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파먹은 꽃사과의 속살,
바닥까지 짓물러 흘러내릴 때 나는 너다
내 안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너
내 밖으로 가지를 흔들고 있는 너
내가 너를 파먹고
네가 나를 파먹어도
진물을 흘리며 나는 너다
내가 꽃사과나무 밑을 떠날 때
그때도 나는, 뭉개진 그림자의 너다
철저하게 상대에게 스며들거나 상대를 받아들이는, 하여 상대와 하나가 되는, 완벽한 일속이 되어 통일되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랑도 종교도 다 이런 원리에 철저해질 때 아름다운 이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사과나무를 빌어 이러한 자기의 열망을 내보이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