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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박태준 평전`을 쓰며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2-19 23:34 게재일 2011-12-1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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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나는 58개띠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다. 내 고향마을은 바로 포항제철소가 들어선 곳, 요즘 주소로 포항시 송정동. 그 마을을 나는 열 살 때 떠나야 했다. 포철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 마을 어른들은 스스로를 `철거민`이라 불렀다. 그 말에는 고향을 버려야 하는 쓸쓸함과 정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서러움이 담겼다. 물론 원망과 저항의 감정도 묻었을 것이다.

송정동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을 고아원이 있었다. 벽안의 프랑스 신부가 이끄는 예수성심회의 150여 수녀들이 전쟁의 폐허와 절대적 빈곤이 양산한 고아들 500여 명을 돌보고 있었다. 정문 앞을 암수 두 그루 커다란 은행나무가 지켜주는 아담한 성당에서는 일요일마다 고아한 성가가 울려 나왔다. 대송초등학교 송정분교, 교실이 두 칸밖에 없어서 1, 2, 3, 4학년을 이부제로 쪼개야 했던 그 창고같은 교실의 내 짝꿍은 고아였다. 아, 이철호. 담임이 칠판에 빼곡히 쓴 분필글씨만 쳐다보면서도 용케 공책의 연필글씨들은 가지런했던 녀석. 그 신기(神技)를 어디 가서 어떻게 발휘하며 살고 있을까? 송정동을 떠난 뒤로 다시는 보지 못한 이철호, 그립고도 아련한 이름이여.

내 어버이가 낡은 트럭에 곤궁한 세간들을 실을 즈음, 송정동에는 `제선공장` `제강공장`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저게 뭐냐. 학급 친구들과 영원히 헤어져야 했던 나는 그저 시큰둥하게 아득한 허공의 그것을 노려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아주 나중에 듣게 됐지만 내가 태어난 이듬해 12월, 그러니까 1959년 크리스마스이브 영국 BBC 방송이 `a far Cry(머나먼 울음)`라는 4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고 한다. 굶주리고 헐벗은 한국 아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의 실상이 바로 나와 내 친구들의 실상이었다. 인간이라면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이것이었다. 그 절망적이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하나로서 쉰 살을 몇 년이나 넘어선 내가 조금 살진 얼굴에 점잖은 신사복을 입고 아주 가끔은 일류 호텔의 약속장소에 불려나간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어린 내가 고향마을을 떠날 무렵에 나부끼고 있었던 포철의 그 깃발들이 한국의 희망이요, 우리 세대의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이십 년쯤 지난 뒤였다. 그리고 나는 마흔 살쯤에 내 책의 주인공인 박태준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2004년 12월에 한국어판 `박태준` 평전을 펴냈다. 이 책은 2005년 중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2010년 `철의 사나이 박태준`이라는 제목으로 베트남어판도 출판됐다.

작가가 왜 전기문학을 써야 하는가? 전기문학은 왜 있어야 하는가? 나는 베트남어판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밝혔다.

“고난의 시대는 영웅을 창조하고, 영웅은 역사의 지평을 개척한다. 그러나 인간의 얼굴과 체온을 상실한 영웅은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우상처럼 공적(功績)의 표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의 이 불행한 운명을 막아내려는 길목을 지키는 일, 그를 인간의 이름으로 불러내서 읽어내고 드디어 그가 인간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 이것이 전기문학의 중요한 존재이유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베트남에 여러 종류의 `호지명 전기`가 출판된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는 아무리 긴 세월이 흐르더라도 내 주인공이 어떤 탁월한 위업을 남긴 인물로만 기억되는 것을 강력히 거부한다. 그의 고뇌, 그의 정신, 그의 투쟁이 반드시 함께 기억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 민족, 시대라는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필생에 걸쳐 그 길을 헤쳐 나아간 인물에 대한 동시대인과 후세들의 기본예의라고 확신한다.

2011년 12월13일 오후 5시20분, 내 책의 주인공 박태준은 영원히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닷새 동안의 사회장을 거쳐 12월17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바친 그에게 대한민국이 마지막으로 선물한 것은 수많은 국민의 따뜻하고 눈물 어린 추모, 청조근조훈장, 그리고 두어 평짜리 무덤이었다.

박태준을 기억하고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책은 그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 명확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겨울이다. 동토 속에 외로이 누운 그가 부디 추위만은 타지 않기를….

이것이 청소년을 위한 박태준 평전에서 미리 쓴 `작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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