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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땅에서 부르고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

등록일 2015-06-15 02:01 게재일 2015-06-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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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엄격히 통제되는 북한 땅에도 한류(韓流)라는 바람이 불고 있다. 한류는 1990년대 말부터 중국에서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이 동아시아 일대로 확산된 문화 현상이다. 2000년 이후에는 한국의 드라마·가요·영화 등 대중문화뿐 아니라 김치·고추장·라면·가전제품 등 한국 관련 제품의 이상적인 선호현상까지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한류가 북한 땅에도 남한의 노래를 조심스럽게 선호하는 바람으로 일고 있다. 평양에서는 벌써 남쪽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북녘 사람들이 한동안 `찰랑 찰랑 잔에 담긴 위스키처럼`이라는 노래를 선호했다는 탈북자 증언도 있다. 2007년 북한 금강산 호텔 맨 위층 맥주홀에서 북한의 아리따운 여성 복무원이 구성지게 부르던 `나그네 설움`이 갑자기 떠오른다. 당시 북한당국은 분단 전 일제하에 부르던 흘러간 노래를 `계몽기 가요`라는 이름으로 해금한 결과이다. 여하튼 남북주민이 같이 부르는 노래가 늘어날수록 민족의 정서는 공유할 수 있어 환영할만한 일이다.

북한에는 남한의 드라마도 몰래 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상인들을 통해 입수한 남한 복제판 CD가 상당히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탈북자는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단속에 걸려 고초를 격은 이야기를 털어 놓기도 했다. 문제는 그것을 단속한 북한 보안 요원들이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보다가 거기에 매료되어 이제 당 간부들 까지 몰래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령에 대한 충성 일변도의 북한의 혁명적인 영화에 실증 난 북한 주민들이 달콤한 애정 행각을 그린 남쪽 영화에 대리만족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나아가 북한 땅에도 휴대 전화가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인구의 10%가 넘는 약 300만 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평양에는 4~5명중 한명이 휴대 전화를 사용하고, 그것이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단다. 청춘 남녀의 데이트 약속까지 휴대 전화가 이용되고, 장마당의 상인들에도 휴대 전화가 있어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휴대 전화는 이집트의 오로라와의 합작품이지만 아직도 국제 전화 로밍은 허용치 않고 있다. 2008년 북한 당국이 휴대 전화의 악영향을 우려하여 보급을 중단시킨 적도 있지만 이제는 북한에서 그것은 막을 수 없는 통신 수단이 되어 버렸다.

개성 공단을 통해 보급된 남한의 초코파이가 북한 장마당까지 진출한지 오래다. 북한당국은 이를 차단하기 위하여 북한산 초코파이 `경단 설기`를 만들어 개성 공단 노동자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남쪽 바람을 하나라도 막아 보자는 취지이다. 북한의 400여개로 늘어난 종합시장에는 남한의 쿠쿠 전기밥솥을 찾는 사람도 있고, 남한의 담배까지 고가로 암거래 되고 있단다. 평양에서는 햄버거와 피자가게뿐 아니라 커피숍까지 등장하고 호텔에는 양주 코너까지 등장하였으니 북한의 변화되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동독인들은 1990년일 독일 통일 전 80% 이상이 서독 텔레비전에 매료되었다. 독일 통일 전 이미 동독인들은 서독의 영화, 노래, 축구에 매료되어 소위 `타락한 자본주의`(?)를 미리 체험했던 것이다. 북한 당국은 아직도 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남한 식 자본주의 병폐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화는 국경이 없기 때문 남쪽의 한류라는 바람을 근본적으로는 막을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은 이제 서방의 시원한 바람은 수용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적 독충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변명하고 있다. 소위 모기장을 튼튼히 처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은 결코 당국 간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서 성취될 수 없다. 북한에서 조심스럽게 불고 있는 한류라는 미풍을 강풍으로 바꾸기 위한 방도를 시급히 마련하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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