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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울진, 위기와 절망을 이겨내고 나아가다

전찬걸울진군수울진군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힘찬 첫걸음을 내딛었다.2020년은 원전의존형 경제구조의 극복의 해, 2021년은 울진방문의 해로 정하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의지를 다졌다.특히 올해는 국도 36호선 완공과 함께 왕피천케이블카, 국립해양과학관, 죽변해안스카이레일 등이 잇따라 개통하며 관광인프라도 더욱 알차게 채워지는 시기였다.원전의존형 경제구조 극복의 해, 울진의 방문의 해 선포식을 개최하고 주민들과 함께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토론의 시간도 가졌다. 또한 민선7기 출범과 함께 시작된 범군민 친절운동을 더욱 확대 강화하며 손님맞이 준비에도 박차를 가했다.하지만, 희망을 안고 내디딘 첫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혼란의 시간을 겪었고, 모든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버렸다. 그 순간에 가장 중요한 건 군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예방과 대비를 위해 모든 행정력을 총 동원했고 그 덕분에 울진군은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청정지역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해외유학생으로 인한 확진자가 1명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코로나 청정지역을 꿋꿋하게 지켜냈고 현재까지(9월 4일)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의 길고 긴 전쟁에서 현재의 울진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군민들의 단합된 마음이었다.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도, 해외 유학생으로 인한 울진군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도 군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안정을 찾았다. 마스크 수급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군에서 진행한 마스크 나눔 운동에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재능나눔이 이어졌다. 또한 울진군의 확진자는 자가 격리 모범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 군민들의 모습에 행정은 더욱 힘을 얻어 방역 활동을 비롯해 코로나19 예방에 힘을 다했다.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일상의 많은 것들이 멈추었고 대한민국 전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울진도 예외는 아니었다.군민들은 착한 임대인 운동으로 힘든 세입자들과 고통을 나누었고 군에서도 지역상품권의 일환인 울진사랑카드 발급을 시작, 지역 내 소비를 활성화 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지역 내 소비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그런데 7월 1일 왕피천케이블카 개장과 7월 31일 국립해양과학관이 개관하면서 휴가 시즌이 다가왔고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지역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관광객들이 조금씩 방문하기 시작했다.비대면 여행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주위 상권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관광 울진으로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는 했다.특히 올해에는 전국적으로 해수욕장 관광객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상황이었는데 죽변의 봉평과 후정해수욕장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관광객이 늘어 났다. 왕피천케이블카는 하루 평균 900명 이상이 탑승했고, 해양과학관은 개관과 함께 관람 예약이 쇄도했다.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었겠지만 아쉬움 보다는 안전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커 방역은 물론이고 출입인원 관리도 철저히 했고, 다행히 큰 사고 없이 해수욕장을 폐장했다.겨울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이제 두 계절을 지나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난과의 오랜 싸움은 긴 어둠의 터널을 걷고 있는 느낌을 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울진은 터널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밝은 태양을 믿으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멈추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늦더라도 안전하고 꼼꼼하게, 목표를 향해 한걸음 전진 중이다.2020년 울진이 꿈꾸었던 변화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립경제를 향한 시작, 누구나 오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울진 만들기였고 코로나19로 잠시 멈추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울진은 오늘도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도전하며 나아간다.

2020-09-06

추희가 여무는 집

친구네 집은 보물섬이다. 방문을 열 때마다 내가 처음 보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자개농은 언뜻 보면 무늬가 단순해 만들기 쉬워 보이나 나무에 그냥 자개를 붙여 볼록하게 완성하는 것과 다르게 나무에 미리 여러 모양으로 파내고 자개를 박아서 만든 수공이 많이 든 명품이다. 부엌 찬장에 12인조 양식기도 볼만했다. 그릇 모양도 특이하지만 12명의 재떨이까지 갖추어져 구성 자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나씩 꺼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30년 지기 친구 친정에 오랜만에 놀러 갔다. 외벽에 조그만 타일을 붙인 그 시절엔 잘 지었다고 소문이 났을 법한 이 층 양옥집이다. 거실에는 윗 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있어서, 홈드레스를 입은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우아하게 걸어 내려올 것만 같은 전형적인 부잣집이었다.방에는 내가 제일 궁금해한 물건이 놓였다. 창고 깊숙이 있던 것을 딸 친구가 보고 싶다는 말에 꺼내서 말끔하게 닦아 놓으셨다. 혜경이 아버지 딸 사랑은 예전부터 유별났다. 30년 전에도 같이 근무하던 유치원 앞까지 매일 태워다 주고 퇴근 시간에 맞춰 또 데리러 오셨다. 아버지와 데면데면한 나로서는 그런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딸의 말이라면 어디선가 달려오는 우주 소년 짱가처럼 든든한 아버지였다. 아니 아빠였다. 혜경인 그때도 지금도 아빠라 부른다.2층방 층고(層高)가 이렇게 낮았던가. 오래된 형광등이 한쪽 눈을 껌뻑거리자 ‘아빠~’ 하는 외마디에 금방 손봐주셨다.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침을 떼는 형광등. 그 불빛 아래 장 하나가 놓였다. 빠알간 색깔의 자태가 곱다 못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반닫이 같기도 한데 두 짝의 문을 열면 변신로봇처럼 다른 모습이 된다. 재봉틀이었다. 발판을 밟아 재봉질을 하니 손으로 돌리는 앉은뱅이 보다 편한 물건이었다고 자랑을 하셨다.오른쪽 문짝을 여니 서랍이 네 개가 있다. 조그만 서랍 안에 까마득한 이 집의 옛날이야기가 가득했다. 첫 번째 서랍엔 재봉틀에 쓰이는 북과 실, 누군가의 옷을 만들다 남은 천 조각과 크기가 다른 단추들이 가득했다. 두 번째 서랍을 여니 재봉틀의 출생 증명서가 나왔다. ‘드레스 스윙 머신’ 이라고 영어로 써진 이름과 한자로 동양 미싱 주식회사에서 만들었다고 직인이 찍혔다. 뒷면에는 품질보증서 같기도 한 말들이 영어로 적혔다. 그 밑에 또 하나의 설명서가 있었다. KS 인증마크가 붙은 ‘하이콜드냉장고’에 관한 것이었다.김순희수필가다음 서랍엔 올림푸스 카메라 뚜껑이, 뽀빠이가 그려진 동그란 딱지 하나가 나왔다. 별이 일곱 개 있고 923765 숫자까지, 그때는 그 하나하나가 친구 딱지를 이기기 위해 다 쓸모가 있던 것들이었다. 아마 혜경이 동생의 소중한 기억이 담겨있을 추억의 기록이다.빨간 몸체에 하얀 자개를 박아 넣은 재봉틀이다. 누구네 집에서도 못 본 때깔이라 탐나는 물건이었다. 하도 이뻐서 눈을 못 떼는 나와 다르게 혜경인 관심도 없어 보였다. 집안 가득 오래된 물건이 가득해서 늘 보던 거라 그런 듯하다. 저 재봉틀로 포대기를 만들어 친구를 업었다며 그 시절 이야기를 한없이 들려주시는 어머니와 딸 친구가 궁금해하는 구석구석 열어 보여주시는 아버님의 그 손길이 따뜻해서 참 좋았다.한참을 집구경을 끝내고 나오자 늦자두 한 봉지를 건네신다. 추희였다. 몇 해 전 혜경이가 자두 하나를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고 앞뜰에 심은 자두나무가 올해 첫 열매를 거두었다고 담아 주셨다. 따님 주시지했더니, 옆에선 혜경이는 그날 내가 배가 고팠었는지 우연히 맛있게 먹었을 뿐 신맛이 나서 싫다고 손사래를 친다. 딸의 스쳐 지나는 모습도 놓치지 않고 나무를 키워 열매를 먹이려는 부모님의 사랑이 붉게 익어서 나에게까지 당도했다.오래된 물건들도 새것처럼 닦으며 사는 친구네 부모님이 저 이층집에 오래 머물길 기도했다. 주신 자두를 한 입 깨무니 달콤한 향이 입속 가득 퍼진다.

2020-09-06

의사를 다치게 하면 재물손괴죄?

박화진지킴랩 기업탐정본부장전 경북지방경찰청장“정부미였습니다.”, “??? 아! 예”퇴직 후 이전에 어떤 일을 했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답과 상대의 반응이다. 큰 장애 없이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의사소통이 이뤄진다.70년대 단군 이래 숙업이었던 식량자급의 기치를 내걸고 정부가 야심차게 개발한 다수확 품종 쌀, 통일벼라는 이름을 가진 작물이 있었다. 일반벼보다 수확량이 40% 더 많아서 정부에서 강권하다시피 재배하게 했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국민들의 식량난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정부에서 재배를 권장했기에 정부미라 불렸다. 절대 양은 늘었는데 질적인 문제까지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다. 찰기가 적어 맛이 떨어지고 볏짚도 사료용과 연료용 이외에는 큰 쓸모가 없었다고 한다. 배고픔 벗어나기엔 성공했지만 농민들의 재배 선호도는 낮았다. ‘정부미’는 기초수급자 및 재난 구호목적과 국공립시설 등에 제공되는 비축재다. 통일벼가 정부미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곡물 과잉 공급의 원흉이 되어 통일벼는 생을 마감했다.정부미는 공무원들을 부르는 또 다른 유품으로 살아남았다. 일반인보다 못하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는 공무원들의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공직자도 사람인데 정부의 비축 재물로 부르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공무원 스스로 정부미라고 부른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 그런 직업의 별칭에 대해 반감을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는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군림하려는 공무원에 대한 불만을 대리 해소시켜주는 말로써 다소 속 풀리는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떤 명분으로도 사람을 재물로 부르는 것은 천부인권의 지고지순한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사람이 먼저다’는 수사(修辭)가 넘쳐나는 시대다. 사람이 최우선이라는 말이다 어떤 것으로도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는 함의도 갖고 있다. 최근 정부 고위 공직자가 ‘의사는 공공재’라는 말을 했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울고 싶은 데 뺨 때린 격으로 의사들의 파업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앞으로 사직당국에서는 의사에게 상해를 입히면 재물손괴죄로 단죄해야 할 것 같다. 고위 공직자의 사람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어서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의 공공적 성격을 잘못 표현한 것이라고 특급 소방수가 투입됐지만 이미 반 이상 건물이 탄 뒤 출동한 모양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어휘선택은 파장효과를 감안하면 언제나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한다. 파리와 공통점을 가진 사람이 그들일 수 있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두 집단 모두 잘못하다가 신문지에 맞아 죽는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둘둘 말린 신문지에 맞아죽는 파리처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경솔한 말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면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을 맞이한다는 것이다.‘정부미는 역시 영양가 없는 거야!’라는 말에 ‘맞아! 우리는 정부 비축재지’라며 기분 좋게 맞장구치겠는가? 감정이 이성을 앞서게 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 이치다.“신중하자 정부미여!” 일찍 품절된 선배 정부미가 꼰대질 한번 해본다.

2020-09-06

코로나 그리고 자녀 양육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코로나가 확산되면서 교육기관이 문을 닫아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들이 감염병에 대한 공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감, 가족들과 부대끼면서 겪는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등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WHO(세계보건기구)와 UNICEF는 코로나 상황에서 부모역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 몇 가지를 뽑아 본 지면에서 소개하고자 한다.먼저, 불안, 공포, 두려움, 걱정은 우리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이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혹시 아이들이 감염병을 두려워 하거나 걱정한다면 공감해주자.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들이 퇴행 행동을 보이더라도 부정적인 행동보다는 사소하더라도 잘한 행동에 초점을 두어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행동에 관심을 두고 칭찬한다면 놀랍게도 더 잘하려는 아이들의 노력을 보게 될 것이다.아이들이 코로나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섣불리 불확실한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어른도 모르는 정보가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정보를 찾아보아야 한다. 온라인상에는 부정확한 정보가 많으며 오직 감염병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집에만 머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아이들이 SNS나 화상통화, 게임 등으로 친지와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경감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규칙적인 하루 일과가 필요하다. 일과를 계획할 때 아이들이 자신이 할 일을 선택하도록 하자. 손 씻기도 놀이처럼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 동안 손으로 얼굴을 자주 만지는 사람을 찾기나 노래 부르면서 손 씻기 등 방역을 놀이처럼 접근해 아이들 일상의 일부가 되도록 지원할 것을 권한다.코로나는 피부 색, 인종,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며 코로나 감염환자를 따돌리거나 증오하기 보다는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설명해 주자. 혹시 몸이 아파서 집에 머물거나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면 집에 머물거나 입원하는 것이 자신과 친구를 지킬 수 있는 안전한 방법임을 설명하고 안심시켜야 한다.무엇보다도,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부모도 한계를 가진 인간인지라 피곤하거나 예민해진 상황에서는 아이들을 즐겁게 대할 수 없다. 한적한 길에서 산책하거나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나누는 등 부모도 나름의 스트레스 대처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소리치거나 화낸다면 아이들은 이야기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큰 소리와 공포 분위기에 압도된다. 만일 여러분이 예민해진 상태라면 심호흡을 하고 5의 숫자를 세어보자. 마지막으로, 집이 좀 지저분해도, 아이들이 생각보다 게임을 많이 하여도, 하루 일과가 잘 지켜지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자신에게 말해 주자.

2020-09-06

‘이간질’과 ‘선동’ 사이

안재휘논설위원조선 초 황희(黃喜) 정승이 길을 가다가 검은 소와 흰 소를 몰고 밭을 매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보았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서 “검은 소와 흰 소 중 누가 더 일을 잘 합니까?”하고 물었다. 농부는 못 들은 체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황희가 또다시 묻자, 농부는 소를 쉬게 해놓고 귓속말로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굳이 귓속말로 하는 까닭을 물으니 농부는 “사람도 짐승도 자기 욕을 하면 기분이 나쁜 법입니다”라고 말했다.의사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정책 추진에 반발해 벌어진 의정(醫政)갈등이 정치권의 중재로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갈등의 한복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올린 간호사 격려 글에 대한 논란이 꼬리를 길게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속 좁은 ‘편 가르기’ 언어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민주당 의원들이 번갈아 나서서 옹색한 반박을 펼쳤다. 다만 그 언급들의 논리가 하도 허술해서 막 내지르는 ‘충성 발언’ 정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문 대통령 글은 아무리 다시 읽어도 ‘순수한 격려’로 읽힐 여지가 없다. ‘의사들이 떠난 현장을 묵묵히 지키는’부터,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 ‘(폭염 당시 쓰러진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이게 정말 한 나라의 대통령이 쓴 글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야릇하다. 많은 국민이 ‘참모’들의 편협한 정보가 또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고 있구나 하고 안타까이 생각했다.그런데 수많은 비판 댓글이 달리는 등 파장이 깊어지자,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달이 난 글을 작성한 사람이 대통령이 아니라는 변명이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든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둘러댄 말인데, 그 말들이 이번엔 대통령을 그야말로 바보로 만들어 해명도 변명도 못 하도록 궁지에 몰아넣고 만 것이다. 그동안 번번이 이슈의 중심이 됐던 SNS 글들의 저자가 따로 있다는 얘기가 돼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직분의 엄중함과 과중한 업무를 생각한다면, 대통령의 SNS가 직접 작성됐느냐, 않았느냐는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한 변명 또한 대통령을 도와주는 말이 못된다. 고 의원은 한 방송에 나와서 대통령 메시지를 놓고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답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라며 “발신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고민정이 말한 대로 보아도 문 대통령의 SNS 글은 ‘갈라치기’ 메시지가 역력하다. 만약에 대통령의 메시지가 확증편향에 빠진 팬덤정치를 의식한, ‘선동’을 목표로 하는 ‘이간질’의 발로였다면 이는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는 들판의 소들에게조차 듣기 싫은 비교와 비난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고사(古事)의 교훈을 다시 떠올린다. 국민이 대통령에게서 듣고자 하는 말은,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진정 ‘대통령다운 말’이 아닐까 싶다.

2020-09-06

대법, 잇단 ‘코드’ 판결 논란…법치 혼란 걱정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에 대한 상고심에서 전교조 측 손을 들어준 것은 이제 우리 법조계에 ‘코드판결’이 일상화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수 정권을 호위하던 사법계를 진보 성향 법조인들이 장악하면서 그동안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법치’의 기준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사법부까지 이렇게, ‘옳고 그름’을 엄정히 가리는 기관이 아니라 ‘내 편, 네편’ 나눠 다투는 궤변 전쟁터가 되는 건 결코 안 될 일이다. 대법원은 “사실상 노조 해산이나 다름없는 법외노조 통보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한 것은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2항을 위헌적 조항이라고 판단하고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유보사항’임에도 법률적 근거 없이 시행령에 근거해 통보한 조치가 위법하다는 논리를 동원한 것이다.이번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2015년 해직교사를 노조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원노조법 2조를 합헌으로 판단한 것과 대척점에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재는 당시 이 조항에 대해 ‘8대1’의 압도적인 표결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지난번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대법원 결정에서도 다수 대법관의 ‘무죄’ 판결문 논리보다도 ‘유죄’ 취지의 소수 의견이 훨씬 더 법률적 합리성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대법원의 판결문이 미리 정해진 결과에다가 법리를 꿰맞춘 인상을 주는 것은 큰 문제다. 이렇게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판결문마저 재판관의 성향분포에 따라 법률을 이현령비현령 방식의 독해에 종속시키는 것은 도무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1989년 참교육을 표방하고 출범한 전교조는 이제 순수한 교원노조와 거리가 멀다. 집단이기주의와 이념교육, 정치투쟁을 일삼는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전교조 합법화의 길이 열리면서 교육현장의 이념·정치 투쟁이 더 거세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깊다.

2020-09-06

코로나 2차 대유행 올가을이 최대 고비

코로나19가 지난 주말을 고비로 다소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400명을 돌파했던 전국 확진자수가 200명대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언제든 다시 확산세가 거세질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일 뿐이다. 도심집회 관련 ‘n차 감염’이 지속되고, 대구의 동충하초 설명회와 같은 소규모 집단 감염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정부가 5일부터 전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2주 연장하고, 수도권은 강화된 2.5단계 조치를 1주일 더 연장한 것은 이런 산발적 감염에 대한 우려 탓이다.지난달 27일부터 일별로 국내에서 발생한 신규 확진자수를 보면 441명→371명→323명→299명→248명→235명→267명→195명→198명→168명→167명 등으로 나타나 확산세가 한풀 였음이 완연하다. 하지만 100명대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 현재 진행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실천이 얼마나 잘되느냐에 따라 확산세를 잡을 수 있다.지금은 긴장의 끈을 놓기보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확실한 반전국면을 만들 때다. 그 고비가 가을철이다. 특히 추석명절을 앞둔 가을철 초입에 코로나를 잡지 못하면 추석명절 쇠기 등 국민이 받을 고통의 강도는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다.가을철 문턱에 들어섰다. 기온과 습도가 낮아지면서 호흡기를 통한 바이러스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또 추운 날씨로 실내 생활이 증가하고 인구가 밀집된 공간의 실내 환기가 어려워지면서 바이러스 전파가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더 큰 걱정은 독감이 유행할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와 독감은 증상이 매우 유사해 한꺼번에 유행할 경우 의료체계가 마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외국처럼 환자를 치료기관으로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자가치료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이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추석명절까지 3주 정도 남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세를 확실히 막지 못한다면 추석이후 우리가 맞게될 상황은 매우 암울하다. 지금 우리가 벌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노력이 코로나 2차 대유행을 막을 최대의 수단이 된다는 점 깊이 새겨야 한다. 보건당국은 물론 개개인의 방역 수칙 준수가 매우 엄중한 때다.

2020-09-06

민족 이동의 딜레마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다. 이 날은 전국에서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고향을 방문해 부모·형제들과 함께 명절 연휴를 보낸다. 그 해 추수한 햅쌀로 밥을 지어먹고 햇곡식으로 송편도 만든다. 사과, 밤 등 햇과일로 준비한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한다. 모처럼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만나 즐거움을 나누는 날이다.추석은 삼국시대 이래 내려온 우리 고유의 전통 명절이다. 연휴기간 고향을 찾는 귀성객만 어림잡아 수천만명에 이른다. 추석 당일 이동객만 700만∼80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이른바 민족의 대이동이 추석연휴 기간 동안 이뤄지는 것이다. 전국의 고속도로망은 극심한 교통정체 현상을 빚는 게 추석 명절 때의 우리 모습이다.코로나19가 난동을 부리면서 올해 추석 명절의 민족 대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재확산으로 고향으로 갈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금 추석이 문제냐” “조상 모시다 내가 먼저 죽는다” 등 귀성과 관련한 부정적 의견이 다수 나돌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추석절 이동제한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정부도 추석 명절이 코로나 대확산의 분수령이 될까가 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민들에게 “방역을 최우선해 연휴 계획을 세워달라”고 당부했다. 추석절 이동제한이라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정말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이 무색해질 지경에 놓인 것이다.하루 1천명대 확진자를 기록한 일본은 “추석귀향 자제”를 정부가 당부했다고 한다. 언텍트 시대의 민족 대이동이 딜레마에 빠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06

일본의 차기 정권에서도 정책 변화는 없을 듯

일본 헌정사상 최장기인 7년 8개월간 집권 중이던 아베 신조 총리가 최근 전격 사임하였다. 이에 따라 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 집권 자민당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외형적으로는 정권 교체처럼 보이지만 의원내각제인 관계로 사실상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간판 얼굴만 교체되는 셈이다. 9월 1일 열린 자민당 총무회에서는 전당대회 대신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 의원총회에서 신임 총재를 선출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상시국임을 고려하여 ‘정치 공백 회피’를 위해 당헌에 있는 ‘긴급 시에는 양원 총회에서 후임을 선임’한다는 조항을 내세워 당원투표를 생략하는 양원 총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자민당 총재는 12일간 선거 일정으로 국회의원 394명과 전국 당원 등 394명을 합한 788명이 투표하는 전당대회에서 선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비상시에는 7일 일정으로 국회의원 394명과 47개 지자체 대표 141명(지부별 3명)을 합한 535명이 전당대회를 대신하는 양원 의원총회에서 선출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9월 8일 신임 총재선거를 고시하고 14일 선거일에 투개표를 실시할 공산이 크다. 이때 1차 투표에서 과반수인 268표 이상 득표자가 나오면 즉시 신임 총재가 결정, 차기 총리 지명을 거쳐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게 되지만, 과반수득표에 성공하지 못하면 득표 1, 2위를 대상으로 2차 결선투표를 거쳐 진행하게 된다.9월 14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선거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3명이 경합에 나설 전망이다. 스가 장관은 아베 내각의 관방장관으로 지난해 5월 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에 맞추어 적용된 새로운 일본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면서 일반 국민에게 인지도가 상승한 데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을 유지하는데 안방 살림을 잘 수행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시다 회장은 2012년부터 5년간 제2차 아베 내각에서 외무장관을 역임한 적이 있는 등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지만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했다. 반면 이시바 전 간사장은 여론조사 결과 차기 총리 후보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자민당 내 대표적인 반 아베파로 알려져 의원들 사이에서 지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아베 총리의 비판자라는 이름이 붙은 이시바 전 간사장을 자민당 의원들이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 뽑는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그런데 아베 총리를 배출한 자민당 최대 계파인 호소다파(細田派, 98명)를 비롯하여 아소파(麻生派, 54명), 다케시타파(竹下派, 54명), 니카이파(二階派, 47명), 이시하라파(石原派, 11명)가 모두 스가 장관을 지지한다는 의향을 보였다. 이 숫자만 하더라도 264표인데 무파벌파 의원 가운데 20~30명 정도가 스가 장관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지자체 지부 대표들이 141표를 모두 다른 후보에게 몰아주더라도 차기 자민당 총재로 스가 장관이 선출되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사임한 지 불과 2~3일, 심지어 스가 장관이 총재직 출마 의사를 공식 표명한 9월 2일이 되기도 전에 사실상 차기 총재선거는 끝난 셈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는 스가 장관에 대한 사실상의 신임 투표인 모양새로 바뀌어버렸다. 경선에 나설 기시다와 이시바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파벌(기시다파 47명, 이시바파 11명)을 이끄는 계파 수장이지만 대다수 파벌이 스가 장관을 지지하고 나선 지금 상황에서는 맥이 빠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공식 선거 일정은 선거고시일인 8일 오전 세 진영의 대표가 각각 20명의 추천인 명단을 첨부하여 총재직 입후보자로 등록한 후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여 표심 몰이에 나서겠지만 그마저도 코로나19로 인해 인터넷 정견발표 등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두 후보는 아예 지자체 대표들의 표심을 잡아 1차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다는 전략이며, 일찌감치 스가 장관을 지지하고 나선 다른 계파에서는 차기 스가 내각에서 자신의 파벌을 요직에 앉히기 위한 물밑 교섭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자민당 지도부가 이처럼 서둘러 9월 8일 총재선거 고시, 14일 투개표를 통한 신임 총재의 선출, 16일 임시 국회를 소집하여 새 총리를 지명한 후 신임 내각을 출범시키는 빠듯한 그림을 그린 것은 새로운 거대 야당의 출범을 최대한 견제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자민당 총재선거 일정 사이에 있는 9월 15일에는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이 양당을 해체한 후 150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입헌민주당’으로 출범하는 창당총회가 예정되어 있다. 15일을 가운데 두고 14일에는 자민당의 신임 총재선출, 16일에는 새로운 내각 출범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어 새로운 거대 야당이 결집 출범한다는 뉴스를 아예 덮어버리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인 셈이다. 야당 측에서는 총리지명에 이어 신임 총리의 소신표명 연설과 각 당 대표와의 질의응답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자민당은 임시 국회회기를 18일까지로 짧게 잡아 국회 토론은 10월 하순 소집하게 될 다음 임시 국회로 미룬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아베 정권의 막이 내림에 따라 일본 국내의 일부 학자들은 아베 총리가 자신만만하게 내세웠던 GDP성장률 2%의 안정적 달성이라는 공약은 2014년 1/4분기부터 2020년 1/4분기까지 6년간 1.8%에 그쳤고, 아베 정권 8년 동안 소비세 인상 등으로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이 3.5%나 줄어드는 등 소비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재정지출은 엄청나게 팽창하였다며 아베의 정책은 실패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자신 있게 내세웠던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와 같은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차기 총리가 누가 되든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가 대폭 변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동안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라는 정책 기조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최대의 엔진은 일본은행에 의한 대규모 금융완화와 거액의 재정지출이었다. 스가 장관이 일본은행과의 관계는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이어갈 것이라 밝히고 있고, 나머지 두 후보도 일본은행에 의한 대규모 금융완화에 대해 모두 장기적으로는 개선해야 하겠지만 급하게 변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어 금융정책 자체가 급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차기 총리가 거의 확실시되는 스가 요시히데 장관 특유의 ‘스가노믹스’는 당분간 만나볼 수 없을 것 같다.한편 아베 총리가 최우선 정책의 하나로 꼽았었으나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 것 중 하나가 북한 관련 문제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등과 관련하여 스가 장관은 김정은 조선 노동당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 활로를 열겠다고 발언하였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도쿄와 평양에 상호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겠다는 비교적 참신한 방안을 내세웠다. 기시다 정무조사회장은 북한 문제에는 언급이 없었으나 과거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회담 경험을 살려 냉정하게 한일 간 외교적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이상을 종합해 보면 누가 아베 총리의 후임이 되든 한일 관계를 포함한 일본의 정치 경제 관련 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9-06

계절의 소리

김병래시조시인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각 계절마다 대표하는 소리가 다르다. 비나 바람 같은 자연현상에서 나는 소리도 있지만 주로 새나 벌레가 내는 소리가 계절에 대한 청각적 이미지를 이룬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봄에는 종달새소리가 나른하고 몽롱한 봄의 정취를 돋우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 보리밭 들길을 걸어가면 노고주리라고도 불리는 종달새가 하늘 높이 떠서 영롱한 방울소리를 내었다.개구리소리 자욱한 초여름 밤의 들판과 뻐꾸기소리 적막한 초여름 낮의 신록도 싱그럽고 그윽한 분위기에 젖게 하고, 한여름이 시작되는 칠월 초순부터는 매미소리가 뒤를 잇는다. 매미소리의 여름은 3악장으로 되어 있다. 1악장의 주선율은 유지매미 소리인데 음정의 높낮이가 없이 찌르르르…. 길게 울린다. 유지매미소리가 좀 단조롭게 들릴 즈음 참매미소리의 2악장이 이어진다. 맴맴맴…. 하고 운다고 매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바로 이 참매미소리 때문이다. 내 귀에는 미웅미웅미웅…. 으로 들리는데, 몸집은 유지매미보다 작지만 성량은 뒤지지 않는다. 여름이 끝날 무렵은 쓰르라미가 3악장으로 마무리를 한다. 몸집이 가장 작은 쓰르라미는 합주를 하듯 떼로 울어서 마지막 무더위를 쓸어낸다.처서 지나고 가을 기운이 감돌면 풀벌레소리가 귀에 뜨인다. 진작부터 여름 풀숲에서 여치와 베짱이가 울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아무래도 높푸른 하늘 아래 벼가 익고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피는 계절과 더 잘 어울린다. 여치와 베짱이는 다 같이 여치과(科) 곤충이고 종류도 많아서 구별이 쉽지 않은데, 베짱이는 ‘쓰이잇! 쩍! 쓰이잇! 쩍!’ 하고 우는 소리가 베를 짜는 소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만추의 가을밤에는 귀뚜라미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귀뚜라미는 흔히 사람의 거쳐 가까이서 운다. 옛날 토담집에는 방안까지 들어와 살기도 했다. 사람의 기척이 나면 뚝, 그쳤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소리를 낸다. 잠 못 이루는 밤, 불을 끄고 누워 오랫동안 귀뚜라미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쓸쓸함이라든가 적막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그 밖에도 봄날의 산비둘기소리와 여름밤의 소쩍새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는 부엉이소리, 뜸부기소리도 한 몫을 했지만 종달새소리와 함께 지금은 거의 사라진 그리운 소리들이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나 자동차도 드물던 시절에는 온종일 들리느니 자연의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초가집 처마의 낙숫물소리, 가을바람에 낙엽 쓸리는 소리,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겨울바람소리,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 모두가 우리 정서의 바탕이었던 소리들이다.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도 좋지만, 계절에 따라 변하는 신천초목에 어우러지는 자연의 소리들이 더 깊숙이 정서와 감성에 와 닿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인공의 소음에 시달리려야 하는 도시인들일수록 기왕에 도심을 벗어나 나들이를 하는 걸음이면 자연의 경치 속에 깃들어 있는 온갖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자연의 미세한 소리까지 놓치지 않는 귀를 가진 사람은 감성과 정서가 늙거나 병들지 않는다.

2020-09-03

국민의 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당명이 또 바뀐다. 또 생뚱맞은 낯선 이름 하나가 들린다. 수십년간을 겪었던 경험이다. 최근 미래통합당은 새 당명 ‘국민의힘’과 정강·정책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신학국당, 미래통합당, 그리고 국민의 힘. 외우기가 힘들 정도로 당명이 바뀐다.그건 여당도 마찬가지. 민주당, 민주통합당, 통합민주당, 새천년민주당, 평화민주당, 새정치 민주연합, 더불어 민주당. 아마 정부수립 후 만들어진 정당 이름은 100개는 족히 넘을 듯하다.당명이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정책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국회에서의 정책의 토론이 아닌 구태의연한 욱박지르기 모욕주기는 여전한데, 당명이 바뀐다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잘못이다. 국민의 힘이라면 지금까지 국민의 힘은 안중에도 없다가 이제 알게 된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국민의 힘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힘에 의존하여 오다가 이제 뒤늦게 국민의 힘을 이용하고 싶어서일까? 정당 이름을 바꾸는 것이 정말 중요할까? 그 보다는 정당조직문화와 운영방식을 개선하고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틀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이름을 바꾼다고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국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당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이해가 된다. 미국, 영국 등 정당의회주의 선진국가들에 비하여 한국에서는 정당들의 이름이 수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정치인들은 그런 정당들을 오고가는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보다 개인의 이익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당은 개개인 정치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일 뿐이다. 미국에는 2개의 주요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이 200년 가까이 미국 전통을 지켜왔다. 두 정당은 다양한 계층의 미국인으로부터 지지를 얻어 광범위한 정치적 견해를 수렴하고 있다.미국에서 정당의 뿌리는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의원이건 국민이건 미국에서 소속정당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건 유럽의회 정치의 상징 영국이나 의원내각제인 일본도 마찬가지이다.계산에 의해 이리 저리 정당을 옮기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한 경우는 별로 없다. 정당 이름을 바꿔 크게 정치가 나아진 경우도 없다.정당 이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진정 국민을 위한 자세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순간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그리고 당선을 위해 정당을 만들고 해산하고 그리고 정당을 이리 저리 옮기는 이기적인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 정당이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성실하게 국민을 섬기고 법을 지키며 국가를 위하는 진정하고 올바른 자세이다.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이름을 바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정하여 반성하고,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자세가 필요하다.국민의 힘이라는 엉뚱한 또 하나의 정당이름을 보면서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필자같은 시니어들은 정당들 이름 외우기도 이제 벅차다. 요즘 시니어 인구의 비율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시니어들이 외우기도 힘든 정당 이름 제발 그만 바꾸자.

2020-09-03

내집 사는 이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2일 국회에서 ‘서민들이 빚을 내 집을 사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자 “집값 인상 기대 때문”이라고 답했다가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헤프닝의 전말은 이렇다. 포항북구가 지역구인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노 실장에게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냐’고 물었다. 노 실장은 “동의한다”고 답했다. 노 실장은 “올해부터 2020년까지 수도권의 공공택지에 분양하는 아파트는 37만호로 사전 청약 6만호, 본청약 18만호, 임대 13만호다. 2023년 이후에는 47만5000호가 지속적으로 공급될 예정”이라며 “그래서 국토교통부 장관도 30대 청년들에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 마련)해서 지금 집을 사지 말고 분양을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제대로 펼쳐지면 머지않아 집값이 안정될 것이란 취지의 답변이었다. 이에 김 의원은 ‘서민들이 왜 이렇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려는지 아느냐’라고 꼬집어 물었고, 노 실장은 곧바로 “집값 인상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닐까싶다”란 답변을 내놨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집값상승으로 인한 시세차익을 기대해 집을 산다는 대답이 된 셈이다. 이에 흥분한 김 의원은 “전·월세가 오르면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게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에 대출해서 집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하는 것도 지친다. 집값이 뛰게 하려(기대해)고 집을 사는 게 아니다”라며 “국민을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니까 이런 정책이 나온다”고 질타했다.노 실장의 대답은 일반인이라면 매우 상식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 실장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다. 그런 그가 ‘집없는 서민들의 아픔을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속뜻을 가진 질문에 동문서답식 답변을 했으니 욕을 얻어먹을 수 밖에 없다.아니나 다를까.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3일 ‘잘못된 인식이 잘못된 정책을 낳는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노영민 실장을 또 한번 질타했다. 김 대변인은 “서민이 빚 내 집을 사는 이유는 많이 오를 거라는 ‘두려움’과 이렇게 집값이 오르는데 지금 사지 않으면 집을 못 살 것 같은 ‘불안’때문”이라면서 “‘집 비워라’ 주인 눈치 안보고,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할 필요 없이, 가족들과 마음 편히 살 내 집을 장만하고 싶은‘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흔히 한국인에게 가장 부족한 게 자기표현능력과 공감능력이란다. 특히 한 철학자는 한국 중년남성의 반 이상은 혼자 놀고, 남들과 관계 맺을 줄 모르는 일종의 자폐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쨌든 청와대 비서실장 직책을 맡은 이가 이리도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이 모자란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진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2020-09-03

각자도생(各自圖生)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동물과는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사회성’을 들 수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전쟁에서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는 협동과 단결이 난관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은 무거운 짐도 나눠지면 가볍고 기쁨도 함께 하면 더 즐겁고 기운이 난다는 뜻이다.각자도생은 제각기 살아갈 방도를 따로 찾는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대기근이나 전쟁 등 어려운 상황일 때 백성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 남아라는 절박함에서 유래했다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전쟁과 같은 국난이 일어나면 나라에서 백성을 온전히 보호해 줄 방법이 없다. 임금이 백성들에게 불가피하게 각자도생의 길을 찾으라 했다는 것이다. 2019년 직장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각자도생이었다. 경기불황과 구직의 어려움에 봉착한 직장인에게 각자도생은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였던 모양이다.각자도생은 각박해지는 세상살이의 세태를 반영한 말로 보아도 좋다. 삶의 무게나 고뇌가 커지고 있음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식의 삶의 방식이 우리생활의 주류로 등장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고 바이러스로부터 내 몸의 안전을 보호받기 위한 집콕과 무대면 방식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은 서로 만나 부대길 때 인간적임을 느낄 수 있다. 각자도생의 삶에서 탈출할 날은 언제 올까./우정구(논설위원)

2020-09-03

추 장관 아들 논란, ‘늑장 수사’가 화 키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 씨의 군복무시절 ‘황제 휴가’에 대한 정치권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이 2017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추 장관의 보좌관이 서 씨 군부대에 직접 전화해 휴가 연장을 요청했다고 밝히는 군 관계자 2명의 진술 녹음을 공개했다. 문제는 검찰이 전혀 복잡할 게 없는 수사를 8개월이나 끌고 있다는 대목이다. 가부간 수사 결과를 빨리 발표하고 논란을 끝내야 마땅할 것이다. 서 씨는 육군 카투사 일병이었던 2017년 6월 5일부터 27일까지, 무릎 통증을 이유로 휴가를 10일을 연장하고도 복귀일에 부대에 돌아오지 않았다. 미복귀(탈영)로 처리하려고 하자 상급부대 대위가 찾아와 ‘휴가자로 보고하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신원식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서 씨가 근무했던 카투사 부대의 지원 장교였던 대위는 당시 추 대표 보좌관의 전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서 씨 측이 제출했다는 진단서류를 포함해 군대에는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니 희한한 노릇이다. 와중에,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이 추 의원 보좌관이 병가 연장을 요청했다는 부대 관계자의 진술이 없었다고 밝혀 의혹을 키우고 있다. 누군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에 따르면 서 씨는 21개월간 근무하며 연가 28일과 특별휴가 11일, 행정처리가 누락된 19일을 더해 무려 58일간 휴가를 썼다. ‘황제 휴가’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공정과 정의를 다루는 장관이 이런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라고 우려했다.병역 문제는 대학입시 문제와 함께 국민 여론을 좌우하는 최대 이슈다. 고관대작의 아들들이 군 복무를 노골적으로 회피하거나, 엉터리 복무로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그런 일이 있다면 큰일 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파행이 잦은 국회의 불씨 중의 하나인 이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기 위해서는 이제 검찰이 나서야 한다. 수사는 다 해 놓고 수사진 바꿔치기해가면서 권력 눈치 보는 인상을 주는 행태는 나라는 물론 정권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2020-09-03

코로나에 덮치는 가을 태풍…만반 대비를

최근 몇 년 사이 한반도를 찾아오는 가을 태풍이 유난히 많아졌다. 작년 9월, 10월에는 링링, 타파, 미탁 등 태풍 3개가 한반도에 영향을 줬다. 기상청의 태풍 관측 이후 가을 태풍 3개가 찾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전문가들은 이전에는 9월이 되면 해수면 온도가 낮아져 태풍이 한반도에 올라오기 어려웠으나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수온이 떨어지지 않아 한반도에도 가을 태풍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가을 태풍은 농작물이 한창 햇볕을 받아야 하는 수확기에 찾아오는 것이어서 농민들의 피해가 유난히 많을 수밖에 없다.올해는 사상 유래없는 54일간의 긴 장마가 지속되면서 전국 곳곳이 수해를 입었다. 수해의 상처가 채 수습도 되기 전에 이번에는 제9호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에 상륙, 많은 바람과 비를 뿌리고 지나갔다. 제주도, 부산, 경남 등지에는 도로침수와 정전, 주민대피 등의 피해가 속출했고 경북도내서도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다.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제10호 태풍인 하이선이 주말쯤 한반도를 덮칠거라 한다.기상청에 따르면 괌 인근해상에서 발생한 태풍 하이선은 5일이면 중심기압 930헥토파스칼(hpa), 최대풍속 시속 180km의 강한 태풍으로 바뀌어 7일에는 부산인근에 상륙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지금 국내 사정은 수도권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국이 비상이다. 하루 200∼300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방역당국은 밤낮없이 코로나 확산 방지에 여념이 없다. 대구와 경북지역도 방역관리에 쉴 틈이 없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안전수칙을 지켜가며 생업에 종사해야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농민은 농민대로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대로 또 도시민은 도시민대로 살림을 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설상가상의 분위기지만 다가올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해 경북지역은 태풍 미탁으로 1천118억원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적지 않은 피해로 도민들의 상처가 컸다.코로나가 겹쳐 힘든 상황이지만 사전 대비만이 태풍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특히 산사태나 침수 우려가 많은 곳에 대한 점검 등 행정당국의 선제적 대응이 중요하다. 농가들도 농작물 피해 최소화에 대비하고 각 가정에서도 각자가 안전조치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2020-09-03

디지털뉴딜, 데이터댐

정부가 추진중인 한국판 뉴딜 10대 과제 가운데 중앙정부 재정이 가장 많이 투입되는 사업이 바로 ‘데이터 댐’사업이다.데이터댐은 사회 곳곳에 흩어진 공공·민간 데이터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나의 형태로 가공하고, 이렇게 구축된 빅데이터를 분석·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과 5세대(5G) 통신망을 갖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가적인 사업이다.5년간 총 15조5천억원의 국비가 투입될 예정이며, 정부는 이를 통해 38만9천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빅데이터 구축은 관련 업계의 수요는 크지만, 막대한 단순 수작업이 필요해 민간에서는 선뜻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었으며, 정부 재정을 동원해 단순 수작업 인력을 대량으로 고용해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경기 활성화까지 노리는 `뉴딜 정책` 취지에 가장 적합한 디지털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일 ‘데이터 댐’ 프로젝트의 7대 핵심사업들을 수행할 주요기업 등의 선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사업 추진에 나섰다.7대 핵심사업은 과거 미국 대공황 시기의 ‘후버댐’ 건설과 같은 일자리와 경기부양 효과에 우리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각 분야의 혁신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기획된 AI학습용 데이터 구축, AI 바우처와 AI데이터 가공바우처 사업, AI융합 프로젝트(AI+X), 클라우드 플래그십 프로젝트, 클라우드 이용바우처 사업, 빅데이터 플랫폼 및 센터 구축 등 7개 사업이다.다만 세상이치가 모두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는 법. 데이터댐이 만들어낼 일자리 이면에 일자리를 잃는 기존 산업 종사자의 아픔도 헤아려주길 바랄뿐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02

‘삼성’ 끝내 기소…수사심의위 존재 이유 실종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가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3개 혐의로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2018년 11월 증권선물위원회가 분식회계 혐의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검찰에 고발한 지 1년 9개월 만이다. 문제는 지난 6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가 10대 3의 압도적 의결로 수사를 중단하고 기소하지 말도록 한 권고를 뭉갰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공정 수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자랑하던 수사심의위의 존재 이유가 완전히 실종됐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검찰은 기소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하고, 합병 전 삼성물산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해 업무상 배임을 일으켰다는 혐의를 추가했다. 합병 전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피고인들이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등 각종 부정거래를 일으켰다고 결론지었다.공소장에 차장검사의 결재가 누락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앙지검의 통상적인 결재라인은 주임검사인 이복현 부장검사와 이근수 2차장검사, 지검장 등의 승인을 순서대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차장검사는 공소장을 결재하지 않았고, 이 부장검사와 이성윤 지검장만 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판카드에 있는 결재란에도 차장검사 결재는 없다고 한다.이재용 부회장은 2017년 2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후 3년 6개월 만에 다시 새로운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됐다.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결정 이후 많은 국민이 코로나19로 인한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국민경제를 헤아린 지혜로운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반삼성 운동권의 ‘기소해야 한다’는 편협한 주장을 받아들인 이성윤 중앙지검의 최종 결정으로 인해 사실상 수사심의위 설치 운영의 명분이 사라졌다. 중앙지검의 “검찰 안팎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 결과”라는 변명이 초라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수사심의위 권고조차 따르지 않은 검찰이 무슨 체면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다시 입줄에 올리나.

2020-09-02

미반영 국비 현안사업 추가 확보에 全力을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대구시와 경북도의 국가투자예산 규모가 윤곽을 드러냈다. 대구시는 작년보다 8.1% 증가한 3조2천302억원, 경북도는 17%가 늘어난 4조8천561억원 규모다. 대구시와 경북도 모두 전년보다는 예산안 규모가 증액 편성돼 다소 고무적이다. 대구는 물산업과 미래형 자동차. 로봇 등 대구시가 지역경제의 미래와 역동성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던 분야에 대한 국비예산이 반영됨으로써 코로나로 어려워진 지역경제의 추동력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경북도도 중앙선 복선전철화, 동해중부선 철도부설, 울릉공항 건설비 등 SOC사업과 산업단지 재개조 등 미래성장 분야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면서 내년도 국가투자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그러나 지역의 알짜배기 숙원사업 상당수가 아예 예산이 반영되지 않거나 대폭 삭감된 것도 많아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서 최종 확정될 때까지 추가적인 예산 반영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특히 이번에도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영일만 횡단구간 고속도로 사업에 대해서는 작지만 연결고리라도 만들어야 한다. 경북도와 포항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해 온 이 사업은 이미 수차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국가사업으로 요청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최근에는 지진 피해를 겪은 포항지역 경제 활성화 및 포항시민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사업으로 지원해줄 것을 정부측에 건의한 바도 있다.이 밖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을 보였던 임청각 복원과 관련해서도 35억원을 요청했으나 16억만 반영됐다. 임청각 역사문화공유관 건립사업은 한 푼도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 대구시도 감염병 전문병원 유치나 물융합실증기술개발 사업 등은 아예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코로나와 관련한 의료인력 수당지급부분도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 지역에 대한 국가투자예산은 국회심의 과정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아직 예산을 반영할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어 지역 정치권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다.국비 확보는 광역단체간의 경쟁 구도에서 상당부분 결정된다. 국가가 지원해야 할 지역현안에 대한 시급성이나 중요성 등이 우선순위의 잣대가 되겠지만 정부를 설득하는 지역의 정치적 역량도 힘이 된다. 대구시와 경북도 그리고 지역 여야 정치권이 함께 힘을 모아야 성과를 낼 수 있다.

2020-09-02

힘내라, 방송!

장규열한동대 교수안 그래도 어렵다. ‘혼돈의 시대’라 여겨질 만큼 오늘 현실은 소용돌이친다. 세기를 건너오며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라는 단순한 구조를 가졌던 미디어환경이 급변하였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과 라디오였는데 어느 틈에 매체환경이 폭발하더니 이제는 모두 디지털 온라인으로 수렴해 간다. 4차산업혁명으로 향하는 길목에 터진 코로나19의 현실은 미디어의 역할을 더욱 증대시켰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뉴노멀의 사회환경은 기대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비대면 기조의 사회활동, 재택근무로의 업무환경 변화, 온라인으로 전개되는 교육과 문화, 인공지능이 몰고오는 직업구조의 격변. 정보전달과 여가활동에 있어서 더욱 확장될 온라인과 디지털 소통은 미디어가 가질 영향력의 지평을 한층 넓혀갈 터이다.방송은 특별하다. 다른 전통미디어들이 기존의 틀을 대체로 유지한 채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방송은 존재형식과 시스템구조 자체가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기술진보와 함께 다변화된 방송구조는 광고시장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쳐 수익성 확보에도 진통을 겪는다. 내용면에서 허위조작정보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보의 범람을 막아내는 일에도 방송의 할 일이 즐비하다. 그럼에도 방송을 향한 국민적 기대는 여전하여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에 특별재난방송을 끊임없이 전개하는 등 사회적 기여를 멈추지 않는다. 주요방송사가 시행한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52.4%의 국민들이 방송을 통하여 전달받고 있다고 한다. 격변과 기대 가운데 ‘방송의 날’을 맞는다. 기념하기보다 숙고해야 할 일이 숙제로 다가오는 오늘이 아닌가.방송은 공공재다. 사회적으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전달할 책임이 있고 그에 따른 문화적 영향력도 지대하다. 영국 BBC의 토니 홀 사장은 ‘소셜미디어와 가짜뉴스가 분열을 만들어내며 극단적 대립을 추동한다’면서 ‘방송의 공공적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여야 한다’고 하였다. 수익성의 확보와 함께 공익에 기여하는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다 큰 기대와 과제를 안게 된 미디어, 특히 방송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소명이 주어졌다. K-방역과 함께 향상된 국격을 안팎으로 확인하고 알려낼 과제도 방송이 맡아야 한다.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K-콘텐츠가 차지할 몫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방송의 형태와 시스템, 법령과 규제, 콘텐츠와 글로벌지향 등 어느 한 영역도 멈춰서지 않는다.변화를 읽어야 한다. 뉴노멀은 노멀이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따라가기보다 앞서가는 방송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 코로나19가 앞당긴 다른 세상에서 더욱 높아진 미디어에 대한 도전과 기대 앞에 우리 방송이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방송소비자 국민들도 방송을 통한 ‘콘텐츠주권’을 지켜내기 위해 눈에 불을 밝혀야한다. 정부는 방송이 나라와 국민에게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여야 한다. 방송과 미디어가 당면한 과제와 기회 앞에 미래를 당겨올 다짐을 해야 한다.

2020-09-02

낭만에 대하여

배문경 수필가가을은 축제가 많은 계절이다. 축제기간 동안 경주는 능위에 늙은 느티나무가 멋진 봉황대에서 여러 행사가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가수들을 초청해 콘서트를 연다.이번 초대 가수는 최백호다. 그가 온다는 광고는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달력에 큼직하게 표시하고 함께 갈 동생과 약속도 해두었다. 기다리는 며칠 동안 여고생이라도 된 듯 설렘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나를 누가 보았다면 발이 10센티는 붕 떠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리라.당일, 봉황대로 향하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작스런 비에 놀란 사람들이 제법 긴 줄을 서서 편의점에서 나처럼 우의를 샀다. 이런 큰 공연을 앞두고 비라니, 그만 힘이 쏙 빠졌다.도착했을 무렵 사람들이 천막 안과 빗속에서 우의를 입은 채 기다렸다. 멋진 공연을 기대해서인지 비를 핑계 삼아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가 나타날 무대를 응시했다. 무대에는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고 개그맨이 싱겁게 시간을 메우느라 너스레를 떨었다.초록의 능, 비로 짙어진 봉황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순간 환상이 펼쳐졌다. 굽은 나무와 어우러진 왕릉을 배경으로 나타난 반백의 사내, 그는 오랫동안 보아온 지인처럼 자연스런 모습으로 등장했다. 박수와 함성이 쏟아지고, 가을비도 쏟아지고, 이전의 음악에서보다 더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가 관객들의 머리 위로 축복같이 쏟아졌다.얼굴에 내리는 것이 빗물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깊은 노래의 울림을 통해 빚어진 눈물은 무수한 감정들의 찌꺼기들을 녹아내리게 했다. 날마다 차곡차곡 쌓여 무게를 가늠할 수 없던 스트레스와 인연이 만든 희로애락이 더 짙은 애수를 자아냈다. 이후 점점 가벼워지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뜨거운 빗물이 흘러내렸으니 노래의 힘은 대단했다. 삶의 부스러기들이 한꺼번에 잘게 부서져 공중분해 되는 느낌이었다.그는 트로트가 대세였던 시절에 포크 록발라드로 인기를 끌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하며 우리에게 다가왔고, ‘영일만 친구’로 가수상을 받았다. 싱어송라이터가 드물던 시절에 독특한 창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노래를 읊조렸다. 라디오 DJ로도 활동범위를 넓힌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다.그는 정규교육에서 썩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 잘한 친구들은 지금 퇴직해서 놀고 있다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초로의 사내. 스스로 노래 속에서 새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워지는 그를 보았다. 무대가 끝나갈 즈음, 빗물이 그의 눈에도 흘러 들어간 모양이다. 그가 천막의 기둥에 슬쩍 기대서서 간주곡 사이사이에 먼 곳을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가 외로운 것처럼 그도 비 오는 날, 그림자조차 없이 하나로 서있었다.청바지가 아직도 잘 어울리는 일흔의 그가 아흔에도 노래를 부르겠단다. 박수가 쏟아졌다. 가수에 대한 응원이자 나의 내일에 대한 응원이다. 내 나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낭만적이다. 마지막 곡은 역시 ‘낭만에 대하여’였다. 그의 노래 위로 꽃가루가 흩뿌려졌다. 도라지 위스키의 알싸한 향기가 우리 주위를 감쌌다.낭만, 그것은 영화이거나 음악이거나 답답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그 어떤 것이다. 다양한 악기가 내는 미묘한 울림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달콤함, 이 모든 것이 낭만이었다. 나이만큼 어쩌면 우린 잃어버린 과거, 잊혀 진 과거의 추억, 인생이 뭔지 알 나이가 된 사람들의 낭만이었다.오늘 낭만에 대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짧은 단상과 그의 팔짱을 끼고 옆자리에서 한 컷 찍는 영광도 얻었다. 무르익은 가을밤의 축제에 감사했다. 궂은 비 내리던 날,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느껴보는 낭만이다.

2020-09-02

고봉의 사랑

어릴 적 기억 하나. 명절 끝, 큰댁에서 돌아온 엄마의 할머니에 대한 유일한 뒷담화는 ‘밥 많이 퍼라’라는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부엌으로 연결된 안방 쪽문 앞에 자리한 할머니는 큰엄마를 비롯한 며느리들이 밥상을 준비할 때면 매번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밥 많이 퍼라.” 쌀이 귀하던 그 시절 손님을 대하는 안주인의 진심은 고봉밥이 대신 말해주었겠지요. 정 많은 할머니식 그 말씀이 엄마와 큰엄마는 그렇게 듣기 싫었답니다.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인데, 매번 부엌문 앞에 바투 앉아 ‘밥 높이’를 관장하시니 성가신 맘이 없지 않았겠지요. 알고 있는데 자꾸 말하거나 좋은 말도 되풀이 하면 잔소리가 되니까요.며느리였던 엄마의 푸념이 이해가 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할머니의 그 포지션에 더 정감이 가 슬며시 미소 짓곤 합니다. 내남없이 가난하던 시절 밥 인심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안주인의 결연한 의지 같은 게 보인다고나 할까요. 살짝, ‘밥 많이 퍼라’의 그 대상이 누구였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십중팔구는 할머니의 사위들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시집 간 딸을 둔 엄마에게 가장 반갑고 귀한 손님은 사위였을 테니까요. 사위에게 야박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친정엄마는 없을 것입니다. 밥심으로 살던 시대였으니 오죽했을까요.이제 밥심이 아니라 다이어트심(?)으로 살아가는 게 더 효율적인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럼에도 귀한 손님에게 고봉밥을 푸는 그 정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할머니 연세를 훨씬 넘긴 엄마도 당신 사위들이 오면 밥을 봉두(峯頭)로 푸십니다. 할머니처럼 잔정 깃든 잔소리만 하지 않을 뿐 그 옛날의 할머니가 원했던 것처럼 밥공기 가득 주걱 놀림을 하십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봅니다.아이러니하게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위가 오는 날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집니다. 평소 남편과 아들에게는 바쁘다는 핑계로 라면밥이나 해주고 시중 김밥으로 때울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딸내미 내외가 온다는 소식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영끌’해서 없는 솜씨를 발휘합니다. 며느리든 사위든 내 집에 든 귀한 손님이라는 생각에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은 거지요. 보통 때는 그리 즐기지 않던 고기 메뉴에다 밑반찬까지 신경 씁니다. 밥그릇은 기존의 미니 밥공기가 아니라 좀 더 큰 그릇으로 세팅합니다. 당연히 고봉밥을 담습니다. 혹여 체면치레라도 할까봐 처음부터 가득 푸는 거지요. 그래야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집니다. 그 옛날 할머니의 ‘밥 많이 퍼라’라는 말씀이 DNA처럼 대물림 되는 것이지요.그렇게 밥을 푸다보면 한쪽에선 또 다른 말씀들이 들립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제발, 밥 좀 적게 퍼라.” 여분의 밥을 옆에 두면 더 깔끔하다나요. 착하고 눈치 빠른 사위는 적당히 배불러도 그 밥을 더 덜어먹겠지만 어쩐지 그건 제 방식은 아닙니다. 아들까지 남편 편입니다. “엄마,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제가 결혼해서 처가에 가서 밥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면 엄마 맘이 편하시겠어요?” 많으면 덜거나 남기면 되지 그게 고통일 것까지야 싶은 맘에 순간적으로 욱합니다. 하지만 아들 말에 의하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네요. 생각해서 주신 건데 즉각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고통을 당한다? 이 부분에서 심장이 덜컥합니다. 얼마 전 교육방송에서 본 강의 장면 하나. 사랑의 관점에 대해서 생각게 하는 부분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두 공기, 세 공기, 한 됫박, 한 말이 아니랍니다. ‘한 공기’면 충분하답니다. 상대가 원치 않는 넘치는 사랑은 타자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요지였지요. 한 됫박이나 한 말의 사랑을 주고 싶은 것은 나의 입장이지 상대의 입장은 아니랍니다. 상대는 소박하게 담은 단 한 공기의 밥이면 족한데, 주는 이는 고봉밥으로 두 공기, 세 공기 아니 한 됫박을 주고 싶어 합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만큼을 감지하지 못한 채 오버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나요.김살로메소설가맞는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이후에도 고봉밥을 푸는 마음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밥이라면 고봉밥이어야지요. 밥주걱 든 입장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겁니다. 줄 게 마땅찮으니 밥이라도 따뜻이 먹이고자 하는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상대도 그 마음을 알고 최선을 다해 밥상 앞에 앉는 거지요.‘밥 많이 퍼라’시며 부뚜막을 내려 보던 할머니도 사랑이고 말없이 밥을 봉두로 푸신 엄마도 사랑입니다. 물론, ‘밥 적게 퍼라’고 말하는 남편과 아들도 사랑이고 그걸 재바르게 접수하지 못하고 앞선 두 여인을 따라하는 제 마음도 사랑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불편까지는 헤아릴 겨를이 없는, 상대가 원할 것만을 짐작하는 ‘찐’ 사랑입니다.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 그 모든 것을 고봉의 사랑이라 명명하겠습니다.

2020-09-02

온라인 수업 시스템 수준은(下)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데자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지난 주초 내내 이 나라는 초강력 태풍을 경고하는 언론의 몰이식 방송 때문에 매일 긴장 속에서 보냈다. 다행히 국민 마음을 아는 태풍은 어용 언론의 보도 내용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말부터 언론은 재방송이라도 하듯 또 태풍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언론 보도 내용대로라면 어느 정도의 강도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올해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첫 태풍이라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아니래도 힘든 국민을 위해 이번에도 태풍이 꼭 비켜 가길 기원한다.이미 국민은 친정부 언론들이 내보내는 편향성 뉴스에 넌더리를 친지 오래다.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바른 역할을 못 하는 나라에서 어느 분야인들 제 역할을 하는 곳이 있을까마는 그중에서 제일 심한 곳이 교육과 언론이고, 이와 버금가는 곳이 법 관련 부처이다. 참된 뉴스는 국민의 눈과 귀다. 그런데 어용 언론들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은 물론 이 나라 정치인들의 눈과 귀를 완전히 가렸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벌거숭이 임금(정치인)이라고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애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뉴스는 되도록 보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뉴스 채널을 지워버린다.지난 주말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완전히 TV 화면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필자를 구한 건 아이들이었다. 화면에는 유명 방송인 요리사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요리 프로그램이길래 저러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그런데 분명 많은 것이 달랐다. 그중에서 필자의 시선을 오래 잡은 것은 바로 세트장 구성이었다.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 같았다. 많은 화면이 있었고, 화면 속에는 제각기 다른 사람이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더 놀란 것은 스튜디오의 요리사와 화면 속 인물이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내용을 보니 요리에 서툰 일반 시청자들이 쌍방향으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생방송이라는 것에 필자는 더 놀랐다. 모두를 너무 즐거워했다.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는 실시간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온라인 수업 시작부터 많은 교육 관료와 교사들은 학교에서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 안 된다고만 했다. 왜 안 되느냐고 물으면 오로지 핑계를 대기에 바빴다. 대표적인 핑계가 수업을 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결책을 제시해도 그들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릇된 신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의사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대통령의 표현은 의료계가 아닌 교육계에 더 적합한 말이다. 분명 지금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편의 중심의 원격수업은 학생들에게 도움은커녕 독이 되고 있다. 학생들의 마음이 학교에서 더 떠나기 전에 지금 각 방송사가 진행하는 쌍방향 방송을 교육 관료들과 교사들이 꼭 보길 추천한다. 혹여 온라인 수업 때문에 바빠서 TV 프로그램을 모른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핑계를 댈 교육 관계자들을 위해 잠시 프로그램을 안내하니 꼭 챙겨 보시길 바란다.“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 트롯신이 떴다, 코미디빅리그”

2020-09-02

파업하는 의사들에게!

김규종경북대 교수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점에 광화문 광장에 모인 정계와 종교계 인사들이 목청껏 독재를 주장한다. 진정한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이 권좌에 앉아 있을 때, 저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세계적인 유행병의 추상같은 위협 아래 근근이 살아가는 시민들 보란 듯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한다. 의사들은 이것을 ‘파업’이라 부른다.파업은 사회적 약자가 노동조합 같은 조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집단행동을 가리킨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권이 제법 신장한다. 군부독재 시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동자들의 인권과 권익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높아졌다.그러나 노동현장에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국민의 정부’를 자처한 김대중 정권은 2000년 6월 3천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롯데호텔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한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파업 당시 대테러 임무를 담당하는 경찰특공대를 파업 현장에 투입하고, 다목적 발사기, 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도 사용한다. 경찰은 헬기 6대로 유독성 최루액 20만ℓ를 노동자들에게 투하하기도 했다.반면에 2000년 봄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 국민의 정부는 전전긍긍으로 일관한다. 의사들은 2000년에만 최소 세 차례의 전국규모 파업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찰의 물리력이나 폭력이 행사됐다는 기록은 없다. 국가 공권력이 사회적 약자와 정치-경제적 강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본보기다. 오늘날 의약분업 체계를 부정하는 의사는 없다. 필수 불가결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정부가 의료 서비스의 지역 불균형 해소, 필수의료 강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8월 21일부터 대학병원 전공의와 전임의가 파업을 시작했다. 의사들은 9월 7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 2000년 봄날 경북대 도서관 앞에서 마주친 의대생이 생각난다.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전단지를 내민 학생에게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1980년 서울의 봄과 대구의 봄에, 1987년 6월 항쟁 때 자네 선배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을 알고 있나?! 파업은 사회적 약자가 강자에게 생존권을 주장하는 거야.” 의사의 파업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확연히 다르다. 노동자는 자신의 지위와 목숨을 걸고 파업하지만, 의사의 파업은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의사는 환자와 함께해야 한다. 정부의 의료정책이 성에 차지 않아도 최고 지성인답게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해야 한다. ‘제네바 선언’에 기초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가운데 한 문장만 인용한다. “종교나 국적,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그만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오시라!

2020-09-02

월트 디즈니의 인생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농촌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전원풍경을 백지에 그리며 가난하였지만 늘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다.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이사한 뒤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은 신문 만화가를 꿈꾸며 남몰래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에게 만화는 보석같은 꿈이었고, 자존심이었다.소원대로 소년이 자라 신문사의 만화가가 되었지만 이 젊은이의 야심작과 자존심을 담당국장이 날마다 평가절하하며 퇴짜를 놓았다.“이걸 그림이라고 그리나? 차라리 그만두는 게 어떨까?”늘 이런 소리를 듣던 그는 급기야 어느 날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곳에서 명예퇴직을 당하였고 돈도 벌지 못하여 생계를 위해 트럭 운전수로 제1차 세계대전을 겪기도 했다. 실의에 빠진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다가 다시 농촌으로 내려갔다. 농촌에서 한 교회의 지하창고를 빌려 쓰며 잡일을 하기 시작했다.지하창고의 어둠은 바로 자신의 암담한 모습이었다.그러나 그 지하창고가 보물창고로 변하는 일이 생겼다.상처를 받고 절망했던 그는 창고를 뛰어 다니는 징그러운 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예쁘고 친밀감 있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쥐는 더이상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었으며 흉물스러운 쥐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히니 오히려 다정한 말 벗이 되었다.이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키마우스’ 이다.그 젊은이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 오늘날 ‘디즈니랜드’의 주인이다. 젊은이는 미키마우스를 만든 다음, 메리 포핀스, 신데렐라, 피노키오, 피터팬 등과 같은 만화 영화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오늘날 디즈니라는 이름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와 1920년대 처음 등장한 ‘월트 디즈니’ 는 그 상업적 성공이 말해주듯 가장 많은 수의 캐릭터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 중에서도 미키마우스의 존재감은 월트 디즈니의 거대한 성공과 동의어로도 여겨진다. 디즈니에게는 쥐가 득실거리고 참혹했던 지하창고는 오히려 아이디어 창고가 되어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게 해주었다. 암울하고 어려운 시기가 오히려 창조와 기회의 계기가 된것이다.폐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한 달여 만, 65세의 일기로 숨을 거둔 그는 사망하기전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기억하기 위해 장례식을 치르지 말아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공동 묘지에 안장 되었다.월트 디즈니의 인생에서처럼 현재의 어려운 처지나 미운 동료, 싫은 친구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다면 내일은 밤하늘의 찬란한 별처럼 밝게 빛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보물창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2020-09-02

혼자만의 시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수많은 이변 속에 ‘동동팔월’이 지나갔다. 긴 장마에 폭염과 태풍, 코로나19 재확산과 비토 세력 집회 등으로, 되풀이되는 자연 재난의 상흔은 깊어졌고 국민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동동거리며 계속되고 있다.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자연 앞에서는 더욱 겸손한 자세로 지혜를 모으고 인간사회에서는 다양성의 조화 속에 배려와 신뢰의 마음을 재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번잡하고 요동치는 가운데서는 무슨 생각을 모으거나 어떤 일들을 도모하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아전인수격의 우격다짐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자칫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한다.세상이 복잡하고 주위가 시끄러울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루 종일 해야할 일들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수두룩한데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란 좀처럼 쉽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선 정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마음의 평온함과 함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지기도 할 것이다. 가령 혼자서 들길을 거닌다거나 산이나 강, 바다나 언덕을 찾아 조용히 사색을 하며 관조(觀照)하듯이 명상에 잠기다 보면 한결 마음이 넉넉해지고 개운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실제로 1년에 두 차례 ‘생각 주간(Think Week)’을 정해 혼자 조용한 곳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그러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잡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또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칭하는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화가 폴 세잔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해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그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깊은 사색을 통해 전통적 회화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제시한 곳도 미술의 변두리였던 한적한 프로방스 지방이었다고 한다.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고 일들이 많아선지 스스로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선뜻 내주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틈만 나면 TV를 본다거나 하루 종일 SNS를 통한 소통을 하며,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이 소외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함과 정보나 화제를 놓칠 것 같은 강박감으로 잠시라도 혼자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이른바 ‘포모현상’에 찌들어가는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을 안보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평균 50초라 하니,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가는 길은 요원하기만 한 듯하다.시대가 각박할수록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조용히 앉아 마음을 살피는(獨坐觀心) 일이 중요하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반성하고, 현재의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미래에 있을 법한 일들을 심사숙고하다 보면 마음의 고요 속에 뭔가 비춰지고 발견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마음의 고요는 평정심(平靜心)이며 홀로 조용히 있을 때만이 자신의 중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0-09-01

전광훈 목사에 관한 비판적 시각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반정부 집회의 주역이 된지 오래다. 지난 4·15 총선 전의 태극기 집회는 서초동 조국의 지지 집회보다 수적으로 많았다. 지난 8·15 광복절 집회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사전 치밀히 준비한 집회임이 드러났다. 그는 집회 시 마다 문재인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반정부적 집회는 찬반양론이 있다. 극우 보수층에서는 그의 집회를 지지할지라도, 중도 진보층은 그의 정치 행위를 맹렬히 비판하는 입장이다. 그에 관한 부정적 시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전 목사는 집회 시 독일 신학자 본 훼퍼를 자주 들먹인다. 루터교 목사인 본 훼퍼는 독일 나치 체제하에서 독재자 히틀러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다 처형된 사람이다. 신학자인 그는 히틀러 암살단에 연루되어 체포되고 1945년 교수형에 처해 진다. 1906년생인 그는 39세로 생을 마감한다. 전 목사는 본 훼퍼의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는 문구를 문 대통령 퇴진 표어로 사용한다. 당시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의 광기는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고 유태인 수만 명을 학살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독재자 히틀러와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전 목사는 목회자의 범주를 이탈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극우 후보를 지원하고 총선에서는 자유통일당 후보를 냈지만 의회진출에 실패했다. 자유국가에서 목사도 정치에 관한 주장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제일교회의 담임 목사이며 보수 종교 단체의 회장이 반정부 투쟁에 앞장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의 입장은 남미 해방 신학자들의 주장도 아니고, 한국 정의 사제 구현 단 사제의 입장과도 거리가 멀다. 그의 입장은 신앙적 입장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진정으로 정치하고 싶다면 목사직 사퇴 후 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전광훈 목사의 정치 행적에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도 비판이 많다. 그는 광화문 집회에서 ‘모세 5경만이 성경이고 나머지는 성경의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자들 앞에서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주장하다 무언가 어색했는지 ‘내가 하나님과 이렇게 친하단 말이야’로 변명했다. 교회 개혁 실천위원회에서는 전목사의 언행을 ‘이단’이라 비판하고 나섰다. 교계의 손봉호 교수는 그의 주장은 ‘이단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였다. 목사의 허위나 추측성 발언이 대중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코로나 2차 감염 확산 시점의 그의 8·15 광복절 집회는 많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는 방역 당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마스크를 벗은 채 ‘나는 열이 없는데도 정부가 나를 격리조치 하려 한다’고 선동하였다. 그는 집회 후 감염자로 확인되었고 사랑제일교회 감염자는 1천여명을 넘었다. 그의 교회는 경찰의 조사에도 일체 불응하였다. 정부는 그의 행위를 ‘방역체계 도전’이라 보고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하였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의 그의 이러한 행위와 처신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2020-09-01

음서제 논란

고려 18대 왕 의종 때 일이다. 문신 한뢰가 유흥놀이 끝에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문신의 권력 놀음에 지쳐있던 정중부 등 무신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킨다. 이것이 무신정변(1170년)이다.고려시대는 문벌 중심의 귀족사회다. 문신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경제적으로는 대토지를 경영하고 심지어 군대를 지휘 통수하는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 무인은 귀족정권을 보호하는 호위병 수준으로 전락, 불만이 많았던 때다.고려시대 음서제도는 문벌귀족 사회임을 입증하는 대표적 제도다. 5품 이상 관리의 자제는 과거를 보지 않고 관리로 채용되는 제도다. 조상의 음덕으로 자자손손이 벼슬에 올라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당시 음서제는 날로 폐단을 더하여 수혜 범위가 관리의 아들, 손자, 외손자, 사위까지 확대됐다. 전체 관리 중 음서 출신자가 과거급제자보다 많아 나라 살림이 제대로 관리될 리 만무했다. 결국 무신정변으로 문벌귀족사회는 몰락하고 종국적으로는 고려가 망하는 원인이 됐다.예나 지금이나 제도가 공정하지 않으면 민심 이반이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그것이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이다. 조선시대에도 음서제는 이어졌다. 그러나 수혜 폭이 많이 줄어들면서 관리를 희망하는 양반 자제들은 자연 과거 시험으로 몰려들어 벼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고 한다.정부의 공공의대 설립을 둘러싼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 국민 청원판에는 “공공의대 게이트에 대한 진상규명”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국민이 납득할 정부의 명쾌한 답변이 해결책일 것 같다. 국민은 공공의대 설립 목적과 과정이 평등하고 공정한 쪽으로 손을 들어줄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01

코로나 확진자 2만 돌파… 장기전도 준비를

수도권발 코로나19가 단기 급증세를 보이면서 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코로나19)가 1일 0시 기준으로 2만명을 넘어섰다. 19일째 신규 확진자도 연속 세자릿수를 유지하면서 코로나 방역망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일 0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만182명으로 전날보다 235명이 늘어났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2만명을 넘어선 것은 올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한 이후 약 7개월만이며 날짜로는 225일만이다.문제는 8월 중순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19일 동안 수도권을 중심으로 5천300여명이 새롭게 발생해 국내 전체 확진자의 4분의 1이 단기간에 나타난 것이다. 이 같은 단기 급등세는 대유행의 우려를 높일 뿐 아니라 방역망을 크게 위협한다는 점에서 우리를 더 불안케 한다.당장 진단검사 및 접촉자 추적 등 현장방역 전 과정에 심각한 과부가 걸리고 중증환자 병실 확보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단기 급증세 속에 60대 이상 고령 확진자도 크게 증가한 것은 큰 걱정거리다. 8월 중순 이후 2주 동안 국내서 발생한 신규 확진자 가운데 60세 이상 고령자는 전체의 33%다. 따라서 위.중증환자 치료병상 확보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 증가도 걱정이다. 정은경 본부장은 “최근 2주간 깜깜이 환자가 21.5%까지 늘어났다”며 “누구든 감염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대구시는 수도권발 코로나 확산세를 막기 위해 다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더 강화된 방역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재의 기세를 꺾을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온이 떨어지고 실내 활동이 늘어나는 가을철에 접어들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수도권 중심의 코로나 확산세는 지금 무서운 기세로 전국에 번지고 있다. 지역보건 당국의 노력으로 일단 선방을 하고 있으나 돌발변수가 너무 많아 상황 반전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장단기 대책이 별도 필요하다. 바이러스 백신개발이 단기에 이뤄지기 어렵다면 장기전을 위한 준비도 차분히 해나가야 할 것이 옳다.

2020-09-01

새 모자는 가시 면류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우울한 마음 / 어두운 마음 / 모두 지워버리고 /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이해인 수녀는 시 ‘9월의 기도’에서 9월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그렇다, 숨죽이며 9월이 왔다.3월이 되면 어김없이 비발디의 ‘4계’ 봄 악장 선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 8월이 가고 무더위가 잦아드는 9월이 오면 또 어김없이 ‘4계’ 가을 악장의 밝고 경쾌한 음악이 귓가를 돌아 가슴에까지 닿았었다.그런데, 올해는 아니다, 봄 노래를 들은 기억이 없고, 아직 이르긴 하지만 가을 음악을 듣지 못하였다. 아마도 봄 가을의 전령같은 음악이 전파를 타고 흘렀을 것이다. 방송 진행자들마저 계절이 오고가는 것에 무감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음악이 흐른들 그 선율에 몸을 맡기고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를 가진 이가 지금 몇이나 될까. 이 겨를 없음을, 아니 처절한 무딤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뉘라서 뭐라 할 것인가.코로나19가 시작된 중국에서는 이 바이러스 전염병을 신관폐렴(新冠肺炎)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습이 마치 왕관 모양의 돌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코로나라는 이름 또한 라틴어로 왕관을 뜻한다고 하니 무지막지한 힘을 휘두르는 바이러스에게 붙여진 새로운 모자라는 뜻의 신관(新冠)이 꽤 그럴 듯해 보인다.왕관 쓰기를 싫어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미관말직의 감투일지언정 오매불망 기다리다 넙죽 받아쓰려는 이들이 하고많지 않던가. 사람이란 존재가 원래 그런가 보다. 그러나 누구든 절대로 쓰고 싶지 않은 관이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쓰셨던 가시면류관이 바로 그것이다.나는 올 초에 ‘고래와 쥐구멍’이라는 제목의 첫 칼럼으로 연재를 시작하였다. 그 글 말미에서 “올해는 열심히 칭찬거리를 찾아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세워보면 어떨까.”라는 어쭙잖은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두 달도 채 못 되어 코로나는 세계를 뒤덮고 사람들 몸과 마음을 들쑤셔 놓았다. 서로를 세우고 격려하고 칭찬하기로 마음 먹자고 했지만, 아무도 높이고 세우고 싶지 않았던 왕관 모양 코로나는 사람 속에서 사람을 휘어잡고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사람 사이를 가르고 찢어놓고 있다.일부 그릇된 집단의 일탈 행위에서 비롯된 교회발 질병의 확산을 빌미로 코로나는 비기독교인의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가문 날의 들불처럼 번져가게 만들었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마저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가시면류관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르러 오신 예수 한 분으로 족하며 또 그리스도 그 분밖에 쓰실 수 없다. 그러니 아귀다툼하듯 서로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우려는 일은 이제 그만 했으면 싶다.안도현 시인은 “9월이 오면 / 9월의 강가에 나가 /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이라고 노래했다. 나태주 시인은 “기다리라 오래 오래 /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 지루하지만 더욱 /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하였다.따뜻한 온기를 우리 사이에 돌게해 코로나를 빨리 물리치면 좋겠다.

2020-09-01

속속 드러나는 수상한 의료정책, 놀라울 따름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위기감 속에 불거진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악화일로다. ‘정책 철회 후 원점에서 재논의’를 합의문에 명문화해 달라는 의료계의 요구를 정부가 완강히 거절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의사들을 ‘인질범’처럼 몰아가며 고집하고 있는 의료정책의 수상한 속살이 속속 드러나 충격이다. 일각에서 ‘게이트’라고까지 명명하고 있는 야릇한 정책에 대한 정부의 경직된 태도 속에 숨은 불순한 아집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의사들을 강제차출해 북한에 보낼 수 있는 법률안이 추진 중인 사실이 밝혀져 또 다른 논란이 발생했다. 신현영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의료교류법 9조 1~2항과 앞서 같은 당 황운하 의원이 대표 발의해 입법예고 중인 재난기본법 34조 1항은 정부가 의사 등 의료인력을 강제로 북한에 파견할 수 있다고 해석되는 부분이 포함돼있다. 의료계에서 “의료인은 공무원도 아닌데 웬 강제징용이냐”는 반발이 빗발치는 중이다.시도지사나 시민단체가 공공의대 신입생을 선발하게 된다는 소문에 이어 공공의대 출신에 대한 특혜 추진도 논란이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공의대를 졸업하면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공립의료기관에 우선 선발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니, 제정신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대표는 “의료에 대한 이 정권 사람들의 무지와 무식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맹비판을 쏟아냈다.공공의대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전북 남원시와 일부 호남 지자체가 공무원들에게 국민권익위의 관련 설문조사 참여를 독려한 것도 논란이다.경북대·계명대·영남대·가톨릭대 등 대구지역 의대 교수들 80여 명은 복지부의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항의해 “나부터 밟고 지나가라”며 ‘제자 보호’를 위해 피켓 침묵시위를 펼쳤다.폭발 직전인 의정(醫政) 갈등의 요체는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이유 있는 불신이다. 불신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수상한 정책 추진으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이쯤에서 결단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부 정책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을 때 일어나는 최악의 폐단을 목도하고 있다.

202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