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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통치자 형제들의 엇갈린 운명

등록일 2015-06-01 02:01 게재일 2015-06-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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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의 친형인 김정철의 모습이 런던에서 포착되었다. 스위스 베른에서 잠시 유학한 그가 에릭 클랩톤의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그는 2011년에도 싱가포르의 클랩톤 공연장에도 참석할 정도의 광팬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통제되고 폐쇄적인 사회하에서 김정철의 모습은 한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수령의 친형이 `세상을 바꾸자`(change of the world)고 노래하는 스타의 공연장을 찾은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한 일이다.

북한의 최고 통치자의 권력의 승계과정은 봉건 왕조 체제의 세습 형태와 같다. 왕자 중에 선왕의 뜻에 가장 합치하는 인물이 왕세자가 되고, 권력의 이양 시기는 선왕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500여년 조선 왕조사에서 왕이 재임 중에도 왕권을 이양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선왕의 승하로 왕권이 왕세자에게 이양되었다.

북한의 두번의 권력 세습은 전임 수령의 사망으로 승계되었다.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를 표방한 공산국가에서 백두 혈통을 통한 봉건적인 권력 승계는 기이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수령체제하에서 권력을 승계 받지 못한 형제들의 운명은 엇갈리고 있다. 조선조 세자로 책봉 받지 못한 형제들의 운명과 비슷한 것이다. 해방 후 정권을 장악한 김일성은 차남 김정일을 일찍이 후계자로 선정하였다. 김일성은 동생 김영주가 있었지만 김정일을 1974년부터 당직을 부여하여 후계자로 기른 셈이다. 김정일이 후계자 책정된 후 동생 김영주는 노동당 비서직도 사직하고 권좌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김영주는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시 북측 조절위원장으로 잠시 얼굴을 내밀었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1994년 8월 7일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권력은 김정일로 승계되었다. 김정일은 3년간 `유훈통치`를 거친 후 1998년 총비서가 되었다. 김정일은 계모 김성애 소생인 이복동생 김평일을 북한 권력의 핵심구도에서 배제하였다. 김평일은 1979년에 유고 주재 북한 대사관 무관으로 임명되고 1988년 주 헝가리 북한대사, 1989년부터 유럽 연합의 대사로 전출되었고, 그 뒤 불가리아 대사, 핀란드대사를 거쳐 폴란드 대사를 맡았다. 그는 2015년 1월 체코 대사로 이동되어 36년간 북한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구분키 어렵지만 그는 현재도 동구를 떠돌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열차 안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다. 김정일은 전처와 후처 사이에 아들 셋을 두었기 때문 권력의 승계 문제는 세인의 관심이 되었다. 그의 권력은 결국 3남 김정은에게 승계되었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해외로 떠돌다 일찍부터 권력의 승계 대상에서 밀려나 있었다. 김정남은 오늘도 홍콩과 마카오 등지를 오가며 방황하고 있으며 불행히도 부친의 사망 시에도 북한 땅을 밟지 못했다. 한편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도 권력 승계를 받지 못했는데 선고 김정일의 눈에 미덥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역시 동생 김정은 체제하에서 북한 땅에서 살아갈지 이번의 행각처럼 유럽을 떠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북한식 왕조 세습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김정은 정권의 불안감이 증대될수록 그의 측근뿐 아니라 친인척에 대한 통제도 강화 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력에서 밀려난 백두혈통 형제들의 운명은 평탄하지만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권력 세습에 대한 반감이 집단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그대로 갈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또 한 번 더 세습은 어려울 것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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