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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수난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7-22 02:01 게재일 2016-07-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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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태어난 사임당은 어릴때부터 비범했다. 사서삼경을 일찍 떼고, 서예와 그림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흡사하게 그려냈고 포도그림은 특히 뛰어났다.

“사임당의 그림은 하늘의 능력을 빌려온 신필(神筆)이다” “천지의 이치를 깨달은 표현”이란 찬사를 받기도 했다. 사임당은 집 주위의 텃밭에 자주 나와 채소와 잡초, 곤충, 벌레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꿀벌 나비는 물론 개미와 귀뚜라미, 고슴도치 들쥐 도마뱀 쇠똥구리까지 그대로 그리는 `극사실화`의 대종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의 그림에는 항상 `의미` 혹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돌잡이에게는 무병 건강을, 청소년에게는 입신출세를, 시집가는 처녀에게는 다자녀를, 노인에게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사임당은 시집가는 마을 처녀들에게 “아들 딸 많이 낳고 다복하거라”란 기원을 담아 연꽃과 연밥, 물고기 등을 많이 그려 선물했지만 애석하게도 많이 버려져서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시작품 2편, 서예 9점, 초충도 20점 정도가 고작이고 5만원권 지폐에 실린 포도그림이 대표작 구실을 한다.

천재화가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생존 당시에는 별로 존중받지 못했고 특히 조선조의 여성은 흔히 무시당했으니 그녀의 작품도 박대를 받았을 것이다.

지금도 사임당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지폐 사상 최초로 여성이 5만원권에 등장하지만 그것이 고액권이라는 점이 화근이었다. 이자 없는 은행예금보다 현금을 집에 보관하기에 그 돈이 제격이라 장판 밑에 넣어두었다가 습기로 곰팡이가 피고, 회사 금고에 보관하다가 화재가 나서 소실되고 해서 많은 `사임당`이 사라지거나 훼손된다.

그리고 `사임당`은 잘 돌지 않고 장롱속에 갇히는 통에 회수율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다른 지폐 회수율은 80% 이상이다.

왜란(倭亂)을 예측하고 “십만의 병사를 길러야 한다” 했던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 생존 당시에는 작품이 무시당했고, 지금은 고액권에 오르는 바람에 얼굴이 불타고 그림에 곰팡이 핀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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