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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경쟁력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이 문화로 떴다. K-pop과 한국영화의 성공이 줄을 이었다. 국경과 세대를 넘는 유행이 생겨났고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다. 한국말 배우기 열풍이 일었으며 한국문화를 모방하려는 외국인들이 적잖이 보였다. 코로나 언덕을 넘으며 관심과 흥미가 더 높아지길 기대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한국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에도 변화가 있다. 글로벌시대의 역동성은 무엇이든 때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고 해석한다. 한국과 한국문화는 그간의 긍정적인 이해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까. 문화는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우리만의 문화인가. 우리만 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문화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콘텐츠를 보여주는가. 문화에 담긴 이야기를 그 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때, 콘텐츠를 장소와 동일시하여 그 스토리를 만나고 경험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찾는다고 한다.케이컬처(K-culture)가 아니면 느껴보지 못할 감동과 맥락을 전달할 때, 우리 문화의 경쟁력과 영향력은 배가된다. 성공을 경험한 우리의 콘텐츠가 전혀 새로운 감동을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문화가 젊어야 한다. 이야기가 세대를 관통하면서도, 특히 ‘다음세대’가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을 때 문화는 경쟁력을 가진다. 전통적인 옛이야기일수록 오늘의 콘텐츠로 새롭게 만들어 전달해야 한다. 우리만의 오래된 이야기가 아무리 많아도,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고 가치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문화적 자긍심은 세대를 넘어 전달이 가능할 때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문화적 환경이 글로벌하게 펼쳐질수록 콘텐츠를 오늘의 세대와 어울리도록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문화원형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젊은 세대와 함께 향유하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초연결(super-connectedness)이 현실이 되었다. 지구상 어느 곳과도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글로벌세상에서 문화도 그런 환경에 걸맞게 진화해야 한다. 이야기에 실렸을 가치와 내용을 적절하게 전달하고 공유해야 한다. 우리만의 전통과 기준을 고집하기보다 현재적이며 글로벌한 가치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인과 함께 즐기며 호흡할 콘텐츠를 지향해야 하고 끊임없이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과 방역, 경제와 한류로 쌓아온 나라의 저력을 지속적인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려면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다듬어야 한다.문화의 경쟁력은 그 콘텐츠가 독창적이면서 젊은 세대와 세계인의 감각과 함께 할 때 형성된다. 디지털과 초연결의 새로운 사회환경에도 주목하여 문화적 영향력을 만들고 확장하여 갔으면 한다. 나라의 영향력은 문화의 힘과 비례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케이컬처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지지될 터이다. 경제가 바깥의 울타리를 만들어 낸다면, 문화는 속깊은 자긍심의 뿌리를 제공한다.

2022-11-02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트라우마의 치유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핼러윈 데이를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밤에 서울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비좁고 비탈진 골목길에 몰려든 대규모의 축제 인파가 넘어지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청춘들의 축제는 삽시간에 비극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156명의 사망자 중에는 외국인도 26명 포함돼 있다. 전 세계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에 놀라면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10만여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지만, 현장에는 200명도 안 되는 경찰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 인력은 현장 통제보다는 범죄 예방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행자들이 몰린 골목길의 안전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앞뒤로 꽉 막힌 골목에는 안전도 꽉 막혀 있었다. 결국 사고 사흘 만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정부는 이번 달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이태원이 속한 용산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참사를 미연에 막지는 못했지만, 정부 당국은 총력을 기울여 사고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발생한 트라우마의 치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고 다음 날 성명서를 냈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분들의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국민의 큰 충격이 예상된다면서 대규모 정신건강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영상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주목할 점은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반복해서 보는 행동이 스스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것이다.‘트라우마의 이해와 치유’의 저자인 캐롤린 요더는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사건을 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트라우마를 겪은 집단은 폭넓은 두려움, 공포, 무기력감,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이를 사회적 혹은 집단적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다.필자는 포항 지진 일주년에 발표했던 연구 보고서에서 집단적 트라우마 체험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지진 진앙지와 인접했던 대학교의 학생과 교수를 인터뷰했었는데, 이들에게서 중층적인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지진으로 인한 일차적 트라우마와 함께 자극적인 언론 보도와 SNS 전파를 통한 이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실제 지진보다 방송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이번 참사의 경우 참혹한 현장의 모습과 심폐소생술 장면 등이 방송과 SNS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해졌다. 언론에서는 사건 관련 보도를 할 때 유가족들의 심정을 한번 더 헤아려 주기 바란다. 시민들도 SNS를 통해 참사 현장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지금은 슬픔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며 함께 울어야 할 때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보듬을 때 트라우마로 막혀 있던 마음에 치유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2022-11-02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김규인 수필가 SK CC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의 서비스는 멈췄다. 5천만 명이 이용하는 카카오톡, 3천700만 명의 카카오페이, 3천만 명의 카카오T 이용자는 일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사거나 점심을 먹고도 식사비를 치르지 못해 애를 먹었다.화재로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 카카오택시 등 관련 서비스가 모두 사라졌다. 영업하지 못하는 소상공인은 며칠 동안 빈 점포를 지켜야 했고 택시 기사는 울리지 않는 콜을 기다리며 손님을 찾아 나섰다. 이것도 지쳤는지 그늘에 차를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쉬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카카오 서비스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일상이 멈춰버렸다.집안의 가장인 어린 소녀가 일하다가 기계에 끼어서 죽고 건축공사 현장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오늘도 일어난 교통사고는 내일이면 다시 발생한다. 매일 일어나기에 사고는 일어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사고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정말 큰 사고가 일어난다.괴산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했고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많은 젊은이를 한순간에 잃었다. 한마디로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이 일시에 멈출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대한민국은 안전한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사태가 테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화재로 인한 것이기에 근심은 더 깊어진다.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할 불순한 목적으로 일을 저지른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달려들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는 2층 건물로 1층을 띄워 지어서 아래쪽으로 바람이 통하고, 이중으로 담을 쌓아 사고 바깥을 둘러 산불이 나도 건물 안쪽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지붕은 크게 지어서 비가 와도 건물 안으로 들이치지 못했다. 창문도 비를 막기 위해 처마 위쪽으로 바짝 높여 냈으며, 아래쪽에도 창문을 만들어 통풍이 잘되게 하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 여러 개의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했다.궤짝 안에 보관하는 실록도 기름종이로 덮고 오랜 보관으로 붙는 것을 막으려고 책과 책 사이는 질 좋은 종이를 끼워 뒀다. 약재를 넣어 벌레 침입을 막았으며 악귀를 쫓기 위해 붉은 보자기로 싸고 궤짝을 자물쇠로 채웠다. 기록의 나라 조선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준비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러한 우리 민족의 철두철미한 유전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비용을 줄이고자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을 미루고 독촉에 쫓겨 안전은 자꾸 뒤로 밀린다.까탈스러울 정도로 일을 처리하던 우리의 철저한 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안전을 무시한 가운데 세계 일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높이 올라가는 첨단의 기술일수록 그 토대는 튼튼해야 한다. 안전과 기술의 균형을 맞추고 서로를 위한 배려의 손길이 더해질 때 가능하다.

2022-11-02

솜사탕과 풍선

배문경 수필가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다. 그 아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십여 미터씩 줄지어 서 있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나는 표정이다. 어른들도 옛 생각에 젖어 있다.신라문화제의 일환으로 각 기관이 행사를 진행했다. 경주문인협회에서는 향가 시 낭송대회와 독서삼품과 백일장을 개최했다. 가을이라 여기저기 놀이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할 행사로 성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솜사탕과 풍선아트였다. 무료라는 배너를 설치하고 두 사람이 열심히 솜사탕 부스에서 분홍 설탕, 노랑 설탕, 보라 설탕을 넣고 동그란 솜사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이끌고 와서는 하나씩 손에 쥐고는 달콤한 세상을 맛본다. 연인들의 표정도 달짝지근하다.하늘은 푸르고 아이들의 싱싱한 웃음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여기저기 장난치며 뛰노는 아이들이 있으니 대회는 사람들로 붐볐다. 긴 풍선에 기계로 바람을 넣자 길게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귀여운 푸들이 되고 해맑은 해바라기가 되었다. 천막 곳곳에 붙어있는 여러 모양의 풍선 모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선물을 받으려고 긴 줄이다.어릴 적 운동회가 생각난다.나는 달리기 선수였다.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만국기가 휘날리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축제 분위기였다. 학교 입구 쪽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벌건 기름기가 도는 육개장이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낮술에 찌든 동네 아저씨 서넛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만국기가 운동장의 담장과 건물 기둥에 대각선으로 연결되어 펄럭였다. 나는 공책 서너 권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단거리 육상과 멀리뛰기 선수였기에 운동회 날은 휘파람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특히 바통을 이어받아 운동장을 반 바퀴 도는 릴레이 경기에서 운동회의 승부가 결정되곤 했다. 지고 있을 때 그것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이 결국 그날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상대방을 이기고 바통을 넘겨줄 때 숨은 턱에 차고 응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울렸다. 여자아이들보다는 남자아이들이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 때가 많았다.그때도 운동장 한쪽에는 솜사탕을 만들어 팔던 아저씨가 있었다. 설탕을 한 숟가락 넣으면 빙빙 돌아가던 기계는 거미줄 같은 설탕 줄을 대신 내놓았다. 그러면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나무젓가락 끝에 감기 시작했다. 그러면 하얀 솜사탕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서로 기계 옆에 붙어 서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 사서 베어 물던 아이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한쪽을 떼서 입에 넣으며 약을 올렸다.내가 솜사탕을 먹었을 때는 달라붙던 설탕의 눅진함이 입과 손가락에 쩍쩍 붙었다. 설탕의 달달함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지나간 시간은 늘 기억에 풍선처럼 부풀려져 있다. 갖가지 색깔의 풍선에는 상상의 바람이 가득했다. 작게 불면 볼품이 없고 크게 아주 크게 불다 보면 제 부피를 넘어서서 ‘펑’하며 터져 조각나 버리던 풍선, 각각의 인생처럼 다양한 색으로 하늘을 수놓듯이 다양한 삶이 인생길을 만든다.부풀어 터질듯했던 유년의 기억 속 편린들이다. 다양한 색의 솜사탕처럼 갖가지 꿈들이 세상에 무지개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의 저 아이들처럼 한껏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내달릴 힘들이 넘쳤었다. 달콤하고 향긋한 나이가 있다면 초등학교 때가 아니었을까.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 풍선은 힘이 빠져 탄력 없이 손아귀에 쉽게 잡힌다. 솜사탕은 부풀었던 설탕의 꿈들이 녹아 혓바닥과 손가락에서 달짝지근한 맛으로 스며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차 부피가 줄어드는 것인지 모른다.한때 부풀고 달아올라 뭔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슴 벅차던 시절을 지나오니 이젠 바람이 빠져 말랑하다. 편안한 중년의 오후다.

2022-11-02

예측 불가능한 해양생태계

몇 해 전 통영 사량도 앞바다에서 스노클링(물안경과 오리발, 스노클 정도의 간단한 장비들을 이용하여 잠수를 즐기는 스포츠)을 한 적이 있었다.바다 속 해초를 보며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데 갑자기 신기한 물고기 하나가 눈에 띄었다. 꼬리에 형광물질을 묻힌 듯한 모습은 기존 우리가 알던 물고기와 사뭇 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형형색색의 무리들이 산호와 해초 사이를 유영 중이었다. 백화현상으로 곳곳이 하얗게 변한 바닥과 열대어 모습의 물고기까지 마주하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청정해역에서 직시한 바닷속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변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가슴 아팠다. 바다사막화와 기후변화, 급격하게 다가오는 우리의 뼈아픈 현실이었다.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해양수산부는 지난 달 ‘기후변화가 바꾼 우리 바닷속 풍경’이라는 제목의 도감을 발간했다. 우리 바다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열대·아열대 해양생물 180종의 생태학적 특징을 담은 도감으로,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그려냈다고 한다. 통영 사량도 일대에서 봤던 어종이 실제 아열대 해양생물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자, 해수온 상승으로 우리 바다 생물들이 북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즉, 열대·아열대 해양생태계의 특성을 알아야 우리 바다의 변화에 대응 가능하다는 부연 설명도 함께였다. 도감에 따르면, 남해안의 대표적인 어패류인 소라는 300km가 떨어진 경북 울진에서도 서식이 가능하며, 기수갈고둥 역시 경북 울진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활동반경을 넓혔다고 한다. 그만큼 바다가 따뜻해지고 그에 맞춰 해양생물들도 이동 중이라는 의미다.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과 해류의 변화는 해양생태계의 서식지 이동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남해안과 부산에 출몰한 정어리 떼다. 지난달부터 정어리 떼 수만 마리가 마산과 부산 일대에 나타났다. 마산만의 경우 좁은 해역에 정어리 떼가 갑자기 유입돼 산소부족으로 집단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에서는 떼 지어 이동하다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원인규명에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과거 개체수가 많았던 정어리 떼가 수십 년째 줄어들다가 최근에 다시 늘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는 최근 동해에서 잡히기 시작한 참치와 비슷한 맥락이다.동해에 참치(참다랑어)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다.열대·온대성 기후에 사는 참치는 원양어업의 대표적인 어종으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온 상승으로 참치 떼가 한반도까지 이동하면서 정치망(자루 모양의 그물에 테와 깔때기 장치를 한 어구로, 대상 생물이 들어가기는 쉬우나 되돌아 나오기 어렵도록 장치한 그물)에 걸리기 시작했고 어민들은 이를 어판장에 내다 팔았다.하지만 국제적인 쿼터에 묶여 있는 참치를 모두 처분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랐다. 결국 어민들은 그물에 걸린 참치를 먼 바다에 버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 사체들이 해류에 떠밀려 동해안 해수욕장을 덮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금도 동해어민들이 쿼터제를 폐지해달라고 시위하는 이유다.기후변화로 해양생태계가 변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다. 그래서 어족자원이 고갈되거나 어종이 다변화하는 등의 생태계 흐름에 능동적인 대응이 어렵다. 원인을 찾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따를 뿐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예측불확실성은 불안을 낳는다. 생태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해양생태계의 이상 현상은 우리가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촉발시키고 이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인과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현미 작가 당장 참치 쿼터제를 풀면 갑자기 늘어난 어족자원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어민 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시 고급어종의 횟감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마구잡이 참치어업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던 전철을 또다시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참치는 쿼터제 덕분에 다시 개체수가 늘었다는 가설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 동시에 참치의 증가로 다른 어종에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태계의 오묘한 균형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해양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은 앞으로 더 자주, 더 많은 어종에서 발생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모든 가능성을 현재의 기술로 예측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자정능력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자 기후변화를 늦춰야 하는 당위다.빠른 시일 내에 정어리 떼가 출몰한 이유를 알아내고 열대어종 180종이 아닌, 더 많은 어종의 도감이 계속 발간되길 기대해본다.

2022-11-02

욕망만 간단히

몇 해 전, 2학기 첫 수업에서 동급생들보다 예닐곱 살 많은 한 학생이 재직증명서를 내밀며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고, 대신 매주 과제를 성실히 제출하겠다며 출석에 관한 양해를 부탁했다. 취업자의 대체 출석을 조건부 허용하는 학칙도 있고 해서 ‘성실한 과제 제출’을 전제로 허락했다. 매 학기마다 1주차에는 수업 소개, 진도 및 평가 계획, 목표 등을 안내하고, 표절, 무단인용, 중복제출 등 창작물과 과제물에 대한 창작윤리를 강조한다.이스마일 카다레의 ‘꿈의 궁전’을 읽고 어느 부분이 매혹적인 판타지로 다가왔는지를 짧게 써 내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출석 인정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메일에 첨부된 과제물을 열어보았다. 어느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책 리뷰를 그대로 긁어서는 종결어미와 부사만 슬쩍 바꿔 자기 글인 양 제출한 것이었다. 2주차 수업에서 출석을 부르며 한 사람씩 과제 피드백을 해줬는데, 자리에 없는 그 학생 순서에서 “(책을) 안 읽고 쓴 것 같아요… 짜깁기한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내가 한 이야기가 그 학생에게 전해졌는지 수업 이틀 뒤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나쁘게 하셨다면서요? 직접 연락해 말씀하셔야지, 그렇게 뒷담화하시니까 불쾌하네요” 하는 장문의 항의 문자를 받았다.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한 건 불쾌할 수 있겠다 싶어 그 부분을 사과했다. 또 한 번 날이 선, 나를 훈계하는 투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답을 하려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관뒀다. 울릉도 도동 터미널에서 포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기다리던 환한 가을날이었다.불쾌하긴 했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행여나 감정적으로 불이익을 준다고 여길까봐 그 학생의 과제물과 시험답안은 객관적으로, 아니 더 너그럽게 평가했다. 학칙은 취업 학생에게 줄 수 있는 점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 범위 안에서 최고점을 줬다.그리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 학생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미리보기 화면에는 “선생님, ㅇㅇㅇ입니다. 이번에 제 책이 나왔습니다”까지 적혀 있어 내게 책을 보내주려 주소를 묻는 건줄 알았다. 메시지를 열어보니 온라인 서점 구매 링크와 함께 “관심 부탁드립니다”라고 써져 있었다. 인사말 같은 건 없었다. 씁쓸했다.지난 학기 성적 입력을 마치고, 한 학생으로부터 성적 정정 요청 메일을 받았다. 아주 길게 써내려 간 장문에는 수업에 대한 칭찬, 감사 인사와 함께 자신이 왜 A+를 받지 못했는지 의아하다는 질문,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고 뛰어난 학생인지 설득하려는 주장, “교수님의 강의가 제 인생에서 큰 깨달음을 준 수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디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기억되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귀여운 협박(?)까지 담겨 있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날,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담아 답메일을 보냈다. 그 학생 성적을 올려주면, 다른 학생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은 정정할 수 없지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내가 쓴 책들을 보내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받길 원한다면 주소를 남겨달라고 했다. 메일을 보냄과 거의 동시에 ‘수신확인’ 상태가 ‘읽음’이 되었다. 아마 정정 요청이 받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빠뜨린 내용이 있어 10여분 뒤 메일을 하나 더 보냈다. 마음이 몹시 상했는지 나중에 보낸 메일은 내내 읽지 않다가 닷새쯤 지나서야 읽었다. 두 개의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자기 필요에 의해 할 말을 했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으므로 더는 용건 없다는 것일 테다. 이 학생에게 주려고 포장해놓은 책 꾸러미를 풀었다. 씁쓸했다.요즘 학생들이 생각하는 ‘용건만 간단히’의 의미가 이런 것일까? 요즘 세대는 더 이상 예의를 배우지 않는다. 나도 아직 30대이고 미혼이지만, 3040 부모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우리 애한테 왜 그래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영 마뜩찮다. 부모의 훈육 탓만은 아니다. 각자도생의 이기적 사회 풍조에서 젊은 세대가 배울 만한 어른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점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는 듯하다. MZ세대의 ‘용건만 간단히’는 어쩌면 ‘욕망만 간단히’가 아닐까? 씁쓸하다.

2022-11-01

마라탕의 인기는 어디까지?

최근 집근처에서 산책을 하다 깜짝 놀랐다. 최근 2-3년 사이에 마라탕 가게가 부쩍 늘었다는 게 확연히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마라탕은 2010년대 중국인과 유학생을 대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특히 최근 3-4년부터 마라탕 열풍이 지속되며 약 32개의 마라탕 브랜드가 국내에 생겨났다. 그 중 일부는 10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칠 정도로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마라탕이란 중국 쓰촨을 기반으로 하여 둥베이 지방을 거쳐 만들어진 중국 요리다. 한자로 마(痲)는 저리다 혹은 마비 라는 뜻을 지녔고, 라(辣)는 맵다, 탕(71D9)은 뜨겁다는 뜻을 지녔다. 초피나 팔각, 정향 등 다양한 향신료를 가열해 향을 낸 기름에 육수를 부은 다음 채소나 고기, 버섯, 두부 등의 식재료를 넣고 끓이는 탕요리다.마라탕의 유행은 계속되고 있다. 네이버 기준 검색량 키워드를 조회해보았을 때 ‘마라탕’의 월간 검색량 조회수는 총 40만건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검색 비율은 10대 27.7%로 가장 높게 나왔고, 그 다음은 20대 27.6%로 나왔다. 더 재미있는 건 여성의 비율과 남성의 비율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점이었는데, 여성은 73.0%, 남성은 26.9%로 조사되었다. 10대 대표 간식이라 불리는 ‘떡볶이’의 월간 검색량은 월 24만 8천건이었다. 떡볶이의 24만 보다 훨씬 높은 40만 건이라는 검색량은 마라탕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해볼 수 있었다.또한 마라탕 선호가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22년 7월 기준으로 한 카드 회사가 체크카드를 발급한 회원의 ‘음식점 이용금액’ 소비 패턴을 분석했더니, 중·고등학생 여학생의 마라/샹궈 음식점 이용금액이 3위를 차지했다. 4위는 떡볶이가 뒤따랐다. 반면 중고등 남학생은 1위 배달/야식, 2위 햄버거, 3위 커피전문점으로 마라/샹궈 음식점에서의 이용금액은 순위에 없을 정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이렇게 Z세대 여학생 사이에서 마라탕이 유행한 이유는 뭘까? 알싸하고 자극적이라 국물조차 먹지 않는다는 중국 마라탕과는 달리, 한국 마라탕은 대부분 사골 국물을 주로 쓴다. 매운 국물에 푹 절여진 야채와 고기 그리고 어묵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 국밥만큼이나 든든한 한끼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한국 특유의 달거나 시원한 매운 맛이 아닌, ‘알싸하고 얼얼한 매움’은 마라탕에서만 즐길 수 있는 낯설고 이국적인 맛을 지녀 더욱 중독성을 지닌다.또한 마라탕은 내가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커스터마이징해서 먹을 수 있단 특징이 있다. 먹고 싶은 채소와 고기, 어묵, 해산물 등 수십 가지 재료를 취향대로 담아 카운터에 내면 무게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 뒤 주방에서 조리를 한 다음 내어준다. 금액 또한 저렴하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주문 방식이 다소 번잡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 있지만 Z세대는 자신의 입맛과 취향, 그리고 개성을 반영하는 과정을 즐기고 소비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마라탕의 유행 덕분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마트나 슈퍼에서도 마라탕 소스나 각종 향신료, 재료 등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대형 식품회사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추어 자극적인 향신료를 빼고 사골 육수를 사용한 마라 소스를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어, 기호대로 선택할 수 있단 이점이 있다. 또한 하이디라오나 라오간마 등의 중국 현지에서도 유명한 브랜드 상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요리 과정 또한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마라탕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유튜브에선 이미 마라탕 먹방(마라탕 만들기)’ 영상이 조회수 964만회를 기록하고 있고, ‘야식으론 절대 먹지 마라 마라탕’이란 제목을 가진 동영상은 약 734만회라는 조회수를 지니고 있을 정도다.이젠 길거리를 걷다보면 마라탕 외에도 마라 국밥이나 마라 떡볶이, 마라 라면, 마라 부대찌개, 마라 치킨 등 마라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마라탕은 나트륨이 많은 음식이라 자주 먹게 된다면 고혈압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되도록 국물을 마시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하지만, 입이 얼어붙은 듯한 마라의 얼얼한 중독성에 빠지게 되면 국물을 참을 수 없게 된다. 특히 날이 쌀쌀해진 저녁엔 각종 채소를 넣은 마라탕이 생각난다. 맛있는 음식으로 오늘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다니, 단순하고 가벼운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가을날이다.

2022-11-01

국가애도기간

우정구 논설위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자 영국 정부는 장례식이 있는 날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애도와 관련한 지침을 발표했다.“행사 및 스포츠 경기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것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개별조직의 재량에 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단체가 애도지침을 수용하고 여왕의 국가공헌을 기리고 존경의 뜻을 표시했다. 영국의 가장 전통있는 백화점 중 하나는 그날 매장을 닫았다.또 노동계는 파업을 중단하고, 일부 금융기관은 금리 인상을 일주일 연기하는 결정도 했다.국가애도기간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사망했거나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그들을 애도하고 추도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우리나라는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46명의 용사가 순직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애도기간을 정한 바 있다.155명의 희생자와 152명의 부상자를 낸 이태원 핼로윈 참사와 관련해 정부는 오는 5일까지 애도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관공서는 조기를 게양하고 공무원은 근조리본을 달고 근무하며 그들의 희생을 애도한다.우리 역시 강제된 요구는 없다. 그럼에도 각종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 내지 연기되었다. 방송의 주말 연예프로그램도 결방하고 연예인의 팬미팅조차도 연기가 되는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애도기간 동안 국민 모두는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특히 꽃다운 젊은이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기성세대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통렬한 반성의 시간을 갖는 기간이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01

지금은 政爭·혐오 발언 자제할 때다

심충택 논설위원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여야가 지난달 31일 정쟁을 중단하자고 뜻을 같이했지만 그야말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고 직후 의원들에게 지역구 활동을 포함한 모든 정치·체육활동을 중단하라는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당 지도부가 보낸 공문에는 언행 주의, 불필요한 공개 활동·사적 모임 자제, 음주 행위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 자제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더불어민주당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이재명 대표는 “무엇보다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를 위한 노력에 초당적으로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은 당 대표실 뒤에 걸린 ‘야당탄압 규탄! 보복수사 중단!’ 문구를 하얀색 천으로 가리기도 했으며, 주호영 대표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했다.그렇지만 정치인들의 자제는 여기까지였다.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듯한 조짐이 민주당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현 정부를 겨냥해 “일방통행 조치만 있었어도, 안전 요원을 배치만 했어도, 인파의 흐름을 모니터링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정부와 서울시는 주최 측이 없는 행사였다고 말하지 말라”며 정부·지자체 책임론을 제기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시켰을 법도 한데 이것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도 “이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니다. 이건 정치 문제가 맞다”며 끼어들었다.우리 국민 모두에겐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아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정치권이 앞장서 진행한 극단적인 진영싸움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앞으로 이태원 참사의 충격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청년들의 허망한 죽음을 슬퍼하는 국민들 앞에서 정치권이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듯한 언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남영희 부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하야를 주장한 것은 사회혼란만 부추기지 사고수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판이다. 남 부원장 발언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SNS나 각종 댓글에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등의 정치적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온라인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각종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번지고 있다. 특히 희생자를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내용의 게시물도 올라와 유가족들의 슬픔을 가중시키고 있다.지금 우리가 할 일은 희생자 명복을 빌고 그 가족의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정부의 사고 수습과 원인 규명, 지원책 마련을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따져보고 또 대책을 마련해서 두 번 다시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국가애도기간을 일주일 간으로 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2022-11-01

공정하다는 착각

조현태수필가 마이클 샌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카지노 업계의 대부인 억만장자 셀던 에이들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세계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간호사나 의사보다 수천 배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카지노 시장과 보건 시장이 모두 완전경쟁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시장 가치가 그들의 사회 기여도를 나타내는 진실한 척도라고 볼 까닭은 없다. 그들이 소비자 수요에 얼마나 부응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도덕적 가치에 기여도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슬롯머신을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보다 더 큰 도덕적 중요성을 갖는다.(‘공정하다는 착각’p.223)운수와 선택을 비교하자면 능력과 자격의 판단이 불가피해진다. 도박에서 져야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질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짊어진 도박사는 졌을 때 사회에 그의 판돈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의 불운은 자업자득이다.물론 어떤 경우는 과연 무엇을 ‘선택’으로 볼 것인지 모호해진다. 어떤 도박사들은 도박중독에 빠져있다. 슬롯머신은 도박사들이 노름을 끊지 못할 만큼씩만 이기도록 승률이 조작되어 있다. 이런 경우 도박은 선택이라기보다 약자를 이용해 먹는 강압의 결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런 리스크를 걸머지는 한, 행운 평등주의자들은 그들이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책임져야 마땅하다. 적어도 그런 일에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줘야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무엇이 진정 자발적인 선택인가에 대한 친숙한 논쟁을 넘어서, 운수와 선택의 구분은 또 다른 고려 때문에 모호해진다. 보험의 가능성이다. 만약 내 집이 불타버렸다면 분명 그것은 운이 나쁜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화재보험을 들 수도 있었는데 들지 않았다면 ‘설마 불이 나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매년 쓸데없이 보험금 내기를 아까워했다면? 화재 자체는 ‘눈먼 운’이라도, 보험을 들지 않은 나의 선택은 나의 불운을 ‘선택 운’으로 바꿔 놓는다. 보험에 들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며 납세자들에게 내 집의 손상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p.237)도박에서 잃은 판돈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나, 화재보험에 들지 않고 불탄 손해를 보상해 달라는 요구는 마땅히 거부당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약에 중독된 자가 마약을 구하지 못하면 곧 죽을 지경이어도 구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한 것을 불법이라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공정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방편임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렇듯이 일부 고위층이 직위나 욕심을 보전하기 위해 사회적 물의에 마약처럼 중독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람일수록 공정한 고유 업무에 충실한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떡고물이라도 얻으려고 그 주변을 맴돌며 열띤 응원까지 하는 모습도 보인다.이 현실을 두고 누가 책임질 것이며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끝판 왕 보험사는 없을까.

2022-11-01

‘퇴비장’을 ‘토양장’이란 용어로 하면서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2007년 개정)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을 ‘자연장’으로 치를 수 있는데,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흙과 섞어 용기사용 없이 또는 생화학적으로 분해 가능한 용기에 담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법률 제2조). 이 장례 방법은 넓이는 가로세로 50센티미터 이하 그리고 깊이는 30센티미터 이상 땅을 파서 골분을 묻으면서 분묘를 만들지 않고 유골을 묻은 자리에 석물 등을 설치할 수 없으므로 아주 자연친화적이다. 초기엔 거부 반응도 많았으나 지금은 자연장법을 따르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최근 신문기사에 의하면 미국에선 ‘퇴비장’이란 장사 방법이 시행되고 있다는데 이는 시신을, 전통적 매장이나 화장이 아니라 거름용 흙으로 만들어 처리하는 ‘인간 퇴비화 매장’(Human Composting Burial) 방식이며 이용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 방식은 시신을 철제 용기에 담아 풀과 꽃, 나무 조각, 짚 등 생분해 원료를 더한 뒤 6~8주간 바람을 통하게 하여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시신을 천천히 자연 분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매장은 시신 처리부터 관 제작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데다 생분해에 오랜 시간이 걸리며, 화장도 목재·연료 등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데, 그에 비하여 퇴비장은 환경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일부 시민들은 퇴비장이 고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불경스러운 장례법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가톨릭 교계 등에선 인간을 일회용품으로 만드는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육신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퇴비장의 합법화에 반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서의 창세기에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다”는 구절이 있으니 가톨릭 교계에서도 생각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퇴비장에 대해 반대할 사항이 아니라고 본다.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점은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든, ‘퇴비장’이란 용어를 ‘토양장’으로 바꾸어서 우리나라 자연장법에도 이 방법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낙엽이나 풀이 말라서 쌓이고 그것을 온갖 생물들이 이용하고 마지막에는 미생물까지 가세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토양’이다. 토양은 우리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물과 함께 꼭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퇴비’라고 하면 옛 농사법에서 풀, 짚 등과 가축의 똥, 오줌 또는 그 밖의 잡살뱅이를 섞어서 만든 거름을 연상하게 되어 기분이나 느낌이 좋지 않을 것이나, ‘토양’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가장 소중한 요소인 흙이니 ‘토양장’이라 부른다면 부정적 생각이나 이미지는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토양장으로 만들어진 토양을 고인이 좋아했던 장소 등에 뿌리거나 유족들의 뜻에 따라서는 집안의 나무나 화단에 뿌려서 유해를 가족 곁에 두며 고인의 모습을 기리는 것도 의미 있는 장례법일 것이다.

2022-11-01

초기 기독교미술의 앱스 모자이크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밀라노 칙령이 발효되면서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허용했다. 기독교도들은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로마의 공공건물 구조를 모방해 교회를 지었고 벽면을 그림으로 장식했다.초기기독교 시기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벽화기법은 모자이크였다. 모자이크는 아주 오래된 기법으로 작은 크기의 돌 조각이나 유리에 색을 입히고 그것을 배열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섬세한 묘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관리가 용이하고 보존력이 탁월하며 무엇보다 빛을 받아 반짝이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교회가 지어지고 그곳을 그림으로 장식해야 했던 기술자들은 난생 처음 기독교라는 신생 종교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야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이들은 아직 창작하는 미술가가 아니라 제작하는 기술자였다. 재료를 능숙하게 다루어 형상을 만드는 일은 육체노동으로 여겨졌다. 교회를 장식해야하는 임무가 떨어졌을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이미지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입히는 것이었다. 로마의 산타 푸덴치아나(Santa Pudenziana) 교회 앱스 모자이크는 그 당시 기술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교회건축에서 앱스(apse)는 제단이 놓인 뒤쪽 공간의 끝 쪽 벽면을 가리킨다. 앱스의 상단 부분은 움푹 들어간 반구형으로 마무리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장식이 들어간다. 산타 푸덴치아나의 앱스 모자이크는 420년경에 제작이 되었다. 로마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초기기독교 시기의 모자이크 작품이다.모자이크에는 옥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덥수룩한 수염의 중년으로 그려진 그리스도를 비롯해 모자이크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고대 로마의 의상인 토가(Toga)를 입고 있다.황금색의 화려한 토가는 그리스도의 위엄과 고귀함 그리고 성스러움을 드러낸다.값진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황금 보좌에 앉은 그리스도는 오른팔을 넓게 펼치며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왼손으로 펼쳐 보이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가 쓰여 있다. “Dominus conservator ecclesiae Pudentianae”, 번역하면 “주님이 푸덴치아나 교회의 보호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문구만 아니라면 모자이크가 묘사하는 장면을 로마의 어느 철학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면이라 해석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모자이크의 후경에는 견고하게 세워진 건축물들이 그려져 있다.흔히 천국을 상징하는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해석된다. 짙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황금 십자가가 세속적 시공을 초월한 듯 하늘에 떠 있다. 십자가의 의미는 공공연하다. 인류의 타락, 죄와 심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구원이라는 기독교 핵심교리를 함축해 상징하는 것이 십자가다.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귀한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 좌우로 실체를 알 수 없는 날개 달린 생명체가 보인다.십자가 주변에 떠있는 생명체들은 신약성서의 4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대한 상징이다.사람은 마태를, 사자는 마가를, 황소는 누가를, 독수리는 요한을 상징한다. 이 같은 상징의 성서적 근거는 요한계시록 4장에서 찾을 수 있다. 산타 푸덴치아나 앱스 모자이크에 묘사된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4복음서자들의 상징은 ‘영광의 그리스도(Majestas Domini)’라고 하는 독립된 도상으로 발전해 중세미술에 나타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10-31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Ⅶ>

간혹 출근 시간 필립은 회사 사옥의 소나무 앞에서 소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기도 했다. 어깨를 낮추어 뒤로 제치고, 턱을 아래로 당겨 내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필립을 보며 직원들은 만식에 대한 그리움이라 여겼지만 필립은 만식을 그리워한 적 없었다. 말하고 싶었다. 이 일은 이렇게 할 것이고 저것은 저렇게 처리할 것입니다. 듣고 싶었다. 나무 아래 만식의 대답을. 해답은 네가 알지. 나는 들어주기만 할 뿐이지. 만식은 생전에 이렇게 말해준 적 한 번도 없었다.필립이 늦은 퇴근을 하는 날이면 소나무는 회사를 나서는 필립의 등 뒤로 선선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겨울이 오면 세찬 바람을 막아 줄 소나무였다.필립은 소나무를 지나치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이제야 아버지로 오셨군요.-이제 다시 편해지셔야지요. 저도 이제 상황 파악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아버님이 작은아버님과 함께 하신 일이 제법 되던데. 이제 제가 집행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필립의 말에 영권이 웃었다. 크게.-우리 조카님이 아버님의 유지를 받든다 하니 이제야 내 마음이 편해지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네. 고마워. 그래 그 젊은 아가씨 뱃속의 아이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제 동생입니다. 아버님이 생전에 말씀하신 것도 있고.변호사에게 맡겨놓았거나 금고에 보관해 둔 유언장은 없었다. 만식이 필립을 만나 안나의 뱃속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유언이 되었다.필립은 만식의 부탁 중 가능한 것들은 모두 들어 줄 생각이었다. 필립은 아이가 건강하고 똑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야 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노마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탁과 약속은 그것들을 행하는 자의 의지에 기댄 것들이다.아이가 건강하고 똑바르게 자라 무엇을 하게 될지는 나중의 문제다. 그것 또한 필립에게 달려 있었다.-한번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필립이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봐야지. 어디서 볼까? 나야 조카님이 편한 시간, 편한 장소면 다 좋아. 요즘 의회 일정도 없고.-다음 달 십오 일부터 이십이 일 사이에 편하신 시간을 말씀 주시면 그에 따르겠습니다. 저는 십육 일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물 준비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수행원 없이 만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즘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그래야겠지. 어디 보자. 그러면 내가 일정을 한번 확인하고 다시 말씀을 드리겠네. 뭐 특별한 일은 없을 거야. 어디서 볼까? 공이나 한번 칠까? 아니야. 조카가 공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 술은 어때? 술 좋아하나?-작은님 뜻하시는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만, 수행원 없이 만나려면 이번에는 특별한 일정은 안 만드시는 것이.-듣고 보니 그렇군. 알겠네.필립과 영권은 서로 전화를 먼저 끊으라며 실랑이를 했다. 결국 영권이 전화를 먼저 끊었다.영권과 통화를 끝낸 필립은 다시 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야. 날짜를 잡았어. 먼저 말했던 대로 십육 일 만나기로 했어. 내용은 이전과 비슷하니까 모두 같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너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굳이 듣고 굳이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을게. 넌 어때? 진행해도 되겠어?-네. 이미 마음먹은 일인걸요. 형님도 감당하셨잖아요.-그래, 그러면 러시아 가기 전에 들러서 얼굴이나 한번 뵙고 가도록 해. 어찌되었건 할 건 해야지.영산에서 아드님이 올라왔습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모니터에 메시지가 올라왔다.들어오라 해.인호가 방으로 들어와 영권 앞에 섰다. 영권이 고개를 들어 인호의 얼굴을 보았다.-살이 좀 빠졌나 보다. 얼굴의 턱 선이 보이는 구나-요 며칠 동안 잠을 설쳐서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인호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만지며 대답했다.-그래 무슨 일이냐?영권이 인호에게 물었다. 약속이나 전화 없이 영산시를 벗어나 영권의 사무실까지 오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이틀 뒤 러시아에 갑니다. 영산시 시의원들 연수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나? 십오 일인가?영권은 책상 달력을 보며 말했다.-네. 일주일 일정입니다. 인천공항으로 출국하는 거라서 조금 일찍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출발하기 전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새삼스럽구나. 최 회장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십육 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혹시 같이 보겠느냐? 수행원 없이 만나기로 했지만, 너는 내 아들이니. 러시아 가는 것 취소하고. 연수 동행이야 한 번쯤 빠져도 되잖아?-아닙니다. 아버님 혼자 만나십시오. 필요 이상으로 깊이 알고 싶지 않습니다./김강 소설가

2022-10-31

메멘토 모리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철학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인생도 가을을 맞으면 생각이 깊어진다. 권력·재산·명예도 모두 한 때일 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우리의 삶도 끝없는 세월의 변화 속에 존재하는 찰나(刹那)에 불과하다. 젊은 시절에 외면했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 라틴어 격언은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고, 중세의 수도사들은 만날 때 마다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 ‘메멘토 모리’였다. 승리의 환희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고, 수행의 성찰 속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이처럼 우리는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이다.하이데거(M. Heidegger)는 “죽음이 삶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죽음은 삶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은 삶의 가장 절실한 친구이자 삶의 일부이다. 때문에 삶과 죽음은 ‘모순(contradiction)이 아니라 역설(paradox)’로 이해되어야 한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삶에 말하는 충고’이다.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의 본래성’을 회복함으로써 거짓된 삶으로부터 진정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메멘토 모리는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언제나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절정의 순간을 맞이한 개선장군의 뒤에서 노예가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친 까닭은 무엇인가? 너도 언젠가 죽음을 맞을 것이니 승리에 우쭐대지 말라는 것이다.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자본권력·언론권력 등 권력을 가진 자들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있으니 메멘토 모리의 가르침을 잊은 것 같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러니 모두 목에 힘을 빼고 겸손하라.메멘토 모리는 ‘삶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삶에 대한 몰입’을 증대시킨다. 죽음을 외면한 삶은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톨스토이(L. Tolstoy)는 “죽음을 대면하고 살아갈 때 삶의 성장과 초월이 일어난다”고 했다. 우리가 죽음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숙고하게 된다. 메멘토 모리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되면 누구나 추구하는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됨으로써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이 인생의 겨울도 피할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느냐, 죽음을 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인생은 불행하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며, 잘 산다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는 삶의 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2022-10-31

헌화(獻花)

홍석봉 정치에디터 대한민국이 충격에 빠졌다. 국민들은 비통하고 참담함에 말을 잊었다. 채 꽃 피워보지도 못한 젊음이 거리에서 스러졌다. 즐거운 핼러윈 축제가 비극이 됐다. 희생자들이 전하는 사연마다 아픔이 절절히 배어 있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자꾸 되풀이 되는가.정부는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두 번째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청춘이 짓밟혀도 국가는 없었다. 안전과 보호는 오간데 없었다.참사 현장에 헌화와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위로하는 시민들의 가슴 아픈 애도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헌화와 추모글이 줄을 잇는다.헌화는 죽은 자에 대한 추모 의식이다. 동서양이 모두 비슷하다.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고대의 종교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죽은 자를 위해 꽃이나 풀을 부적으로 사용했다.고대 로마인들은 묘지 주변에 장미를 심어 영원한 봄을 기원했다. 장미 헌화는 중세까지 이어져왔다.동양에서는 국화를 헌화에 사용한다. 국화는 조의의 꽃말을 가졌다. 흰 국화는 서양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개화기 때 들어온 헌화 풍습은 흰색을 선호하는 우리의 관례에서 비롯됐다. 장례식이나 추모행사 때 흰 국화를 사용하는 것은 망자의 안식과 영생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우리나라에서 국화는 청순, 정조, 절개, 고결함을 상징한다. 국화의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높이 기렸다. 서리가 내린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문화는 차이가 있지만 고인을 추모하는 염원은 동서양이 같다. 그래서 시들지 않은 생화를 사용한다. 국화의 계절에 흰 국화를 그대들에게 바치는 이 안타까움을 그대들은 아는가./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31

낭송으로 피는 詩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잎들이 곱게 물들며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푸르기만 하던 숲에는 어느새 하늘빛 그리움이 내려앉아 잎새들은 저마다의 감성으로 노란빛을 띠거나 홍조(紅潮)의 가슴으로 땅을 향한 연서(戀書)를 쓰고 있다. 이른 홍엽(紅葉)들은 벌써 땅 위로 떨어지며 포도(鋪道) 위를 뒹구는 몸짓으로 가을의 서정을 노래하고 있고, 길섶의 들국화는 서리를 맞을수록 외려 꼿꼿하게 제 멋 떨구는 자태로 만추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빛과 색의 향연이 풍엽(楓葉)으로 펼쳐지는 들길이나 숲길에 들면, 가을의 소리가 잔잔히 들리는 것 같고 계절의 시가 저절로 흐르는 듯하다.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미틈달 11월은 시의 날(11월1일)로 시작된다. 언어의 다양성 확보, 인간의 내면 정화, 청소년 교육, 문화 교류의 수단 등 시의 다양한 역할을 알리고 시를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시의 날’은 매년 3월 21일이지만, 우리나라는 한국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가 한국 최초의 월간지인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1908년 11월 1일을 ‘시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시의 보존과 확장을 위해 시와 음악·미술·영화·연극 등 예술분야 간의 접목, 시 낭송회 개최, 홍보를 통한 시의 현대적 이미지 구축, 젊은 시인을 위한 중소 출판사업 등을 장려하고 있다.결실과 수확의 계절 답게 시의 날을 전후해서 포항지역에서는 시낭송회 등이 풍성하게 열리고 있어서 한결 넉넉하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안도의 가슴으로 시를 읽고 감상하며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와 시의 힘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시에서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칠 수 있고, 고뇌와 애환의 그루터기를 가늠하며 공감과 감정의 정화작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가슴에 품은 시를 목소리에 담아 낭송으로 울림을 주면 시의 향기가 세상에 널리 홀씨처럼 퍼지게 될 것이다.지난 주말, 구룡포를 사랑한 시인들과 시낭송가들이 구룡포수협 창립 100주년 및 마을시집 발간기념으로 흥취로운 시낭송 마당을 펼쳐서 고무적이었다. ‘漁花滿代 구룡포, 詩가 되다’를 주제로 시낭송, 시극, 시노래, 참여시인 낭송 등으로 시종 다채롭게 열려 구룡포 일대가 온통 시의 꽃으로 피어나는 듯했다. 또한 이번 주말, 포항시낭송회에서 주최하는 제1회 정기 시낭송 발표회는 오낙률 시인의 근작시를 ‘포항 12경, 四季로 만나다’로 각색해 시낭송과 영상, 성악과의 콜라보 등으로 이색적으로 펼쳐질 예정이라서 사뭇 기대되기도 한다.이러한 시낭송의 다양한 레퍼토리는 시를 낭송으로 승화시키는 언어예술로, 영혼을 맑게 하고 심금을 울려주며 힘겨움을 완화시키는 위안과 치유에 도움을 줄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감동과 행복으로 피어나게 하는 시낭송 문화가 풍요로운 가을의 서정을 한결 섬세하고 정갈하게 수놓아 줄 것이다.

2022-10-31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세심한 배려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핑거볼(손가락을 씻는 작은 물그릇)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중국 고위 관리들을 초대하여 정찬(正餐)을 나눌 때이다. 서양식 식사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손님들은 핑거볼에 담긴 물이 손 닦는 물인지 모르고 마시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때 여왕은 손님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자신도 그 물을 마셨던 것이다. 이 사건은 지금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유명하다.나중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배려 행동에 대해 듣고는 중국 고위 관리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배려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덕목이라 하겠다.배려하는 삶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듣고 배우지만 막상 몸소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또다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각만 가지고는 어렵다. 특히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현재 시점에 서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욱 절실한 때라고 본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기업 경영에서 ‘배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배려에 대해 LG그룹의 임원 교육 내용을 보면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첫걸음이 바로 배려라고 했다. 배려의 출발점은 높은 사람일수록 먼저 눈높이를 맞춰야 하고, ‘임원이 먼저 부하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가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감사한 마음이 들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더욱 일에 몰입하게 된다는 논리다.혼다클리오 자동차 대리점 화장실에는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 사례가 곳곳에 있다. 어항을 아름답게 꾸며서 분주한 세상을 잠시 잊도록 한 사례, 정성스럽게 포장된 기저귀가 있어서 드물지만 꼭 필요한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사례 등으로 일본 내 고객 만족도 1등 기업이 되기도 했다.사장은 ‘화장실은 그냥 볼일 보는 곳이면 되지’라는 생각을 한다면 서비스 산업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세심한 배려없이 마케팅을 하지 마라. 서비스 산업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런 것까지 신경 쓰다니’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고객은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인간관계의 최고의 책으로 꼽히는 논어(論語)에 보면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며,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하나가 되며, 장애물을 굽히고 적응함으로써 결국 바다에 이른다. 물처럼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다.이번 칼럼에서 배려와 관련하여 직장 상사의 행동은 드라마틱하고 영웅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공한 리더가 되는 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비스 경쟁력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에 물처럼 세심한 배려로 성공하는 리더가 되길 기대해 본다.

2022-10-31

과거 청산, 오래 끌지 마라

정치가 얼어붙었다. 여야 협조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검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거침없이 몰아가고 있다. 민주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야당탄압, 보복 수사 중단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민주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민주당은 국회 의석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한 절대다수 정당이다. 민주당 협조가 없으면 임기 절반을 허송세월할 수도 있다. 대통령으로선 어떻게든 여야 관계를 풀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이미 드러난 혐의를 덮으라고 하는 것도 부당한 수사 개입이다. 윤 대통령이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률이 6주 만에 30%를 넘었다. 아직 지지율이 심각하게 바닥이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회복 조짐을 보이는 건 윤 대통령에게 고무적이다. 지지 이유에 대해 ‘국방·안보’(10%) 외에 ‘공정·정의·원칙’(9%)과 ‘부정부패·비리 척결’(5%) 등을 꼽았고, ‘공정·정의·원칙’은 지난주보다 6%포인트나 올랐다. 특히 보수층에서 지지가 오른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를 지지한 결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윤 대통령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기대다. 그는 검사 이외에 다른 경험이라고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도 외골수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정치력이 없다는 말이다. 좋게 보면 수사에 내 편, 네 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잘하는 것은 바로 이 범죄 수사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기대한 것도 그것이다.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맡아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사건 수사팀장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 수사로 정권과 부딪쳐 검찰총장에서 쫓겨났다. 이 바람에 이념과 관계없이 수사에 엄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평가가 대선 당시 국민의 불만과 맞아떨어졌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해 정권을 내놨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그만큼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컸다.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이다. 그게 윤 대통령에게 맡겨진 소명이다. 경제나 다른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그 일은 잘할 것이라는 기대다. 물론 다른 분야를 맡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권력자가 겸손해야 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정적을 수사한다고 무조건 정치보복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민주당 내부에서 먼저 제기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법을 정치 탄압 수단으로 이용했다. 정치자금도 집권 세력이 독점했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 정치인 범죄라고 눈 감으면 권력형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진실을 밝혀야 정치보복인지 가릴 수 있다. 지금 거론되는 혐의들만 보면 지방정부의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다. 여야를 떠나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대통령 중심제에서 임기 초는 중요하다. 이때를 놓치면 어려운 일을 처리하기 힘들다. 그 황금기를 여야 대치로 허비하고 있다. 그 힘을 국가 비전이 아니라 과거 청산에 쏟는 것도 안타깝다. 굳이 피할 수 없는 수사라면 속전속결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빨리 반전을 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혐의가 명확한 것만 손대는 게 옳다. 사소한 트집 잡기나 부풀리기, 견강부회는 피해야 한다.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될 정치권 논란까지 끼어들거나, 전선을 확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내년 경제가 매우 어둡다. 야당 협조가 없으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어차피 지지율이 바닥이니 눈치 보지 말고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내년 총선까지 수사를 끌고 가자는 유혹도 있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순간 수사는 역풍을 맞는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계속된 ‘적폐 청산’만으로도 지겹다. 확실하게 혐의가 입증되는 것만으로 빨리 끝내지 않으면 박수가 야유로 변할 수 있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10-30

신재생에너지 정책, 독일에서 배우자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미국의 뉴욕 주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70%로 늘리고 2040년에 100% 달성하기 위해 캐나다 퀘벡 주로부터 신재생에너지를 수입한다는 내용이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545km에 이르는 송전망 건립에만 45억달러(6조5천억 원)가 투입된다고 한다. 뉴욕의 환경운동가들은 “탄소중립을 일찍 시작했더라면 더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고 당면한 문제인 만큼 최대한 빨리, 확실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대비는 늦으면 늦을수록 더 큰 대가와 비용이 따른다는 교훈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당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탄소중립 시대정신을 역행하다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뉴욕주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우리나라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우리 나라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지난해말 현재 7.2~8.1% 정도다. OECD 38개국(평균 28.0%) 중 꼴찌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삼성·SK), 자동차(현대), 철강(포스코), 조선 등 세계 굴지의 제조업체들이 즐비해 있어 전력소비는 세계 8위에 랭크돼 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즉 신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이루어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부와 산업계의 대응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탄소중립 정책과 관련한 우리나라 정책은 어지러울 정도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 때는 2030년 발전비중을 20%로 제시했었다. 그 뒤 2021년 NDC 발표 때는 30.2%로 상향했다가 2022년 다시 21.5%로 낮춰 잡았다.산업계에선 2021년 발표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에 대해서는 ‘현실을 무시한 불가능한 목표치’라고 했다가, 올해 정부가 목표치를 낮추자 이번에는 “2030년 40% 이상은 돼야한다”며 롤러코스터식 반응을 보이고 있다.우리와 비슷한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독일은 지난 2016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9.3%였지만 2021년에는 40%를 상회했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5년에는 55~60%, 2050년에는 80%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2050년 목표치를 100%로 늘렸다. 에너지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전쟁과정에서 뼈저리게 터득했기 때문이다.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990년까지만 해도 0%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난 2009년과 2014년 재생에너지 실행계획과 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2050년 ‘탄소배출 제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9월 5일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기업들은 곧 공급망을 포함해 RE100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무역장벽에 부딪히게 된다.만약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한계점에 달하게 되면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할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SK, 현대, 기아자동차가 앞다퉈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 중에는 신재생에너지 100% 공급이 가능한 새로운 산업생태계의 필요성도 포함돼 있다. 일본 소니사가 지난 202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늘려주지 않으면 일본을 떠나겠다고 경고한 뒤, 일본정부가 부랴부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목표를 20%대에서 38%로 상향한 것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기업이 필요로 하는 신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 법안 제정이 시급하다. 규제 위주로 제정된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정비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할 때마다 야기되는 민원 해소를 위해 ‘주민주도형’ 발전사업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독일의 경우 지난 2009년과 2014년 재생에너지 실행계획과 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 활성화되도록 했다. 재생에너지법에 의해 독일의 태양광발전시설(600만개 이상) 대다수는 개인이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발전사업자가 지주들이 토지를 임대해 발전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수많은 민원이 제기된다. 태양광발전사업자들이 금융기관 대출로 대규모 토지를 임대해서 사업을 하다 보니 대출 비리, 민원쇄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발전사업을 주민주도형(지주, 기업, 금융기관, 시공사 참여)으로 하면 민원문제 해결, 과다대출에 따른 부작용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을단위 발전사업(한 마을에 최소 10MW 이상 30MW 정도)에 따른 규모의 경제도 실현된다. 마을단위 발전사업을 할 경우, 관리인력 일자리(1MW당 3명 정도)와 발전수익(논농사의 20배 이상 수익 기대)으로 농촌의 소멸을 막아낼 수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신재생에너지 생산도 물론 가능하다.

2022-10-30

교사의 건강이 교육의 질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최근 코로나19 등 교직 환경 다변화로 인해 교사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사의 77%가 1개 부위 이상, 59.3%가 2개 이상, 43.5%가 3개 이상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 정도는 5단계 척도에서 평균 3.15로 일반 공무원 2.83, 기업체 직원 2.71에 비해 가장 높다. 일반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비슷한 높은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과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의학적 조치와 인식 개선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우선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교사의 근골격계 부위에 대한 치료경력에서 통증호소자 중 절반의 교사들이 허리가 쑤시거나 어깨가 욱신거리는 통증을 단순한 피로나 퇴행성 질환으로 여기고 치료를 미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병원, 한의원 등 전문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비율은 23.3%에서 많게는 39.4%로 미미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허리 부위나 목 부위 통증 호소자 중 절반에 가까운 교사가 디스크 증상 의증으로 판단 된 후에나 전문적인 치료를 시작하는 등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아 예방과 관리에 한계가 있다.판서와 행정업무의 전산 처리를 매일 해야 하는 교사의 경우 물리적으로 반복되는 특정 자세가 신체 부위별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 또한 직무 스트레스, 직무 요구도, 사회 심리적 요인 등이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직무스트레스로 인해 심리적 부담이 생기게 되면 근육 긴장도가 증가하고, 근골격계 질환의 증상을 발생시키며, 때로는 증상에 대처하는 능력을 감소시킴으로써 증상을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그러므로 간단한 스트레칭, 근력강화 등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과 관리를 위해 운동 프로그램을 교육현장에 적용했을 때 효과적이었다는 국내외 연구결과들이 많다. 사무직 근로자에서 근골격계 질환은 유병률이 높은 편이지만 간단하고 정기적인 스트레칭만으로도 예방이 가능한 질환이다. 운동요법이 근육의 가동 범위를 회복시키고 근막통증증후군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며, 경견완(목, 어깨, 팔)장애나 흉통, 요통의 치료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더욱 눈여겨볼 점은 근골격계 질환과 직무스트레스는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결과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고 있는 교사가 직무 스트레스 점수가 높게 나왔고, 직무 스트레스 치료 경험이 있는 교사가 근골격계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교사의 경력이 많을수록 그리고 가사노동시간이 길수록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가 높게 나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유해요인을 교사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위험성을 스스로 파악하고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이기도하다.직무 스트레스는 고경력의 교사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학생 인권은 지켜지는 반면 교권은 무너지고 있는 현 교육계의 권위상실로 인한 생활 지도의 어려움, 과도한 행정업무, 학부모 민원 응대 등을 들 수 있다. 학교급별에 따른 비교 자료를 보면 초등학교 교사가 고등학교 교사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의 업무 강도 조절과 근무환경 개선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한편 여가활동을 하지 않는 교사보다 여가활동을 하는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와 직무 스트레스가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직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대책으로 여가활동을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특히 교사들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만성요통은 유연성 증진, 근력 강화, 협응력 증진, 근지구력 향상과 동시에 생활 및 작업 자세 교정, 영양관리, 스트레스 관리 등 실기 위주 전문가교육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유산소운동은 에너지대사에서 발생하는 산소유리기를 제거하는 효소의 활성을 증가시켜 근골격계 질환자들에게 인체에 유해한 물질들의 생성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에 적합한 운동의 유형과 시간 그리고 강도 설정도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사람을 가르치고 그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선한 영향력을 주고자 하는 이들이 교사다. 그런데 교사들이 지쳐가고 있다. 그들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학교라는 현장이 만만치 않다. 교사의 직무수행도는 수업 및 전반적인 학교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에 무엇보다 교사의 건강과 안전은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독일에서는 학교구성원 중 3명 이상이 그룹을 지어 운동치료를 원할 경우 스포츠지도사나 운동처방사 등 스포츠전문가들이 점심시간이나 일과 후 ‘찾아가는 서비스’를 통해 스트레칭, 근력강화운동, 스포츠마사지 등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의학적 조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이제 먼 나라 얘기가 아닌 듯하다.

2022-10-30

화합으로 새로운 희망울진을 위해 나아가다

손병복울진군수 울진군이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화합으로 새로운 희망울진’ 건설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딘지 넉달이 됐다.민선 8기 울진군의 화두는 화합과 혁신이다.화합은 그 어떤 가치보다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이에 지방선거 이후 지지 후보에 따라 나뉘었던 민심을 모으고, 군민들과 공직자의 단합된 힘으로 편견과 갈등이 없는 군민화합을 이루어 군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갈 것이다.두 번째 화두인 혁신은 희망울진으로 변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다. 군정의 혁신을 통해 실용성 있고 실천 가능한 정책을 펼치고, 행정의 변화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또한, 혁신으로 이룬 변화로 군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마련해 갈 것이다.이러한 군정 추진을 위해 ‘실용적인 경제’, ‘차별화된 관광’, ‘감동주는 복지’ ‘섬기는 군정’을 군정 목표로 삼고 군민 모두가 잘사는 울진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35년간 대기업에서 터득한 경영전략을 행정에 접목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고,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고 다른 지역과 구별될 수 있는 특별한 관광 아이템을 통해 관광객 1천만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어르신들은 찾아가 돌보고, 장애인들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고, 다문화가족들은 따뜻하게 보살피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로 군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군정을 이끌어 갈 것이다.그러나 어떤 정책이나 방법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힘이다.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화합을 이끌 것이고 그 화합이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다.섬기는 군정을 통해 공직자는 군민을 존중하고 섬기며 즐겁게 일하고 신바람 나는 공직 분위기가 군민들에게는 양질의 서비스로 전달되고 군민에게 존중받으며 공직자로서 자긍심을 찾아가는 그런 공직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민선 8기가 시작된 지 넉 달여. 짧다면 짧다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동안 희망을 보았고, 힘을 얻었고, 오랫동안 고민해온 군정을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울진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신한울3·4호기 건설 조기 재개를 위한 노력을 이어왔고 다행히 정부에서 착공 시기를 앞당기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침체 되어 있던 울진 경제에 희망의 빛이 드리웠다.화합과 혁신이라는 바탕 아래 민선 8기가 이루고자 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군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울진군을 만드는 것이다.“군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살피는 것은 군정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민선 8기 울진군은 경제부흥의 시대를 열어 가겠습니다”민선 8기는 울진 경제부흥 전략의 일환으로 글로벌 원전 최강국 중심도시를 건설을 목표로 삼고 취임과 더불어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정부의 국정과제와 연계하여 추진했던 신한울 3, 4호기 착공이 2024년으로 앞당겨짐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착공될 수 있도록 관련 부처, 사업자 등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각 읍·면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하며, 군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주민들이 보내는 신뢰와 응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앞으로 군정을 이끌어 갈 힘을 얻었다.취임 이후 직원들과 그동안의 업무에 대한 보고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회의를 강행군으로 이어가며, 직원들과 함께 울진군 발전을 위한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그리고 이제 한발 한발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화합으로 새로운 희망울진’ 이라는 슬로건과 ‘실용적인 경제’, ‘차별화된 관광’, ‘감동주는 복지’, ‘섬기는 군정’의 군정 목표가 향하는 곳은 단 하나. 군민들이 잘 먹고 잘사는 행복한 울진을 만드는 것이다.너무나 단순한지만 이루기 쉽지 않은 것.군민들의 행복을 위해 민선 8기, 울진의 군정은 변화할 것이다.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실천할 것이다.

2022-10-30

황금사과를 지키는 용자리

용은 동·서양을 아울러 사람이 만들어 낸 상상의 동물로 신성한 존재로 주목받는다. 특히 동양에서는 제왕의 상징으로써, 임금의 옷을 용포, 앉는 자리를 용상이라고 한다. 또 과거 급제를 용문에 오른다 하여 등용문이라 불렀다. 용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관장하기도 하지만 불을 내뿜기도 하는 무서운 동물로 여겼다.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동물로 나타나기도 한다.별자리 중 북극성 근처에 용자리가 있다. 신화에 의하면 용의 임무는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지키는 일이다. 이 황금사과는 제우스를 비롯해 신들이 노니는 정원에 심겨 있는데, 제우스와 헤라가 결혼식을 올릴 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신부 헤라에게 선물한 것이다. 사람이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고 도리어 젊어지는 신비로운 열매여서, 헤라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는 님프 헤스페리데스의 세 자매에게 이 나무를 보호하고 가꾸도록 했고, 용으로 하여금 사과나무를 지키게 했다.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고난의 임무 중 열한 번째가 용이 지키고 있는 황금사과를 훔쳐 오는 일이었다. 헤스페리데스 세 자매 아버지 아틀라스 도움을 받으면 황금사과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티탄족인 그의 일족이 제우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제우스로부터 영원히 하늘(천공天空)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벌을 받고 있었다.어쨌든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를 찾아가 딸들에게 부탁하여 황금사과를 구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평생 하늘을 이고 있어야 하는 아틀라스로서는 자유의 몸으로 돌아갈 다시없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사연은 각설하고, 헤라클레스가 대신 천공을 떠받치고 있게 한 후 아틀라스가 황금사과를 구해왔다. 그런데 아틀라스는 자유의 몸을 간절히 원했다. 아틀라스가 한 가지 꾀를 냈다. 그가 황금사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자, 헤라클레스여! 그대가 원하는 황금사과가 여기에 있소. 그런데 이 사과를 가져오도록 명령한 에우리스테우스를 내 잠시 만나고 돌아올 터이니 그때까지 잠시만 있어 주시오.”이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의 속셈을 금방 알아차렸다. 아틀라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과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이 평생 무거운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헤라클레스는 속지 않았다.“그렇게 하시오. 그렇지만 내 어깨가 아프니 그 위에 천을 댈 동안만 이 하늘을 잠시 들고 있어 주시오.”속으로 쾌재를 부른 아틀라스는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는 들고 온 황금사과를 땅에 내려놓고 헤라클레스에게서 다시 하늘을 받아들었다. 헤라클레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땅에 놓인 황금사과를 가지고 왔던 길로 떠나버렸다. 헤라클레스에게 속은 아틀라스 표정을 여러분 나름대로 상상해 보시길 바란다.이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직접 용을 죽이고 황금사과를 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용을 죽이고 황금사과를 구했다는 신화도 따로 있다. 이 별자리는 작은곰자리 끝인 북극성 아래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는데, 헤라클레스자리 발아래에 있어 마치 용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상상한 듯하다.그리고 영원히 하늘을 떠받들고 있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아틀라스에 대해서는 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페르세우스가 머리카락이 수백 개의 뱀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천공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를 만나 하룻밤 묵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아틀라스는 어떤 이유에선지 거절했다. 화가 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보여주었고, 아틀라스는 그만 돌로 변하고 말았다. 아틀라스의 이름 ‘tla’는 ‘견디다. 혹은 버티다’란 어원이 들어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0-30

이란 ‘히잡 시위’를 생각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10월 13일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테헤란에서 이란 ‘도덕 경찰’에 체포된다. 그녀가 체포된 이유는 머리카락 일부가 보일 정도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 전부다.사흘 뒤에 의문사한 아미니를 추모하면서 ‘히잡 시위’가 불타올랐다. 히잡 시위의 슬로건은 ‘여성, 생명, 자유’다. 히잡 시위로 지금까지 사망자 200여 명과 2천명 이상의 구금자가 발생했다고 외신은 보도한다.검사 출신으로 검찰총장을 역임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7월 22일 제정한 ‘히잡과 순결의 날’이 히잡 시위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여성 작가이자 예술가인 28세의 세피데 라슈노가 옷차림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성희롱을 당한 끝에 체포되었는데, 그것의 근거가 ‘히잡과 순결의 날’이었다. 이란 여성들의 옷차림에 국가가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일상화된 게다.히잡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고 있는 까닭은 이란 정부의 통제적인 사회정책, 독재정치, 기득권 세력의 부정부패,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심각한 경제 상황 등이다.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혁명으로 팔레비 국왕이 쫓겨나고 이란에는 정교일치의 신정정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세계가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21세기에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 정권이 득세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란의 젊은 세대는 종교적인 억압에 불만을 품고 세속화를 추구하며 한류 열풍에 열광한다. 반면에 특권층은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대를 물려가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한다.이런 복합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온 아미니의 의문사가 이란 청년들을 격동시킨 것이다. 여성들이 단순히 히잡을 안 쓰겠다고 일으킨 시위가 아니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그들이 주장하는 여성과 생명과 자유에는 많은 것이 함축돼 있다. 여성 인권운동이 19세기 후반에 태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여성 인권은 사각지대에 있다. 팔레비 체제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이란 여성들에게 호메이니 체제와 그 연장은 질곡 그 자체다. 여성이 자기들이 옷차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면이 지적되어야 한다.생명의 근저에는 여성이 자리한다. 여성과 생명은 등가(等價)이며 언제나 등치(等値) 가능하다. 여성과 생명 모두에게 자기 의사(意思) 결정권이 부여되어야 함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 또한 필연의 수순(手順)이다.여성들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자기 결정권을 온전하게 부여하지 않는 나라는 분명히 독재국가이거나 인권 후진국이거나 시대착오적인 왕조 국가일 것이다.이란의 히잡 시위는 세계 곳곳의 동조 시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이란 청년들의 시위에 담긴 정당성과 세계 시민들의 살아있는 연대 의식이 서로 결합한 까닭이다. 이란 청춘들의 목숨을 건 분투 노력을 강력히 지지하며 승리의 그 날을 간절히 기원한다.

2022-10-30

에어택시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UAM(Urban Air Mobility·도심항공교통)이란 항공기를 이용하여 사람과 화물운송을 담당하는 교통수단을 말한다. 기존의 여객기가 국가와 국가를 잇는 주로 장거리 중심이라면 UAM은 복잡한 도심내에서 이뤄지는 에어택시 기능의 항공교통 수단이라는 점이 다르다.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도 많다. 고층빌딩이 많은 도심 상공을 오가는 교통이어서 활주로 없이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야 한다. 안전성과 경제성도 담보돼야 한다.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만화나 영화 속에서나 상상했던 일이다. 그러던 것이 현실로 곧 등장할 것 같다는 소식이다. 2019년 미국의 보잉사가 자율주행 방식으로 운행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시험비행에 성공하면서 세계 각국이 에어택시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전문가들은 빠르면 2024년 이후 하늘을 나는 택시가 상용화될 것이라 하고, 우리나라도 2026년쯤에는 상공을 나는 에어택시를 구경할 수 있을 거라 전망한다.대구시가 지자체로서 처음으로 미국의 항공우주분야 전문기업인 벨 텍스트론과 첨단항공 모빌리티산업 육성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2030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개항에 맞춰 도심항공교통 인프라 확장을 위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생각이다. 대구 도심에서 군위 신공항까지 에어택시가 운행되는 상상에 머물던 일이 머지않아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택시보다 6배 빠르면서 요금은 두배정도 비싼 에어택시의 등장은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에어택시 등장은 도심교통의 대혁명뿐 아니라 부동산 입지의 패러다임도 바꾸게 될거라 하니 모빌리티 산업이 지역에 미칠 파장에 촉각이 곤두선다. 통합 신공항 효과가 벌써부터 그 조짐을 보인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0-30

‘파친코’ 읽기를 권유함

이정희 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으로, 최근 TV에서도 책 소개로 흘러나오고 있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는 문장이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어려운 문장이다.역사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의 흐름의 방향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갔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역사의 방향이 틀어졌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파친코’의 첫 문장 번역은 처음에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였다. 이 문장은 원문을 보지 않더라도 틀린 문장이다. 역사가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이상, 역사가 우리를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원문은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이다. ‘fail’은 타동사로 ‘망치다’라는 의미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번역자는 독자들에게 좀 더 강한 인상을 주고자 ‘망쳐놨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해석이다.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잘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올 7월 말에 한국에서 두 번째로 출판한 ‘파친코’에는 처음 번역한 문장을 수정해서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했다. 우리말의 ‘저버리다’가 이렇게 무게감 있게 다가오기는 처음이다.올 여름 나는 ‘파친코’를 미리 출판 예약으로 구입해서 그날로 다 읽어버렸다. 완독까지 며칠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다 읽고 말았다.책은 ‘파친코1’, ‘파친코2’로 700쪽이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비교적 술술 읽혔다.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소설 속 시간적 배경은 1910년부터 1989년까지로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속 공간적 배경은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등장한다. 올 해 읽은 책으로는 가장 울림이 컸다.‘파친코’는 우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보다 먼저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뉴욕타임즈’, ‘USA투데이’, 아마존, BBC 등 75개가 넘는 주요 매체에서 ‘올 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또한 애플TV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해서 전세계에 동시 공개되었다.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이 ‘파친코’ 드라마를 보고 한국과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를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지닌 파급력인 것이다.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 먼저 소설 ‘파친코’ 읽기를 권유하고 싶다. ‘파친코’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전세계 독자들의 반응이 더 뜨거워질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파친코’도 하루 빨리 우리의 TV를 통해 쉽게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2022-10-30

청춘의 축제를 탓할 수는 없다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지난 토요일,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어서 그런지 새벽 세 시에 잠이 깨어 비몽사몽 중에 휴대폰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안전 안내 문자가 8통이나 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찾아보니 서울 이태원에서 인파에 밀린 압사 사고 소식이 포털 첫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나서 뉴스만 보았다. 뉴스를 새로 클릭할 때마다 사상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30일 오후 5시 현재 사망자는 153명이라고 하지만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뉴스에서는 사망자 소식과 함께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분석이 요란하다. 한국식 할로윈 축제가 얄팍한 상술과 결합하여 변종이 되었다며 이참에 무분별한 외래문화 수용을 점검하자는 비판론도 보인다. 실제로 젊은이들의 할로윈 축제가 무분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젊은이들의 빈약한 놀이 공간과 놀이 문화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기사도 있다.나 역시 한때는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도 걱정스럽게 여긴 적도 있다. 그러나 할로윈 축제가 외래 문화라고 해서, 또는 내가 관심 없다고 해서 그것을 즐기는 청춘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할로윈 축제가 상술과 결합했다고 비난하거나, 젊은이들의 문화가 빈약하다고 성토하는 것도 공허하다. 축제를 즐기는 데 국적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기도 하다.여기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 전날 금요일 같은 지역의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수천 명이 모였을 때 사람들이 인파에 떠밀려 쓰러진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마약과 성범죄만 대비했을 뿐 인파에 떠밀리는 압사 사고 대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러나 4m 골목에 10여만 명 인파가 순식간에 몰렸을 리는 없다. 미리 대책 회의를 하지 못했다고 해도 인파가 늘어나는 추이를 살펴보고 용산경찰서는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에서도 할 수 있는 사고 예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참사가 인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그렇다고 지금 책임만 묻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사후 수습과 재발 방지가 더 중요하다. 방금 페이스북에 올라온 생명안전시민넷의 성명서를 보니, 모두 당연한 말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내용이다. 그중에도 피해자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불확실한 정보가 확산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말에는 고개가 더욱 끄덕여진다.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언론의 책임도 중요하다. 이런 재난 상황에도 조회 수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취재를 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노출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한 지인은 트위터에서 사고 사진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세월호 사건으로 304명이 죽은 지 8년 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무지와 방심이 빚은 참사라는 어른도 있지만, 청춘의 축제를 탓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이 무지하고 방심해도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2022-10-30

대구 수성유원지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 수성유원지는 대구 12경의 하나로 소개되는 곳이다. 대구시민이 가족과 함께 즐겨찾는 장소이자 대구시민의 정서가 담겨 있는 유서 깊은 장소다.일제 강점기인 1924년 수성못 일대 농민들은 신천을 농업용수로 사용했으나 신천이 상수도로 사용되면서 농업용수 부족을 겪게 되자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와 함께 저수량 70만t의 수성못을 축조하기에 이른다. 당시 축조에 공로가 컸던 미즈사키 린타로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묘가 수성못 부근에 조성돼 있다.수성유원지보다 수성못으로 더 알려진 이곳의 명물로 수성관광호텔(현재 호텔수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대구 최초의 관광호텔로 고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박 대통령이 대구에 오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머물러 박정희 별장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지금도 그가 머물던 방이 남아 있어 관광용 객실로 팔려나간다 한다.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성못 둘레에는 100개가 넘는 포장마차가 성행, 불야성을 이뤘으나 1991년 수성못 일대 정비가 시작되면서 모두 사라졌다.수성못 한쪽 편에는 대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자 문학 시인인 이상화를 기념하기 위한 상화동산이 조성돼 있고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비도 세워져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곳에서 시장 출마를 선언해 당선이 됐다.대구 대표 명소인 수성못의 소유권을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대구시나 수성구청으로 무상 이양하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다고 한다. 농업용수 기능이 사실상 폐지된 저수지를 지방자치단체로 넘겨 효용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수성못이 명소에 걸맞는 변신을 거듭할지도 주목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27

‘아줌마’와 ‘여사님’

홍석봉정치에디터 한 상가(喪家)에서 있었던 일이다. 60대 상주가 문상객들을 맞으면서 상가 일을 돕던 여성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며 음식을 요청했다. 그 순간 뒤돌아본 50대 여성은 표정이 굳어진 채 레이저 눈총을 쏘았다. ‘아줌마’라는 말에 감정을 상한 듯 했다.옆에 있던 상주의 지인이 ‘아차’ 싶어, “여사님!, 상주가 잘 몰라서 그런 모양인데 이해해주세요”라며 상주를 옆으로 밀어내 겨우 어색한 국면을 모면했다.요즘 상가의 여성 도우미를 ‘여사’로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동석했던 문상객 다수가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듯 했다.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일행들은 ‘아줌마’라는 말이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인지 여부를 두고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아줌마’라는 말은 ‘아주머니’라는 말의 낮춤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아주머니’는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나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아줌마는 그만큼 우리에게 스스럼없고 친근한 말이었다. 오랜 세월을 무탈하게 사용해 왔다. 하지만 아줌마가 어느 순간 비하의 표현이 됐고 금기어가 됐다. 잃어버린 ‘동무’처럼,‘ 여사님’이 대신했다.한때 방송인 김어준의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 호칭이 논란이 됐다. 한 민간단체 대표가 ‘김건희 씨’ 호칭 사용을 두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것이다. 문재인·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는 ‘여사’라는 존칭을 쓰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는 ‘씨’를 사용한 것이 인격권 침해라는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영부인 호칭을 안 쓰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이후 각종 언론 등에 ‘여사’가 통용됐다.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같은 논란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결국 지지자들의 요구에 따라 ‘여사’ 호칭이 굳어졌다. 대중의 언어 습관 변화 등을 고민한 결과였다. ‘00씨’라는 표현이 높임말임에도 불구,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북한에서는 ‘여사’가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이나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에게만 사용하는 호칭이다. 감히 다른 사람은 사용하지 못한다. ‘존엄’을 해칠 수 있어서다.여사(女史)의 사전적 의미는 결혼한 여자 또는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현재는 다른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거나 호칭이 마땅치 않은 나이 많은 여성을 ‘아줌마’ 대신 부를 때 사용한다.그런데 요즘 다수의 여성들이 근무하는 곳에는 ‘여사’가 일반적인 호칭으로 사용되는 추세다.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는 우정실무원들도 현장에서 ‘여사님’으로 불린다. 할인점에서도 도급 여성 사원들에 대해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한때 ‘사장’호칭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구멍가게 주인도 사장이고 너도나도 사장이라고 불렀고, 행세를 했다. 이젠 기업체의 ‘대표’와는 엄연히 구분돼 사용된다. 시류 변화에 따른 것이다.바야흐로 ‘여사 전성시대’다. 대통령 부인도 여사고, 노가다 현장의 여성도 ‘여사’다. ‘사장’ 호칭이 일반화된 것처럼 여사도 상하귀천이 없이 사용하는 호칭이 됐다. 그래도 정겨운 ‘아줌마’가 그립다.

2022-10-27

바닷가 소나무 숲속의 축제

윤영대수필가 올해의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15일간의 야외전시로 송도 바닷가에서 열리고 있다. 예년보다 조금은 소규모인 듯하고 다양한 볼거리가 없지만, 송림 솔밭 도시 숲에서 포항거리예술축제가 같이 열려서 푸근하게 바다와 숲을 보면서 우리 생활에서 희미해져 가는 듯한 삶의 맥을 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스틸아트페스티벌은 ‘동행-공존하는 다양성’을 주제로 철강기업 작품 14개와 작가 작품 21개, 시민참여 작품 1개 등 총 36개 스틸아트가 맑은 가을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송도에서 푸른 바다, 하얀 모래밭을 배경으로 포항이 문화예술 도시로의 발전을 기원하듯이 ‘해보는 대로’에 줄지어 서 있다.먼저 입구 쪽 안내 부스로 가서 안내 책자와 문화 여권을 받고 천천히 투어를 시작했다. 하나하나 사진도 찍으며 살펴보니 부엉이, 오리 새들과 돌고래, 개복치 물고기도 있고 사슴, 고양이뿐만 아니라 예쁜 나비와 달팽이 등 곤충과 벌레도 철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모두 인간과 공존하는 생명체들이다. 그 사이 서 있는 천사는 두 손 모아 무엇을 기도하고 있을까? 평화의 여신상이 50년 전 포항 시정목표인 ‘명랑한 문화도시’가 이루어진듯 힘차게 하늘로 두 손을 펼치고 있다.백사장에 늘어서 있는 체험 부스로 돌아오니 어린이와 손잡고 가족이 흥미롭게 기웃거린다. 캐리커처도 그려주고 한지·칠보 공예 체험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고 기념품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도 문화 여권에 ‘제목 맞추기’를 써넣어 스탬프도 찍고 체험 티켓을 사서 캐리커처도 그려 받고 종이꽃 액자도 만지작거려 보았다. 또 다음 날 밤에 다시 와 보니 찬란한 포스코 불빛과 검은 바다의 파도 소리에 스틸아트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포항거리예술축제’가 열리고 있는 길 건너 소나무 숲으로 가봤다. 금·토·일요일 사흘간 송도 솔밭 도시 숲에서 ‘우리, 좀 더 가까이’라는 주제로 숲속에 있는 구령대, 족구장, 정자뿐만 아니라 숲속 쉼터와 놀이터 데크 등에서 스무 개의 다양한 볼거리가 공연되고 있었다. 예술가와 시민을 잇고 다양성, 포용 그리고 연결이라는 시민참여 예술제에 포항의 16개 동호회가 참여하고 있었다. 주로 젊은이들이 몸짓으로 율동으로 또 연극으로, 관람하는 시민과 가까이서 또는 같이 움직이며 평범한 하루가 특별한 시간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다 둘러보기는 어렵겠지만 숲길마다 흥겨운 가족 나들이 모습이 바로 축제다.‘요람’ 공연장 데크에서 체험으로 요람에 누워 어린이처럼 웃었지만 곧이어 시작된 1인극은 홀로 공간에서 맴도는 한 여배우의 모습이 각자의 생활 속 시공을 되새겨 보게 한다. 무대 옆을 흰 삿갓을 쓴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기에 뭔가 했더니 ‘숲을 거니는 싯구들’이라는 참여형 거리극이었다. 움직이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기도 했다.저녁나절, 송도 카페 문화거리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니 그것은 밤의 축제다. 카페와 치킨집, 그야말로 ‘까치집’에는 젊은이들의 웃음이 가득하다. 국제불빛축제가 취소된 포항의 바닷가에는 또 다른 축제가 시민들의 마음속에 불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2022-10-27

색깔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통혁당사건’으로 복역한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사석에서 한 얘기가 아니라, 각국 정상급 인사들과 북한의 김여정 일행이 참석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 말이다. 자신의 사상적 일단을 세계만방에 천명한 셈이었다. 통혁당(통일혁명당)의 지도이념은 주체사상이며,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이 목적이었다. ‘반정부 및 반미 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 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는 이유로 검거된 당원들 중 북한에 가서 로동당에 가입한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에 처하고 신영복 등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위의 사건이 다시 소환된 것은 이번 국회 국정감사장에서였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주사파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대답한 데서 비롯되었다. 김문수 위원장은 과거 노동운동을 한 경력이 있어서 신영복의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했다.‘우리 당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혁명의 전위당인 만큼 당원과 각계의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으로 결속해야 할 것이라는 정치활동의 목표로부터 출발해 (중략) 우리들은 이 힘 있는 정치선전수단으로 보다 많은 김일성주의자를 육성하고 각계각층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 통일혁명의 깃발 아래 강고하게 결집시키도록 합시다.’ 통일혁명당 기관지 ‘혁명전선’에 실린 이 글을 보면 김 위원장이 왜 문 전 대통령을 김일성주의자라고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좌파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곧잘 색깔론이라고 매도한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다고 ‘종북몰이’를 하느냐는 것이다. 좌파가 아닌 사람들 중에도 그들의 말에 동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종북 주사파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사파 조직에서 활동하다 전향한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2004년 10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주사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소위 ‘金日成 原典(김일성 경전)’을 읽으며 북한 주도 통일 실현을 목표로 활동했다. 그들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했다.”그 때의 주사파들이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의 행보를 보면 지금도 사상적으로 완전히 전향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겉으로는 내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궁극적 지향점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소위 ‘운동권’시절에 불태웠던 체제전복의 꿈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인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철저한 활동으로 좌경화된 사회일반의 의식전환을 위한 범국가적 혁신이 이 시대의 주요 당면과제이다.

2022-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