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즈음,
쓸쓸해지는 마음
넓게 펴든 토란잎 한 장에 도르르 말린 물방울
싱그러운 물방울에 파란색 속살이 비치네
은은하고 쌉쌉한 토란의 아린 맛
맑은 물방울을 깊이 들여다보면 토란잎 아래 황토 흙
아래 눈이 동그란 벌레들의 세상
흙 속의 아들들
고물거리는 것들이 도르르 도르르
영롱한 물방울 안에
제 몸을 감고 한사코 스산해지는 마음
토란탕이며 송편이며 나물이며 잡채며 고기산적 같은 것들
누군가에게는 젖과 꿀이 넘치는 땅
고향과 명절
텅 빈 뒤주에 달빛은 가득하나
달이 둥그러질수록 어디까지 왔니 놋그릇처럼 쟁쟁한 마음
이제 마주 잡을 수 없는 어제의 손가락뼈 열 개
액체의 달빛인데
토란탕 국물 속에 뼈의 잔상이
한사코, 라는 말에 걸려 있다
―김승희, ‘토란탕’ 전문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2021, 창작과비평)
그런 풍경이 있었다. 백석 시인의 ‘여우난곬족’ 여우고개 그즈음이 그랬을 것이다. “명절날 나는 어매 아배 따러 우리집 개는 나를 따러 진할머니 진 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풀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 찻떡의 내음새도 나고” 밤이 어둡도록 일가친척들이 모여 북적하니 놀던 때가 말이다.
한가위 연휴에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그녀’는 말했다. “너희는 좋겠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실컷 놀잖아, 나는 맛있는 것들 많이 만들고 실컷 먹여야 해” 듣고 보니, 어딘가 뼈 있는 덕담이다. 여성의 명절 노동의 강도와 분량에서 보자면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 투정 속에는 애정 어린 뼈의 잔상이 걸려 있다. 가령 토란탕 “맑은 물방울을 깊이 들여다보면” “눈이 동그란 벌레들의 세상”이 보인다. “흙 속의 아들들” “고물거리는 것들이” “도르르 도르르” 달려있는 것이다. “영롱한 물방울”에는 한사코 “제 몸을 감고” 있는 쟁쟁한 마음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젖과 꿀이 넘치는 땅” 고향의 명절은 그랬다. “도르르 말린 물방울” 토란이 주는 물성은 모성 이미지를 표상하고 있다. ‘둥그런 달’과 ‘토란’에 걸린 ‘한사코’는 액화된 달빛으로 “젖과 꿀”이 내장되어 있다. 그 속에서 “은은하고 쌉쌉한 토란의 아린 맛”이 “싱그러운 물방울에 파란색 속살 비치”듯 배어 나온다.
김승희 시인의 추석 즈음에 백석의 여우난곣의 풍경을 대입해 보면 “엄매는 엄매들 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 우깐 한방을 잡고 조아질하고”“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훙성거리는 부엌으론 새잇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 오도록” 아이들이 자는 풍경이 피어오른다. 이처럼 백석 시인의 함경도 방언 속에 “무이징게 국”내음처럼 ‘토란탕’ 맑은국의 기억이 “영롱한 물방울”과 겹치면서 현재의 자리는 대별된다.
이들의 “추석 즈음”의 풍경은 한 시인의 혹은 특정 시대의 삶의 풍경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유해온 공동의 뿌리가 녹아 있다. 여러 세대가 두루 모여 “송편이며 나물이며 잡채며 고기산적 같은 것들”과 함께 낄낄거리며 복작이던 풍경 말이다.
“이제 마주 잡을 수 없는 어제의 손가락뼈 열 개// 액체의 달빛인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즈음 고향과 명절이라는 기표는 “텅 빈 뒤주”처럼 비어 “달빛”만 가득하다. “달이 둥그러질수록” “놋그릇처럼 쟁쟁한 마음”만 추석 보름달처럼 부풀고 있다.
때마침 명절 연휴에 읽을 셈이라며, 제인 오스틴류의 소설책을 한 아름 껴안고 그녀들이 오고 있다.
“제 몸을 감고 한사코 스산해지는 마음”
/이희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