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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난장이다”

등록일 2025-10-26 16:17 게재일 2025-10-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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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한낮에도 어둡고

햇살이 먼저 떠나는 곳에 살면서도

오늘 하루는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납작하게 바위에 붙어서

안개 이슬을 머금고 추위를 견디는

난쟁이바위솔 같은 사람들

(중략)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은

사람 속에 살다 가는 사람이다

 

사람보다 높은 벼슬이 있을까

세상 어디를 떠돌더라도

‘사람’이란 단어를 잊지 말라던 사람 생각나

(중략)

 

그런데 왜

안개처럼 자욱한 사람은 되지 못하나

세상의 모든 외로움이 밥을 먹을 시간*

(중략)

 

나에게 남은 최근의 생각은

허름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천양희, ‘사람에 대한 최근의 생각’ 전문 (‘문학과 사회’ 2025. 가을호)

천양희 시인의 ‘안개 자욱한 사람’을 읊조리며 “난쟁이바위솔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일명 ‘난쏘공’이라 지칭되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고, 그 씌어진 것(écrit)은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쓰는 사람의 사명과 씌어진 것 사이 운명은 아이러니하다. 이에 대한 손정수 비평가의 리뷰는 서늘한 울림을 담고 있다.

“1978년 출간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96년 100쇄를 찍게 된다. 이 일을 기념하여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한 작품이 100쇄를 돌파했다는 것은 작가에겐 큰 기쁨이긴 하지만 아직도 이 소설이 읽혀야 하는 시대인가. 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더 이상 이 소설이 필요치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손정수, ‘작가의 사명과 작품의 운명 사이의 아이러니, 고전의 사계’ p.289)

“한 시대를 대표하면서 한국소설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 소설”을 말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이런 일화들일 것이다. 조세희 작가가 오징어를 파는 난장이 아저씨의 분노를 목격한 일과. 식당에서 뱅어포를 먹던 꼬마의 “난장이 바다에서 온 난장이 고기”라는 발화는 우연하게도 겹치며 써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의 독해처럼 “난쏘공의 한 겹은 동시대의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삶의 일상적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형성된 체험의 순간이 놓여있다.”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천양희 시인의 “허름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라는 언술은 인용된 신용목 시인의 시구 “세상의 모든 외로움이 밥을 먹을 시간”에서의 인상이 일상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두 난장이다’라는 명제는 새삼, ‘우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불러온다. 이때 “내게 고전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위대한 작품이기 이전에 진지한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의 문제에 언어와 이야기로 대응하고자 했던 의지의 결과로 보였다.”라는 ‘고전의 사계’에서 저자의 서문은 뭉클하다. 이는 양심과 신념을 저버리지 않은 작가들에게 비평가가 쓰는 최상급 경의의 표현일 것이기에.

“사람 속에 살다 가는 사람, ‘사람’이란 단어를 잊지 말라던 사람”

/이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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