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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가 가르쳐 준 우정

등록일 2023-07-16 18:08 게재일 2023-07-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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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시인
이희정 시인

풀벌레들 소리만으로 세상 울린다

그 울림 속에 내가 서 있다

울음소리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지금 득음하고 싶은 것이다

전 생애로 절명하듯 울어대는 벌레 소리들

언제 내 속에 들어왔는지 나는 모른다

네가 내 지음(知音)이다

네 소리가 나를 부린 지 오래되었다

시의 판소리여

이제 온전히 소리판이니

누구든 듣고 가라

소리를 듣듯이 울음도 그렇게 듣는 것이다

저 벌레 소리 받아 적으면 반성문 될까

부르고 싶은 절창의 한 소절 될까

소절 소절 내 속에서 울리고 있다

모든 울리는 것들은 여운을 남긴다

―천양희,‘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 지성사, 2017)’ 중 ‘여운’ 전문

 

칠월의 풀숲에는 여름이 부푸는 소리 한창이다. 이른 아침 천양희 시인(1942~)의 시집 한 권을 에코백에 담아 들고 나선 산책길, 이슬 젖은 흙을 밟으며 걷노라니 미성(美聲)의 안개가 나란히 보폭을 맞추며 따라온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쳐다보다 접힌 모서리를 펼쳐보니 제목이 ‘여운’이다. 온전히 초록과 풀벌레 소리만으로 가득한 이곳에 여운 아닌 것이 있을까. 세상의 어지러운 소음이 거세된 울울창창한 녹음 안에 시인은 있다. 시인은 풀벌레 소리가 세상을 울린다고 했다. 울린다는 게 뭘까. 울림 소리가 숲을 흔들고 마음을 흔드니 그 울림은 세상을 흔드는 소리지 흐느끼는 울음은 아닌가 보다. 시인은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득음을 하고 싶은” 거라고 속내를 털어낸다. 부풀 대로 부푼 여름이 마침내 터지는 소리, 득음(得音)이다. 천양희 시인은 벌레를 빌어 시인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짜 시인은 언제나 타자의 이름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지만 진짜 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때도 타자와 함께 말한다”는 옥타비오 파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시인은 “네 소리가 나를 부린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한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다는 것은 운명을 거는 것과 같다고, 운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고통스러운 혼신을 바칠 수 있으며, 돈도 밥도 안 되는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는 릴케의 말을 디딤돌 삼아 시인이 되었다는 그녀의 준엄한 고백을 듣는다.

“전 생애로 절명하듯 울어대는 벌레 소리들”은 기실 시인 자신과 포개어져 있다. “언제 내 속에 들어 왔는지”모를 시가 그녀를 끌고 가고, 그런 시가 없었더라면 따라가는 그녀도 없었을 것이기에 “네가 내 지음(知音)이다”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비롯된 지음(知音)은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뜻한다.

세상에 진정으로 나를 알아주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시인은 “누구든 듣고 가라”고 권한다. “소리를 그렇게 듣듯 울음도 그렇게 듣는 것이라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것은 요즘엔 쉬이 공감되지 않는 아픔일 수도 있다. 복잡한 곳을 기웃거리는 일상에 내쳐지는 일이 다반사이고 보면 또 그만큼 가슴을 조여올 때도 없다. 고독을 잃어버리면 시의 고갈이 오기에 고독을 잃어버릴 때가 시인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다. 요즘 시인들은 고독을 잃어버리고 시에 운명을 걸지도 순정을 바치지도 않으니까 절창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 한 어느 평론가의 쓴소리에 몇 번이나 속으로 “저 벌레 소리 받아 적으면 반성문이 될까”라며 반성문을 쓰는 시인.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진짜 힘은 자신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누구든 “부르고 싶은 절창 한 소절”이 있기 마련이다. “소절 소절 내 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시인이 시 쓰기의 어려움을 고독 속에서 극복한 것처럼 고독의 터널 속에 잠시나마 거해 보자. 사람을 해치지 않는 유일한 것, 아름다움이 자란다면 풀잎에서부터일 것이다. 우정은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스며드는 풀벌레 소리와 같다. 음원이 동작을 멈추어도 여음으로 인해 혹은 반사로 인해 그 음은 더욱 진향으로 울릴 것이기에.

지음(知音)을 듣는 시간, “모든 울리는 것들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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