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화권에는 오방색(五方色) 개념이 있다. 동쪽은 푸른색, 남쪽은 붉은색, 서쪽은 흰색, 북쪽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으로 각 방향에 색깔을 부여한 것이다. 관리가 처음 등용되면 푸른 관복을, 높이 올라가면 붉은색 관복을 입고, 초상이 나면 흰색의 상복과 관모를 착용했고, 질병이 돌거나 전쟁이 나면 관리들은 검은색 관복을 입었다. 그리고 중앙은 노란색인데, “우리는 세상의 중심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 황제들은 노란색 곤룡포를 입었다. 그래서 오직 중국 황제만 노란색을 입을 수 있었고, 변방의 왕들은 다만 붉은색 계통의 곤룡포를 착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노란옷을 입고 참석했다. 옛 황제시절 같았으면 `무엄한 행위`였다. 중국인들은 홍복(洪福)과 발음이 같아서 홍색을 좋아하고, 노란색은 황금색이고 황제의 색이라 해서 역시 선호하는 색깔이다. 그래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는 황색과 홍색으로 돼 있다. 큰 별 하나를 작은별 4개가 둘러싸고 있는데, 별은 황색이고, 바탕색은 붉은색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만찬 리셉션에는 붉은옷을, 열병식에는 노란옷을 입은 것은 외교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중국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한 `외교적 색깔 선택`이었다. 미술심리학적으로 황색은 평화의 상징색이다.
노동당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영국은 `늙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고, 이런 나라를 되살려낸 수상이 대처 여사였다. `대처의 패션 협상`은 유명하다. 노조와의 싸움으로 임기 대부분을 채운 그녀는 진한 색 자켓과 바지 차림에 날카로운 모양의 블로우치를 달고 회의에 나갔다. “나는 당신들과 피터지게 싸우러 왔으니, 알아서 하라”는 경고였는데, 상대방은 대처의 패션만 보고 지레 주녹이 들었다.
남자 정상들이 할 수 없는 패션외교를 여성 정상은 할 수 있다. 이번 천안문 행사에서 제일 눈에 확 띄는 옷차림이 박대통령의 노란색 자켓이었는데, 그것은 `황제시대의 곤룡포`를 연상시켰다. 여성 대통령의 옷색깔 하나가 `외교적 성과`를 얻어내는 순간이었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