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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유람선상에서 마주친 북한 무역일꾼

등록일 2015-08-31 02:01 게재일 2015-08-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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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 달 광복 70주년 기념 만주의 항일 유적지 탐방 길에 오른 적이 있다. 신의주를 떠난 우리 일행의 버스는 고구려의 박작 산성 부근의 일보과(一步過)선착장에 차를 세웠다. 일보과란 중국에서 한 발짝만 떼면 북한 땅에 닺는 곳이라는 뜻이다. 중국 땅에서 3m 거리에 있는 있는 북한의 섬 윤중도와 건너편 북한 땅을 가로 지르는 유람선을 타기 위함이다. 일행 40여명이 탄 중국 유람선은 물살을 가르며 북한 땅 가까이 가고 있었다. 이곳은 묘하게도 양쪽 모두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관광 코스이다.

북한의 옥수수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한의 흰 염소 때만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총을 맨 군인들이 순찰하는 모습도 가끔씩 보였다. 압록강 하구 단둥의 단교 부근의 유람선 여행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경관이다. 북한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들은 무표정하게 우리 배만 쳐다보고 있었다. 국경 경비대원인 북한 군인들의 걷는 모습까지 활기차지 못했다. 몇 해 전 중국의 단둥에서 부터 중국의 땅 끝 방천(防川)까지 여행한 적이 있다. 중국의 단둥은 신의주, 지안은 만포, 삼합은 회령, 도문은 남양, 방천은 멀리 동해까지 을 볼 수 있는 관광 명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나 남한 관광객이 즐겨 찾고 있다. 이곳 일보과 역시 중국 유람선이 압록강을 가로질러 북녘 땅과 사람을 보고 돌아오는 여행 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 유람선에는 우리 일행 뿐 아니라 중국여행객도 개방되지 않은 북한 지역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가 탄 유람선이 중간 쯤 왔을 때 갑자기 북한 쪽에서 온 소형 선박이 우리 배 가까이 바싹 붙었다. 우리가 탄 중국 배에서 밧줄을 내려주니 그 쪽 배에서 잽싸게 자기 배에 묶었다. 50대 중반의 사람이 `조선 물건 사라우`라고 외치고 있었다. 배에는 북한산 산삼 주, 개성 인삼, 조선 담배, 짚으로 포장한 오리 알 꾸러미, 김치까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일행 중 한사람이 술 한 병을 주문하니 중국 돈 100원(한화 2만원)을 달란다. 개성 인삼은 200원, 김치는 20원에 거래되었다. 누가 카메라를 들이 대니 물건을 파는 북녘 사람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물건을 파는 손은 재빨리 움직였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오늘 장사 수지 맞았지요`하니 그는 `위로 다 갖다 바쳐야 합네다`라고 응답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무척 좋아 보였다. 우리는 유람선상에서 뜻하지 않게 북한 경비병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지는 밀거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유람선을 잠시 정지 시키고 배에서 밧줄까지 내려준 중국 선장에게도 그들이 그냥 있을 리 만무하다. 중국의 조선족 보따리장수 들이 북한을 드나들면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지만 북한 주민이 남한 관광객을 상대해 장사하는 모습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게 된 수확이다. 북한은 과거 60년대 후반까지는 남한 보다 경제적 사정이 좋았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보다 형편이 좋았다. 그러나 `자립`을 내세운 북한의 통제·계획 경제는 오늘의 북한 경제를 총체적 위기로 몰고간 것이다. 북한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약 1천불 내외로 추산되고, 중국은 7천불 정도이다. 우리의 2만8천불 국민소득과 비교하면 북한의 열악한 경제를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식량뿐 아니라 회환 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동시에 격고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모두 외화벌이에 혈안이 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 지안으로 가고 있었다. 북한의 민둥산은 여전히 메말라 있었다. 압록강 수풍 발전소 건너 북한쪽 민둥산을 바라보다가 두만 강상에서 마주친 북한 상인이 북한군에서 허락한 무역일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북한 당국은 경제도 군수 경제와 민수 경제로 나누어 외화 벌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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