고 있었다. 댓돌 아래 가지런히 정돈된 검정 고무신 두 켤레가 마치 장난감 같다. 멋 부리지 않은 툇마루가 소박하고 정갈하다. 그 위로 소나기에 젖은 발을 덥석 올리지 못하는 길손에게 잘 마른 수건을 내밀 때 벌써 음식 맛을 예상했던 것 같다. 다른 자리로 음식을 나르면서도, 먹고 있는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높은 문지방을 넘어 마루를 돌아서 가는 배려가 느껴진다. 옆자리 손님이 먹고 간 자리도 소리하나 없이 어느새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비오는 마당을 잠시 내려다보았다.마을 어귀에 정자가 있다. 비를 긋는 것도 좋지만 몇 시간 째 혼자서 운전하는 동행이 잠시라도 눈을 붙여주었으면 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다. 외나무다리에서 노는 손자들을 기다리는 노부부가 쉬는 한편에서 오목을 두었다. 차창 가득 소나기에 후드득 떨어져 누운 회화나무 꽃잎을 쓸어내고 출발했다. 두고 온 마음 한 자락은, 십리를 돌아나가는 푸른 강물 위에서 반짝이며 흐를 것이다./윤은현(수필가)

2015-08-03

더불어 사는 삶

최근 한적한 한 시골 마을로 전원주택을 짓고 이사하였다. 건축 완공 후 인터넷 설치를 하였는데 설치비용문제로 어려운 일을 만나 설치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광케이블 인터넷을 무사히 설치하였다. 이제 이곳 산촌 마을에서도 블로그를 운영하며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망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현재 모든 영역에서 급속히 네트워킹 되어 가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 까지만 해도 개인의 탁월함이 사회생활의 성공 요소로 꼽혔지만 지금은 대인관계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5.5명만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과 연결된다고 한다. 그만큼 세상이 좁아진 것이다.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함께 살아야 한다. 굳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인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인간관계지수를 높이기 위해 특별히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항상 우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네가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다는 생각을 하고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고 너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그리고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공동체가 함께 가기 위하여 또 모두의 성공을 위해서는 특권층이 그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나 옥스퍼드대에 가면 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먼저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바친 동문들의 사진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 학교의 자랑이요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특권층은 많은 것을 누리기만 한 것 같으나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먼저 달려가 목숨을 던져서 책임을 다하였다.최근 귀농 귀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정착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지자체들의 지원과 본인들의 노력도 중요하고 이웃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문화적인 차이와 그로 인한 삶의 불편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나는 타인과 사귐으로 존재할 뿐이다`는 실존주의 문구가 귀농 귀촌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빛나는 고백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곽규진(목사)

2015-07-31

집밥

마이카 시대가 자리를 잡아가던 1990년 중반 무렵, 여성운전자들도 늘어났다. 이때 여성운전자들의 서툰 운전을 “집에서 밥이나 하지, 여자가 운전은 무슨~”이라며 비아냥거린 적이 있었다. 이 말에는 밥은 여자가 한다는 고정관념과 함께 밥은 집에서 먹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또 여자만 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점심으로, 저녁은 `편의점식`김밥으로 때운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또 동네 골목까지 파고든 식당은 외식을 일상식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외식의 번창이 `집밥`을 불러냈다. 새로운 어휘가 생기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새 물질이 생겼거나, 아니면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후이다. `집밥의 결핍`으로 `집밥`이 대세다. 텔레비전에서는 요리 레시피가 스토리텔링화 과정을 거쳐 버라이어티 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먹방`과 `cook방`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결핍 이외에 또 다른 것들이 덧붙어 방송을 흥행시키고 있다. 즉 재미와 가벼움, 그리고 찰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다. 요즘 `먹방 cook방`은 가벼운 우리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선된 재료의 소개와 조리방법을 순서대로 친절하게 설명하던 옛날 그 요리프로그램은 너무나 진지하다. 사람들은 이런 프로그램은 외면한다. 어떤 설명도 이제는 재미와 이야기거리를 가미해야 듣는 세상이 됐다. 세상이 이처럼 재미를 찾고 한편으로는 가벼워졌다. 그런데 그 가벼움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진득한 그 무엇보다는 순간적인 반짝임을 찾고 있다. 요즘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순간적으로 캡처(cap ture)한다. 그리고 잠시뒤 곧바로 삭제한다. 순발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여기에 창의적인 생각이 들어가면 대박이다.`집밥` 프로그램은 진지함을 싫어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동시에 창의적인 사고와 재미있게 일을 처리하는 새로운 문화를 반영한다. 그 존재의 가벼움은 스마트시대 우리들 삶의 방식이다. 고민하는 이성보다는 즐기는 감성, 진득함보다는 빠름의 생활 태도가 그것이다. 이제 이 스마트한 삶에 예리함을 추가할 때이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30

네 개의 기둥, 삶을 관류하다

칠월이 가고 있다. 을미(乙未) 새해의 시작이 바로 어제 같은데 진즉에 반환점을 돌아서더니 바로 코앞이 팔월이다. 숨 가쁘다. 삶의 속도는 진정 나이에 비례하는가.“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프랑스 시인 오스탕스 블루의 `사막`이라는 시를 웅얼거리며 나를 돌아본다.해마다 연말이면 각 기관 또는 단체마다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데 초점을 두기도 하고 다음해를 기약하는 염원을 담기도 한다. 나도 2008년부터 나름대로 혼자만의 사자성어를 정하여 실천해 오고 있는 중이다.2008년은 건곤일척(乾坤一擲)으로 정했다. 그럴듯한 문학상이라도 한번 타 보자는 의도에서였다. 2009년도에는 다시 도전한다는 의미의 권토중래(捲土重來)로, 2010년도에는 초연함을 의미하는 목계양도(木鷄養到)로, 2011년도에는 술 마시는 양을 알맞게 줄이고 늘 떳떳한 마음을 지닌다는 절음(節飮)과 항심(恒心)으로 이어졌다.2012년도의 화두는 `二十年, 그 새로운 始原`이다. 정년을 마무리하고 줄잡아 20년쯤을 제2의 인생으로 보고 그 기틀을 닦는 해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도에는 `하나를 덜어내고 다시 하나를 채워 넣는다`로, 2014년도에는 `아내에게 언성 높이지 않기`로, 2015년도에는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불진에로 정했다.극히 간략했지만 더없이 강렬했던 세기의 연설을 떠올려 본다. 2차 대전 직후 윈스턴 처칠의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다. 그는 중간중간 특유의 침묵을 베이스 삼아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라는 세 문장으로 연설을 마쳤다.다시 오스탕스 블루의 `사막`이다. 과연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비워 내고 무엇을 채워 넣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내에게 언성 높이지 않기도, 불진에도 아직은 꿈결처럼 아득하고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도 어떤가. 의도만은 순수하고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 포기하지 말자.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29

불쾌지수

오늘도 불쾌지수가 80이 넘는다고 한다. 이번 주 며칠 동안 계속 일기예보에서 불쾌지수가 나오고 있다. 80이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불쾌지수는 기상청에서 매년 6~9월 일 8회 생산하여 제공되는데 날씨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기온과 습도를 조합하여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덥고 습한 날이 많은 요즘 어쩌면 짜증내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특히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 더위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그런데도 자주 부대끼다 보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나의 감정을 폭발해 나의 기분을 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이렇게 한 뒤에 생각나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이다.짜증내는 그 순간 내 감정은 풀릴 수 있겠지만 그 짜증을 묵묵히 받고 있는 상대방을 보면 후회가 바로 든다. 특히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 내 맘대로 짜증을 낼 때도 그렇다. 비록 내 잘못이 아니라도 그 짜증을 받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은 어떨까?그럼에도 참 쉽지 않은 것은 사람의 감정이다. 상대방 기분을 해칠 것을 알지만 자신의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좀더 쉽게 나의 감정을 풀려고 할 수 있다.그 사람의 역사와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 사람도 누군가의 아빠, 엄마이며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란 것을.어느 곳에서는 불쾌지수가 80 이상일 경우에는 업무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한단다. 요즘은 효율성의 잣대를 아무데나 갖다 대지만 일의 능률을 위해 불쾌지수를 고려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직 우리네 많은 곳에서는 이런 호강도 누리기 쉽지 않다.그렇다면 내 맘을 고쳐먹는 수밖에.불쾌지수는 모를 때보다 알 때 사람들은 더 짜증을 낸다고 한다. 땀 흘리는 것도 모르는 정도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할 때 열심히 하고 잠시의 휴식을 누리는 수밖에.묵묵히 모든 것을 견디며 서 있는 큰 나무를 보며 부끄러워진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7-28

S씨의 여름 저녁

정신보건센터의 S씨는 모처럼 안정된 표정을 보였다. 작년 가을부터 한참씩 안 보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병원에 있었노라 했다. 얼굴이 부어있거나 체중이 갑자기 늘기도 하고, 대답도 잘 하지 않아 대화가 힘들었다. 우울증으로 정신보건센터의 관리를 받고 있다. 립스틱 색깔이 짙은 50대 중반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몇 해 전이다. 식당에서 며칠 일해서 돈을 벌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조증이 염려되긴 했지만, 즐겁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것은 다행이었다. 우울한 기간이 길어지고 입퇴원을 반복하더니, 일 년여 사이 눈에 띄게 쇠락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랬던 그가 오늘은 단정한 매무새에 모처럼 화장도 한 얼굴이다. 먼저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대답을 해주는 것이 참 고마울 정도다. 여름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멍석 깔고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었어요. 큰 오빠가 녹음기 갖다 놓고 아버지부터 쭈욱 차례대로 노래 부르게 해서 녹음하고 다시 들었어요.”특별히 우울했던 운동회 날의 기억도 꺼낸다. 모두들 맛있는 도시락을 펴놓고 가족들과 함께 먹는데, 한 가지 반찬뿐인 시커먼 도시락을 혼자 먹는 일이 창피해서 울었다고. 늦게 들어온 엄마는 운동회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셨다고.현재까지 연구된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원인의 세 가지가 있다. 스트레스만으로 주요 우울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증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노출되었던 기억을 오래 가지고 있거나, 우울한 기분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덮는 것은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쓸쓸했던 운동회 날의 어린 S씨를 충분히 이해하고 토닥여주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혹은 수많은 그런 날의 기분을 혼자서 억누르지 않고 표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길게 남는다. 오래전 여름 저녁, 식구들이 녹음기 앞에서 불렀던 노래 제목까지 이야기하는 S씨는 오늘 참 편안한 얼굴이었다./윤은현(수필가)

2015-07-27

초점

사진을 찍다보면 흐릿하게 나올 때가 있다. 초점이 안 맞아서 생긴 경우다. 초점을 맞추기는 좋은 사진을 얻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초점을 맞추는 일은 삶에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한 생애에는 두가지 위대한 날이 있다. 태어날 날과 왜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는 날이다. 삶의 목적을 바로 아는 것은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초점 맞추기이다. 인생에서 초점은 사명감이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또 다른 나`이고 행복의 근원이다.최근 갤럽은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행복한 나라`순위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는 118위인 하위권에 머물렀다.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계층에서 과거보다 불행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전체가 총체적인 우울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크게 떨어졌는가? 많은 사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이 세대에 대표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불확실성의 증가로 꼽고 있다. 자신들의 삶과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보니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우리 사회에 깊은 불행감을 심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엄청난 사건들을 경험했다.매번 `기상관측 이후 최대`라는 수식어를 갈아치우는 이상 기후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를 집단적 충격으로 몰고 간 세월호 사건, 최근에 메르스 사건 등 갖가지 위기의 연속이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설파했던 `위험사회`에 살게 된 것이다.현대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든든한 안전장치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장치를 마련해도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 일생을 몰두할 수 있는 사명감을 찾는 일, 그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근원적 비결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불행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삶의 초점 맞추기로 사명감과 행복의 선순환의 구조로 살기를 희망한다./곽규진(목사)

2015-07-24

옥고를 기다리며

어쩌다보니 몇 해 전부터 아동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았다. 그래서 기고 혹은 투고된 원고교정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때 많은 오탈자가 있는 원고를 읽으면 그 작가의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한다. `뭔 글을 이렇게 써서 보내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전화라도 한 번 걸어볼까`하는 마음을 먹는다. 혹시 첨부 파일을 잘못 보낸 건 아닌지 싶어서. 대개의 경우 초고 파일과 최종본 파일을 잘 관리하지만, 몇 번 수정과정을 거치다보면 이 파일이 헷갈릴 때가 있다. 물론 이것도 작가의 잘못이긴 하지만. 학위를 금방 받았을 때 모 대학교에 근무하던 선배가 `00논총`에 글을 하나 실어주겠다면서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 기쁜 마음에 앞뒤가릴 것 없이 급하게 메일로 원고를 보냈다. 그런데 한 참 뒤에 그 선배가 내게 원고 출력본을 내밀며 “김 선생 원고는 이번에 뺐는데….”라는 것이다. 말끝을 흐리면서 다시 이어가는 선배의 말은 “교정을 좀 보지 그랬어.” 했다.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하면서 선배가 내미는 출력본 원고를 받았다. 아뿔싸, 파일을 잘못 보냈음을 그제사 알았다. 초고파일이었다. 학위를 받은 직후 비록 유명학술지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나오는 논총에 내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은 글이 실린다는 생각에 흥분했던 모양이다.순간 내 불찰을 탓하기 보다는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그냥 뺄 것이 아니라 전화라도 한 번 하시지.` 문제는 이후이다. 당시 그 논총을 책임지고 편집했던 선배의 동료 교수는 내가 글을 지독히도 못 쓰는 인물로 낙인찍지나 않았을까하는 걱정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지금도.가끔 선배와 함께 그 교수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하는 사이지만, 여태 나는 내 실수를 변명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데 굳이 내가 그때 그 원고는 초고라서 교정이 안된 상태로 보낸 것이라며 변명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차후 내가 쓴 몇 편의 논문을 그 교수에게 전해주었지만, 처음 각인된 나의 글쓰기 능력은 `개판`이라는 생각을 가질게 뻔하다는 생각에 아직도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든다.오늘, 가을호 원고청탁을 마쳤다. 작가들의 잘 교정된 옥고를 기다린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23

미안하고 감사한 이유

몇 년 전 내가 다녀온 북경은 소위 `럭셔리`한 도시가 아니었다. 한국인 관광객은 소매치기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특히 대한민국 여권이 거금으로 거래되니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한국어를 하는 잡상인을 볼 수 있었고, 구걸을 거절당한 여인은 아이를 들이밀어 매달리게 했다. 윗옷을 훌렁훌렁 벗은 남자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돌아다니는데 그야말로 천연 가죽점퍼라 할 만 했다. 어른들은 낡은 점퍼, 아이들은 새 점퍼.왕후징 거리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꼬지냄새가 심했다.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것들을 찾아먹는 노숙자도 있었다. 그 날이 중국 여행의 첫날 저녁이었는데 중국에서의 대부분 식사시간마다 그 분위기를 떨칠 수가 없었다.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미국계 대형마트만 가도 지름이 7~80센티는 될 것 같은 피자가 흔하다. 수도처럼 생긴 꼭지를 돌리면 무진장 제공되는 양파며 피클, 무한정 리필 되는 콜라에 공중 화장실마다 손 닦는 종이 타월까지 넘쳐난다. 이렇게 함부로 사용하고 막 버리는 것은, 굶고 있는 제 3세계 어린이들을 생각해서도 환경을 생각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중국만 보아도 너무한 일이었다.한국식 노래방, 한국식 다방 커피 등 한국어 간판이 눈에 띄기도 하는 백두산 아래 숙소 상황도 불편했다. TV에서는 우리나라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만 왜 그리 먼 곳의 이야기로 들리던지. 음식도 여전했다. 웬만하면 잘 먹는 작은 아이도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식당 바로 앞 복도에서는 한국산 노란색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담아 한 잔에 우리 돈 천 원에 팔고 있었다.어젯밤 도로 휴게소에서 샀던 중국 과일을, 커피 값으로 지불되었을 천 원과 함께 얌전히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나왔다. 내가 가방 챙기는 동안 객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팔다리가 가느다란 호텔 종업원과는 우리말로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처음 먹는 아침, 아이들이 불만을 표시하려 했지만 나는 당당히 말했다.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먹어!” 그 생각을 하면 오래오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 것 같다./윤은현(수필가)

2015-07-22

극기(克己)가 평천하(平天下)다

대연(大衍)학당에서 주역(周易) 강의를 듣는 중이다.“최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인 지금 인성 또한 거칠고 모질어졌습니다. 선천(先天)에서 후천(後天)으로 바뀌는 21C의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녕 극기(克己)입니다.” 강사의 말이 석화(石火)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두려움마저 일어난다. 요즘 도로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끼어들기 보복 운전을 보며 솟구치는 감정이다. 고속도로에서 급정거로 추돌 사고를 유발하여 사상자를 내는가 하면, 17톤 대형 트럭으로 승용차를 가로막아 작정하고 사망 사고를 촉발하더니, 급기야 사람을 보닛에 매단 채 질주하는 운전자까지 나타났다.최소한의 도리와 상식마저 내팽개쳤다. 지난해 서울에서 담배를 피우는 10대 학생들에게 충고하다가 50대 가장이 맞아 죽은데 이어, 얼마 전에는 전주에서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60대 후반 노인을 마치 축구공처럼 두들겨 팬 10대 청소년이 등장했다.막말의 진화는 촌철살인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여성을 향한, 특히 국가 원수를 겨냥한 상말이 가히 점입가경의 수준이다. 지난 대선 때 여성 후보에게 “그년”을 “그녀는”의 줄임말이라며 어느 국회의원이 국어 실력을 뽐내더니, 지난달에는 어느 단체의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마약을 했는지, 보톡스를 했는지”청와대를 뒤져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말을 했다.말세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말세는 불교의 삼시(三時)와 기독교의 재림에서 나온 말로 ― 공자와 도척이 살던 이천오백여 년 전에도 말세라는 말을 했다는데 ― 수치(羞恥)와 절제를 상실한 현세가 진정 말세라는 암울한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극기복례(克己禮)라는 말이 나온다. 욕망이나 사(詐)된 마음을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한 방울의 물로 사막을 모두 적실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물이 없으면 사막을 다 적실 수 없다. 이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극기를 다하여 평천하(平天下)를 만들어 가야할 때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20

신념교육

영국의 런던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가르쳤고, 학술원 회장을 지냈던 찰스 핸디는 그의 책 `헝그리 정신(The hungry sprit)`에서 “오늘날 문제는 돈이 아니라 정신의 빈곤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믿고 따라가는 정부가 아니라 믿음이다”라고 했다. 곧 믿음 있는 사람이 앞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일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갖는 것이야 말로 그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덕목이 있다. 먼저 결단력이다. 또 자기 일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까지 참고 인내하는 모습도 있다. 또 믿음을 가진 사람은 추진력이 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꿈과 비전이 있다. 결단력이나 헌신, 인내, 추진력, 꿈, 사실 이것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오늘날 교육의 과제가 있다면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 좋은 일에 헌신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치교육과 신념교육을 힘써야 한다. 지식위주의 교육은 원래의 교육 목표에서 우선 순위가 어긋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덕·체 교육은 원래 존 로크에게서는 체·덕·지 순서였다.존 로크는 건강 교육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들고, 위기 상황 대처능력을 키우고 창의성 교육,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 교육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지식교육을 해야한다고 했다. 오늘날 지식주입교육은 청소년들을 허약하게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 학과 점수로 비교되기 때문에 모두가 불행하다.최근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성교육에 대한 과외가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성도 또 다른 교과목이 되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인성교육도 학원에서 과외 받아야 할 또 하나의 교과목이 되는 것이다. 정보를 많이 축적하거나 기술을 가지는 것 만을 목표로 해서는 실현 할 수 없다. 따뜻한 마음과 올바른 태도를 갖게 하는 교육이다. 바른 신념을 가진 믿음직한 사람들이 그립다./곽규진(목사)

2015-07-17

도찐개찐

한 중학교 교문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앞머리를 빗어 내리는 아이, 교복 치마를 당겨 올리는 아이, 저마다 정신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하교하는 여학생들의 입술에는 진홍빛 립스틱이 칠해져 있고, 무릎 위로 쑥 올라간 치마는 허벅지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몸에 꽉 끼는 상의는 팔도 제대로 못 흔들 정도이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기말고사가 끝난 교문 앞 풍경이다. 제대를 하고 대학원에 복학했던 90년대 초, 나는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말을 처음 들었다. `오렌지족`은 1990년대 초 부자 부모를 두고 화려한 소비생활을 누린 20대 청년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해외 명품을 소비하고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유흥을 즐겼다. 오렌지족이라는 말은 당시 막 수입되기 시작한 과일 오렌지에 빗대어 그들의 과소비행태를 비꼰 것이다. 그들의 소비를 따라가지는 못하면서 흉내를 낸 젊은이들은 따로 `낑깡족`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말들은 90년대 초반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은어였다.그 무렵 마광수는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자유문학사), 에세이집`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자유문학사)에 이어 소설 `즐거운 사라`(1992, 서울문화사)를 출간하여 급기야 예술인가, 외설인가 하는 논쟁의 한 복판에 서기도 했다. 여기에 대한 법적 판단은 그를 구속시키고, 소설은 금서로 지정됐다. 아마 `이념의 시대`에서 `향유의 시대`로 가는 진통이었나 보다.수많은 부정적인 시각과 비판을 한 몸에 받던 `야타족`들의 젊음의 행렬은 오늘날`홍대입구`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오렌지족`세대가 벌써 마흔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지금 교문앞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학생들은 이들의 자녀 벌 되는 아이들이다. 딸아이의 치마 길이를 걱정하는 중년의 어머니들, 그들 역시 젊은 한 때는 치마길이를 짧게 걷어 올리는 반란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이었다. 도찐개찐이다. 아이들 걱정할 필요가 없다. 탓할 이유도 없다. 세월 따라서 생산양식이 변하고, 삶의 스타일이 달라졌고, 생각도 달라졌다. 변화와 보수는 이렇게 꼬리를 물고 변증법적 지양을 거듭하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