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만 해도 전함의 동력은 `노꾼들의 노젓기`였다. “뭐? 배 밑에 불을 때어서 배를 움직인다고? 내가 당신하고 이런 농담을 하고 있을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닐세” 이것이 그의 반응이었다. 와트의 증기기관 기술은 그 후 30년 가량 묻혀 있다가 풀턴에 의해 실현됐다. 파리 센강에서 증기선은 멋지게 달렸다.
나폴레옹은 전쟁천재였지만 과학기술에는 천치였다. 역사상 수많은 천재들이 있었지만 이를 알아보는 눈을 갖지 못한 천치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1975년 코닥연구진은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다. 오늘날 카메라는 으레 디지털이지만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을 무렵에는 찬밥신세였다. 코닥 부사장은 “몇 년을 검토했지만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묻어버렸다. 천재 주변에 천치들만 있었던 것. 방사선을 이용해 외과수술 없이 종양을 파괴하는 첨단수술법을 개발한 존 애들러도 20년 간 의료기업들에게 퇴짜를 맞았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의 성공조건으로 “지독한 노력과 천재성과 무거운 입”을 들었다. `무거운 입`은 “아이디어를 발설했다가 남에게 선점당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상대성원리를 말하는 과학자는 당시 많았지만, 이것을 `언론풀레이`와 기고문을 통해 세상에 알린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세상은 오직 그 한 사람만 천재로 기억할 뿐이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것은 `다른 과학자`들이 아니라 `천재를 알아보는 눈을 갖지 못한 천치`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주변에는 보조예술가가 13명이나 있었고 `천지창조`는 그들과 함께 그린 명작이다. 그가 화가·조각가·과학자·시인·건축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동력은 `목숨 건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가문의 후원이 없었다면 그의 천재성도 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엉뚱하고 별난 아이`가 가진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천재가 만들어진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