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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하기 힘든 것이 있다면 첫째는 자기 자식이라도 부모의 뜻과 욕심으로 키울 수 없는 것이고 자기마음 자기 의지대로 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가 낳는 자식이 부모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가. 수십년 공부시켜 부모의 원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 때 부모의 속은 뒤집힌다. 그리고 자신을 관리하는 자기의 의지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내마음 나도 몰라`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한다. 때때로 인사청문회나 인사검증에서 자기관리에 대한 오류가 항상 지적이 되고 말썽이 돼 낙마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가장 기본적 자세에서 자신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이면지나 몽당연필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라 한다. 검소하고 청렴한 이미지를 남기는 것이 출세나 승진의 시작이다. 생활이 검소하지 못하면 이중적인 인간으로 평가받기 쉽다. 국민의 잣대가 높아진 지금 도덕성 해이는 치명적이다. 박봉이지만 정기적으로 자선사업을 하거나 자신에게 승진의 기회가 왔을때 선배에게 양보하는 것도 이미지 관리의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일들 가운데 삼가해야 할 것은 위장전입, 병역기피, 음주운전 이것은 모두가 독약이다. 그밖에 원정출산, 세금체납, 공직자재산등록 누락, 투기목적의 재산증산, 주식 거래도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간혹 학자 출신의 관리자들은 허위 경력이나 논문표절이 검증의 대상이 되며 사소한 법규위반도 쌓이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세금체납이 있으면 즉시 신고하고 납부하면 금방 해결이 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깜빡 잊었다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주변관리 잘 하기 위해서는 감동적인 일을 하고 남과의 형평성에 맞게 생활하라. 사조직에 공을 들이지 말며 주변사람을 잘 관리하고 편애하지 마라. 윗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라. 조심이 제일이다. /손경호(수필가)

2011-12-22

봉화 청량사와 청량정사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산에는 최고봉인 의상봉(해발 870m)을 비롯해 보살봉, 연화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있고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등 12개의 대와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터가 있다. 최고봉인 의상봉은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입산수도한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이곳 연화봉과 금탑봉 사이 계곡에 자리한 청량정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4호)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으로 안동 부사를 지낸 이황의 숙부 송재 이우가 조카인 온계 이해와 퇴계 이황을 비롯해, 조효연, 오언의 등을 가르치던 건물이다. 그 뒤 퇴계 선생이 이곳에 머물며 성리학을 공부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도산십이곡을 저술했다고 전해지고 있다.청량정사의 당은 오산이고 헌은 운루, 요는 지숙이며, 문은 유정이라 되어 있다. 일명 `오산당`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오산`은 중국 송 주자의 시 구절 `명명직조오가로(明明直照吾家)`에서 따온 것으로 `우리집 산`이라는 뜻과 `유가(儒家)의 산`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청량정사 마루 안쪽에 `吾山堂(오산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마루 우측 방에는 `지숙료(止宿寮, 머물러 잠자는 곳), 마루 좌측 방 입구에는 `운서헌(雲棲軒, 구름이 깃든 곳)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마루방 앞은 사분합 들문을 달아 개방할 수 있도록 했고, 마루상부에는 청량산에 관계된 이황의 시 몇 편이 걸려 있으며, 건물 가운데 어칸 추녀 밑에는 청량정사(淸凉精舍)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한편, 청량사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 중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로, 대웅전이 없고 약사여래를 모신 유리보전(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과 심검당이 있다. 편액에 쓰인 말대로 심검당(尋劍堂)을 보고 사찰에 웬 칼을 찾는 집이 있을까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아마도 승속에서 현세의 연을 끊기 위한 칼이 필요해서가 아닐까싶다. 유리보전의 편액은 공민왕의 친필로도 유명하고 약사여래는 종이 재질(닥나무)로 만든 지불(건칠불)로도 유명하다.창건당시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청량사는 봉우리마다 자리 잡은 암자에서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유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됐다. 필자가 `한국의 정자건축` 녹화를 위해 갔을 때, 주지에게 청량정사 내력을 물었더니 말도 하기 싫다며 손을 내저었다. 불교가 탄압을 받을 당시 청량정사의 유생들이 청량사의 스님들을 불러 유생들을 등에 업고 산 아래 낙동강 건너 마을까지 업어 나르게 했다고 한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영남이공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11-12-22

우리 백자의 마음

장성룡도예가·계명문화대학 교수도자기는 인류가 토기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그릇으로써의 기능뿐만 아니라, 생활의 미를 통한 나름대로의 미적 추구를 통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다른 예술품에 비해 가장 진솔하게 그 민족의 감성을 드러낸 대표적 예술품으로 인정받았다.우리의 전통 도자는 시대의 변모에 따라 비록 그것이 추구하는 형태와 기능, 미적 효과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그 바탕을 흐르고 있는 정신은 하나이며, 그 정신은 우리 고유의 예술적 형식을 통해 한국 민족의 미에 대한 관념을 잘 반영하고 있다.한국적 조형미란 말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문화의 근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의 근원에 대한 해명이 없이 한국적이란 말을 설명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전통이란 미래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또한 전통의 발판 없이 민족문화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미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곧 그 나라의 민족성을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민족의 생활상에 따른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조선시대 백자와 같이 당시대인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문화는 언제나 외부로부터의 영향과 내부로부터의 성찰이나 자각에 의하여 변모되어 왔다. 한국 도자 문화 역시 서로간의 교류를 통하여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는 주면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도자의 본질이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하기란 매우 어렵다. 사실 본질과 성격이란 한 장의 종이와 같아서 표리의 관계처럼 불가분의 위치에 있는 것이며, 동시에 이들은 본체와 현상과도 같아서 이원적으로 볼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특성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근원적 실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노력이 요청 된다.지금 우리는 세계화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모르면서 세계화에 뛰어들면 우리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험난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풍비박산이 되고 만다. 이제 전 세계는 어떠한 보호막도 없이 아무 규제도 없는 경쟁 속에서 이겨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속에 보이는 장벽보다 더 넘기 어려운 머리싸움의 장벽이 높이 도사리고 있다. 이때에 문화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문화를 통하여 자신의 분명한 주체를 찾고, 미래의 새롭고 훌륭한 민족상을 정립시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예술작품은 인간의 철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삶에서 추상화한 가장 다듬어진 표상이다. 그러므로 우리 백자에 나타난 미적 가치는 삶의 철학을 이끌어가는 인간의 정신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인간가치와 동일시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아 예술의 유산으로 남겨진 미술품들 중에 숨겨진 미적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선조들이 어떠한 사상으로 살았으며, 그들이 추구하였던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관, 그리고 형이하의 세계에서 표현되고 있는 인간 가치가 우리의 백자를 통해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연구가 부족하고 안목도 없고 넓고 깊게 보지 못하는 사람의 독백 같지만 나는 우리의 생활과 문화가 자연과 하나 되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확신한다. 문화는 각 국가와 민족이 여러 가지 형태로 교류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주체를 세우고 우리만의 독특함과 독창성, 고유함을 지니면서 외래문화를 과감하게 받아들여 계속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만 우리 문화를 보존,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끊겨 없어지고 헝클어졌던 과거의 우리와 현재의 흔들리는 우리를 연결해 우리의 맥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 그 중에서도 우리의 도자기에 관한 것이지만 무엇이든 근본에 접근하면 다른 길도 눈에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1-12-21

돌솥밥의 특별한 맛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화민족이다. 그래서 전국 어딜가나 고적지와 유적지가 많고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다. 특히 경주지방은 국제관광문화도시라서 사시 사철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 곳에는 이름있는 전통음식점들이 있기 마련이다. 주로 많이 찾는 값싼 순두부백반, 쌈밥이나 돌솥밥을 즐겨 먹는 편이다. 이 중에서 돌솥밭은 우리 고유의 밥인데 한국인의 정서상 가장 맛있는 밥은 가마솥에서 만들어지는 밥으로 누룽지와 숭늉도 함께 먹을 수 있어 선호한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음식이요 어머니표 정식이라 고향의 향수와 맛을 느끼게 한다.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식이야기`에 보면 “밥짓기는 쉽지 않아서 그렇지 밥은 곱돌을 갈아서 만든 솥에 지어야 뜸이 골고루 들고 잘 타지 않을뿐더러 먹을 때 쉽게 식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먼 옛날 중국에서도 주방에서 쓰는 조리기구 중에서는 돌솥을 최고로 여겼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궁중에서 따로 지은 밥으로 식사를 했다. 새옹이라고 부르는 곱돌로 만든 솥에 밥을 지어 숯불을 담은 화로에 올려 놓고 은근히 뜸을 들여 지으니 요즘 식당에서 나오는 돌솥밥과 비슷하다. 게다가 구수한 맛이 풍겨 밥맛도 좋고 누룽지와 숭늉마저 끝맛으로 만들 수 있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여기에 나오는 돌솥은 개인용 밥솥인 동시에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밥 그릇`이라는 취향에 따라 물을 붓고 시간을 다시 조절해 마르게, 또는 묽게 처리할 수 있는 묘미도 곁들인다. 특히 날씨가 쌀쌀한 날에는 코앞에서 풍기는 열기가 감미로우며 속을 덥힐 수 있어 한기를 없애는 효과도 있다. 지체높은 양반들이 애용하던 밥상이라 품위가 있어 보이고 돌솥밥을 먹을 때 옛날 임금이 수라상 받는 기분을 상상하고 재현하면 밥맛이 더 좋아질 수도 있다. 접시에 담은 서양식과는 비교도 안된다. /손경호(수필가)

2011-12-21

울산-경주-포항 네트워크 도시

구자문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울산-경주-포항을 통합하여 하나의 도시로 만들자. 그렇지 못하더라도 한 광역경제권하의 네트워크 도시로 만들자. 몇 년전에도 이와 같은 주제로 지역에서 한두 차례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었는데, 며칠 전 같은 주제로 한 국가위원회 주최의 토론회가 열렸었다. 필자도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앞으로도 이 주제가 좀 더 심도 있게 연구 및 토론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 한국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집중발전으로 지역불균형의 문제가 크다. 하지만 세계화/무한경쟁화의 추세로 볼 때 수도권도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성장이 필요하고, 동시에 지방도시도 크게 발전하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기에 중앙정부로서도 지방정부로서도 어려움이 클 수 밖에 없다.정부는 지방 대도시권역 성장을 위해 5+2의 광역경제권체계를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과 포항은 국토계획상 같은 광역경제권역으로도 설정된 적도 없고 독립된 도시권역으로도 설정된 적도 없다. 울산은 부산권에 포항은 대구권에 예속되어 있어 각자 불만 내지 불안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울산은 국내제일의 자동차, 정유, 에너지 등의 산업도시이고, 포항은 국내제일의 철강 및 RD의 첨단산업도시, 경주는 천년고도의 역사문화도시로서 국내 어느 도시들보다 차별화되고 경쟁우위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각자는 글로벌도시로서의 기능과 위상에는 인구, 도시인프라, 국제비지니스 등에 있어 부족함이 크다고 할 수 있다.세계적인 첨단산업도시를 꿈꾸는 포항은 전통적으로 대구와 포항간의 연계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근자에 포항과 울산의 연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이 두 도시의 RD, 산업, 그리고 인프라들이 긴밀히 네트워크화 된다면 혼자서 추진하기에 벅찰 수 있는 세계적인 특성화된 테크노폴리스를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아진다.또한 포항과 경주에서는 두 도시 통합 및 대구권으로 부터의 독립에 대한 기대가 존재한다. 이 두 도시는 근접 되어있고, 같은 생활권으로 여겨지며, 역사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울산과 경주도 행정구역은 달라도 출퇴근 인구가 많고 산업적 연계가 크다. 이 세도시의 통합 내지 한 광역체계, 그렇지 못하더라도 강력한 네트워크 도시로의 변모가 바람직하다고 본다.이에 대한 문제점은 서로 다른 광역행정구역, 연계교통망 미비, 통합 내지 네트워크를 위한 노력의 미비 등이고, 실천프로그램 부족, 법적장치가 부족하다.도시권역 및 네트워크 도시에 관한 연구를 하는 분들이 국내에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5+2체계 안에서의 도시간 네트워크가 왜 실패하고 있는지, 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영남지역의 대구권, 부산권, 이 기존의 두 개 광역권이 울산-경주-포항을 떼어내어 한 개의 광역권으로 독립시켜 3개의 광역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국가발전을 위해, 지역발전을 위해 정말 나은지 좀 더 연구해보아야 할 것이다.3개 도시가 협력하여 환동해권에서의 중심역할, 글로벌시티로서의 위상제고를 위해서는 첨단기술, 융복합산업클러스터 조성, 금융, 보험, 무역 등 글로벌 비즈니스 육성, 울산신항과 영일만항의 기능적 연계, 네트워크화된 관광개발 및 이미지 제고, 나진, 자루비노, 블라디보스톡 등 북방항로 개척 및 시베리아, 연해주 등 북방지역 개발참여 등이 중요하다.결론적으로, 필자는 울산-경주-포항이 하나의 독립된 광역경제권이자 네트워크 도시권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 민관학 차원의 위원회 등 무언가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많은 연구, 토론, 시민공감대를 거쳐 무언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수도권 및 부산권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글로벌도시권으로의 발전하고, 이를 통하여 동해안권의 발전, 환동해권에서의 주도적 역할, 우리나라의 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를 바란다.

2011-12-20

삶에서 느끼는 진정성

정석수성요셉복지재단 상임이사·신부“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다. 한 마디 말은 무겁기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 말이 사람을 중상함은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다” 명심보감의 글을 통해서 말의 무게와 그 힘을 알게 한다. 정치인들의 날선 말에서 느끼는 것과 안철수씨의 말과 글에서 대비되는 따뜻함에 그렇게 시선이 쏠렸나보다. “우향우 정신”으로 알려진 고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의 말씀 큰 울림이 되어온다. 사명감과 헌신의 자세는 바로 책임정신의 발로였다고 본다. 오늘날 그 책임의 정신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정치라는 침몰하는 배에는 선장이 보이질 않고 삿대질 하는 모습과 너도나도 뛰어내리는 모습으로 안타깝다.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는 게 민심이라지만 그 민심을 바라보고 민심을 다독이려는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가.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은 죽음의 위기를 몸소 겪으면서도 결코 피해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필생즉사 즉사필생과 스스로 죽을 각오를 하고 허허벌판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제철산업을 일으켰던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삶에서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이해하다(understand)라는 말에는 아래(under)에 선다(stand)는 뜻이 포함돼 있다. 예수님은 더 높은 곳에 계신 거룩한 분이시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사람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었다. 바오로사도의 말씀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렇게 낮추고 순종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마침내 드높이 올림을 받으셨다.성탄 장식과 노래가 들리는 거리를 걸으며 대림시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미 오셨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의미다. 세상 마지막 날에 대한 오심은 한 마디로 준비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에 대한 마중의 준비에 대한 대림전례는 16일로서 끝맺는다. 그리고 17일부터 24일까지 사람이 되신 신비와 낮추심에로 초대하고 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는 모습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삶의 경이로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지와 같이 겸손하여야 한다”고 했다. 모두 성공의 화려한 첨탑의 끝이 아니라 땅과 같은 겸손(humilis)이란 말은 `만물이 태어나는 곳, 만물이 풍요롭고 열매 맺고 성장하게 하는 곳`이라는 뜻의 humus에서 나왔다. 성공이라는 위로 향한 삶이 주는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아래로 향하여 마침내 땅에 도달해 사고와 행동의 지평이 무한대로 확장됐으면 한다.야고보사도는 말씀을 듣고 실천함으로써 행복하게 될 것이라 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과 행동이 다른 삶이 아니라 말과 하나가 되는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그 실행으로 행복에 이르게 된다.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첫 번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교회는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서 먼저 `마음의 양성(cordis formatio)`이 필요하다 했다. 낮은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삶의 향기를 마음에 품고 주고받는 말에서 따뜻함이 전달됐으면 한다.

2011-12-20

청도소싸움 내년 2월 새 시즌

올 313경기 20만명 관람… 새로운 경기·다양한 이벤트 등 기대 【청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지난 9월 3일 개장한 청도소싸움경기장이 지난 18일 총 313경기를 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지난 4개월 여간 2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았고 매니아층도 계속 늘어나 우권매출액이 매월 20%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은 시설 보완을 통해 더 쾌적한 경기장 환경속에서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19일부터 내년 1월말까지 휴장한다.하지만 소싸움을 좋아하는 관광객을 위해 오는 24·25일, 내년 1월 7일·8일, 14·15일에 싸움소들의 기량점검을 위해 1일 10경기씩 60경기가 펼쳐진다.최고의 배당률은 11월 20일 제12회차 일요일 7, 8경기 시복승식에서 5천429배와 6천689배로 기록 됐다.11월 20일부터 시작한 행운권 추첨으로 지금까지 4두의 황송아지가 행운의 주인공에게 돌아가 재미를 한층 더했다. 일시적인 휴장 기간을 거친 뒤 2012년 소싸움경기는 2월4일부터 새롭게 단장된 소싸움경기장에서 빅 이벤트로 경기를 시작할 예정이다.내년에는 출전싸움소 승강제를 도입, 각 체급별로 등급을 구분하고 싸움소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해 객관성을 유지할 계획이다.또 7~8월 하절기에는 야간경기인 싸움소 챔피언 결정전을 1개월 정도 토너먼트 방식으로 운영, 체급별로 최고의 챔피언을 선발하는 등 고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챔피언전은 민속대회에서 보지 못한 빅경기로 관중을 사로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내년 2월 경기장 입구쪽에 청도소싸움민속문화테마파크를 개관, 우리 한우의 우수성을 다양한 체험 거리를 제공한다.청도군 관계자는 “청도소싸움장과 함께 주변 관광명소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지역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고 밝혔다./이승택기자 lst59@kbmaeil.com

2011-12-20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산다. 그러면서도 특히 아는 사람에게 잘 속는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을 간단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을 남겼다. `교언영색`이라는 말이 있다. 교묘한 말과 착한 척하는 낯빛이란 뜻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하고 알랑거리는 말과 행동을 가리킨다. 말을 좋게 하고 얼굴 빛을 곱게 하면서 마음씨가 어진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공자는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남에게 아부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그들에게 인(仁)의 면모를 찾기란 어려운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강직하고 의연하고 절박하며 어눌한 사람은 인에 가깝다”고 했다. 말하자면 약삭빠를 정도로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그로 인해 복을 얻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발라 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행동으로 사람을 대하는 자는 인간의 내면을 충실하게 하는 일을 경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문질빈빈(외관과 내용이 뛰어난) 한 군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이기동 교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독특한 말투를 쓴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자기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라 부르고 자기의 아들을 우리 아들이라 부른다”이는 자기의 부모만을 부모로 여기지 않고 자기의 자녀만을 자기의 자녀로 여기지 않았던 옛 삶의 방식이 아직도 유전자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 말을 잘하고 얼굴을 잘 꾸미는 사람은 자기의 욕심을 챙기는데 밝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 잘 속는다. 말 잘하고 똘똘하게 보이는 사람을 훌륭하고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보고 그런 사람에게 표를 주기 때문에 속는다는 것이다. 말을 못해도 좋고 야물게 보이지 않아도 좋다. 말에 진실함이 있고 얼굴에 진지함이 있으면 된다. 자기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좋다./손경호(수필가)

2011-12-20

청소년을 위한 `박태준 평전`을 쓰며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나는 58개띠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다. 내 고향마을은 바로 포항제철소가 들어선 곳, 요즘 주소로 포항시 송정동. 그 마을을 나는 열 살 때 떠나야 했다. 포철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 마을 어른들은 스스로를 `철거민`이라 불렀다. 그 말에는 고향을 버려야 하는 쓸쓸함과 정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서러움이 담겼다. 물론 원망과 저항의 감정도 묻었을 것이다.송정동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을 고아원이 있었다. 벽안의 프랑스 신부가 이끄는 예수성심회의 150여 수녀들이 전쟁의 폐허와 절대적 빈곤이 양산한 고아들 500여 명을 돌보고 있었다. 정문 앞을 암수 두 그루 커다란 은행나무가 지켜주는 아담한 성당에서는 일요일마다 고아한 성가가 울려 나왔다. 대송초등학교 송정분교, 교실이 두 칸밖에 없어서 1, 2, 3, 4학년을 이부제로 쪼개야 했던 그 창고같은 교실의 내 짝꿍은 고아였다. 아, 이철호. 담임이 칠판에 빼곡히 쓴 분필글씨만 쳐다보면서도 용케 공책의 연필글씨들은 가지런했던 녀석. 그 신기(神技)를 어디 가서 어떻게 발휘하며 살고 있을까? 송정동을 떠난 뒤로 다시는 보지 못한 이철호, 그립고도 아련한 이름이여.내 어버이가 낡은 트럭에 곤궁한 세간들을 실을 즈음, 송정동에는 `제선공장` `제강공장`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저게 뭐냐. 학급 친구들과 영원히 헤어져야 했던 나는 그저 시큰둥하게 아득한 허공의 그것을 노려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아주 나중에 듣게 됐지만 내가 태어난 이듬해 12월, 그러니까 1959년 크리스마스이브 영국 BBC 방송이 `a far Cry(머나먼 울음)`라는 4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고 한다. 굶주리고 헐벗은 한국 아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의 실상이 바로 나와 내 친구들의 실상이었다. 인간이라면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이것이었다. 그 절망적이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하나로서 쉰 살을 몇 년이나 넘어선 내가 조금 살진 얼굴에 점잖은 신사복을 입고 아주 가끔은 일류 호텔의 약속장소에 불려나간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어린 내가 고향마을을 떠날 무렵에 나부끼고 있었던 포철의 그 깃발들이 한국의 희망이요, 우리 세대의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이십 년쯤 지난 뒤였다. 그리고 나는 마흔 살쯤에 내 책의 주인공인 박태준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2004년 12월에 한국어판 `박태준` 평전을 펴냈다. 이 책은 2005년 중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2010년 `철의 사나이 박태준`이라는 제목으로 베트남어판도 출판됐다.작가가 왜 전기문학을 써야 하는가? 전기문학은 왜 있어야 하는가? 나는 베트남어판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밝혔다.“고난의 시대는 영웅을 창조하고, 영웅은 역사의 지평을 개척한다. 그러나 인간의 얼굴과 체온을 상실한 영웅은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우상처럼 공적(功績)의 표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의 이 불행한 운명을 막아내려는 길목을 지키는 일, 그를 인간의 이름으로 불러내서 읽어내고 드디어 그가 인간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 이것이 전기문학의 중요한 존재이유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베트남에 여러 종류의 `호지명 전기`가 출판된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는 아무리 긴 세월이 흐르더라도 내 주인공이 어떤 탁월한 위업을 남긴 인물로만 기억되는 것을 강력히 거부한다. 그의 고뇌, 그의 정신, 그의 투쟁이 반드시 함께 기억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 민족, 시대라는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필생에 걸쳐 그 길을 헤쳐 나아간 인물에 대한 동시대인과 후세들의 기본예의라고 확신한다.2011년 12월13일 오후 5시20분, 내 책의 주인공 박태준은 영원히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닷새 동안의 사회장을 거쳐 12월17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바친 그에게 대한민국이 마지막으로 선물한 것은 수많은 국민의 따뜻하고 눈물 어린 추모, 청조근조훈장, 그리고 두어 평짜리 무덤이었다.박태준을 기억하고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책은 그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 명확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겨울이다. 동토 속에 외로이 누운 그가 부디 추위만은 타지 않기를….이것이 청소년을 위한 박태준 평전에서 미리 쓴 `작가의 말`이다.

2011-12-19

형님(이상득 의원)을 위한 변명

이경우편집국장사람들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골똘히 생각하고, 추측의 단계를 넘어 연구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예 그럴 것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하버드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교수는 인간의 이런 인지 능력의 한계를 원인 착각이라고 했다.최근 포항은 `형님` 문제로 시끄럽다. 포항이 고향인 이명박(MB) 대통령의 형님이자 6선 국회의원인 이상득(SD) 전 국회부의장의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놓고 일부 민심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는 `당이 새로 태어나는 데 밑거름이 되겠다`며 전격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보좌관의 구속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지만 세상은 그가 그 문제 때문에 불출마를 결단했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분위기다.생각해보면 형님의 불출마 선언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불경스런 말씀이 아니라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MB 정권 이전 지난 10년 대구 경북은 정부의 예산 지원에서부터 각종 국책사업은 물론 정부 고위층 인사와 정권의 입김이 미치는 각계 기관의 인사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홀대를 받았다. 그러다가 MB 정권이 들어섰지만 중요 사안의 길목마다 지난 정권의 관계자들이 사사건건 `형님 어쩌구` 하며 발목을 잡은 때문이다.포항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번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내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SD의 공천에 반대했을 때 통 크게 수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대통령의 형님이자 전직 5선 국회의원인데 현역이 아니라고 힘이 빠지는 것도 아닐 것이란 추측이다. 5선 의원 경력의 대통령 특사로 해외 자원외교 활동을 비롯한 각종 국가적 임무를 수행했다면 6선 의원으로서 벌였던 성과를 넘는 실적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면 포항으로서는 2명의 국회의원 외에도 또 한 명의 실세 정치인을 두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여기엔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과연 주위에서 그냥 두었겠느냐는 이야기다. SD 본인으로서야 민원이나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에 전혀 관계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또 단호하게 뿌리칠 의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냥 둘 리 없으니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구설에 휘둘리게 된다는 논리다. 만약 자연인 신분으로서 본인이나 관련 인사들이 이권에 개입하거나 형사상의 혐의를 쓰게 되면 그 비난의 강도는 훨씬 강해질 것이다. 물론 현역 의원이 아니라면 그만큼 공식 보좌관을 둘 이유도 없고 이럴 경우 국회의원 보과관의 호가호위보다는 위험의 우려가 적을 것이라는 가설이다.어쨌든 SD로서는 억울하고 분하기조차 할지도 모른다. 거슬러보면 SD가 코오롱상사 사장에서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이 되면서부터다. 3선 이상을 좀체 허용하지 않는 지역 풍토에서 내리 6선을 챙긴 그다. 2선 의원 경력의 서울시장인 6살 아래의 동생 MB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SD는 거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동생이 왕이 되었다고 형제들을 모두 유배보내던 왕조 시대도 아니다. 세상은 SD가 대통령의 후광으로 국회의장까지 노린다고 오해하지만 그로서는 동생 때문에 국회의장의 꿈을 접어야 하는 것이 일종의 역차별이라고 항의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이런 추론 조차도 필자의 인지능력의 한계에서 오는 원인 착각인지도 모르지만.불출마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친인척으로서 온갖 억측과 비난을 받았을 때는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처럼 보좌관을 잘못 관리한 죄가 그에게 얼마나 미칠지는 사정기관의 조사가 밝혀 내겠지만 어쨌든 그가 진정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못다 한 일들을 기꺼이 맡아 줄 것을 당부한다. 또 내년 총선에서는 그의 업적을 이어받을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2011-12-19

안전띠-소중한 약속

옛날에는 범이 무서워 산에 못갔는데 요즘에는 차가 무서워 길에 나서질 못하고 운전하거나 차 이용하기가 겁이 난다. 물론 모두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얼마던지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 3가지 법규만 잘 지켜도 인사사고는 막을 수 있다. 교통신호 지키기, 차선 지키기, 그리고 과속하지 말기 등이다. 규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인데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 큰 문젯거리가 되고 있다. 안전띠 착용은 교통사고의 갈림길이라 수차례 강조하고 캠페인 하고 단속해도 안 지키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요즘 일본 자동차에는 운전자가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차의 시동조차 작동치 않은 차도 있다고 한다. 대형사고가 나고 전복사고가 나면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나는데 그 이유는 한결같이 모두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인명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10년 동안 미국에서 안전띠가 구한 생명은 5만명이 넘고 130만명이 부상을 피했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1969년에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 됐지만 우리나라는 1978년 돼서야 자동차에 안전띠를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 됐고 1986년에 운전석과 조수석의 착용이 의무화 된 것으로 안다. 그리고 2011년 3월에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 됐다. 하지만 자동차 전용도로에서의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12.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국 88%, 프랑스 82% 등 뒷좌석 까지 안전띠를 착용하는 것이 생활화된 것을 보더라도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은 그 나라의 교통안전 수준과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전띠 착용은 가족을 살리고 건강한 교통환경을 만드는 소중한 약속이다. 착용하기가 때로는 불편하고 귀찮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을 생활화 해야 할 것이다. 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 꼭 착용을. /손경호(수필가)

2011-12-19

의성 만경도농교류센터 개관

문화·복지시설 확충 등 주민 삶의 질 향상 기대 【의성】 의성군 단밀면 만경촌권역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병훈)는 농식품부가 주관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1단계(2009년 ~ 2011년) 사업을 마무리하고, 지난 17일 만경도농교류센터 준공을 기념하는 만경촌권역 개관식을 했다.만경촌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단밀면 위중리·용곡리 일원 944ha가 권역 범위이다. 하드웨어사업으로 만경도농교류센터를 조성해 자생력이 있는 지속 가능한 농촌마을 조성을 위해 주민 역량강화사업을 시행했다.만경도농교류센터는 폐교된 속암초등 위중분교를 주민들이 스스로 사들임으로써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농촌의 안락함과 쾌적함을 증진하고, 지역 주민들의 복지 향상 및 주민 삶의 질을 향상하고자 총 사업비 43억 원 중 1단계 사업(2009~2011년)으로 32억 원을 투입해 지난해 사업에 착수했다.만경도농교류센터는 다목적 동아리시설, 강당, 특산물 홍보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문자들에게 권역의 중심 광장 기능을 하여 도농교류의 장으로 활용, 주민 삶의 질 향상 및 지역 소득 증대에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만경촌권역 운영위원회는 2단계 사업(2012~2013년)으로 11억 원을 투입해 2013년까지 마을 쉼터 조성, 담장정비 등 경관개선사업과 지역역량강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2013년 만경촌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완공되면 지역주민들을 위한 생활편익과 문화, 복지시설을 종합적으로 확충하고 정비해 특색있는 농촌마을 조성을 통한 주민 삶의 질 향상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김현묵기자 muk4569@kbmaeil.com

2011-12-19

성주 일반산단 조성 순항

【성주】 성주군이 지역의 최대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성주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이 분양률 100%를 달성하고 2012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순항 중에 있다.성주군에 따르면 성주 일반산업단지는 지난 2008년 5월 성주읍 학산리 일원 85만1천665㎡을 산업단지 지정승인을 받으며 시작됐다. 총 사업비 1천66억원을 투입해 부지조성사업(748억원)은 경상북도개발공사에서, 진입도로와 폐수처리시설, 공업용수도 등 기반시설은 전액국비(318억원)로 성주군에서 시행하고 있다.성주 일반산업단지의 현재 공정률은 80%이며 입주 예정 기업들이 건축허가 등 관련인·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있어 2012년 상반기 조기가동 목표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주군은 2010년 10월 분양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분양률 100% 달성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이는 저렴한 분양가와 대도시와 인접한 지리적 여건 등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5만 성주군민 모두가 투자유치를 위해 합심한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현재 성주산단지는 한국파워트레인㈜의 3천200억원 대규모 투자를 비롯해 유망중소기업 52개 업체에서 6천500억원의 투자가 계획돼 있다. 성주산단이 본격 가동되면 5천여 개의 일자리 창출과 우량기업유치로 인한 인구증가 및 안정적 세수확보 등으로 획기적인 지역발전이 기대된다.김항곤 성주군수는 “성주 일반산업단지의 성공을 바탕으로 성주 2차 일반산업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며, 완료 시 농업과 산업이 함께 공존하는 도농복합도시로의 변모로 보다 살기 좋은 성주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손창익기자

2011-12-19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님을 떠나 보내며…

포항시민·포스코 하나되어 유지 이루겠습니다이상구 포항시의회 의장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심장이신 박태준 명예회장의 타계 소식에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끝 모를 슬픔에 뜨거운 눈물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회장님은 전쟁의 참화로 잿더미가 된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끝 모를 애국심과 사명감 하나로 황량한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이 곳 포항 영일만에 제철소 건설의 대업을 일으켰습니다.제철보국(製鐵保國)! 제철소 건설의 성패가 `산업국가 대한민국`의 흥망을 결정할 것임을 알고 실패할 경우 영일만에 빠져죽으리라는 `우향우 정신`으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이 땅에 기적과 같은 역사를 쓰신 것입니다. 고인의 애국심과 사명감, 강철과 같은 의지가 없었다면 어찌 이런 과업이 가능이나 했겠으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또 회장님은 제철보국과 함께 국가를 발전시키고 이끌어갈 핵심동력으로 교육보국(敎育保國)을 주창했던 위대한 교육자셨습니다. 포스코 정문에 걸려있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글귀에서도 나타나듯 회장님은 포스코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창의적 인재 양성이 최고의 덕목이라 생각하고 교육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그 결과 포항은 포스텍과 같은 세계적 공과대학과 유수의 연구소가 자리한 세계적인 교육·과학의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회장님의 청렴함과 인간적인 품성을 떠올리면 당신께서 얼마나 숭고한 분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포스코를 창립한 경제계의 큰 어른이자 대한민국의 총리를 지낸 분이지만 정작 당신은 단 한 주의 포스코 주식도 소유하지 않으셨으며, 본인 소유의 집 한 채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서도 오히려 권력을 멀리 하였으며, 재산이 생기면 교육사업과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전부 내놓으셨습니다. 일 앞에서는 엄했지만 뒤에서는 직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직원들의 자기개발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는 속정 깊은 지도자였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2009년 포스텍 졸업식에서 하신 회장님의 연설이 기억납니다. 회장님은 `비록 베트남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지만 베트남 청년들은 조국의 경제발전만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의 학도들은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남북통일까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학도들이 더욱 정진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하셨습니다. 포항제철의 성공신화를 이룩한 이후에도 계속적인 혁신과 창의로 포스코를 지속적인 성장의 반열에 올리고, 포스텍을 세계적인 공과대학으로 성장시켜 대한민국 최초의 이공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등 회장님은 항상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나아갈 바를 고민하신 선각자이자 애국자셨습니다.이제 고인께서 가고 없는 큰 빈자리를 생각하니 오직 슬픔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매 고인이 남기신 자산은 우리의 가슴 속에 무한합니다. 조국에 대한 충성, 국민에 대한 끝없는 사명감, 어떤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철과 같은 의지, 인간에 대한 사랑, 창의와 혁신과 같은 무형의 자원에 대한 선견지명.박태준! 세 글자에 담긴 이 정신들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바를 알려주는 표석이 되어 되살아납니다.비록 고인은 갔지만 고인의 숭고한 정신과 위대한 영혼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저 용광로와 같이 우리의 곁에서 영원히 타오를 것이며 `애국심을 갖고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어 달라.`는 고인의 유언은 우리 53만 포항시민과 포스코가 하나 되어 반드시 이뤄낼 것입니다.삼가 영면하소서.

2011-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