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부착하지 않고 공개 석상에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며칠 전 북한 고사포 군관 학교 방문과 평양 생물기술 연구원 시찰 시 배지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이러한 파격적인 행적을 두고 그 배경에 관한 해석도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집권 4년차인 그가 홀로서기를 과시한 행동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일종의 해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남북관계가 순조로울 때 북녘 땅의 사람을 많이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들과의 처음 만남에서 김일성 배지를 달고 나타난 그들의 모습에 상당히 긴장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이나 유럽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중에는 왼쪽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북한의 종교인, 관광 안내원, 협동 농장의 관리원, 아나운서. 가수, 북한의 대학의 교수들은 모두 정장이나 간편복 구분 없이 배지를 달고 다녔다. 공식적인 남북회담 시에도 북한 측 대표들은 그 배지를 달았고, 이에 상응하여 우리 대표들도 태극 배지를 달고 회담에 임하였다.1970년 노동당 5차 대회이후 북한 당국은 전 주민들에게 김일성 배지를 달도록 지침을 내렸다.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배지는 초상(肖像) 휘장이라고 부르고 그 종류도 세 가지로 분류된다. 당 간부나 군단장이상의 간부가 패용하는 김일성·김정일을 나란히 세긴 쌍상(雙像), 중간 간부들이 패용하는 김일성의 초상만 넣은 단상(單像), 일반주민들이 주로 패용하는 작은 크기의 목란상이 그것이다. 모두 붉은 바탕에 수령의 얼굴을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계급 없는 사회를 표방하는 북한 땅에서 주민들이 휘장부터 직책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남북 학술회의에서도 나는 그들이 패용한 그 배지에 눈이 갈수 밖에 없었다. 김일성 수령의 사진을 가슴에 단 그들의 모습이 이방인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의 배지에 대한 거부감은 그 동안의 우리의 반공 교육에 따른 레드 콤플렉스일지도 모른다. 나는 몇 차례 만나 비교적 얼굴이 익은 북한 학자에게 `그 배지를 왜 다느냐`고 넌지시 물어 본적이 있다. 그의 답변은 그것은 배지가 아니고 `수령님의 초상`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이어서 그는 `장군님의 초상을 휘장으로 단 우리 인민들은 크나 큰 영광인데 당신들은 그것을 모른 다우`라고 강변하였다. 나는 서먹하여 한참 동안 할 말을 잃고 말았다.북한에서 김일성 배지 보급은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수단이고 방책이다. 북한의 개정 헌법은 그 전문에서는 김일성을 `조선의 시조, 위대한 혁명가, 영도 예술의 천재`로 선포하여 절대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민들은 김일성을`영원한 주석` `민족의 태양`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배지를 왼쪽 심장위에 언제나 패용해야하고, 가정에서도 수령의 초상화를 집집마다 비치해야 한다. 북한주민들은 제사지고 모든 집회를 열고, 투표할 때도 수령의 초상 앞에서 엄숙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북한에서의 김일성과 김정일 수령은 남한 사회에서의 하느님이나 부처님 이상의 대접을 받을수 밖에 없다.세계 어디를 가도 그 나라 통치자의 초상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러시아에서 레닌의 동상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레닌의 배지는 여행객의 기념상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아직도 수령의 초상휘장, 초상화, 동상을 포함한 모든 출판물 등을 유사시 안전한곳으로 모셔야한다고 정하고 있다. `김일성 수령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신다`는 통치 슬로건이 나부끼는 한 김일성 배지도 존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땅에서 실질적인 정치 변혁 시 때 수령의 배지도 사라질 것이다.
201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