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패와 비리척결을 선포한지 달포 만에 그 선언의 당사자인 총리가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과 경찰을 담당하는 안행부 장관을 배석하고 자원비리 관련 부패척결을 선언하던 총리의 비장한 모습이 오버래핑 되고 있다. 몇 달 전 아들의 병역 비리, 언론에 대한 부적절한 처신 등으로 아슬아슬하게 인사 청문회를 통과한 총리가 검찰의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고인이 된 성완종 전 경남 기업회장의 뇌물 폭로 리스트는 그 진위를 떠나 현재 정치권의 폭풍이 되고 있다. 내각의 총리와 전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현직 도지사 3명 까지 포함된 이 리스트가 검찰 손에 맡겨져 있다. 메모와 녹취록에 대한 조사도 사실상 쉽지 않지만 설령 그 결과가 발표되더라도 국민들이 그것을 어느 정도 신뢰할지도 의문이다. 대체로 죽은 자에 대한 관용과 동정심이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그 정치적 파장은 만만치 않고 오래갈 전망이다.
이완구 총리의 국회의 답변이나 해명은 그에 대한 불신만 증대 시키고 있다. 그의 발언은 성완종 전 회장을 잘 모른다는 말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고인의 메모에 나타난 지난 1년 반 동안 23차례 만남은 그의 주장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누가 보아도 친밀한 관계로 보이는 양인간의 관계를 부정하는 그의 언행은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때 혈액암 투병으로 선거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총리의 주장도 3차례의 연설 장면이 동영상에 노출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지난 보선 때 그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고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는 그의 주장까지 신뢰하기 어렵게 되었다. 고인으로 부터 `단 한 푼이라도 받았다면 목숨을 걸겠다`는 그의 결백성 표현은 총리의 위상까지 떨어뜨렸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위급한 경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순간적인 변명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총리의 여러 차례의 반복된 `말 바꾸기`와 `거짓말 논란`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이번 총리의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처 방식은 우리를 또 다시 실망시키고 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에 이른다`는 경구는 비단 고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간 총리의 대처 방식은 3천만원 수뢰 등 법적 공방보다 심각한 양심과 도덕성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임기응변적인 변명이 더욱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행정부의 수장인 총리의 그 간의 언행을 지켜보는 100만 공무원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국회에서`말 바꾸기`문제를 집중 거론하자 총리는 `충청인들의 말투가 그렇다`는 답변을 하였다. 이러한 총리의 자기변명 식 답변은 충청 인들의 자존심까지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거짓말 하던 늑대 소년의 우화처럼 이제 총리가 진실을 말해도 신뢰하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권의 대권 후보로 까지 부상하던 총리의 패기 차고 늠름한 모습이 국민들 눈에는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총리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그가 어찌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등 정치개혁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불신은 정부여당,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는데 문제가 있다.
예리넥(Jellineck)이라는 법 철학자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규정하였다. 총리의 법적인 책임 문제에 앞서 도덕적으로 이처럼 상처 난 총리가 어떻게 정치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겠는가. 이제 총리는 대통령이 귀국 후 총리 거취를 결정하기 전 스스로 입장을 정리해야할 시점이 되었다. 하루 빨리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그나마 실추된 그의 도덕성 실추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