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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상트 모함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6-03 02:01 게재일 2016-06-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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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50년 간 프랑스 예술가들은 압상트에 절어 살았다. 이 녹색의 술은 `예술의 여신`이라 불리기까지 했다. 약쑥과 박하 등을 넣어 발효시킨 40도 안팎의 증류주에 허브를 넣고 우려냈다. 당시 프랑스는 포도 흉년을 만났다. 진드기가 포도밭을 초토화시켰으니, 포도주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었다. 가난한 예술인들은 향기롭고 값이 싼 술을 찾았다. 또 당시 아프리카를 침공했던 프랑스의 최대 강적은 모기와 말라리아였고, 병사들은 압상트에 취해 두려움을 이겼다. 전후 병사들은 `전장의 추억`을 되새기며 압상트를 찾았다.

유럽의 예술인들은 `사상의 자유`를 찾아 파리로 몰려왔고, 압상트는 대량생산됐다. 그러나 종교계와 지식인들은 “이러다가 프랑스 사람 전부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겠다”며 `압상트 금지운동`에 돌입했다. 또 포도밭 진드기를 퇴치한 와인 양조장들이 운동자금을 지원했다. “압상트에는 환각제가 들어 있다” “중독성은 담배보다 강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은 압상트 때문이다” `오피니언 리드`들이 외치는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던 프랑스 정부는 마침내 `압상트 제조 판매 금지령`을 내렸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것이 1888년 12월 23일이다. 그 날은 동생 테오의 편지가 도착한 날이다. “제가 결혼하게 됐습니다”란 내용이었다. “아하, 이제 나를 도와줄 수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고흐는 절망감에 빠져 발작을 일으켰고 면도칼로 귀를 자르는 고통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붕대로 귀를 싸맨 자화상을 그렸고, `양파가 있는 정물화`를 그렸다. 정물화에는 테오에게서 온 편지와 술병이 등장한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자기 가슴을 쏘아 종일 피를 흘리다가 사망한 그 원인에 대해 종교인·학자들은 “압상트가 그의 정신을 환각상태에 몰아넣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후에 과학자들이 술을 분석해봤더니 환각성분은 전혀 없었다. 인기 있는 술도 이렇게 모함을 당하는데, `정치꾼들의 모함`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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