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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압록강 유람선상에서 마주친 북한 무역일꾼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달 광복 70주년 기념 만주의 항일 유적지 탐방 길에 오른 적이 있다. 신의주를 떠난 우리 일행의 버스는 고구려의 박작 산성 부근의 일보과(一步過)선착장에 차를 세웠다. 일보과란 중국에서 한 발짝만 떼면 북한 땅에 닺는 곳이라는 뜻이다. 중국 땅에서 3m 거리에 있는 있는 북한의 섬 윤중도와 건너편 북한 땅을 가로 지르는 유람선을 타기 위함이다. 일행 40여명이 탄 중국 유람선은 물살을 가르며 북한 땅 가까이 가고 있었다. 이곳은 묘하게도 양쪽 모두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관광 코스이다. 북한의 옥수수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한의 흰 염소 때만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총을 맨 군인들이 순찰하는 모습도 가끔씩 보였다. 압록강 하구 단둥의 단교 부근의 유람선 여행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경관이다. 북한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들은 무표정하게 우리 배만 쳐다보고 있었다. 국경 경비대원인 북한 군인들의 걷는 모습까지 활기차지 못했다. 몇 해 전 중국의 단둥에서 부터 중국의 땅 끝 방천(防川)까지 여행한 적이 있다. 중국의 단둥은 신의주, 지안은 만포, 삼합은 회령, 도문은 남양, 방천은 멀리 동해까지 을 볼 수 있는 관광 명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나 남한 관광객이 즐겨 찾고 있다. 이곳 일보과 역시 중국 유람선이 압록강을 가로질러 북녘 땅과 사람을 보고 돌아오는 여행 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 유람선에는 우리 일행 뿐 아니라 중국여행객도 개방되지 않은 북한 지역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가 탄 유람선이 중간 쯤 왔을 때 갑자기 북한 쪽에서 온 소형 선박이 우리 배 가까이 바싹 붙었다. 우리가 탄 중국 배에서 밧줄을 내려주니 그 쪽 배에서 잽싸게 자기 배에 묶었다. 50대 중반의 사람이 `조선 물건 사라우`라고 외치고 있었다. 배에는 북한산 산삼 주, 개성 인삼, 조선 담배, 짚으로 포장한 오리 알 꾸러미, 김치까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일행 중 한사람이 술 한 병을 주문하니 중국 돈 100원(한화 2만원)을 달란다. 개성 인삼은 200원, 김치는 20원에 거래되었다. 누가 카메라를 들이 대니 물건을 파는 북녘 사람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물건을 파는 손은 재빨리 움직였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오늘 장사 수지 맞았지요`하니 그는 `위로 다 갖다 바쳐야 합네다`라고 응답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무척 좋아 보였다. 우리는 유람선상에서 뜻하지 않게 북한 경비병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지는 밀거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유람선을 잠시 정지 시키고 배에서 밧줄까지 내려준 중국 선장에게도 그들이 그냥 있을 리 만무하다. 중국의 조선족 보따리장수 들이 북한을 드나들면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지만 북한 주민이 남한 관광객을 상대해 장사하는 모습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게 된 수확이다. 북한은 과거 60년대 후반까지는 남한 보다 경제적 사정이 좋았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보다 형편이 좋았다. 그러나 `자립`을 내세운 북한의 통제·계획 경제는 오늘의 북한 경제를 총체적 위기로 몰고간 것이다. 북한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약 1천불 내외로 추산되고, 중국은 7천불 정도이다. 우리의 2만8천불 국민소득과 비교하면 북한의 열악한 경제를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식량뿐 아니라 회환 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동시에 격고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모두 외화벌이에 혈안이 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 지안으로 가고 있었다. 북한의 민둥산은 여전히 메말라 있었다. 압록강 수풍 발전소 건너 북한쪽 민둥산을 바라보다가 두만 강상에서 마주친 북한 상인이 북한군에서 허락한 무역일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북한 당국은 경제도 군수 경제와 민수 경제로 나누어 외화 벌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2015-08-31

포항철로 폐선부지 공원화에 바란다

▲ 안병국 포항시의원구 포항역이 2015년 3월 신역사로 이설되면서 현 역사(驛舍)는 사라지게 됐다. 또한 효자역에서 도심 내부로 연결되는 철도부지도 용도 폐지된다. 구 포항역은 한반도에서 드문 간선노선의 종점인 철도 종착역이었다. 부산진역에서 출발한 145km에 달하는 동해남부선 철도는 울산, 경주를 거쳐 구 포항역에 종착했다. 구 포항역은 원래부터 동해남부선 상의 역이 아니라, 일제 때 지어진 경동철도 즉, 현 대구선 상의 철도역으로 1918년 영업을 개시했다. 당시 이 철도는 협궤철도로서 국가가 아닌 경동철도 주식회사에서 관리 및 시공을 맡아 일종의 사설의 성격을 띠고 있는 노선이었다. 1928년 국철로 전환된 뒤 1939년 표준궤로 개량되면서 지금의 동해남부선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도심 속의 구 포항역과 폐선부지는 아픔과 추억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30년대에는 일제의 수탈로 인해 자유를 빼앗긴 주민들이 만주로 이민가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1970년대는 민수용 무연탄을 취급하는 역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포항제철소의 통근 열차가 운행되던 시기도 이때였다. 1992년에는 서울~포항 간 새마을호가 운행되었다. 2013년도는 포항~동대구 간의 경북순환테마열차 운행이 개시되기도 했다. 폐선부지는 도심 속의 역사부지가 도시의 외연 확장으로 교외로 이전되는 경우와 구불구불하던 기존선 대신 직선으로 펴진 신규 노선이 생겨나면서 기존선 구간이 폐선부지로 남게 된다. 전국적으로 이런 사례로는 광주 도심 경전선 구간, 목포 도심 호남선 구간, 아산시 장항선 구간 등이 있다. 앞으로 진행될 서울의 경춘선 성북에서 갈매 구간, 부산 동해남부선 해운대 구간, 경춘선 강촌역 주변 구간 등이 폐선 부지로 바뀔 예정으로 있다.포항시에서는 구 포항역(안포건널목)에서 효자역(지곡건널목)구간의 폐선부지에 공원화사업을 착수하여 공모절차를 통해`환원`이라는 작품을 선정했다. 주민과 시민에게 공간을 돌려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선정된 공모 작품은 선로구간에 접면한 각 동네에 주민설명회와 시민전체 설명회도 거쳤다. 새로 생겨나는 4.4km의 폐선부지는 좌우측 주거지역과 구 역사 주변으로 일부 상업지역이 분포하고 있다. 폭원이 넓은 곳은 65m로 40m 이하가 전체 구간의 57%로 가늘고 긴 형태를 취한다. 6개의 건널목이 6개의 마디로 공간 구조를 분철시키고 철로에 의해 단절된 교통망은 4개의 입체도로를 형성하고 있다.이 선형화된 도시공원 조성사업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온 주민들에게 편리함과 쾌적함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선정된 사업계획에 너무 많은 종류의 주제를 보여주려 하다보면 오히려 이용하는 사람들이 볼 때 난잡한 공원형태로 전락할 수 있다. 또한 지나온 역사를 강조하여 무리한 스토리텔링과 포항의 정체성을 무리하게 보여주려 하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주민공동체가 철길에 의해 공간이 단절되어 있었던 것을 주민들이 진출입부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검토도 세밀해야 한다. 건널목에 의해 보행자도로와 자전거도로가 진행 연속성을 방해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완만하게 넘을 수 있는 보행육교 형태의 구조물이 필요하다. 고가교차로 하부에 노출된 콘크리트 구조물의 색채변화를 통한 시각적 배려도 빠져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용의 편리성을 부여해 활성화를 시켜야 한다는 개념을 먼저 세워야 한다.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은 시민들의 이용 활성화로 공간자체가 랜드마크가 될 수 있었으며 랜드마크화를 위한 무리한 계획이 없었다는 사실을 염두하고 사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2015-08-31

남북 고위급 회담은 실천이 담보돼야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8월 22일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에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간의 전격적인 판문점 회담이 성사되었다. 지난주말 남북의 일촉즉발 위기 상황이 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완화될 전망이다. 남북의 소위 전격적인 2+2회담이 남북의 군사충돌을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계기가 될지는 현재로서는 의문이다. 어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북 고위급의 접촉 사실을 신속히 보도하면서 우리 측 대표단 이름을 호명하기에 앞서 우리의 정식 국호인 `대한민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이 항상 `남조선 당국`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달라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 대표를 부를 때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러한데도 북한 방송이 그러한 용어를 쓴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 측이 이번 회담이 다급했기 때문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우리는 북한당국이 급박하게 접촉을 제의한 배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당국은 그들의 지뢰 도발에 대한 남측의 대응이 확성기 방송 재개로 나타나자 당황한 것이 사실이다. 남쪽의 삐라를 통한 대북 선전도 수령 모독, 국가 모독이라고 비난하고 긴장하는 상황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당국의 아킬레스 끈을 내려친 격이다. `국가 존엄`을 모독하는 확성기 방송이 20km 너머 북한군 병사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군 탈북자 중에는 이 방송이 탈북의 동기로 작용했다는 증언도 있다. 역설적으로 보면 북한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북한 김정은의 권력이 아직도 불안하다는 증거이다.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알면서도 우리 정부가 남북 고위급 접촉에 호응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위기 상황의 지속은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메르스 여파로 침체된 우리의 경제는 또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고, 투자 심리는 또다시 위축될 것이다. 우리의 관광 경기 역시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의 4대 개혁은 힘을 받을 수 없고, 정부의 대북 관계 개선 공약은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정부로 하여금 북한의 긴급 회담 제의를 수용케 하였다.이번 회담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회담은 표류되거나 장기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북한 측은 상투적인 책임전가와 억지 주장을 반복할 것이 뻔하다. 우리의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남북의 현안인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재개, 경원선 복원사업, 남북 경제협력사업 등 후속 사업에 합의에 이르는 것이 회담의 순서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5.24조치 해제도 이러한 현안과 연계하여 `빅딜`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남북의 고위층 회담을 환영하면서도 그 결과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남북의 고위급 회담에서 보다 실질적인 합의가 따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남북의 회담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은 과거 여러 차례의 남북 회담의 결과가 잘 증명한다. 우리는 과거 수많은 회담 개최와 합의문을 도출하였지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심지어 남북 정상 회담의 합의조차 휴지 조각이 된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그러므로 이번 회담에서는 제도적, 실천적 장치가 담보되는 합의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으면 과거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남북 회담의 합의는 정책 의지만으로 차질없이 이행될 수 없는 법이다. 남북간 합의가 남북 입법기관의 비준 등 추가적인 입법 조치를 통해 그 실천이 담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5-08-24

해방둥이가 되돌아 본 광복 70년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올해는 해방둥이가 벌써 나이 70이 되는 해이다. 우리 해방둥이들은 젊은 세대들이 교과서에서나 배울듯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몸으로 겪은 세대들이다. 되돌아보니 70년이라는 세월의 구비가 어제의 일처럼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부분도 있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삶의 궤적이 파란만장하다고 생각한다. 해방 되는 해 태어나 격변기를 살아온 해방둥이인 나의 삶 역시 인고의 세월이 점철되어 있는 듯하다. 나이 6살에 1950년 6·25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시골 집 앞 신작로에는 피난민 행렬이 줄을 이었고, 인민군은 우리 마을을 점령했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쳐진 우리 집이 인민군 임시 본부가 된 것이다. 우리 집 사랑방에는 인민군들이 꽉 들어차고,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달라는 동냥꾼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는 철없이 전쟁의 무서움도 모르고 인민군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따라 다닌 기억이 남아 있다. 우리 철부지들은 나라가 빼앗길 상황에서도 논밭에 떨어진 탄피를 주워 모아 그것을 따먹는 놀이를 했던 것이다. 1950년대 말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민주당 구호가 보이고, 자유당의`갈아 봤자 별수 없다`는 선거 삐라가 동네 앞에 마구 뿌려졌다.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확성기를 단 선거 운동 차량을 열심히 따라 다녔다. 종이가 귀한 시절이라 삐라 한 장이라도 더 줍고, 처음 맡아보는 휘발유 냄새가 그리도 좋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시절 4·19의 전야인 대구의 2·28 시위를 현장에서 목도하였다. 우리는 2월 28일 일요일인데도 야당의 선거 유세일이기 때문에 강제 등교되었다. 다행히 우리는 민주당 박순천 여사의 선거 연설을 신천둔치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떨리는 하야 성명을 라디오를 통해 전해 들었다. 1961년 중학교 3년 시절, 대부분 걸어서 등교하던 시절, 우리는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여러 대의 탱크와 무장 군인들을 보았다. 그것이 5·16 군사 정변의 현장이었다. 포를 앞세우고 총을 든 무장한 군인들, 연신 무전을 주고받는 모습이 무서워 우리는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학교는 긴급 휴교령이 내리고 라디오에서는 국가 재건 최고위의 혁명공약이 쉴 새 없이 발표되었다. 박정희 장군의 검은 색 안경 쓴 모습이 연일 신문에 등장하였다. 얼마 후 거리에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가 마을마다 울려 퍼지고,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가 우리의 귓전을 때렸다. 1979년 우리 해방둥이는 대부분 아이들을 키우는 30대 중반의 가장이 되었다. 박 대통령이 시해되는 10·26이 일어나고, 신군부 전두환 장군의 대머리가 TV에 자주 비치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재직했던 대학에서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전두환 국가보위 비상 대책 위원장은 대대적인 사회 정화 운동을 벌이고 제주도에서는 삼청교육이 실시되었다. 동료 교수들이 보안사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돌아와서는 침묵하기 시작하였다. 개혁적이고 반정부적인 성향의 교수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되었다. 신 군부의 무시무시한 집권 과정과 횡포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셈이다. 40대 중반 1987년 노태우 후보는 당시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시국 수습으로 6·29 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학생뿐 아니라 지식인, 직장인등 넥타이 부대가 호헌 철패라는 거리 투쟁에 동참했던 결과이다. 이러한 87 민주항쟁의 승리는 10년 후 이 나라의 최초의 정당간의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이 나라 민주화의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되었다. 앞으로도 역사의 흐름은 계속되고 역사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날지 모른다.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해방둥이의 최대의 희망은 분단의 극복에 있다. 민족 통일은 진정한 해방이요 광복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2015-08-17

북한 축구의 `빨치산`식 전술을 보면서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중국 우한에서 동아시아 4개국의 아시안 컵 축구 대회가 열리고 있다. 남북한을 비롯한 중국, 일본이 승패를 겨루는 동북아 친선 축구경기이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는 중국과 일본을 이겼지만 어제 저녁 북한 팀에게는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 우리 남자 축구도 중국에 이기고 일본과는 비겼지만 내일 북한과의 마지막 한판을 남겨두고 있다.여하튼 일본 아베의 역사 왜곡 문제로 한·일, 중·일관계가 교착되고,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도 친선 축구 경기는 진행되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북한의 김창복 남자 축구 감독은 기자 회견에서 북한 축구는 `빨치산 전법`을 구사하여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축구에서 느닷없이 빨치산이 왜 등장하는가? 일부 독자는 빨치산을 북한지역의 어떤 산으로 오해할지도 모를 것 같다.빨치산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소위 혁명 활동에서 힘이 약할 때 쓰는 일종의 게릴라 전술이다. `파르티잔(partisan)`은 프랑스어의 `파르티(parti)`에서 비롯된 말이며, 당원·동지·당파 등을 뜻하는 말이나, 현재는 유격대원·편의대원(便衣隊員)을 가리킨다. 따라서 에스파냐어에서 나온 게릴라(guerrilla)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빨치산 전술은 정규군과는 별도로 적의 배후에서 통신·교통수단을 파괴하여 무기와 물자를 탈취 또는 파괴하고 인원을 살상하는 일종의 교란 전술이다. 그러므로 빨치산은 전시나 준전시에 일반주민의 협조나 지원이 없이는 수행할 수 없고, 그 지방의 지리나 지형에 밝아야 한다. 6·25 전쟁 전후하여 북한 잔류병들은 험악한 산지에 숨어 들어가 게릴라 전술을 펼친 적이 있다. 북한은 항일 전선이나 6·25 전쟁에서 사용한 이런 `빨치산 전법`을 축구 경기에서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북한 선수 김영광은 우리 기자들에게`우리 원수(김정은)님께서 빨치산 공격 전법을 쌓으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북한은 축구라는 스포츠에도 수령의 빨치산 전법을 활용하려는 것이다.북한 감독은 축구에서 동쪽에서 흩어졌다가 서쪽을 치는 동산사격(東散西擊)전술, 한걸음에 천리를 간다는 일행천리(一行千里) 기습 공격 전술을 구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남자 축구는 일본은 꺾었지만 중국의 만리장성의 벽은 넘지 못했다.북한은 정치 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서도 빨치산 식 투쟁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김일성 수령의 만주 일대에서의 항일 투쟁을 빨치산 전술의 승리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함이다.북한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도`가 그의 항일 무장 투쟁을 미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김일성의 만주 일대에서의 게릴라 활동은 과대 포장되고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정치 뿐 아니라 생산에서도 문화에서도 수령의 항일 유격대식 빨치산 투쟁을 내세우고 있다. 수령을 영웅화하기 위함이다.북한이 이번 빨치산 전술의 축구를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지는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자. 북핵 문제로 외교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빨치산 식 축구를 내세워 이번 대회에 참여한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 전 세계가 변하고 사회주의 체제도 급변하고 있다.세계적인 축구의 전술도 수비와 공격이 따로 없는 토탈 사커(total soccer)로 변하고 있다. 아직도 위장 전술을 앞세우고 정신전력을 강조하는 북한의 빨치산 전법도 이제 변화해야할 시점이다. 최소한 스포츠면 에서라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구호가 사라질 때 북한의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2015-08-10

단둥 북한 식당의 외화벌이 일꾼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방 7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와 함께 만주의 항일 운동의 전적지를 찾는 기행을 떠났다. 이번 탐방의 목적은 두만강 주변의 청산리 등 항일 전적지를 찾아보는데 있었다. 우리 일행은 먼저 북한 신의주가 눈앞에 보이는 중국의 단둥부터 찾았다. 단둥은 화려한 고층 빌딩 숲이 늘어나고 밤에는 네온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압록강 건너 신의주는 변하지 않고 3년 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단둥의 고층 호텔에서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컴컴한 신의주를 바라보는 필자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휘황찬란한 단둥의 고층 빌딩의 불빛을 바라보는 신의주 동포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북한 신의주 쪽의 서치라이트 불빛만이 밤새도록 압록강 하구를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 겅 건너 신의주는 침묵만 흐르는 유령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찾은 북한 식당 `고려 관`에는 북한 수령의 초상을 가슴에 단 북한 안내원들의 모습은 예나 다름없이 분주해 보였다. 더덕 무침 등 북한식 음식이 중국식 회전 식탁에 여러 접시 올라왔다. 일행 중 한 명이 호기심에서 북한 소주 한 병을 급히 주문하였다. 한국의 소주 보다 약간 병이 큰 `평양 소주`가 나오자 북한 봉사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한 병 가격이 중국 돈으로 250위안 한화 5만원을 넘는 값이다. 북한 식당이 중국식당보다 값이 비싸다는 것은 익히 알지만 5만원 짜리 소주 값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체면상 주문을 취소할 수도 없어 억지 춘향 격으로 씁쓰레한 평양 소주잔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다시 찾은 북한 식당은 이제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순진하고 친절했던 옛날의 봉사원들의 모습은 오간데 없다. 무조건 매상만 올리자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식사 중 등장한 여성 5인조 중창단은 노래만 3곡 부르고 서둘러 떠나 버렸다. 기타를 메고 정성들여 불러주던 `반갑습네다`의 모습은 이젠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이 권하는 500위안 짜리(한화 10만원) 들쭉술을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북한 봉사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공연 계획이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과거 `동포 여러분 밥갑습네다`하면서 우리를 환대하며 다가와 가슴이 약간 저며 오던 모습은 이제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북한 당국은 외화 벌이의 수단으로 중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 곳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연길 북한 식당 `해당화`에서 만난 북한 여성 종업원에게 언제쯤 집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장군님의 허락이 나야 합니다.`라는 이상한 대답만 들었다. 이들은 당에서 파견된 조장의 지시에 따라 엄격한 합숙 생활을 하면서 외화 벌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고 외화가 부족한 북한 당국으로서는 식당운영이 그들 재정에 도움이 될듯 하지만 종업원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통제된 북한사회에서 이러한 해외 파견 근무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중의 하나이다. 이들 종업원들의 선발 기준은 우선 인물이 좋아야 하고, 학벌과 집안의 배경이 좋아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북한 경제가 호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이들의 해외의 외화 벌이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북한 당국은 금강산 관광 수입마저 단절된 현 시점에서 이들을 외화 벌이 전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이나 단둥 등지에서 북한 식당이 늘어나고, 러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오지까지 식당 진출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 당국은 이들 뿐 아니라 중동 건설 현장, 시베리아 벌목 현장, 심지어 아프리카 등지에 까지 노동자를 외화 벌이의 일꾼으로 파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이러한 외화 벌이 노력은 북한 재정에 다소 도움이 되지만 위기 극복의 대안은 될 수는 없다. 어쩌다 북 녁 동포들이 이국땅 식당과 공사판에서 혹사당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는가. 분단의 비극은 이산가족의 슬픔만이 아니다.

2015-08-03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 주목한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벌써 분단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도 변해야 하겠지만 북한 당국과 주민들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과거 남북의 교류가 활발할 시기 내가 처음 만난 북한 사람들은 나를 매우 경계하였다. 사실 우리도 그들을 경계하였지만 그들 역시 우리 이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한은 미국 제국주의가 지배하고, 지나친 생존경쟁으로 살기 힘든 곳으로 인식하고 있어 놀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료교육, 무료진료`을 받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보였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북한 주민들은 조직적으로 통제되고 사상 교육과 전 매스컴이 연일 선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상당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이 이를 뒷밭침하고 있다. 북한은 식량난의 장기화에 따른 `고난의 행군`은 주민들의 의식까지 바뀌게 한 것이다. 북한의 장기적인 경제 침체는 심각한 식량난, 가족과 이웃 관계의 해체, 보건 의료 체계의 약화, 공무원의 부패 만연 등의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의 불만은 조직화되거나 집단화되지 못하고 잠재화 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북한주민들은 `사회주의 이상`이라는 공식적 규범 보다는 식량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그들의 `냉혹한 현실`에서 비공식적 규범에 따르려는 것이다.북한 주민들이 공식적으로는 수령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실리를 찾고 물질을 존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 전역에 시장이 날로 번창하면서 더욱 그러하다. 북한의 경제난은 주민들의 당-국가에 대한 의존성이 약해지고,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실성은 더욱 약화 시키고 있다.첫째, 최근 북한 주민의 가치관은 개인주의적 자본주의적 성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경제위기 이후 자력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우선하는 가치관으로 바뀌고 있다. 주민들은 협동 농장이나 기업소에서 일하는 것 보다 텃밭에서 일하거나 장마당에서 개인 장사를 하는 데 힘을 더 기울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통상적인 직업관과 선호도도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북한주민들이 선호하는 직업도 당 일꾼이나 교사 등 안전적인 직업보다는 무역일꾼이나 상업 등을 선호한다. 그로 인해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약화되고 혁명적 의리 보다는 금전적 인간관계가 우선시 되고 돈을 중시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둘째, 북한 주민들은 당 간부나 지도층의 권력 남용과 부패에 대하여 반감이 증대되고 있다. 이것이 당이나 수령에 대한 불신과 충성심에 대한 회의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탈북자들은 당 간부는 `당당하게` 먹고, 보위부 간부는`보이지 않게` 먹고, 안전부 간부는 `안전하게` 먹는다는 말이 북한 땅에서 유행한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관료 부패가 국가 기강이 붕괴될 정도는 아니지만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약화 시킬 가능성은 분명하다.셋째,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상당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남조선이`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중국보다 잘 사는 곳`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변명기재를 하나씩 갖고`우리는 아무도 부럽지 않다`는 말을 되내이고 있다. 그들의 자부심의 표현은 북한주민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의미보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낯선 생활방식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주민의식의 변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은 정책만으로 이룰 수 없고 남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비슷하게 될 때 쉽게 해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2015-07-27

누구를 위한 신당 창당인가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신당 창당설이 여러 갈래로 제기되고 있다. 여당의 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유승민 원내 대표의 사퇴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새정연의 친노와 비노의 갈등은 탈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주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새정연은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비난하면서 탈당을 선언했다. 이미 탈당하여 광주보선에서 당선되어 정치적 생명을 회복한 천정배 의원은 신당 창당을 가장 먼저 선언하고 사람을 모으고 있다. 정대철 고문도 새정연에는 탈당할 의원이 20여명이나 된다고 탈당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들 신당 파들이 모두 같은 배를 탈지 다른 배를 탈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신당 창당의 시나리오는 이미 여러 갈래로 예상하고 있다. 과거 DJP 연합이라는 3당 합당과 같은 여야진영을 뛰어 넘는 합당의 시나리오까지 제기되고 있다. 플랜 A는 유승민으로 대표되는 비박과 박지원으로 대표되는 비노가 합쳐서 창당하는 모형이다. 여당의 좌 클릭과 야당의 우 클릭으로 하나의 중도 신당을 창당하는 모형이다. 정치판의 큰 지각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다. 플랜 B는 친박과 비노가 합치는 경우인데 이것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 플랜 C는 친박과 친 DJ가 합치는 정계 개편 형 신당 창당 모형이다. 이미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등 친 DJ 인사가 박근혜 정부에 몸을 담고 협조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의문이다.이번 신당 창당의 주역과 범주는 야권의 분열에 의한 신당 창당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당은 새정연 지도부에 불만을 가진 개별 인사들의 호남 발 신당이 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새정연에서 이탈하려는 비노, 친 DJ 세력과 새정연의 중도 세력이 규합하여 창당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면 새정연의 당 헤게모니 경쟁에서 패배한 비노, 비주류 세력의 결집이라고 볼 수 있다. 정대철 고문, 박주선, 천정배 의원이 앞장서고 있지만 이들 간의 통합도 쉽지 않을 듯하다. 여기에는 과거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호남 정치인들이 일부 참여할 것이지만 대부분 올드 보이들이 주축이 될 것이다.이러한 신당이 과연 국민적인 지지를 얻어 성공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신당은 결국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먼저 역대 신당 창당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과거 국민적인 인기가 있었던 박찬종, 정주영 이인제, 안철수의 신당 창당도 대선의 실패 후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둘째, 신당 창당 과정에는 뚜렷한 정치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얼른 눈에 띄는 지도자가 없다. 혹자는 신당은 집단적 리더십으로 대체 한다지만 그것 역시 현실성이 부족한 논리이다. 셋째, 신당의 정치 이념적 성향을 새로운 중도 진보를 표방하겠지만 이는 새정연과 구별되지 않고 정당의 정체성만 혼란시킬 가능성이 높다. 결국 중도 신당은 공동의 적도 없고 공동의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못하여 성공할 확률이 낮다.그렇다면 신당 창당은 누구를 위한 창당인가. 내년 총선을 앞 둔 시점에서 집권 여당으로서는 은근히 신당 창당을 기대하고 환영할지 모른다. 신당 창당이 성공하려면 정치적 명분이 분명하고 국민적 지지라는 변수가 잘 조합되어야 한다. 신당 창당의 명분이 겉으로는 새로운 중도 진보 정치 세력의 집결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일반 여론도 야당에 대한 실망은 크지만 신당의 창당을 대안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결국 누구를 위한 신당 창당이냐 했을 때 결국 야권의 정치인들의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에 자신의 공천 여부가 정치적 생명이 걸려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신당 창당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창당의 이유를 국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없다면 그들의 창당 노력을 새정연의 리모델링 사업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이다.

2015-07-20

북한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이해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후배 김진향 교수가 `개성 공단 사람들`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의 개성 공단 근무 4년의 귀중한 체류 경험을 솔직하게 책에 담았다. 2002년 시작된 개성 공단은 남북의 근로자 5만3천명이 오늘날 까지 호흡을 같이 하는 `기적적인 공간`이다. 이 책은 북한체제나 북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오해을 불식하고 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나도 10여 년 전 공무로 북한 땅과 해외 여러 회합에서 북한 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끔 그들과 사적인 대화 까지 할 수 있었음은 귀중한 체험이다. 그들과의 짧은 만남과 대화가 그들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평소의 나의 생각과 `다른`그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사람의 사고나 의식은 그가 처한 환경이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나 막연한 오해를 몇 가지 제시한다.우리는 흔히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 봉건적인 잔재는 이미 붕괴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봉건적인 전통적 가치와 사고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북한주민들은 아직도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다. 1991년 여운형의 딸 여연구가 남한 방문 시 실토한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 사람들은 연장자에 대한 예의는 남쪽 보다 강한 것 같았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정상회담차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을 자신보다 연로하다는 이유로 백화원 초대소에 아침 인사를 다녀간 적이 있다. 북한은 대가족제하의 가부장적 전통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제사를 지내고 형식은 달리하지만 관혼상제를 매우 중히 여긴다. 북한의 수령이 `사회주의 대 가정`의 가장으로 군림하고 세습체제가 유지되는 것도 봉건적 잔재와 무관치 않다.우리는 북한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우선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이 물질적으로는 매우 어렵지만 정신적 가치나 명분을 오히려 중시하고 있다. 그로인해 북한당국은 주민들의 생산성을 독려하기 위해서도 물질적 자극보다는 오히려 `정치 도덕적 자극`을 우선시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본주의적 방식은 그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 어느 남한의 부자는 방북 시 북한 식당 봉사원들에게 팁을 주다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모두가 우리식으로만 생각한 결과이다. 물론 북한에서도 시장의 확대에 따라 돈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난하니까 우리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은 바꾸어야 한다.북한 사람들이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개인은 전체에 무조건 복종만 한다는 생각역시 오해이다. 그들이 10만명이 모이는 집단체조는 가능하지만 그들의 사고마저 한 곳으로 몰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사회에서 집단에 대한 충성이 강조되지만 개인의 일상적인 자유나 생존권마저 몽땅 빼앗긴 것은 아니다. 북한 사회의 절대 빈곤과 자유의 억압이 주민 2만7천명의 탈북 행렬로 이어진 현실은 이를 입증한다. 북한에서도 불륜이 많고 이혼이 자유롭다는 사실도 늦게 알았다. 북한주민들이 겉으로는 당과 국가의 공식적 규범에만 따르지만 부정부패 등 개인의 일탈 행위가 날로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우리가 반공 교육에 의해 북한 사람을 뿔이 달린 도깨비로 보았듯이 북한 사람들 역시 남쪽 사람을 뿔이 달린 사람으로 알고 우리를 매우 경계한다. 심지어 북한 사람들은 우리를 미군의 감시와 구속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러한 상호 오해를 풀고, 상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교류부터 재개되어야 한다. 통일의 새벽은 남북한 사람들이 마음의 빗장을 푸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2015-07-13

당·청 갈등의 해법은 없는가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로 또 다시 정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리 행사이지만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문제는 당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비박의원 20여명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에 반대하고, 친박세력은 그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원내대표 퇴진 요구는 `찍어 내기`식 폭거로 비난하고 있다. 여당 김무성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어정쩡한 행보만 보이고 있다. 그는 같은 배를 탄 원내대표의 입장을 두둔할 수도 없고,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없는 입장인 것 같다. 그는 처음부터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원내대표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나`하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했다. 현재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유승민의 자진 사퇴를 바라지만 유승민의 입장은 대통령에 대한 공개 사과와 함께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다 보니 여당 최고 위원회의도 해법을 마련치 못하고 파행으로 끝나 버렸다.이로 인해 메르스 사태에 대한 초기 대응 정책의 실패로 경제의 침체국면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안과 불신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당·청 갈등과 새누리 당내의 친박과 비박의 대립은 현안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내년 총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청와대와 여권의 친박 세력은 유승민 대표의 자진 사퇴만이 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보고 있다. 유승민의 사퇴가 대통령의 리더십과 권위는 일시적으로 회복될 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퇴는 또 다른 부작용을 수반하고 그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 갈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당내에는 그의 유임을 바라는 비박의원들이 친박의원 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국민의 여론도 사퇴 보다는 그의 유임을 바라는 비율이 사퇴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또한 유 대표가 사퇴를 하더라도 후임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문제도 쉽지 않고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유승민 대표가 현 상태로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 상태로는 복잡하고 다단한 현안을 그가 나서서 해결하기도 사실상 어렵고 청와대의 협력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유승민에 대한 `배신의 정치`를 국민이 심판 해 달라는 초강도 발언은 그의 거취를 더욱 옥죄는 측면도 있다. 청와대에는 당·청 갈등을 조정해야할 정무수석은 공석이 된 지 오래이며 청와대의 정무 조정 기능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 특보로 임명된 여당의원들은 이번 사태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다. 그로 인해 대통령의 리더십의 행태변화만이 이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이번 사태와 관련된 당·청 갈등이나 친박과 비박의 대립은 제로섬 게임이나 치킨게임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포지티브 게임에 입각한 상생의 수습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유승민 대표가 당분간 원내 총무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청와대나 친박이 인내하면서 협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그의 업무 수행이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으로 단죄할 것이 아니며 그의 명예로운 퇴진(?)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당 원내대표가 하루아침에 사표를 던지는 것은 여론의 시선도 곱지 않고, 당내에도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청와대에 초청하여 재화합의 계기를 마련하는 방안이다. 이것이 대통령의 그간의 불통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여론을 호전시킬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국회의 위상도 살리고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도 막을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2015-07-06

김일성 배지에 얽힌 사연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부착하지 않고 공개 석상에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며칠 전 북한 고사포 군관 학교 방문과 평양 생물기술 연구원 시찰 시 배지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이러한 파격적인 행적을 두고 그 배경에 관한 해석도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집권 4년차인 그가 홀로서기를 과시한 행동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일종의 해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남북관계가 순조로울 때 북녘 땅의 사람을 많이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들과의 처음 만남에서 김일성 배지를 달고 나타난 그들의 모습에 상당히 긴장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이나 유럽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중에는 왼쪽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북한의 종교인, 관광 안내원, 협동 농장의 관리원, 아나운서. 가수, 북한의 대학의 교수들은 모두 정장이나 간편복 구분 없이 배지를 달고 다녔다. 공식적인 남북회담 시에도 북한 측 대표들은 그 배지를 달았고, 이에 상응하여 우리 대표들도 태극 배지를 달고 회담에 임하였다.1970년 노동당 5차 대회이후 북한 당국은 전 주민들에게 김일성 배지를 달도록 지침을 내렸다.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배지는 초상(肖像) 휘장이라고 부르고 그 종류도 세 가지로 분류된다. 당 간부나 군단장이상의 간부가 패용하는 김일성·김정일을 나란히 세긴 쌍상(雙像), 중간 간부들이 패용하는 김일성의 초상만 넣은 단상(單像), 일반주민들이 주로 패용하는 작은 크기의 목란상이 그것이다. 모두 붉은 바탕에 수령의 얼굴을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계급 없는 사회를 표방하는 북한 땅에서 주민들이 휘장부터 직책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남북 학술회의에서도 나는 그들이 패용한 그 배지에 눈이 갈수 밖에 없었다. 김일성 수령의 사진을 가슴에 단 그들의 모습이 이방인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의 배지에 대한 거부감은 그 동안의 우리의 반공 교육에 따른 레드 콤플렉스일지도 모른다. 나는 몇 차례 만나 비교적 얼굴이 익은 북한 학자에게 `그 배지를 왜 다느냐`고 넌지시 물어 본적이 있다. 그의 답변은 그것은 배지가 아니고 `수령님의 초상`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이어서 그는 `장군님의 초상을 휘장으로 단 우리 인민들은 크나 큰 영광인데 당신들은 그것을 모른 다우`라고 강변하였다. 나는 서먹하여 한참 동안 할 말을 잃고 말았다.북한에서 김일성 배지 보급은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수단이고 방책이다. 북한의 개정 헌법은 그 전문에서는 김일성을 `조선의 시조, 위대한 혁명가, 영도 예술의 천재`로 선포하여 절대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민들은 김일성을`영원한 주석` `민족의 태양`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배지를 왼쪽 심장위에 언제나 패용해야하고, 가정에서도 수령의 초상화를 집집마다 비치해야 한다. 북한주민들은 제사지고 모든 집회를 열고, 투표할 때도 수령의 초상 앞에서 엄숙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북한에서의 김일성과 김정일 수령은 남한 사회에서의 하느님이나 부처님 이상의 대접을 받을수 밖에 없다.세계 어디를 가도 그 나라 통치자의 초상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러시아에서 레닌의 동상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레닌의 배지는 여행객의 기념상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아직도 수령의 초상휘장, 초상화, 동상을 포함한 모든 출판물 등을 유사시 안전한곳으로 모셔야한다고 정하고 있다. `김일성 수령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신다`는 통치 슬로건이 나부끼는 한 김일성 배지도 존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땅에서 실질적인 정치 변혁 시 때 수령의 배지도 사라질 것이다.

2015-06-29

광복70돌 8·15 남북 공동기념행사 성사되길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방 70주년 광복절이 다가 오고 있다. 광복 70년은 사실상 분단 70년의 고통의 세월이다. 민족의 완전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에 있는데 아직도 통일의 물꼬는 트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아시안 게임 때는 북한의 권력 실세들이 인천을 다녀갔고 곧이어 남북의 대화가 재개될 듯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남북관계는 군사적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고 남북의 대화는 속개되지 않고 있다. 최근 남북이 심양에서 합의 했던 민간 주최의 6·15 공동 선언 기념행사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번 8·15 광복절 남북 공동 행사는 반드시 복원되기를 소망한다. 2차 대전 후의 지구상의 분단국은 모두 통일이 성취되어 분단의 상처를 극복하고 있다. 우리와 입장이 비슷했던 독일은 25년 전인 1990년 통일이 이룩되어 유럽의 중심국으로 우뚝 서 있다. 우리가 우려했던 1975년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도 도이 모이(Doi Moi)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발돋음 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도 국공(國共)의 대화가 재개되고, 항로가 개설되고 투자가 활발하여 `사실상의 통일`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해방 70주년 8·15는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다행히 이달 들어 남북의 대화를 위한 조그마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북한이 그간 억류했던 남한 여행객 부부를 조건 없이 판문점을 통해 석방하였다. 남한은 울릉도 근해에서 표류 중이던 북한 선박과 선원 5명을 북으로 송환하였다. 또한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에 북한 당국은 대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하였다. 7월 3일 개막되는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 선수들이 참가할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광복 70주년인 올해는 남북 간의 대화가 재개될 전망이 어느 때 보다 높다. 그것은 남북 당국의 현재의 상황과 입지가 남북 대화를 추동하기 때문이다.우선 북한 측 입장부터 보자. 김정은 정권은 2011년 12월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갑자기 정권을 승계하였다. 3년이 지난 김정은은 초기의 정권 불안정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대화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남북 대화는 정권의 안정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교적 고립을 면치 못하는 북한 당국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의 전제인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갈망한다는 내심을 은연중 표출한 바도 있다.박근혜 정부도 남북대화와 관계 개선은 시급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신뢰 프로세스나 드레스덴 선언도 남북 대화 없이는 한 걸음도 진전할 수 없는 사안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의 올해는 벌써 임기 5년의 과반을 넘기는 해이다. 이 시기에 대북관계의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하면 임기 중 남북관계의 진전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남북관계의 개선을 공약했던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되풀이 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 이은 박근혜 정부도 또다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비판은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광복 70년 광복절을 앞둔 이 시점에서 정부는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보다 전향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본 난을 통해 여러 차례 강조하듯이 정부는 `작은 걸음 정책`의 일환으로 남북 대화부터 재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남북 대화의 걸림돌인 5·24 조치를 과감히 해제할 필요도 있다. 물론 북한당국의 한미 군사 합동 훈련의 중지 요구도 동시에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 광복 70주년 8·15 광복절이 남북 공동의 기념행사가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5-06-22

북한 땅에서 부르고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엄격히 통제되는 북한 땅에도 한류(韓流)라는 바람이 불고 있다. 한류는 1990년대 말부터 중국에서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이 동아시아 일대로 확산된 문화 현상이다. 2000년 이후에는 한국의 드라마·가요·영화 등 대중문화뿐 아니라 김치·고추장·라면·가전제품 등 한국 관련 제품의 이상적인 선호현상까지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한류가 북한 땅에도 남한의 노래를 조심스럽게 선호하는 바람으로 일고 있다. 평양에서는 벌써 남쪽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북녘 사람들이 한동안 `찰랑 찰랑 잔에 담긴 위스키처럼`이라는 노래를 선호했다는 탈북자 증언도 있다. 2007년 북한 금강산 호텔 맨 위층 맥주홀에서 북한의 아리따운 여성 복무원이 구성지게 부르던 `나그네 설움`이 갑자기 떠오른다. 당시 북한당국은 분단 전 일제하에 부르던 흘러간 노래를 `계몽기 가요`라는 이름으로 해금한 결과이다. 여하튼 남북주민이 같이 부르는 노래가 늘어날수록 민족의 정서는 공유할 수 있어 환영할만한 일이다.북한에는 남한의 드라마도 몰래 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상인들을 통해 입수한 남한 복제판 CD가 상당히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탈북자는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단속에 걸려 고초를 격은 이야기를 털어 놓기도 했다. 문제는 그것을 단속한 북한 보안 요원들이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보다가 거기에 매료되어 이제 당 간부들 까지 몰래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령에 대한 충성 일변도의 북한의 혁명적인 영화에 실증 난 북한 주민들이 달콤한 애정 행각을 그린 남쪽 영화에 대리만족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나아가 북한 땅에도 휴대 전화가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인구의 10%가 넘는 약 300만 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평양에는 4~5명중 한명이 휴대 전화를 사용하고, 그것이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단다. 청춘 남녀의 데이트 약속까지 휴대 전화가 이용되고, 장마당의 상인들에도 휴대 전화가 있어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휴대 전화는 이집트의 오로라와의 합작품이지만 아직도 국제 전화 로밍은 허용치 않고 있다. 2008년 북한 당국이 휴대 전화의 악영향을 우려하여 보급을 중단시킨 적도 있지만 이제는 북한에서 그것은 막을 수 없는 통신 수단이 되어 버렸다.개성 공단을 통해 보급된 남한의 초코파이가 북한 장마당까지 진출한지 오래다. 북한당국은 이를 차단하기 위하여 북한산 초코파이 `경단 설기`를 만들어 개성 공단 노동자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남쪽 바람을 하나라도 막아 보자는 취지이다. 북한의 400여개로 늘어난 종합시장에는 남한의 쿠쿠 전기밥솥을 찾는 사람도 있고, 남한의 담배까지 고가로 암거래 되고 있단다. 평양에서는 햄버거와 피자가게뿐 아니라 커피숍까지 등장하고 호텔에는 양주 코너까지 등장하였으니 북한의 변화되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동독인들은 1990년일 독일 통일 전 80% 이상이 서독 텔레비전에 매료되었다. 독일 통일 전 이미 동독인들은 서독의 영화, 노래, 축구에 매료되어 소위 `타락한 자본주의`(?)를 미리 체험했던 것이다. 북한 당국은 아직도 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남한 식 자본주의 병폐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화는 국경이 없기 때문 남쪽의 한류라는 바람을 근본적으로는 막을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은 이제 서방의 시원한 바람은 수용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적 독충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변명하고 있다. 소위 모기장을 튼튼히 처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은 결코 당국 간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서 성취될 수 없다. 북한에서 조심스럽게 불고 있는 한류라는 미풍을 강풍으로 바꾸기 위한 방도를 시급히 마련하여야 할 시점이다.

2015-06-15

메르스와 세월호, 대처 방식이 너무 닮았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메르스(Mers)의 충격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4월 15일 세월 호 참극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는 데 충격적 사태가 다시 벌어 졌다. 메르스의 공포 앞에 정부가 신속한 대책을 수립치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 그 때와 너무 닮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으로 소리는 요란하지만 실효가 없는 모습도 과거와 같다. 국민 총생산 10위권의 대한민국이 왜 이 같은 후진국적 사태가 빈발하는가. 우리의 국격(國格)을 위해서라도 근원적이고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지난 해 세월호 사건 때 정부의 초동 대처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선장은 도망가고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 재난본부가 겉돌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메리스 충격에 대한 질병 대책본부와 국민안전처, 보건복지부의 대처방식이 세월 호 참사 때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정부는 메르스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관련기관과 공유치 않았다. 오죽했으면 서울 시장이 심야에 긴급 기자회견을 했으랴. 보건 복지부는 이를 반박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무 보건복지장관의 횡설수설하는 기자회견에 귀를 기울이는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이번 역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모습은 15일 동안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시 대통령의 8시간의 묘연한 행방이 억지 추문으로 이어진 과거와 비슷하다. 초반부터 체계적이고 강력한 중앙대책 본부를 마련하지 못하고 보름만에 대책회의를 소집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15일 만에 국립 중앙의료원을 찾았을 뿐이다.정부의 대한 불신이 증대하는 것도 세월호 참사 때와 비슷하다. 보건복지부는 감염자가 늘어나고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아직 우려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시설 등 임시 수용 시설이라도 이용해야 하는데 `자가 격리`로 통제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세월 호 참사 때와 같은 악성 루머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고 나섰지만 그 책임이 정보를 제공치 않은 정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민이 나서서 메르스 이동 지도를 만들고, 언론이 나서서 초기 감염병원을 폭로하지 않는가. 보건 당국의 이 같은 태도가 정부에 대한 불신만 자초한 셈이다.세월호 사건 이상으로 이번 메르스 공포가 미치는 파장은 심각하다. 세월 호 사건처럼 우리의 소비 경제가 현저히 위축되고 있다. 수도권 일대에서 수천 개의 학교가 휴업하였다. 벌써 중국 관광객 천여 명이 한국 여행을 취소하는등 한국 여행객이 40%이상 감소하였다. 의료 선진국이라고 자부 했던 이 나라에 기초방역망이 뚫려 버렸으니 할 말을 잃었다. 조선 왕국임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이 세월호의 전복으로 할 말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의 의료 성형술이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의 손님을 불러 모으고 사우디에까지 우리의 병원이 수출되었는데 이를 어찌 할 것인가.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 소재는 차후의 문제이다. 여야가 정쟁을 중단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문제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고, 중앙과 지방 정부가 따로 없다. 정부는 의료 정보도 즉각 공유하고 공동 대책을 신속히 세워야 한다. 정부는 준전시 상황과 같은 차원에서 메르스에 대한 긴급 대책을 수립하여한다. 국가의 재난이나 긴급 사태 발생 시 허둥대다가 임기응변식으로 대충 처방 하는 방식은 이제 끝나야 한다. 정부는 정치 개혁 앞서 상부의 눈치만 보고 지시만을 기다리는 공직사회 기강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정부의 반복적인 대처 방식은 이제 끝나야 한다. 정부가 이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어야 국민들은 대통령과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2015-06-08

북한 통치자 형제들의 엇갈린 운명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의 친형인 김정철의 모습이 런던에서 포착되었다. 스위스 베른에서 잠시 유학한 그가 에릭 클랩톤의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그는 2011년에도 싱가포르의 클랩톤 공연장에도 참석할 정도의 광팬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통제되고 폐쇄적인 사회하에서 김정철의 모습은 한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수령의 친형이 `세상을 바꾸자`(change of the world)고 노래하는 스타의 공연장을 찾은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한 일이다. 북한의 최고 통치자의 권력의 승계과정은 봉건 왕조 체제의 세습 형태와 같다. 왕자 중에 선왕의 뜻에 가장 합치하는 인물이 왕세자가 되고, 권력의 이양 시기는 선왕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500여년 조선 왕조사에서 왕이 재임 중에도 왕권을 이양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선왕의 승하로 왕권이 왕세자에게 이양되었다.북한의 두번의 권력 세습은 전임 수령의 사망으로 승계되었다.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를 표방한 공산국가에서 백두 혈통을 통한 봉건적인 권력 승계는 기이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북한의 수령체제하에서 권력을 승계 받지 못한 형제들의 운명은 엇갈리고 있다. 조선조 세자로 책봉 받지 못한 형제들의 운명과 비슷한 것이다. 해방 후 정권을 장악한 김일성은 차남 김정일을 일찍이 후계자로 선정하였다. 김일성은 동생 김영주가 있었지만 김정일을 1974년부터 당직을 부여하여 후계자로 기른 셈이다. 김정일이 후계자 책정된 후 동생 김영주는 노동당 비서직도 사직하고 권좌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김영주는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시 북측 조절위원장으로 잠시 얼굴을 내밀었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1994년 8월 7일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권력은 김정일로 승계되었다. 김정일은 3년간 `유훈통치`를 거친 후 1998년 총비서가 되었다. 김정일은 계모 김성애 소생인 이복동생 김평일을 북한 권력의 핵심구도에서 배제하였다. 김평일은 1979년에 유고 주재 북한 대사관 무관으로 임명되고 1988년 주 헝가리 북한대사, 1989년부터 유럽 연합의 대사로 전출되었고, 그 뒤 불가리아 대사, 핀란드대사를 거쳐 폴란드 대사를 맡았다. 그는 2015년 1월 체코 대사로 이동되어 36년간 북한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구분키 어렵지만 그는 현재도 동구를 떠돌고 있는 셈이다.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열차 안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다. 김정일은 전처와 후처 사이에 아들 셋을 두었기 때문 권력의 승계 문제는 세인의 관심이 되었다. 그의 권력은 결국 3남 김정은에게 승계되었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해외로 떠돌다 일찍부터 권력의 승계 대상에서 밀려나 있었다. 김정남은 오늘도 홍콩과 마카오 등지를 오가며 방황하고 있으며 불행히도 부친의 사망 시에도 북한 땅을 밟지 못했다. 한편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도 권력 승계를 받지 못했는데 선고 김정일의 눈에 미덥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역시 동생 김정은 체제하에서 북한 땅에서 살아갈지 이번의 행각처럼 유럽을 떠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러한 북한식 왕조 세습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김정은 정권의 불안감이 증대될수록 그의 측근뿐 아니라 친인척에 대한 통제도 강화 될 전망이다.이러한 상황에서 권력에서 밀려난 백두혈통 형제들의 운명은 평탄하지만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권력 세습에 대한 반감이 집단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그대로 갈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권력의 또 한 번 더 세습은 어려울 것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2015-06-01

북한의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 숙청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한의 반당·반혁명 분자 숙청은 정적의 제거 수단이다. 김일성 공산 정권 수립 후 60여 년 동안 반대파를 제거하는 반혁명 종파 사건은 수없이 많이 자행되었다. 6·25 전쟁 직후 남로당 출신 박헌영은 미국의 스파이 누명으로 친소파 허가이는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혀 숙청되었다. 1956년 최창익·박창옥의 숙청도 대표적인 반혁명 종파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1976년 당시 부주석 김동규와 사회 안전 비서 류장식도 종파 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다. 북한의 반혁명 종파 사건은 김정일 정권하에서도 계속되었다. 2009년 화폐 개혁에 실패한 당 재정 부장 박 남기의 처형 등이 대표적인 숙청 사건이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북한에서 김정은의 정치적 불만세력에 대한 숙청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지난 2012년 7월 인민군 참모장 리영호의 숙청, 12월의 고모부 장성택의 처형, 이번의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의 제거 등이 대표적인 종파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북한 김정은이 상대를 반혁명 종파 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식은 선대와 거의 차이가 없다. 수령의 노선에 불만이나 이견을 제시하는 자, 수령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거나 비리에 연루된 자는 반당·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힌다. 북한에서 이들의 제거 방식은 가벼운 강등이나 철직 등에서 부터 정치범 수용소 감금이나 공개 처형에 이르기 까지 잔인하게 이루어진다. 국정원은 김정은 정권이후 2012년 3명, 2013년 30명, 2014년 31명, 2015년 8명이 72명이 처형되었다고 보고 하였다. 가히 현대판 공포 정치가 북녘 땅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김정은 정권하에서 이러한 무자비한 숙청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젊은 김정은의 권력이 아직도 불안정하다는 증거이다. 김정은은 선대인 김정일의 선군 정치를 권력 보위의 수단으로 삼았지만 권력의 안정성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통치 경력의 일천함과 미숙함이 정책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의 통치력의 불안과 경제 위기의 극복이라는 이중적 강박증이 숙청으로 이어지고 있다.북한의 이러한 공포 정치의 분위기하에서 젊은 수령의 행차 시에는 늙은 당·군의 간부들은 반드시 수첩을 들고 수행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수령 옹위의 3대 기둥은 당, 인민, 군대이지만 실질적으로 수령을 옹위하는 세력은 당과 군의 핵심 권력층이다. 이로 인해 당과 군부의 간부들은 다투어 수령에 대한 충성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권력 실세인 장성택의 처형은 당 간부나 군 간부들에게는 엄청난 경고 메시지를 주었을 것이다. 결국 수령 결사 옹위야 말로 북한 권력 실세들의 자신의 신변 보호수단이며, 사회 정치적 생명의 연명 수단이다.그러나 역사에 정적 제거를 위한 공포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로마 제국의 폭군 네로, 프랑스 혁명 전 단두대 서슬로 유명한 루이 16세, 극악무도한 히틀러의 정적 제거, 러시아 혁명 후 피바람 불었던 스탈린의 숙청도 결국 역사의 단죄를 받고 말았다. 스탈린은 “한 사람의 죽음은 슬프게 여기지만 100만명의 죽음은 단지 통계 숫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여 그의 잔혹한 숙청과 처형 심리를 읽게 했다. 20세기 악명 높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 캄보디아의 폴 포트, 이라크의 후세인도 결국 처형되고 말았다.북한의 반당·혁명 분자의 척결이라는 공포 정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산주의 혁명을 겪지 않는 북한 땅에서 반혁명 분자 숙청은 독재의 명분일 뿐이다. 반당 분자도 따지고 보면 북한 전체주의의 집단 옹호 수단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면서 광기를 노출하지만 반드시 단죄 된다는 것이 세계사의 교훈이다. 북한 땅에서 공개 처형이라는 공포정치는 시급히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2015-05-18

짐 로저스의 `북한 급변설`이 흥미롭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최근 북한의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과거 중국의 등소평 시대 보다 빠르게 변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홍콩에서 CNN과 가진 한 인터뷰에서 “할 수만 있다면 가진 돈 전부를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와 홍콩에 거주하면서 동양적 전통과 가치를 선호하고 있다. 그는 이미 2012년 북한에서 발행한 금화를 대거 매입했으며, 지난 1월에도 북한의 미래를 낙관한 적이 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통일이 머지않아 가능하다`고 언급하여 우리의 흥미를 끌고 있다.로저스는 1942년에 미국에서 출생하였다.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1969 퀀텀 펀드를 설립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여 세계적 투자의 귀재가 되었다. 현재 로저스 홀딩스의 회장인 그의 이러한 예측은 타당성이 있는가.로저스의 이러한 발상이 기발한 착상인지 잘못된 착각인지는 현재로서는 분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무책임한 정치 선동가도 아니고, 국제 정세와 글로벌 경제 상황을 냉철히 분석하여 투자하는 전문가이기에 그의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현재 까지 그는 그 나름의 비범한 방식의 투자를 통해 부와 명예를 획득하였기에 그의 예측은 맞을 수 도 있다. 국제 정세를 예측하고 글로벌 경제를 읽고 분석하는 그의 입장이 국제 정치학자들의 이론이나 입장보다 때로는 앞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여기에서 북한 김정은이 급격한 변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로저스의 주장 근거를 몇 가지 추론해 보기로 한다. 최고 통치권자의 명령이 법이 되는 북한체제에서 김정은의 스위스 베른의 2년 유학 경험은 그의 리더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그의 서구의 풍요로운 경험이 평양의 놀이 공원, 수영장 개장, 마식령 스키장의 건설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북한의 궁핍한 경제 사정과는 달리 `인민을 위한 복지 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최고 통치자의 명령 때문이다. 그는 선대와 달리 커플 시계를 차고, 팝콘과 담배를 즐기고, 부부 동반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그는 경비행기를 직접 운전하는 모습도 공개하고, 고소 공포증으로 열차에만 의존하는 김일성 김정일과 달리 비행기 여행을 즐기고 있다. 북한 김정은의 이러한 변화된 행태는 정책 변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 로저스는 이를 북한 체제의 변화 조짐으로 판단했을지 모른다.경제 분석가인 로저스는 북한의 급변을 북한 경제의 투자 여건에서 분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땅에는 미개발의 지하자원이 많고 아직도 희토류뿐 아니라 마그네사이트 등 대량 매장되어 있다. 사실 북한은 그들의 합영 법에 따라 외국의 투자만 잘 유치하면 그들의 넉넉한 노동력도 경제 발전의 엔진이 될 수도 있다. 개성 공단이 10개 정도로 확대되면 북한의 변화는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북한의 생산물은 확대일로에 있는 300여개 북한 시장 뿐 아니라 인접 중국과 러시아의 거대 시장으로 수출도 가능하다. 북한은 대륙 철도만 유럽으로 연결되면 그 수송비용은 반감되고, 수송 속도는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동북아의 물류와 금융 허브로 태어 날수도 있는 것이다.사실 그의 부친 김정일도 북한 경제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30대 초반의 김정은은 그의 권력의 안정 장치만 확고하다면 과감한 정책 변화를 시도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급변과정에서 북한 정권 붕괴라는 위험요인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북한 김정은이 과감한 정책 변화를 펼 수 없는 디램마이다. 로저스의의 북한 급변 론은 이러한 문제까지 포함한 한반도 통일을 상정했는지 의문이다.

2015-05-11

새정치연합은 재보선 참패 원인을 직시해야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일반적인 예측과는 달리 새정치연합이 4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완패하였다. 야당 지지기반이 강한 관악 을은 물론 광주에서도 새정연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성완종의 부패 스캔들이 폭로된 호재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참패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야당의 이러한 참패 원인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새정연의 보선 패배에는 야권의 후보 분열이 크게 작용하였다. 사실 야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관악 을, 광주에서는 탈당한 정동영과 천정배가 출마함으로 일찍부터 2:1의 선거 구도가 자리 잡았다. 새정연은 그래도 선거 막판에는 야당 후보에게 표가 몰릴 것을 막연히 기대 했으나 그 같은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물론 이들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사전에 막지 못한 당 지도부의 원초적 책임도 배제 할 수 없다.둘째, 새정연의 당내 분열과 갈등이 선거 패배를 자초하였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당대표 경선 시의 문재인과 박지원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는 셈이다. 당내의 친노와 반노, 비노, 중도라는 내분 구도가 이번 선거 결과에도 반영되었다. 문재인 대표의 친노에 대한 비노나 동계동 계의 반발이 선거 과정에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동분서주한 `나 홀로 지원 유세`에는 야권의 인기 있는 지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문수, 오세훈까지 동원된 여당의 유세전과는 너무 대조를 이루는 장면이다. 여야 격돌 가능성이 예상되는 보선에서 야당이 전략 공천을 배제하고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의 후보 선정방식에도 문제가 있고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셋째, 선거전에서 새정연의 전략 전술의 혼선이 패배를 자초하였다. 새누리당의 `지역 일꾼론`이 오히려 유권자의 관심과 지지를 얻은 셈이다. 새정연의 `정권 심판 론`은 유권자들에게 구태의 정쟁으로만 비쳐져 버렸다. 야당의 인사 실패, 경제 실패, 부정부패라는 3패 정권 심판 론은 역으로 보수층만 결속시켰다. 결국 야당은 선거 초반에 터진 성완종 부패 리스트라는 호재를 선거전에 활용치 못하고 역공을 받은 것이다. 여당의 성 완종의 리스트에 대한 사면 문제 제기에 문재인 대표의 부적절한 대응 방식이 문제라는 주장도 많다.이러한 세 가지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제 1야당의 보선 전패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의 야심찬 `이기는 정당`의 슬로건은 결국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벌써 보선 참패에 대해 박주선 의원 등은 당 지도부의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다. 광주에서 당선된 천정배 의원은 내년 총선에 앞서 뉴 디제이 호남 신당을 창당하여 새정치연합과 대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호남 지역 신당을 창당하여 새정연에 도전하여 야권의 정개 개편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망국적인 지역 정당의 망령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지역 정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한데 그것은 제 3당 출현과 실패가 보여준 교훈이다. 지역 신당 출현은 호남 민심도 아닐 것이며, 야권 분열에만 기여할 것이다.여하튼 출범 석 달도 안 된 문재인 대표의 새정연은 보선 전패로 당 내외의 도전으로 또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당의 통합과 쇄신을 동시에 이루어야하는 이중적 딜레마 앞에 서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해결하기 쉽지 않다. 문재인 대표는 우선 약속대로 당내의 누적된 계파부터 해소해야 한다.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한 변증법적인 합의과정은 당의 이미지는 추락시킬 수 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경구를 지금 야당 현실에서 눈으로 보는 듯하다. 새정연은 당을 혁신하여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이고 국민적인 신뢰를 회복하여야 한다. 결국 야당이 이렇게 탈바꿈하지 않고는 내년 총선뿐 아니라 2017년 대선의 결과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2015-05-04

성완종 파문의 긴급 수습책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 자금 리스트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대통령의 남미 순방도 보궐 선거도 뉴스의 뒷자리로 밀리고 있다. 고인의 윗 주머니에서 8명의 명단과 정치 자금인지 뇌물인지 모를 액수가 공개되고, 자살직전의 언론사의 녹취록까지 전면 공개되었다. 문제의 리스트에는 전 현직 비서실장 3명, 3명의 자치 단체의 장, 전 사무총장, 현 총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가 뿌린 액수가 7억에서 부터 3천만원으로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검찰에서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는 총리와 경남지사부터 소환할 전망이 우세하다. 아마 두 분은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완구 총리는 리스트 상 액수가 가장 적은데도 정치적 상처는 크기 때문일 것이다. 홍준표 지사 역시 리스트의 다른 사람은 모두 친박 실세인데, 자신은 친박이 아닌데도 성완종의 파편을 크게 맞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사건이 터지자 야당은 야권의 분열로 힘든 보결선거에서 백만 응원군을 만났다고 내심 기뻐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친박 핵심부의 부패 게이트`로 규정하고 여당과 친박은 과거 차떼기 정당의 DNA을 저버릴 수 없다고 맹공을 퍼 부었다. 새누리당도 사건 초기의 당황하던 입장을 바꾸어 노무현 정권하의 이례적인 사면을 질타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그들은 불리한 정국을 `사면 정국`으로 국면 전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대통령 해외 순방 때 마다 터지는 불운한 사태는 국민들을 불안케 한다. 남미 4개국을 순방 중인 대통령의 심기는 매우 편치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1년차는 총리와 장관 후보의 낙마와 윤창중 스캔들로 얼룩졌으며, 집권 2년차는 세월호 참사로 국정의 혼미를 초래하였다. 새롭게 출범하려는 집권 3년차는 정부 여당의 비리 척결 선포 후 터진 성완용 파동은 `자살 폭탄`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부패척결을 밀어 붙이던 총리가 제 발등을 찍은 꼴이지만, 그 파장은 관련자 뿐 아니라 정부 여당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대통령은 먼저 오늘 귀국 후 성완종 파문을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의심받는 측근부터 정리하여야 한다. 총리의 사퇴는 기정사실화 되었지만 대통령은 과거처럼 시간을 끌지 말고 후임 총리를 신속하게 임명하여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후임 총리 인선 범주를 종래의 친박이라는 좁은 굴레부터 탈피해야 한다. 대통령은 동시에 리스트에 기재된 현 비서실장도 빠르게 교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검찰이 청와대나 정부로 독자적으로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해 주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현 비서실장은 성완종의 리스트에는 정치 자금 액수가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성완종의 녹취록에는 `내가 0 0하면 그 사람 물러나야 할 텐대` 라고 분명히 녹음되어 있지 않는가.정부가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거나 특정인이나 세력을 비호하거나 묵인할 경우 엄청난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벌써 이 사건 관련 피의자들의 외압의 증거가 언론에 소상히 보도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과거의 인사 파동이나 지난해의 청와대 문고리 권력과는 문제의 본질이 다르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그 처방도 달라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 여당도 과거처럼 대통령 눈치만 보지 말고 난국 타개의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와도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정치 개혁안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대통령은 이 사건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잘 처리할 경우 국정 추동력은 회복할 것이지만 그것에 실패할 경우 대통령의 네임 덕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15-04-27

국무총리의 `말 바꾸기`와 도덕성 추락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정부가 부패와 비리척결을 선포한지 달포 만에 그 선언의 당사자인 총리가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과 경찰을 담당하는 안행부 장관을 배석하고 자원비리 관련 부패척결을 선언하던 총리의 비장한 모습이 오버래핑 되고 있다. 몇 달 전 아들의 병역 비리, 언론에 대한 부적절한 처신 등으로 아슬아슬하게 인사 청문회를 통과한 총리가 검찰의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고인이 된 성완종 전 경남 기업회장의 뇌물 폭로 리스트는 그 진위를 떠나 현재 정치권의 폭풍이 되고 있다. 내각의 총리와 전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현직 도지사 3명 까지 포함된 이 리스트가 검찰 손에 맡겨져 있다. 메모와 녹취록에 대한 조사도 사실상 쉽지 않지만 설령 그 결과가 발표되더라도 국민들이 그것을 어느 정도 신뢰할지도 의문이다. 대체로 죽은 자에 대한 관용과 동정심이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그 정치적 파장은 만만치 않고 오래갈 전망이다.이완구 총리의 국회의 답변이나 해명은 그에 대한 불신만 증대 시키고 있다. 그의 발언은 성완종 전 회장을 잘 모른다는 말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고인의 메모에 나타난 지난 1년 반 동안 23차례 만남은 그의 주장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누가 보아도 친밀한 관계로 보이는 양인간의 관계를 부정하는 그의 언행은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때 혈액암 투병으로 선거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총리의 주장도 3차례의 연설 장면이 동영상에 노출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지난 보선 때 그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고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는 그의 주장까지 신뢰하기 어렵게 되었다. 고인으로 부터 `단 한 푼이라도 받았다면 목숨을 걸겠다`는 그의 결백성 표현은 총리의 위상까지 떨어뜨렸다.사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위급한 경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순간적인 변명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총리의 여러 차례의 반복된 `말 바꾸기`와 `거짓말 논란`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이번 총리의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처 방식은 우리를 또 다시 실망시키고 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에 이른다`는 경구는 비단 고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그간 총리의 대처 방식은 3천만원 수뢰 등 법적 공방보다 심각한 양심과 도덕성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임기응변적인 변명이 더욱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행정부의 수장인 총리의 그 간의 언행을 지켜보는 100만 공무원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국회에서`말 바꾸기`문제를 집중 거론하자 총리는 `충청인들의 말투가 그렇다`는 답변을 하였다. 이러한 총리의 자기변명 식 답변은 충청 인들의 자존심까지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문제는 거짓말 하던 늑대 소년의 우화처럼 이제 총리가 진실을 말해도 신뢰하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권의 대권 후보로 까지 부상하던 총리의 패기 차고 늠름한 모습이 국민들 눈에는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총리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그가 어찌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등 정치개혁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불신은 정부여당,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는데 문제가 있다.예리넥(Jellineck)이라는 법 철학자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규정하였다. 총리의 법적인 책임 문제에 앞서 도덕적으로 이처럼 상처 난 총리가 어떻게 정치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겠는가. 이제 총리는 대통령이 귀국 후 총리 거취를 결정하기 전 스스로 입장을 정리해야할 시점이 되었다. 하루 빨리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그나마 실추된 그의 도덕성 실추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201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