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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란 문화교류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5-09 02:01 게재일 2016-05-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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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대림산업이 이란과 첫 인연을 맺는다. 군용시설 토목공사를 맡은 것. 혁명이 일어나 반미정권이 들어서고 경제제재가 이어지면서 외국 기업들이 돌아갈 때도 대림은 그대로 남아 가스공장 건설사업을 진행했고, 그때 이라크와의 전쟁이 터진다. 1988년 이라크 전투기 8대가 건설현장에 로켓포와 기관총을 난사해 13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친다. 그러나 대림은 철수하지 않았다. “일단 맡은 공사를 책임지고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란은 큰 감명을 받았다. “페르시아 상인들은 계산이 분명한 사람들이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데 한국인은 그 이상”이라 했다.

한국과 이란은 종교·풍속·언어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이 같은 `인연의 끈`이 맺어져 있어서 `친구`가 될 수 있었고, 통하는 한 가지는 있는데, 그것은 `여성의 정절`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TV역사극에 이란인들은 크게 공감하면서, `대장금` `주몽`은 시청률이 무려 80%나 됐고, `장영실` `육룡이 나르샤` `옥중화` 등이 인기물이다. 당시 여성들이 외출할 때 `장옷`으로 얼굴과 몸을 가리는 것은 이슬람의 풍습과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이란 국빈방문 때 하얀 머리수건 `투사리`를 착용해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란인들은 그것을 “예의를 아는 행동”으로 평가한다. 독일 메르켈 총리 등 유럽의 여성 정상들은 중동을 방문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프랑스인들은 “무슬림의 히잡은 매우 혐오스러운 차림새”라며 착용을 금지하는 법률까지 만들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매우 예쁜 패션”으로 평가한다. 한국이 이번에 일본을 제치고 이란시장을 선점한 것도 이같은 `정서적 흐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그동안 북한과 핵무기 개발을 함께 했지만 이제 결별의 수순을 밟고 있다. 더 이상 북한 유학생을 받지 않고, 핵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북한 학생들을 귀국시킨다. “이란은 북한을 변화시킬 것인가” 이것이 세계가 주목하는 화두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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