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에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간의 전격적인 판문점 회담이 성사되었다. 지난주말 남북의 일촉즉발 위기 상황이 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완화될 전망이다. 남북의 소위 전격적인 2+2회담이 남북의 군사충돌을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계기가 될지는 현재로서는 의문이다.
어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북 고위급의 접촉 사실을 신속히 보도하면서 우리 측 대표단 이름을 호명하기에 앞서 우리의 정식 국호인 `대한민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이 항상 `남조선 당국`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달라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 대표를 부를 때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러한데도 북한 방송이 그러한 용어를 쓴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 측이 이번 회담이 다급했기 때문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
우리는 북한당국이 급박하게 접촉을 제의한 배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당국은 그들의 지뢰 도발에 대한 남측의 대응이 확성기 방송 재개로 나타나자 당황한 것이 사실이다. 남쪽의 삐라를 통한 대북 선전도 수령 모독, 국가 모독이라고 비난하고 긴장하는 상황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당국의 아킬레스 끈을 내려친 격이다. `국가 존엄`을 모독하는 확성기 방송이 20km 너머 북한군 병사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군 탈북자 중에는 이 방송이 탈북의 동기로 작용했다는 증언도 있다. 역설적으로 보면 북한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북한 김정은의 권력이 아직도 불안하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알면서도 우리 정부가 남북 고위급 접촉에 호응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위기 상황의 지속은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메르스 여파로 침체된 우리의 경제는 또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고, 투자 심리는 또다시 위축될 것이다. 우리의 관광 경기 역시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의 4대 개혁은 힘을 받을 수 없고, 정부의 대북 관계 개선 공약은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정부로 하여금 북한의 긴급 회담 제의를 수용케 하였다.
이번 회담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회담은 표류되거나 장기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북한 측은 상투적인 책임전가와 억지 주장을 반복할 것이 뻔하다. 우리의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남북의 현안인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재개, 경원선 복원사업, 남북 경제협력사업 등 후속 사업에 합의에 이르는 것이 회담의 순서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5.24조치 해제도 이러한 현안과 연계하여 `빅딜`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남북의 고위층 회담을 환영하면서도 그 결과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남북의 고위급 회담에서 보다 실질적인 합의가 따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남북의 회담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은 과거 여러 차례의 남북 회담의 결과가 잘 증명한다. 우리는 과거 수많은 회담 개최와 합의문을 도출하였지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심지어 남북 정상 회담의 합의조차 휴지 조각이 된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회담에서는 제도적, 실천적 장치가 담보되는 합의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으면 과거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남북 회담의 합의는 정책 의지만으로 차질없이 이행될 수 없는 법이다. 남북간 합의가 남북 입법기관의 비준 등 추가적인 입법 조치를 통해 그 실천이 담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