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내게 썩 쓸모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서적을 소개하는 지면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수많은 신간 서적이 출간-유통되는 21세기 20년대는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그래서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자 독서광 다치바나 다카시(1940∼2021) 평론가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생전에 그는 “이렇게 좋은 책들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데, 죽어야 한다니 너무나 안타깝다”는 소회(所懷)를 밝힌 바 있다.
얼마 전에 ‘표류하는 세계’에 나오는 구절을 보고 즉시 구매했다. “미국이라는 강력한 배는 정치 갈등과 부패, 이기주의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사회를 둘러싼 논쟁들은 폭력적이고, 젊은 사람들은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며,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나라를 희생해가면서 개인의 영광을 추구한다. 공동체는 쇠퇴하고 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게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인가?!
하기야 세계에서 미국을 가장 열심히 추종하는 나라가 나의 조국이니까 동조성(同調性) 확인은 식은 죽 먹기일 터. 미국인들의 두 가지 금기(禁忌)가 정치와 종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친구나 가족 간에도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하는 화제와 어떤 종교를 믿느냐 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피한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 사회는 정치와 종교 갈등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갈등 역시 미국 못지않다.
이른바 제3 당의 출현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의 바람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정부 여당과 제1 야당의 갈등과 대결 양상이 연일(連日) 언론의 주제가 되지만, 적정한 선에서 마무리되는 타협과 해결방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정치에 염증을 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나이 먹은 축들만 열성적으로 투표장에 나간다. 선거는 미래권력을 선출하는 행위인데, 청년들은 놀러 가고, 노인들만 투표하는 이상한 행태가 되풀이된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에 중독된 젊은 세대는 직접적인 대면이나, 전화 통화를 꺼리고, 문자 소통으로 대신하는 데 익숙하다. 사람을 만나든 전화로 통화하든 완결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한다는 게 그들에겐 어려운 과제라고 한다. 이른바 ‘카카오톡’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에 노예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에 극히 짧은 의사소통 수단에 속수무책으로 길들여진 것이다. ‘ㅇㅋ, ㅇㅇ, ㅋㅋㅋ’ 같은 놀라운 신발명 표기를 보았을 터다.
‘표류하는 세계’에 나오는 글 가운데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똑똑한 인간들의 지독한 개인주의와 영광 추구로 인해 공동체가 쇠퇴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개인주의로 중무장한 상태에서 출발한 나라이니까 그렇다 쳐도, 나와 가족보다 이웃과 공동체를 중시했던 미풍양속이 우리 조상들의 전통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나와 가족이 조금 손해 보더라도 공동체를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고 배운 세대가 속속 사라지고 있다.
나의 결론은 단순하다. 잘난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 배운 사람들, 권력 가진 사람들이 이제는 내려놓고 공동체를 돌보자는 것이다. 공동체 건설을 위해 함께 매진하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