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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 북한 식당의 외화벌이 일꾼들

등록일 2015-08-03 02:01 게재일 2015-08-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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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해방 7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와 함께 만주의 항일 운동의 전적지를 찾는 기행을 떠났다. 이번 탐방의 목적은 두만강 주변의 청산리 등 항일 전적지를 찾아보는데 있었다. 우리 일행은 먼저 북한 신의주가 눈앞에 보이는 중국의 단둥부터 찾았다. 단둥은 화려한 고층 빌딩 숲이 늘어나고 밤에는 네온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압록강 건너 신의주는 변하지 않고 3년 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단둥의 고층 호텔에서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컴컴한 신의주를 바라보는 필자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휘황찬란한 단둥의 고층 빌딩의 불빛을 바라보는 신의주 동포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북한 신의주 쪽의 서치라이트 불빛만이 밤새도록 압록강 하구를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 겅 건너 신의주는 침묵만 흐르는 유령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찾은 북한 식당 `고려 관`에는 북한 수령의 초상을 가슴에 단 북한 안내원들의 모습은 예나 다름없이 분주해 보였다. 더덕 무침 등 북한식 음식이 중국식 회전 식탁에 여러 접시 올라왔다. 일행 중 한 명이 호기심에서 북한 소주 한 병을 급히 주문하였다. 한국의 소주 보다 약간 병이 큰 `평양 소주`가 나오자 북한 봉사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한 병 가격이 중국 돈으로 250위안 한화 5만원을 넘는 값이다. 북한 식당이 중국식당보다 값이 비싸다는 것은 익히 알지만 5만원 짜리 소주 값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체면상 주문을 취소할 수도 없어 억지 춘향 격으로 씁쓰레한 평양 소주잔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찾은 북한 식당은 이제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순진하고 친절했던 옛날의 봉사원들의 모습은 오간데 없다. 무조건 매상만 올리자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식사 중 등장한 여성 5인조 중창단은 노래만 3곡 부르고 서둘러 떠나 버렸다. 기타를 메고 정성들여 불러주던 `반갑습네다`의 모습은 이젠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이 권하는 500위안 짜리(한화 10만원) 들쭉술을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북한 봉사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공연 계획이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과거 `동포 여러분 밥갑습네다`하면서 우리를 환대하며 다가와 가슴이 약간 저며 오던 모습은 이제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

북한 당국은 외화 벌이의 수단으로 중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 곳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연길 북한 식당 `해당화`에서 만난 북한 여성 종업원에게 언제쯤 집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장군님의 허락이 나야 합니다.`라는 이상한 대답만 들었다. 이들은 당에서 파견된 조장의 지시에 따라 엄격한 합숙 생활을 하면서 외화 벌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고 외화가 부족한 북한 당국으로서는 식당운영이 그들 재정에 도움이 될듯 하지만 종업원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통제된 북한사회에서 이러한 해외 파견 근무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중의 하나이다. 이들 종업원들의 선발 기준은 우선 인물이 좋아야 하고, 학벌과 집안의 배경이 좋아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한 경제가 호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이들의 해외의 외화 벌이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북한 당국은 금강산 관광 수입마저 단절된 현 시점에서 이들을 외화 벌이 전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이나 단둥 등지에서 북한 식당이 늘어나고, 러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오지까지 식당 진출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 당국은 이들 뿐 아니라 중동 건설 현장, 시베리아 벌목 현장, 심지어 아프리카 등지에 까지 노동자를 외화 벌이의 일꾼으로 파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이러한 외화 벌이 노력은 북한 재정에 다소 도움이 되지만 위기 극복의 대안은 될 수는 없다. 어쩌다 북 녁 동포들이 이국땅 식당과 공사판에서 혹사당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는가. 분단의 비극은 이산가족의 슬픔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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