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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소신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5-10 02:01 게재일 2016-05-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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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연방준비은행(FRB) 의장을 지냈던 폴 볼커는 미국 금융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에 휘둘리지 않았고, 의회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금리를 내려 기업을 살리라”는 거센 압박에 그는 당당히 맞섰다. 고금리정책은 부실·좀비기업과 한계 산업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제조업체들은 `살길`을 잃고 동남아지역으로 공장을 옮겨갔고, 미국에는 IT·금융같은 첨단기업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렇게 사양산업들이 스스로 구조조정된 후 그는 서서히 금리를 내려 첨단산업에 힘을 실어주었다.

1970년까지 일본의 조선업은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 1위였지만, 80년에 들면서 일본정부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60개였던 조선업이 20개로 줄었다. 정부가 주도한 획일적인 쳐내기였다. 그 무렵 한국은 과감한 설비투자에 나섰고, 단연 1위에 올라섰는데, 일본은 중국에도 밀려 3위에 머물러 있다. 중앙은행이 맥 없이 정부와 의회에 끌려간 결과였다. 우리 한국은행은 미국과 일본의 두 사례를 참고하면서 3대 조선업을 `요리`하고 있는 것같다. 정부와 정당들은 서로를 향해 “양적완화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같다”고 공박한다. 그것은 `다들 잘 모른다`는 뜻이고, 책임지고 주도해 갈 능력과 지식이 없다는 말이다.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한국 조선업의 산 증인인데 “구조조정 그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정부가 부실기업을 무리하게 지원해주거나 합종연횡을 주도하지만 않으면 된다. 시장에 맡겨 각자 생존력을 찾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란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조선업이 위기를 맞은 원인에 대해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장 큰 이유지만, 우리가 세계1위라는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바뀌면서 혁신을 게을리한 탓”이라 했다. 조선업은 기술집약산업인데, 신기술·신상품 개발 같은 `혁신`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조선업계 귀족노조의 철없는 요구나, 정부의 재촉이나, 국회의 메뚜기식 훈수에 말리지 않고 한국은행이 소신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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