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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與, 국토부 ‘계좌추적권’ 추진… ‘통제만능’ 심각

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에 부동산 거래와 관련해 개인의 금융정보 일체를 조회할 수 있는 계좌추적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또 들고나선 강수다. 그러나 검찰과 국세청도 법원 영장을 받아야 할 정도로 제한되는 권한을 국토부에 허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방통행식 고단위 항생제만 자꾸 투입하는 정부·여당의 통제만능주의다. 가공할 부작용을 어찌 감당하려고 이러나.여당이 준비 중인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토부 산하 ‘부동산시장 불법행위대응반’이 금융거래, 신용정보 등의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토부의 요구가 있을 경우 금융회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보자료를 내줘야 한다. 부동산시장 교란 행위, 불법 의심 거래 등으로 범위를 한정한다지만 법이 통과되면 검찰 못지않은 권한을 국토부가 갖게 된다는 뜻이다.현행법에는 국토부가 관계기관에 조사 대상자의 등기, 가족관계, 과세 등의 자료만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개정안은 여기에 더해 법인의 재무상태표·포괄손익계산서·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사업자등록정보, 국민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기초연금 등 보험료, 금융자산·금융거래·신용정보 등 민감한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대응반이 국민의 개인계좌까지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부동산대응반의 권한확대 조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설치를 검토 중인 부동산감독기구 설치의 준비과정일 가능성이 크다. 인력과 권한이 대폭 강화된 부동산감독기구는 금융정보를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부동산시장의 빅브라더 역할을 할 개연성이 크다. 매사 통제 위주로 정책을 수립하고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의 방향은 효과적이지도 않거니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경찰국가를 만들어 빅 브라더가 되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감독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부의 통제만능주의는 절제돼야 한다. 세상을 진정 바꾸는 건 그물망이 아니라 선순환의 순리다.

2020-08-23

“안전에는 지나침이 없다”

고윤환문경시장오늘날 가장 많은 바람 중 하나는 안전이다.우리나라도 이례적으로 긴 장마와 집중호우, 산불,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발생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이고, 코로나19를 비롯한 감염병의 확산 등 여러 가지 환경변화로 안전이 위협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하지만, 인류는 이러한 재해들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긴 장마의 경우에도 제트기류가 북반구에서 어느 쪽으로 내려오느냐에 따라 폭염과 가뭄이 들 수도 있고, 홍수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현재 상태를 잘 분석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사전 점검과 조치, 탄력적인 대응, 신속한 복구 등 그 모든 것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우리 시는 매년 실전과 같은 화재대피 훈련, 지진대비 훈련, 저지대 침수대피 훈련 등 위기 상황 대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리 훈련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특히 침수대피 훈련은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해 각 읍·면·동별로 침수가 예상되는 저지대 지역을 각각 선정한 후, 시간당 80mm 이상의 기습 폭우를 가정해 하천 범람 등으로 인한 저지대 침수지역의 주민대피 및 재난복구 훈련 등으로 진행한다. 재난발생 시 실시간 현장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자체 비상상황을 발령해 지역 119안전센터, 파출소, 지역자율방재단, 의용소방대 등 유관기관과 유기적인 협동체계를 구축해 비상 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대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함이다. 또한 소하천 정비, 생태하천 복원, 하천재해 예방 등에 나서 홍수를 예방하고 있다. 올해 총 48개 지구에 270억원을 투입해 치수 사업을 추진 중이다.특히 새로운 모습을 찾은 모전천은 재해예방 하천의 실례로 들 수 있다.2018년 이전 모전천은 해마다 하천 주변에 침수 피해가 발생해 2010년 및 2011년 우수기에 시간당 40mm이상의 폭우로 하천이 범람해 인근 마을이 침수되어 하천 정비가 요구됐다.이에 총 15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하천종합계획을 수립, 하상고를 최대한 낮추어 당초 소하천에 비해 통수단면을 1.8배 확장, 하천범람 피해가 없도록 사업을 추진한 결과, 문경지역에 집중호우가 있었지만 모전천은 홍수위를 넘기지 않아 범람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으며, 호안사면에 보행자 도로와 안전데크를 설치해 급경사로 인한 추락위험을 제거하는 등 범람피해와 추락위험을 동시에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령인구가 많은 농촌 마을은 정보 전달에 어려움이 있다. 어르신들은 휴대폰으로 안내되는 긴급재난문자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힘이 든다.우리 시는 마을의 소식과 행정안내 정보전달뿐만 아니라 태풍·호우 등 각종 재난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마을 무선방송시스템 설치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2017년부터 매년 약 15억원의 예산을 들여 123개 마을, 8천779가구에 무선 마을방송 시스템을 갖추었다. 무선 마을방송 시스템은 옥외 스피커 성능을 높이고 가정마다 실내 스피커를 설치해 행정 정보나 긴급 재난 상황을 신속히 전달받을 수 있으며, 혹시라도 놓친 방송까지 재생해 들을 수 있다.문경시는 약 1천600대의 CCTV를 24명의 관제요원이 24시간 모니터링 하는 CCTV 통합관제센터도 운영하고 있다.작년 한 해 동안 관제요원의 신고는 강력범죄 11건을 포함해 37건, 경찰서 사건 사고 대응으로 140건의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올해는 105대의 방범용 CCTV가 추가로 설치되어 범죄 사각지대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7월 말에는 지역 내 호우 피해 우려 지역을 살펴보던 CCTV통합관제센터에서 폭우로 인해 주택 침수가 우려되는 현장을 발견하고 도로 침수 사실을 신속히 알려 배수 조치함으로 주택 침수를 막은 사례도 있다.그리고 영상회의실과 당직실에는 문경시의 시내 하천이나 유원지 등의 홍수 위험을 실시간 감시하는 CCTV 화면, 그리고 실시간 지진계측도까지, 문경시의 재난안전상황을 총망라한 정보들이 게시되어 있다.이와 같은 노력으로 이번 여름 홍수경보, 호우특보가 발령된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게 문경을 지킬 수 있었다. 안전에는 지나침이 없다. 각종 재해로부터,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2020-08-23

꽃그늘에서 시를 읊다

병산서원 대청마루에 올랐다. 입교당 뒤창을 통해 보이는 배롱나무가 붉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지난밤에 내린 빗물에 꽃잎이 화라락 떨어져 나무그늘도 붉어 졌다. 꽃그늘 아래 선 친구의 뒷모습을 찍었다. 자연과 사람이 한 폭의 그림이 된다.사당인 존덕사 앞에 진분홍색 꽃이 피는 풍광에 반해 일부러 병산서원을 한여름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그 행렬의 한 자락을 차지하려고 여름 한가운데인 8월에 찾아 갔다. 이곳에 배롱나무는 노거수로서 2008년 4월 7일 경상북도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여름에 접어들 무렵 친구가 뜬금없이, “이제 필만 한 꽃은 대충 다 폈지?” 하고 물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피는 꽃의 종류가 가장 많을 때가 바로 여름인데 말이다. 농촌에서 자란 그 친구에게 벼꽃은 언제 피라고 그러냐고 되묻자, 생각 못 했다며 웃는다. 움츠린 겨울 끝에 오는 봄에 그것도 잎도 없이 꽃이 먼저 피는 벚꽃이나 개나리 진달래는 반가운 마음에 이름도 모습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화전놀이도 봄에, 벚꽃놀이도 봄에 하니 말이다. 반면에 짙은 녹음의 그늘에서 피는 꽃들의 노력은 잊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름에 피는 꽃 이름으로 하는 놀이는 예전에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지자체마다 꽃 축제가 제법 생기고 있기는 하다.여름 내내 피었다 지는 배롱나무는 9월까지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한다. 그 붉고 아름다운 모습이 자줏빛 장미를 닮았다고 ‘자미화’ 라 불리기도 한다. 또 매끈매끈한 줄기를 긁으면 가지가 흔들린다고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아 서원과 양반 댁 정원에 많이 심었다. 또 오래 피고 지는 모습이 정진하며 자신을 닦는 스님들의 삶과 닮아 사찰에도 많이 심겼다. 전국 유명한 절을 여름에 방문하면 마당 중앙이나 또 연못가에 어김없이 붉은 배롱나무가 점잖게 앉아있을 것이다. 이렇듯 배롱나무는 고귀한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였다.전해지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선비가 마당에 백일홍이 붉게 피자 자랑삼아 친구들을 불렀다. 서로 앞 다투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백일홍을 노래할 때 마당을 쓸고 있던 글을 모르는 마당쇠의 귀에도 들렸다 한다. 그 싯구에 ‘백일홍백일홍’ 하는 소리가 ‘베롱베롱’으로 들려서 저 나무가 배롱나무구나 했다는 설이다.김순희수필가서원을 알리는 안내장에도 배롱나무가 한껏 꽃을 피운 여름사진이 내걸렸다. 하늘 위에서 찍은 장면을 보면 건물 담장마다 붉은 꽃 장식을 한 듯하다. 찾아간 시간이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라 우리 일행만 남고 다들 돌아간 뒤였다. 그 넓은 공간이 모두 우리차지였다. 사람들이 들어서는 입구부터 만대루 앞에 작게 파놓은 연못에도 꽃잎이 드리워져 있다.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즈려밟으며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병산서원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재이다. 마루에 퍼질러 앉아 여름을 노래하는 붉은 꽃 읽기 삼매경에 빠지기 좋은 공간이다. 류성룡(柳成龍)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이곳에 1614년경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심은 여섯 그루의 나무들이 시작이라고 전한다. 함께 간 친구와 창을 통해 배롱나무의 붉은 꽃을 오래도록 내다보았다.대청에서 보이는 장판각은 책을 찍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바닥 밑을 띄우고 습기로부터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강당인 입교당 대청에서 뒤창을 통해서 늘 감독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했다.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간직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장판각의 목판도 그 앞에 선 배롱나무도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주었으니 말이다.네모난 창틀이 멋진 액자가 되어 여름 풍경을 완성한다. 400년 전 이곳에서 글을 익혔던 선비들의 시선으로 한 계절 피었다 지는 꽃잎을 오래 바라본다. 병산을 휘감고 흐르는 낙동강의 물소리와 글 읽는 소리가 어우러져 낭랑하게 내 귓전에 울렸다.

2020-08-23

앞이 막막할 땐 맨몸운동이라도 하자

최근 세계 경제에 대한 회복 기대감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세계 경제를 부진의 늪에 빠트린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회복이 기대한 만큼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까지 모두 전염병 탓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각국이 내세운 보호무역주의는 철강, 자동차 등 기간산업에 주목했었고, 제재방식도 관세부과나 수입물량 통제 등 무역상대국이 상호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나름 이성적인 조치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미국과 영국 간에는 영국산 몰트위스키에 대한 수입 관세부과 문제로 영국의 몰트위스키 업계가 고사 위기에 몰리면서 영국 정계와 재계는 미국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양상도 지금까지와 같은 관세 등의 조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 등과도 얽혀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 중국에서 스마트폰 등을 제조하는 화웨이에 이어 다른 중국기업까지 미국이 손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을 제작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SNS) 틱톡(TikTok)을 운영하는 중국의 바이트댄스사에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4일 미국 사업을 90일 이내에 매각하라는 공식 명령을 발동했다. 화웨이가 미국에 정치적 공세로 대항한 것과 달리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바이트댄스사에 대한 중국인의 평판도 가라앉고 있다. 반면 화웨이의 경우 미국에 대항하는 자국 기업이라며 오히려 국내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는 등 올해 2/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 대수는 삼성을 처음으로 제치며 세계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이제는 기업 간 경제전쟁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판단에 기업의 생사가 갈리는 정치와 경제가 혼합된 하이브리드형 무역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세계는 이처럼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의사결정들이 유례없이 만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비전통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경제 정상화에 노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비전통적인 경기대책보다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국익 우선주의로 인한 경제차단 효과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든다.올해 전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에 투입한 자금은 무려 20조 달러(약 2경 3천64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0%에 상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그리고 비전통적인 재정, 통화정책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전통적 수단인 양적 완화 정책의 의도는 한 지역이나 국가에 자금을 무제한 공급해 일정 수위가 넘게 되면 그 자금이 마치 댐에서 흘러넘쳐 흐르듯이 각 경제주체 전체로 파급되는 낙수효과에 있다. 이와 같은 낙수효과는 때로는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와 국제무역을 통해 이어지는 다른 나라까지도 경기 자극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각국이 동시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자금이 투입됐는데도 각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데는 다른 것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내수보다는 해외시장이 주 무대인 제조기업체들이 많다. 해외시장으로 이어지는 나라와 나라 간 연결된 다리 자체가 끊어진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낙수효과에 기대 물이 흐르듯이 순환되는 효과가 국제무역에서 이뤄지지 못함은 당연하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만들 돈이 부족하다면 몰라도 물건 자체를 만들어도 그 판로가 막혀있는 상황에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순환은 이뤄지기 힘들다. 상대방이 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기 때문이다.앞으로도 이러한 현실이 쉽게 타개될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의 회복 시기는 예상보다 더욱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칫하면 지역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 모두 그 유명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모하비(Mojave) 사막에 있다. 지난 8월 16일 오후 이 ‘죽음의 계곡’에서 측정된 섭씨 54.4℃는 전 세계의 관측 사상 최고 온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물론 이 ‘죽음의 계곡’에서는 이미 1913년 섭씨 56.7℃가 관측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 기상학자들은 당시 관측자가 실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여하튼 이 죽음의 계곡이 그만큼 인간에게 위협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기술창업이나 벤처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해 성공적으로 시장까지 진출하는 동안 넘어야 할 두 개의 난관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술 씨앗을 이용하여 제품을 개발하고, 시제품을 제작하여 사업화하기까지 약 5년에서 7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사이에 자금이 고갈되는 ‘죽음의 계곡’을 만나 무너지는 기업이 그만큼 많음을 의미한다. 어찌어찌 살아남더라도 이번에는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라는 무시무시한 포식자들이 즐비한 냉혹한 시장이 기다리고 있다. 송사리에 불과한 중소벤처기업이 약육강식의 세계시장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것은 무척 험난하기에 이를 두 개의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의 계곡’이나 ‘다윈의 바다’가 벤처나 기술창업 기업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로 인해 지금 지역 내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은 물론 직장을 잃은 가계까지 모두 각자 나름의 ‘죽음의 계곡’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들 뉴노멀이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올 것이므로 이에 대비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코로나19가 먼저 종식된 이후의 이야기다. 게다가 올해만 하더라도 9월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 10월 미국 외환보고서 발표,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의 하나인 5중전회가 예정돼 있다. 또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선거, 12월에는 일본의 헌법개정, EU 정상회담 등 세계 각국의 중요정책이 결정될 굵직한 정치 일정이 즐비해 어떠한 기상천외한 정치적 판단이 세계 자유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비이성적, 비정상적인 조치들을 탄생시킬지 우려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죽음의 계곡’에 갇혀 비가 오기만 기다려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이 ‘죽음의 계곡’을 어찌어찌 건너더라도 새로운 비대면 비접촉 시대를 맞이하여 또 다른 위험인 ‘다윈의 바다’와 부딪칠 위험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어떠한 위기에도 기회는 있겠지만 기다리는 것만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나 기회는 준비한 자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은 헬스장을 가지 못할 때 맨몸운동이라도 하며 체력을 기른다고 한다. 경제회복 속도가 늦어지는 동안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코로나19 이전에도 분명 자기 기업, 상점 등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약점을 보완하며 체력강화나 체질 개선에 힘쓸 때다. 경제회복이 언제 될지 앞이 막막한 이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맨몸운동이라도 하자.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8-23

이 아름다운 아인슈페너

아침에 한번씩 꼭 들르는 곳이 하나 생겼다. 이름하여 아인슈페너를 파는 커피 전문점. 그렇게도 아이스커피를 즐겼건만 몸이 다 식으니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만 마시게 되었는데. 이 뜨거운 커피 위에 흰 크림 듬뿍 얹은 아인슈페너 파는 곳을 알게 된 것이다.그런데 이 흰빛의 크림 맛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것이랄까. 점원께 물어보니 이곳만의 수제, 직접 만든 것이란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차가운 크림 온도는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한 냉장에서 온 것일 터. 뜨거운 커피 위에 차가운 크림의 날카로운 대조미가 입안의 감촉을 생생하게 만든다.더욱이 이 크림은 뱃속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편할 수 없다. 토핑 크림 얹은 것이 속을 더부룩하게 하고 입안에서도 눅진한 느낌 남아 있는 경우 얼마나 많던가. 이 집 크림은 그런 속된 맛과는 거리 멀다고 벌써 며칠째 아침마다 마시며 감탄에 감탄.하, 그러고 보면 커피라는 것을 참 어지간히도 마셔왔다.처음 커피 맛을 본 것은 중학생 때 어머니가 손님 오셨을 때만 타 내오시는 ‘코히’ 맛을 본 것. 그때 수입산 커피가 수준 있었더랬다. 대학 와서 5동 앞 자판기 앞에 서서 나한테 담배 가르쳐 준 권영석과 같이 싸구려 믹스 커피 마시며 담배까지 태워 뱃속이 노랗게 변하던 기억도. 아이스커피도, 뜨거운 커피도 연한 맛에 꽤 오래 길들였던 것도 같은데, 한참 나중에 드디어 스타벅스 별다방 커피가 상륙했더랬다. 그 맛이 어찌나 쓴지 혀가 떨어져 달아날 지경.24시 편의점에 원두커피 천 원짜리가 등장하자 비로소 4천 원, 5천 원짜리 커피가 무섭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에 목에 신분증 패용하고 체인점 커피 하나 사들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규직의 자부심이라나, 어쩐다나. 그래도 비싼 느낌 어쩔 수 없다.그렇게 나 또한 커피는 하루 세 잔 네 잔도 사양 않는 중증 중독 환자건만. 기가 막힌 커피 맛은 언제 맛봤는지 기억에도 없었거늘. 이제 향미 가득한 아인슈페너 한 잔 앞에 놓고 이것이야말로 커피 중에서도 커피가 아니더냐 한다.아인슈페너(Einspnner)란 사전 보면 비엔나 커피의 한 종류, 오스트리아 것이란다. 원래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를 가리킨다던가 하고. 또 “오스트리아 빈의 마부들이 추위를 이기고자 크림과 설탕을 얹은 커피를 마신 것에서 유래”했다 한다.아하, 오스트리아, 빈. ‘꿈의 노벨레’였던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또….단념, 체념을 익히면 더 불행하지 않아도 되느니. 나는 어제 한 가지 미련, 애착을 단단히 끊어냈느니.아인슈페너 이 아름다운 커피 한 잔만으로도 한껏 행복을 만끽할 수 있나니./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20

국민과 정치

김병래시조시인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아테네와 같은 ‘폴리스’를 최종적이고 이상적인 공동체로 보고 그 속에서 의식주의 자급자족은 물론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공동선(共同善)을 이룰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체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사람과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을 터이다.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는‘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있다.그러나 구성원 모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민주제가 아니라 선거 등의 절차로 대표를 선출해서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범법(犯法) 등의 결격사유가 없는 한 만 18세가 되면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지방단체장,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 교육감에 대해서는 자질이 불량할 때 투표로 파직할 수 있는 주민소환권도 가진다.하지만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 국민의 정치참여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참여의 하나이다. 그들의 국가경영 성패는 곧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권의 잘잘못에 대한 심판은 선거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기에, 여러 경로로 감시하고 평가하여 다음 선거 때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것까지 국민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훌륭한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해서 부강해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를 망친 경우도 적지 않다.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은 전쟁으로 패망했고, 김일성을 선택한 북한과 차베스와 마두로를 선택한 베네수엘라는 결국 거지꼴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도 정부수립 이후 70여 년간 어느 정권도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다. 임기 중에 쫓겨나거나 시해를 당한 대통령도 있었고, 가족이나 본인의 비리로 교도소에 가거나 자살을 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가 나중에 사형선고를 받은 대통령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공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정부를 수립해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한 대통령과 혁신적 산업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진 대통령, 민주화에 기여를 한 대통령들은 역사가 특별히 기억할 것이다.국민들 각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때 나라는 안정되고 부강해질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우 우선 지양해야 할 것은‘패거리의식’이다. 이념이나 성향으로 편을 갈라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는 데서는 올바른 판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자기편은 무슨 짓을 해도 용인을 하고 상대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폄훼하고 반대하는 것은 국력을 소모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패거리들과는 거리를 둔 냉철한 이성을 가진 국민이 많을수록 나라의 근간이 튼실해진다. 현 정권이 크게 우려스러운 것도 바로 이 패거리정치 때문이다.

2020-08-20

반일 친일로 다툴 때인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광복회장이라는 김원웅씨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했다” “안익태는 민족반역자”이므로 그가 작곡한 애국가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일부 여당의원들이 추진 중인 친일인사 파묘법도 주장하고 있다. 이어 연단에 올라온 원희룡 제주 지사는 미리 준비했던 경축사 원고를 접고 우리 국민 대다수와 제주도민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치우친 역사관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를 기념사라고 광복회 제주지부장에게 대독하게 만든 이 처사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하고 제주도지사로서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상 김일성 공산군대가 대한민국을 공산화 시키려고 왔을 때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과 국민들이 있고 그 분들 중에는 일본 군대에 복무했던 분들도 있기에 나라를 잃은 국민에게서 무슨 죄를 묻겠는가는 것이 원 지사의 주장이다.필자는 원 지사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다. 자기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친일을 했다면 그건 비난 받아야 하지만 나라를 잃은 백성이 일본의 폭압속에서 강제로 일어난 일을 친일이라는 프레임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예술인, 군인, 지식인들은 일본의 폭압 속에서 특히 그것을 감내해야 했고 어쩔 수 없는 협력도 있을 수 있었다. 그건 그들이 원해서 한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후에 국가를 위해 행한 공을 생각하여 그 공이 충분히 칭송 받을 만하다면 그것으로서 존경 받아야 한다.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그 공을 우리가 보면서 역사 앞에서 공과 과를 겸허하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며, 대한민국을 만든 데에는 많은 분들의 공이 있었고, 과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광복회장 그 자신은 어떤가라는 비판도 있다. 정치 입문은 자신이 ‘친일’이라고 비판하는 민주공화당에서 이뤄졌고 사무처 공채에 지원해 당료로 근무하면서 정치권에 들어섰고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당료로 근무하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한다. 그 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져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진보진영으로 넘어갔고 진보진영의 프레임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를 두고 재향군인회는 16일 성명에서 김 회장을 향해 “자기 이익에 따라 정당을 바꾸는 철새정치인”이라고 비난했는데 김 회장은 “나는 생계형”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생계형이라면 자기가 비판하는 친일 인사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 비판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생계형을 훨씬 넘는 생명형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금 친일 반일로 다시 분할되어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친일을 청산하자고 하지만 그 기준은 그저 마음대로 그들이 정한 잣대일 뿐이다. 생계형이라면서 과거의 철새행태를 옹호하면서 생명형이었던 애국지사들을 매도할 수 있을까?광복 75주년을 맞은 이때에 이편저편 나누어서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되어야 한다는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조각내고 우리 국민을 다시 편가르기 하는 그런 시각이 맞는 것인가? 여권이 지지도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친일 프레임을 꺼내 든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2020-08-20

화불단행(禍不單行)

설상가상은 본래 “쓸데없는 참견”이란 뜻으로 사용됐다. 눈 내린 곳에 서리가 더 내려봐야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 “환란이 거듭된다”는 말로 바뀌게 된다.설상가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을 찾아보면 여러 개 있다. “앓는 중에 또 다른 병이 생긴다”는 병상첨병(病上添病)과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전호후랑(前虎後狼)이란 사자성어도 있다.우리 말 속담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과 “갈수록 태산”, “산 넘어 산”, “하품에 딸꾹질” 등이 같은 뜻이다. 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도 있다. 일본에서는 “밟혔다가 차였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설상가상에 반대되는 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있다. 이때 금은 비단 금(錦)자를 쓴다. 비단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물건인데 그 위에 꽃을 수놓았으니 좋은 일이 겹친다는 뜻이다.요즘 우리나라가 겪는 상황을 보면 설상가상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긴 장마와 500mm의 집중 호우로 전국 곳곳이 물에 잠겨 아직 생채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가운데 폭염이 덮치더니 이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난 2월 발생한 코로나19로 이미 우리나라는 큰 쇼크를 입은 마당이라 마치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처럼” 두려움이 앞선다.그도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 집중돼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다.옛말에 “복은 겹쳐 오지 않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禍不單行)고 했다. 이 말의 뜻은 “재앙이 또 다른 재앙을 부를 수 있으니 매사에 조심하라”는 것이다. 국가적 위기다. 정부와 국민 모두 엄중함이 절실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20

코로나19의 교훈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코로나19가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일련의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에게 코로나19는 절대자가 인류에 내리는 일종의 종교적 고난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엄청난 전파속도와 치사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를 대하는 종교지도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대범한(?) 행보를 보여 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나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의 얘기다.이만희 총회장의 경우 당초 코로나에 감염된 신도들의 명단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오히려 검사를 받지말라고 독려했다가 방역지침 위반과 방해 의혹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가뜩이나 전염속도가 빠르고, 치료약도 없는 치명적인 질병의 감염을 방조하는 행태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역시 코로나19의 2차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교회에서 마스크도 쓰지않은 채 설교를 하고, 광화문 집회를 주도해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전 목사를 포함한 목회자들은 지난 9일 사랑제일교회 예배 현장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신도들로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를 쓰지 않고, 80여 분간 설교를 했다. 평소 야외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며 마스크를 벗고 다녔던 전 목사는 지난 15일 광화문 집회에서도 “나는 열도 안 올라요. 나는 병에 대한 증상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전광훈 목사를 격리대상으로 정했다고 통보했다, 이놈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는 가차 없었다. 결국 본인 뿐만 아니라 밀접 접촉자인 부인과 비서진, 측근들까지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고 말았다. 신도들도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밤샘기도, 금식기도, 광복절 집회 준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합숙 생활을 마다치 않았다. 그 결과 사랑제일교회발 확진자는 전국 80여개 시군구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쏟아졌다. 사랑제일교회 측이 방역당국에 일부가 누락된 출입자 명단을 제출하거나 교인들의 진단 검사를 고의로 지연시킨 정황도 드러났다.신천지 사태 이후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은 역학조사를 방해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벌금을 내도록 처벌이 강화됐다. 여기에 국가가 부담한 복구 비용이나 치료 비용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구상권을 청구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배상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이런데도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측은 20일 대국민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방역 지침상 접촉자가 아닌 국민을 상대로 명단 제출과 검사, 격리를 강요하는 행위는 직권남용”이라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바쁘다. 신도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종교지도자로서 적절치못한 행태이자 책임회피다.종교적인 맹종은 어리석어서 두렵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최소한의 행동양식마저도 저버리게 한다. 생명존중의 신앙과 종교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에게 평화로운 삶과 안식을 약속한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져준 또 하나의 교훈은 생명존중이란 종교의 본질과 맞닿은 새로운 성찰이다.

2020-08-20

지역사회 확산 막을 비상한 방역의식 필요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번 주말까지 지금의 확산세를 잡지 못하면 코로나19는 전국 대유행의 기로에 설 것”이라 했다. 수도권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14일 이후 7일 연속 세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12개 시도에서도 사랑제일교회 혹은 광화문 집회 관련 확진자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이 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대구시와 경북도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서울 광복절 집회와 수도권 교회 방문자에 대한 진단검사에 총력을 쏟고 있다. 대구에선 1천600명, 경북에서는 1천500명 정도가 광복절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돼 이들에 대한 조기 진단과 격리가 수도권발 지역사회 대유행을 막을 최선의 선택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집회 및 수도권 교회 방문자의 진단검사를 독려하고 있으나 참석자들의 비협조 등으로 조속한 진단검사 이행이 쉽지 않다고 한다.수도권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교회에서 집단으로 발생했지만 지금은 발생처가 무차별적이다. 커피숍, 재래시장, 경찰서 심지어 서울시청 건물까지 폐쇄되는 일이 벌어졌다.지금 전 셰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2천만명을 넘는다. 6월 28일 1천만명을 돌파한지 불과 43일만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 빌게이츠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수백만명이 더 사망하고 내년 말에나 비로소 종식될 것”이라 예측했다.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다. 불요불급한 행사나 모임은 자제하고 대면보다는 비대면 모임으로 대체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밀집·밀착 장소 가지 않기 등을 지켜나가야 한다.그동안 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 방심한 측면이 많다. 감염병 전문가인 고려대 김우주교수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면서 국내 코로나 재유행을 확산시켰다”는 의견을 최근 냈다. 스포츠 경기 관중 제한적 허용이나 교회에서의 소규모 모임 해제, 외식공연 쿠폰 발행, 17일 공휴일 지정 등 정부가 코로나 방심을 조장하는 시그널을 국민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나 국민 모두가 방역의식을 새롭게 다져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희생을 더 치러야할 지 알 수가 없다.

2020-08-20

미래통합당의 서진(西進)…난관 만만치 않다

서진(西進) 전략으로 불리는 미래통합당의 호남 공들이기가 깊어지고 있다. 통합당은 구례 등 호남의 수해현장을 찾아가 구슬땀을 흘린 데 이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국립 5·18민주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러나 통합당의 호남 구애는 뚫어내야 할 난관이 만만찮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호남 민심과 여권은 진작부터 위헌 여지 등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5.18 망언 처벌법’ 올가미 등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광주 방문 중 지난해 당내 일부 인사들이 5·18과 관련해 쏟아낸 온갖 망언들에 대해서 “엄정한 회초리를 못 들었다. 잘못된 언행에 대해 당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자신이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자신이 참여한 데 대해서도 “상심에 빠진 광주시민,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국민에게는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민주당과 호남 민심은 김 비대위원장의 행보에 ‘쇼’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5·18 북한군 개입설 같은 유언비어를 공공연히 퍼트리고, 5·18 유공자를 ‘세금을 축내는 괴물집단’으로 비하하는 등 극우세력의 눈치를 보는 정치세력이 통합당 내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통합당은 최근 새 정강 초안에 ‘5월 정신’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 국회의원 4선 연임금지, 기초·광역의회 통폐합, 피선거권 연령 인하 등 기존의 이념과 거리가 있는 드라마틱한 경제·정치 혁신 어젠다들을 들고 나섰다. 이같은 극적 변화는 4월 총선 승리 이후 독선과 오만에 빠져있는 더불어민주당과 비교된다.김종인 위원장이 맞닥트릴 가장 큰 시험대는 5월 관련 개정법안들일 것이다. 통합당이 조금만 다른 소리를 해도 “그것 봐라. 다 쇼였지 않냐”고 덤터기를 씌울 게 뻔하다. 당당한 전국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합당의 서진 전략은 옳은 방향이다. 큰 눈으로 과감하게 접근하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통합당이 열린 마음과 너른 아량으로 정치 지평을 더욱 넓혀가기를 기대한다.

2020-08-20

모두의 책임이다

장규열한동대 교수말복이어서 그랬을까. 광복절이 뜨거웠다. 국권을 찾았던 뜨거운 감격을 기념하는 한편,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이 광장을 채웠다. 문제는 코로나19. 겨울 끄트머리에 찾아왔던 감염병은 봄과 여름을 건너 가을을 넘보고 있다.전세계 188개국에서 하루에 20만명도 넘게 감염시키면서 2천만을 상회하는 확진자를 낳고 80만에 육박하는 사망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리한 터널을 언제 통과하려는지 아무도 모른다. 광복절 광화문집회가 촉발한 감염확산 위험은 이전의 경우보다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의 건강이 경각에 달렸다.코로나19가 몸을 다치게 하겠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사회의 건강도 이만저만 해치는 게 아니다. 미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하는 까닭은 국민의 건강문제를 정치적 담론으로 몰아온 대통령의 실수로 보인다. 정치적 격론 속으로 빠져든 감염병을 대통령 본인은 물론 미국의 정치권도 도무지 건질 바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타산지석이 아닌가. 코로나19가 정치적 편가르기의 소재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소동이 다 지나고 혹 결산에 이를 때에 공과 과를 가늠할 일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방역에 집중하여야 한다. 백척간두에 섰을 방역당국의 심정은 어떤 모습일까.틀린 말은 아니다. 교회가 문제다. 신앙의 본질보다 정치적 담론으로 물들이며 집회를 주도한 목사의 책임이 크다. 부적절한 주장과 언변으로 신자들을 오도하고 호도해 온 목사와 교회에 대하여 분명한 판단과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던 한국교회에도 책임이 있다. 교회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웃을 돌아보고 사회의 건강을 살피는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믿는 이들의 신앙적 성장을 도우며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게 되면 오늘 이 사건은 교회의 건강도 회복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방역은 정치가 아니다. 오른편 왼편으로 갈라 다툴 일인가. 코로나19를 막는 길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다가도 모두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등장하는 ‘국난극복 DNA’를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념의 차이를 딛고 국난을 헤쳐왔던 기억을 되살리면, 편갈라 싸웠던 이슈들은 오히려 헐거운 과제들이었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 앞에 겨레는 언제나 하나가 되어 솟아오른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K-방역’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지나는 난관이 또 하나의 결실이 되는 역사를 남겨야 한다.모두의 책임이다. 모두에게 닥친 코로나19이며 함께 지나가야 할 관문이다. 누구를 탓하여 무엇을 얻으려는가. 차이를 극복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좋은 시험대이다. 대선을 앞두고 헤매는 미국이 있다. 총선을 거뜬히 치러낸 한국이 있다. 이겨내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구호와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생각에 따라 편갈라 다툴 일은 따로 또 많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뒤에는, 겨레의 마음도 건강해 지지 않을까. 세계가 보고 있다.대한민국, 파이팅!

2020-08-19

경견완증후군 주의보

가정이나 직장에서 컴퓨터 앞에 긴시간 앉아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경견완증후군 주의보가 내렸다. 경견완증후군은 온종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등 상체를 이용해 반복된 작업을 지속했을 때 나타나는 목, 어깨, 손목의 통증을 가리킨다.흔히 ‘오십견’으로 불리는 유착성 관절낭염, 테니스·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호소하는 팔꿈치 관절 주위의 통증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 내외상과염, 잘못된 자세로 오래 자판을 치게 될 경우 겪게 될 수 있는 ‘손목터널증후군’을 가리키는 근막통증증후군과 수근관증후군 등이다. 주로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등에 무감각, 통증, 뻣뻣함 등을 유발하는데, 1주일 이상 지속하거나 한달에 한 번 이상 이런 증상이 보이면 경견완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다. 특히 경견완증후군은 X선, MRI(자기공명영상)를 촬영해도 원인을 알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치료는 스트레칭, 약물,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통증이 심한 경우 주사치료를 하게 된다. 치료가 쉽지않은 경견완증후군을 예방하려면 구부정한 자세를 피하고, 바른 자세를 갖는 게 좋다. 증후군 예방을 위한 올바른 자세는 허리는 곧추 세워 등에 골이 만들어지게 하고, 가슴과 어깨는 활짝 편 채 턱을 당기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땐 무릎의 위치가 엉덩이보다 높지 않게 하고, 엉덩이와 허리의 각도를 90도로 만든다. 소파처럼 푹신한 곳에 앉을 때는 작은 쿠션을 소파와 허리사이에 받치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모니터 중심이 사용자의 코앞에 오도록 조절한다.무엇보다 오랜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피하고, 중간중간 휴식과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주는 게 긴요하다. 건강한 삶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9

北 핵·화학무기 늘리는데 정치권은 딴청만

북한이 최대 60개에 달하는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고, 화학무기도 20여 종을 개발해놓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와서 충격이다. 미국국방부 산하 육군부가 작성한 대북 대응 작전지침 보고서는 북한이 해마다 새 핵무기 6개를 만들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이처럼 끔찍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권은 하염없이 남북대화에 기대를 걸거나, 엉뚱한 정쟁만 벌이고 있어서 한걱정이다. 미국국방부 산하 육군부가 지난달 작성한 보고서 ‘북한 전술’은 북한이 20개에서 60개에 달하는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 보고서는 또 신경가스 등 화학무기를 꾸준히 제작해온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는 20여 종에 보유량이 무려 2천500t에서 5천t에 달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이 한국과 미국, 또는 일본을 겨냥해 탄저균과 천연두를 미사일에 실어 무기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탄저균 1㎏을 활용하면 서울시민 5만 명이 사망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보고서는 또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북한군이 한국과 미국의 공군 기지와 항만·지휘 통제 시설·정찰 자산 등을 탄도미사일을 이용해 공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하와이와 알래스카 또는 캘리포니아 해안도시 등 미국을 목표 삼아 생화학 무기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북한의 핵무장이나 화학무기 보유는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남북대화에 방점을 찍어놓고 교류를 통한 평화구축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만류를 무시하고 비대칭 전략무기를 늘려가는 일은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영락없는 ‘공갈단’ 행태다. 미국의 통제 안에서 핵폭탄 하나 만들 수 없는 형편인 우리가 영원히 북한의 핵 인질이 되어서 평화를 구걸해야 하는 비루한 처지로 추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 엄중한 시기에 쓰레기통 속에서 역사문제까지 끄집어내어 갈등을 폭발시키고 있는 지도자들의 언행에 한숨이 절로 난다. 우리가 정말 지금 이래도 되나.

2020-08-19

앞으로 일주일이 방역 골든타임, 총력 쏟자

수도권발 코로나19 확진자 감염이 대구와 경북에서도 연일 확인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17일 5명이 수도권발 코로나 확진자로 확인된 데 이어 18일에도 9명이 수도권 연관 확진자로 밝혀졌다. 수도권과 연관된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이 현재로서는 급선무다. 대구경북에서는 광복절 서울 광화문 집회와 수도권 교회를 방문한 사람만 1천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감염 여부와 활동에 따라 추가 확진자 발생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이에 따라 대구시와 경북도는 서울 광화문 집회 및 수도권 교회 방문자에 대해 진단검사를 의무화하는 긴급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행사 및 교회 방문자는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 통보 때까지 자가격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행사 및 교회 방문자의 협조가 간절한 상황이다. 방역당국은 이들에 대해서는 익명성을 보장하고 무료 검사를 최대한 지원한다고 한다.현재 수도권은 불과 닷새동안 1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3월 신천지발 코로나19 발생 때와 비슷한 수준까지 도달해 있다. 일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를 한단계 더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수도권지역 코로나 발생은 감염 속도가 종전보다 훨씬 빠르고 중심지가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이라는 점에서 보건 당국의 대응도 쉽지 않은 상태다. 보건당국은 이번 주가 서울의 집단감염이 전국화 되는 중대 고비로 보고 있다.대구와 경북의 방역당국이 이런 점을 고려,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서울 집회 및 수도권 교회 방문자들의 협조가 관건이다. 내 가족과 전 국민의 보건 안전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자발적인 진단검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구와 경북 사람들은 지난 2월 발생한 코로나19에 가장 모범적으로 대응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동안의 온갖 노력으로 이뤄낸 코로나 방역성과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는 없다. 대구경북민의 저력을 보여주어야 한다.수도권발 코로나가 자칫 2차 대유행으로 이어진다면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은 걷잡을 수 없다. 각자가 방역의 파수꾼이 되어 코로나 극복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방역당국과 국민이 총력전을 펼쳐야 할 때다.

2020-08-19

살아내기

강길수수필가얼마나 아팠을까. 나 같으면 까무러쳐 깨어나지도 못했을 테다. 그런데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연녹색 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의젓해 보인다.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억척스러운가.며칠 전 땀을 훔치며 이 곁을 지나갈 때다. 방금 풀을 베었는지 향긋한 풀냄새가 팔월 상순 대낮의 더위를 봄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날려버렸었다. 이 녹지 곁을 하루에 두서너 번은 지나다닌다. 출퇴근과 점심 먹으러 갈 때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엔 주로 자전거로 오가지만 그 외의 철엔 걸어서 지나간다.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을 초지로 만든 곳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과 푸른 녹지가 잘 어우러져 저절로 관심을 끌었다. 지금 팔월 초순인데, 내 기억엔 올해 벌써 두 번째 전체 풀베기를 하였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는지 학교 관리가 아니라면 해당 행정기관의 배려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늦봄, 오월 하순께도 풀을 베어냈었다. ‘아직 가을은커녕 채 여름도 되지 않았는데, 웬 벌초인가. 이상하다.’고 그때 생각했었는데 두 달여 만에 또 베어냈다.풀베기를 시킨 이들은, 녹지를 더 깔끔하고 아름답게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 베었을 것이다. 하지만 잎과 줄기가 한해살이인 잔디, 쑥, 클로버, 민들레, 개보리 그리고 이름 모르는 외래종들로 어우러진 풀밭이다. 내 생각엔 베지 않고 그냥 한해를 다 살도록 놔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기도 좋을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않은가. 어릴 때 산골에서 자라나며 겪은 삶은 그야말로 있는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것이었다.풀들은 영문도 모르고 한순간 땅 위 몸이 댕강 잘려 나갔다. 그 고통과 상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풀들은 몸을 여미고 재기(再起)를 시작한다. 잘린 경계면 아래 잔디 잎은 끝이 조금 마르며 그대로 자라나고, 곁엔 봄 새싹 같은 순이 다시 돋아난다. 지난 늦봄 벌초를 당했을 때도 풀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곧바로 녹지에 정갈한 연록 새봄을 연출하였었다. 오가는 이들과 운동을 하거나 쉬는 사람들, 나아가 날아드는 참새, 까치, 비둘기, 애완견까지 즐겁게 해 주고도 남았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새 고사리손마다 동녘햇빛 머금은 영롱한 이슬을 앙증스레 쥔 풀들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겐 생명의 본모습을 만나는 행운의 시간이다.한여름에 몸 잘린 풀들은 또 하나의 새봄을 이 녹지에 공연하려는 준비가 한창이다. 새싹이 여름의 더위를 잘 이겨낼지 모르지만, 몸을 여미는 모습을 보노라면 틀림없이 한여름의 새봄을 선물할 것이다. 그리되면 나는 한 해에 세 번의 봄 새 생명을 만나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터다. 비록 날씨 탓에 이슬 머금은 모습은 못 만날 지라도 한여름에 새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한데, 왜 풀들의 고통 앞에서 내 마음이 달떴던 것일까. 호모사피엔스 이래, 조상 대대로 연연히 풀을 먹으며 살아온 사인인 까닭일까. 제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결정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예초기의 무서운 날에 몸이 반 토막 난 상황. 그 황망함은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애쓰지 않지 않았는가. 내가 풀이라면, 두 번씩이나 몸이 잘려 나간 처절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고해의 세상에 무에 미련이 있어, 또다시 살아가려 한단 말인가.마음의 눈에 풀들이 다시 살기 위해 새마을사업이라도 하듯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땅속 물을 빨아들이고, 공기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몸의 탄소동화작용 공장을 가동한다. 설비에서 연록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새잎은 모양을 갖추며 고사리손이 된다. 손은 땅을 솟아오르며 새봄을 부른다. 공장 가동 소리가 아카샤 기록(Akashic records) 동영상으로 이렇게 저장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들은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낸답니다.”라고…. 그랬구나! 풀들이 아름다운 것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살아내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몸이 몇 번을 잘리거나 훼손당해도 또 일어서고, 새로 태어나는 삶을 바지런히 살아내고 있었던 거야.올여름 녹지에 태어날 새봄 고사리손엔, 아마도 하늘 빗물이 송골송골하겠지….

2020-08-19

때론 혼자의 시간

때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피치 못해 사회적 관계망에 부대껴야 하는 현대인들. 무리에 섞인 단독자의 자아는 덜컹거리고 욱신거립니다. 한시 바삐 정돈된 자기만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롯한 혼자를 느낄 때의 해방감과 안온함이란! 다수의 무관심이라는 횡포에 방치된 자아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말한다면 무리에서 탈출해 자발적 유폐를 지향하는 자아를 ‘군중 밖의 희열’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요.우양미술관 소장품전에서 본 그림 한 점을 떠올립니다. 독일작가 요르그 임멘도르프의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Dinner with friends)’. 별 생각 없이 전시작들을 둘러보다가 그 그림 앞에서 발길이 멈춘 적이 있습니다. 가로 5미터가 넘는 유화 작품은 카툰의 성격이라기엔 어딘가 무거워 보이고 일러스트라기엔 풍부한 얘기가 들어있었습니다.어두운 초록빛 배경 속, 긴 식탁을 중심으로 아홉 명의 친구들이 앉아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이를 테면 정치가, 사업가, 협잡꾼, 기자 등등의 타이틀을 단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모임인지라 만찬 테이블이 화려합니다. 재떨이, 꽃병 등 소품 하나하나까지도 신경 쓴 흔적이 보입니다. 고급한 음식과 포도주 위로 정치적 찌라시들이 날아다닙니다. 그래서일까요. 만찬 자리가 그리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자세히 보니 노동자 차림의 붉은 모자를 쓴 사내도 보입니다. 유일한 불청객일까요? 둘 곳 없는 시선을 제 앞의 음식에만 가두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옆 사람들은 붉은 모자에게는 말조차 건네지 않습니다. 저 건너편, 영향력 있는 두 사람의 논쟁에 귀를 열어 두느라 손에 든 담배조차 잊을 지경입니다. 그 둘은 그들만의 이슈에 빠져 나머지 친구들에게 눈길을 줄 여력이 없습니다.정치인 친구의 속절없는 야심을 보면서 사업가 친구는 줄을 댈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허풍과 위선을 일삼아 온 고급 룸펜은 정치인 친구에게 맞장구를 칩니다. 모두들 눈동자 굴리기에 바쁩니다. 친구들과의 저녁식탁은 하염없이 겉돌 뿐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는 어디에 있는지, 포도주 맛은 신지 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동상이몽이란 사자성어를 배운 임멘도르프가 회화적 기법으로 그 뜻을 알리려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여기서 그치면 클라이맥스 없는 스토리가 되겠지요. 하단 오른쪽, 관람자를 응시하는 듯한 표정의 화가 자화상이 보입니다. 그림의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현장성을 증명하기 위한 작가의 의지로 읽힙니다. 입을 벌린 채 의자를 뒤로 빼서 앉은 화가는 이 만찬의 내레이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화가는 저녁식사 자리의 처음과 끝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마다 낀 금반지와 과장된 당나귀 귀로 자신을 희화화해 만찬 자체가 우스꽝스런 퍼포먼스임을 암시합니다. 인간 군상이 모인 곳의 환상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는 것이지요. 그림 속 화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니들 알아? 관계는 때로 피로하다고. 손가락에 낀 화려한 반지만큼이나 불편하다고.이 작품에서 자화상은 낭만적 방관자가 아닌 위트 있는 고발자로서 기능합니다. 붓 터치의 적나라한 은유를 통해 사회적 얼개의 위선과 부질없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무리 속의 자아가 겪는, 어찌할 수 없는 혼돈에 대한 알레고리와 풍자로 이만한 그림이 있을까요. 2차 세계대전 전후 작가가 겪은 개인적 트라우마나 사회적 경험이 이런 통렬한 비판 의식을 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원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림 속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같은 상황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초록실 밀실로 표현된 그 공간은 현대인의 낭만적 관계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매개물로 보입니다. 예민한 눈썰미로 세세한 것까지 포착해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작가는 어쩌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민 서린 그 녹색 분위기를 통해 깊은 성찰로써 관계망 속에서의 스스로를 재조명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덜컹거리고 욱신거리는 찌꺼기가 남는다면 그것을 끊어낼 배짱이라도 발휘하라고 조언하는 것 같습니다.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친구들과의 저녁 식탁에 초대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의미한 자리라면 그 사람은 애꿎게도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거나 진주 귀걸이가 달린 귓밥이나 문지르고 있겠지요. 일부러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채 위악을 떠는 임멘도르프의 통찰을 흉내 낼 수 없거나, 그 자리를 스스로 성찰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그 자리를 벗어나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도 좋겠지요. 가까운 숲 모퉁이를 돌아들면 친구들과의 저녁식사를 해설하는 임멘도르프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20-08-19

종교와 과학

김규종경북대 교수K-방역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찬사의 대상이었던 대한민국에 코로나19 대유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8월 4일부터 17일까지 2주 동안 신규 확진자 1천126명 가운데 65%에 이르는 733명이 지역 집단감염 사례로 보고되고 있다. 그동안 해외유입 사례는 190명 17%에 불과하다. 8월 12일 서울시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는 19일 낮 12시 기준 623명이다. 대구·경북의 최근 사랑제일교회 방문자는 80명이며, 대구에 주소를 둔 시민은 33명이다. 이 가운데 서구와 달성군 주민 2명이 확진자로 드러났다. 경북도민 가운데 교회 방문자는 47명이며, 상주, 포항, 영덕 거주자 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8·15 광복절 집회에 대구·경북에서는 최소 수백에서 최대 1천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집단감염이 가시화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보수 기독교 단체로 알려진 일군의 교회가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어기면서까지 집단감염을 자초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과학의 발전과 비호 없이 종교의 융성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48년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되었다. 신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려고 유럽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유대인학살과 마녀사냥이었다. 1450년부터 1550년까지 독일에서만 10만 명의 마녀가 화형을 당한다.신의 은총과 사랑으로 흑사병을 극복하려고 교회에 모여 기도했던 숱한 사람이 집단감염으로 죽어 나갔고, 그 후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과학은 자신의 이론이나 방법론이 잠정적이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 예상하며, 그것이 완벽하거나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에는 나만 옳다거나 나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도그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 반복-검증된 결과를 토대로 잠정적인 진실을 주장한다. 종교는 예배 공간과 교리 그리고 개인의 도덕률을 전제로 성립한다. 모든 종교에는 나름의 예배 공간이 있다. 그곳은 대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으로 남겨져 있다. 그런데 종교의 교리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차이를 드러낸다.개인의 도덕률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지만, 그 고갱이는 공동체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집단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다수 공동체가 희생을 감내하고 죽음조차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타자의 파멸과 죽음을 불러온다면 그것은 철회해야 마땅하다.종교와 과학은 인간 생활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과학에 기초한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고려하면서 이제 종교도 타자와 공존하는 법을 심도 있게 숙고해야 할 때다.

2020-08-19

8월 학교 운명은?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2학기부터는 매일 등교하래요.”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중학교 1학년 자녀가 필자를 보더니 도저히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지듯이 물었다. 필자의 놀람에 아이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선생님, 만약 우리가 코로나에 걸리면 국가가 책임 져 주나요? 학교에 가면 수행평가밖에 하지 않는데 왜 학교에 오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아이는 정말 진지하게 말하였다. 그 어조를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이를 만나기 며칠 전 필자는 아이의 놀람이 담긴 공문을 보았다.“현재 감염병 위기 단계인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를 전제로, 지역사회 여건 및 기초학력 보장 등을 위한 대면 수업 확대 요구를 반영하여, 전교생 매일 등교수업을 권장함.”이제는 매일 등교수업이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또 교육청에서 등교를 권장하는 시대라니 필자는 너무도 낯선 지금의 상황에 코로나 멀미가 날 지경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하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학부모와 학생 중 코로나19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일명 코로나 트라우마로 등교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나?매일 등교가 낯선 것은 분명 학생들만이 아니다. 과제 학습에 익숙해진 교사들은 낯섦을 넘어 짜증이 날 것이다. 걱정보다는 편함을 반납해야 하는 그 심정은 어쩌면 짜증을 넘어 화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 화가 부디 학생들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지금까지 원교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낸 그 많은 과제를 교사들은 평가했을까? 물론 학생 개인별로 피드백을 해준 교사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제를 정리하여 책으로 만든 교사도 필자는 안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아이 중 학교에서 과제에 대해 정확하게 피드백을 받았다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피드백 대신 벌점을 받은 아이들을 필자는 알고 있다.익숙해진다는 것의 방향은 늘 자기 쪽이다. 그 방향은 익숙함의 정도에 정비례한다. 익숙함이 강해질수록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혹 누가 뭐라고 하는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 앞에 적대(敵對)라는 말이 붙는다. 그것은 학생도, 교사도 마찬가지이다.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인으로부터 댓글을 잘 읽어보고 답을 좀 해대라는 메시지가 왔다. 지인은 “교육부 2단계에도 교사는 출근 이후 등교·원격수업이 원칙”이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말하고 있었다. 필자는 댓글을 모두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광복절 기념 축사를 다 듣지 못하고 구역질 때문에 채널을 돌린 그때의 느낌과도 같았다. 교사와 일반인으로 편이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리고 직감적으로 이제 이 나라 교육도 문을 닫아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가 학교 기능을 하지 못한지가 오래이지만, 그래도 좋든 싫든 학생들과 교사들은 학교에는 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학생과 교사 모두 학교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자율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8월 학교 교육도 글렀다.

2020-08-19

집 사서 부자 되는 사회를 살아가며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내겐 가장 큰 낙이었다. 신해철 노래처럼 ‘고흐의 불꽃같은 삶’이나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에 대해 이야기 한 건 아니지만 설익은 머리로 쥐어짜낸 개똥철학을 나누는 게 좋았다. 아니면 재밌게 본 영화 얘기, 재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뒷담화,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 이야기, 야구 이야기, 음악 이야기, 그냥 영양가 없는 우스갯소리들. 그렇게 다채롭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좋아 그렇게 술을 마셔대곤 했다. 그런데 서른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술자리의 재미가 뚝 떨어져버렸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밤새워 침 튀어가며 떠들던 이야기들이 머물던 곳에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량주니 잡주니 하는 주식 이야기, 누구랑 누구의 팔자를 고치게 해 주었다는 가상 화폐 이야기, 그리고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부동산 이야기. 어제 만난 친구들도, 그 전에 만난 친구들도 한참을 부동산에 대해서 떠들었다.친구 A가 무리한 은행 대출로 집을 사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를 말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더 큰 집이 필요해질 텐데, 무리해서 집을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서울 집값이 설마 더 오르겠냐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비웃듯 집값은 폭등했고, 친구는 그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A 본인에게는 성공신화일지 모르겠으나 자리에 있던 나머지들에게 그 이야기는 다소 허탈했다. 늘 그랬다. 가상화폐 투자로 누가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어디 어디 주식을 사서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나는 무언가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투자가 성공신화로 다가올 때, 대부분에게는 그때 빚을 내어서라도 했어야 하는 것, 그렇게 하지 못해 원통한 것이 되어 돌아온다.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한창 잘 나가던 30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아버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차라리 잠실 쪽에 아파트나 판교 쪽에 땅을 사요 이 말만은 전할거야-강백수 ‘타임머신’ 중.사회적 성공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대개는 비약적인 경제적 성취를 사회적 성공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노동이나 자영업, 소규모 사업 같은 행위를 통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는 어떤 때는 주식이었고, 어떤 때는 가상화폐였으며, 언제나 부동산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작은 ‘사업만 너무 열심히’하다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하며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우리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도 글 쓰고 노래를 지어 부르는 노동을 통해 언젠가는 대단한 부는 아니더라도 가족들 번듯하게 건사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 나는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현재를 버텨나갈 수 있는 동력과 미래에는 현재보다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일이 아버지에게는 작게나마 사업이었고, 내게도 어설프게나마 대중예술이다. 현재를 살아나가기 위한 동력으로서도 위태롭기만 한 직업인데, 지금보다 미래에 상황이 비약적으로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언제나 희박하기만 했다. 그나마 ‘좋은 직업’이라 여겨지는 안정적인 직업들을 가진 친구들 역시 현재를 살아나가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까마득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노동으로 삶이 나아질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방법은 오로지 투자, 부동산일 수밖에 없다.정부는 8월 4일,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이 대책이 정말 새로운 대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포털사이트에 ‘부동산 대책’이라고 검색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8.4 부동산 대책만 있는 게 아니라 7.10부동산 대책이 있었고, 6.17 부동산 대책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대책까지 현 정부는 스무 번이 넘는 대책을 내어놓았다는 것. 현 정부만 그랬을까, 여태까지 어떤 정부도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막아낸 적이 없다. 그러니 내 친구들은 누구도 이번 대책이 부동산 폭등 현상과 투기를 훌륭하게 막아낼 거라고,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될 거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현실화 할 거라고, 20년 넘게 이루지 못한 숙원을 정부가 이루어낼 거라고 믿지 않는다.나라의 똑똑한 분들이 다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나라고,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동풍에 나부껴 눕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떼기 같은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그 와중에 헌법에 적혀있는 것처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라도 정보랍시고 주고 받아야 하고, 집 잘 사서 부자 된 친구들을 칭송하며 그들로부터 뭐라도 비결이 있을까 기웃거려야 하고,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빚을 져서라도 내 인생을 역전시킬 집 한 칸을 살 궁리를 해야 하고, 그 조차도 어렵고 어두운 나 같은 애들은 멍한 얼굴로 그렇게 재미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술자리에서 아무래도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나 하며 지루함을 견딜 수밖에.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여러 정부를 거치며 많은 분들이 개선을 위한 노력이야 해 오셨겠지만, 나는 진실로 이러한 현실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발 빠르게 집을 얻고, 그 집의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것은 사회 구조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동산을 비롯한 투자정보가 풍요롭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이들이 제 자리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하는 것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풍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겁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누군가가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하며 ‘불안한 맘’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 모두가 투자, 혹은 투기에 목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 모든 일들은 과연 가능할까.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겠지. 나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며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부동산과 주식과 가상화폐의 은혜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인 이들이 꼭 그렇게 해 주리라 한 번 더 믿어보며.

2020-08-18

코로나와 트로트, 한국 정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루한 장마같이 코로나의 위험은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기를 끌었던 방송 프로는 트로트 열풍이었다. 어느 종편에서 시작한 여성 트로트 경연은 여러 방송으로 확대되어 방송가를 뒤흔들었다. 뒤이은 남성 트로트 경연은 더욱 인기 프로그램이 되어 여러 명의 신인 가수를 배출했다. 그간 젊은 세대들이 거부하고 인기 없었던 트로트가 다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의 비극이 이 땅에 트로트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코로나 시대 트로트를 들으면서 한국 정치의 파행을 생각한다. 방송가에서 트로트가 다시 각광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트로트는 한동안 뽕짝으로 불려지며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 받았다. 우선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문화가 가족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코로나라는 비극적 상황이 트로트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초래한 결과이다. 트로트 특유의 슬픔과 이별, 한이 서린 노래 가사는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제가 되었다. 트로트에 심취한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트로트가 힐링 수단이 되고도 남았다. 전쟁과 비극, 가난과 보릿고개, 이별과 달뜨는 저녁, 봄바람과 연분홍 치마는 자신의 희망봉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파행적인 정치 현실은 아무런 위안도 희망도 주지 못했다.트로트 가수는 시청자들에게 노래로서 마음을 위로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민초들의 희망마저 빼앗아 가 버린다. 트로트는 민초들의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묶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가슴에 불만 지르고 갈라놓았다. 검찰 개혁, 부동산 정책, 비리 수사 등은 본질에서 멀어져 국론 분열만 조장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여전히 이념 과잉과 진영 대립, 지역적 틀에 묶여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이번 트로트 경연은 연줄이나 배경보다는 공정한 룰을 통해 신인을 과감하게 선발하였다. 나이, 연령,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승패를 갈랐다. 내공과 실력을 쌓은 무명 가수도 판정단의 공정한 심사와 일반 관객의 투표로 선발되었다. 솔직히 트로트 경선 방식은 한국 정치의 대선 후보나 당대표 선거과정 보다 공정성이 담보되었다. 우리 정치도 이제 패거리 정치, 마타도어, 흑색선전 정치를 탈피해야 한다. 우리 정치도 이제 트로트 경선처럼 배경과 힘없는 흙 수저가 등판하여 성공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우리 한류는 이제 곳곳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코로나의 ‘K 방역’도 세계적 모범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우리 경제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의 정치도 이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로 재탄생해야 한다. 경선을 마친 트로트 가수들의 상호배려 하는 정신이라도 배워야 한다. 아직도 우리 정치는 상호 비방과 폄훼를 일삼고 승자 독식, 패자 거부의 저주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 트로트 계에는 존중받는 원로들이 여럿이지만 우리 정치계에는 아직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 한 명 없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2020-08-18

저 이런 사람입니다만….

박화진지킴랩 기업탐정본부장전 경북지방경찰청장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파악하는 일이란 만만찮다. 예고된 만남인 경우에는 직장, 지위, 세평 등 여러 정보를 가지게 되어 상대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다.우연한 만남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상대에게 자신을 구구절절 소개하는 것, 상대방이 인내하며 듣고 있을 리 만무하고 예의도 아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oo물산 대표 홍길동’, ‘ oo부 국장 아무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직장, 직위,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명패 교환이 이루어진다. 눈길은 순간 상대의 이름 앞에 새겨진 수식어에 먼저 가게 된다. ‘기업대표군’,‘꽤 높은 나랏일 하는 사람이네’,‘쳇, 월급쟁이잖아’, ‘오잉, oo사!, 전문직 고소득자’ 짧은 시간 안에 인간상품 등급이 매겨진다.허름한 차림과 어눌한 말투 탓에 가볍게 대접받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름 앞 수식어 때문에 순식간에 상대로부터 겸양의 말과 상석을 양보 받는 간사한(?) 리액션이 펼쳐진다.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다. 직업으로 등급 매겨진 인간역사는 유구하니까. 누구나 이삼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100여명에게는 족히 뿌릴 수 있는 명함이 사회생활 기초용품이 된 지 오래다.명함이 어느 날 벼랑 끝에서 갈 길을 잃게 된다. 이직, 실직, 퇴직이 되면 이름은 있는데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날아가게 된다. 명함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슬픈 눈동자의 소녀처럼 유폐된 자신을 바라보는 일상에 사람 만나기가 꺼려진다. 막상 알지 못하는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구차해진다. ‘한 때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과거형 문장이 왠지 어색함을 넘어 비굴함마저 든다.퇴직한 선배와 조우한 적이 있다. ‘oo기획 감사 왕선배’ 새로 취업했다며 명함을 건넨다. 새로운 일자리로 뒷방노인 신세를 탈출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그런데 명함 뒷면에 노안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읽기 힘든 빽빽한 활자가 가득 차 있었다. 현역시절 본인의 화려한 경력이 이력서처럼 빼곡히 순차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제법 거물로서 활동했던 이력이 맨 위에 올라 있었다. 지금은 이런 일하지만 한때 ‘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메마른 성대로 최대한 힘을 주어 웅변을 내뱉는 것 같았다. 그의 빛바랜 투혼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잊혀져가는 자신을 소개하는 친절한 방법을 구사하는 재빠른 재사회화의 기법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명함에 새겨진 이름 앞의 수식어로 사람을 오롯이 등급매기는 세태가 현실이기 때문이다.‘oo엄마’의 실종된 명함은 어쩔건데? 전업주부들의 항의가 귓전에 아른거린다. 앞면에 ‘위대한 대한민국 전업주부 ooo’. 뒷면에는 ‘아들 둘 모두 현역병에 차출시킨 위대한 애국엄마, 찌질이 남편을 대기업 사장반열에 올린 내조의 여왕, 동네방네 정보수집과 밑바닥 민심을 샅샅이 꿰차고 있는 열혈 아줌마 등등’, 전업주부로서 화려하고 찬란한 직책과 이력을 새겨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습니까?(급 존대어를 쓰게 된다)

2020-08-18

코로나에 폭염까지…취약층 보호책 시급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 재유행 조짐이 나타나는 가운데 본격적인 무더위까지 밀어닥치고 있다.기상청은 역대 가장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폭염이 8월 한달동안 기승을 부릴 것이라 전망했다. 대구지방기상청은 18일부터 이틀 연속 대구와 경북 일부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이 38∼39도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또 최저기온도 25도 이상으로 유지돼 밤잠을 설쳐야 하는 열대야 현상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최근 발생하고 있는 수도권발 코로나는 종교시설은 물론 식당, 시장, 직장, 카페 등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5월초 발생한 이태원클럽발 코로나와 달리 이번은 장소를 특정할 수 없어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대구와 경북에서도 수도권 교회발 지역사회 감염자가 5명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특히 광복절 서울 광화문 집회에 포항에서 400명 등 대구경북에서 1천500명 이상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코로나 확산세의 지역 전파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수도권발 코로나19의 확진자 증가와 더불어 이달 한 달은 전국을 찜통더위로 달굴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적 약자나 취약계층에 대한 여름철 건강관리가 각별히 요망되는 계절이라 하겠다. 지난해의 경우 열사병 등 무더운 날씨로 발생한 온열 질환자의 70% 이상이 8월 중에 일어났다. 기상청이 발표한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의하면 기온이 1도 높아지면 사망 위험이 5% 증가한다고 한다. 폭염 피해는 고령층과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경북에서는 이달 들어 도내 경로당의 89%가 문을 열었다고 한다. 도내 경로당은 하루 평균 20만명 가까운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코로나 재유행 분위기를 감안하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치단체들이 자체 방역과 이용시간 및 이용인원 제한 등으로 안전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하나 무턱대고 안심할 수는 없다.농촌지역의 어르신들 유일한 휴식공간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관리가 있어야 한다. 또 도시의 쪽방촌 등 사회적 약자들의 여름나기에도 자치단체의 세심한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 열악한 사회계층을 위한 폭염대책이 코로나 대응과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2020-08-18

제국과 코로나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남긴 이 충무공의 말이다. 이 유언은 승정원일기와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적에게’라는 말은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유언을 남긴 사람이 또 있다.몽골제국의 기틀을 다졌던 칭기즈 칸이다. 그는 서하 정복을 앞두고 낙마사고 끝에 병사하면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적이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절대로 곡을 하거나 애도하지 말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날짜가 1227년 8월 18일, 바로 어제였다.몽골제국.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나라이다. 몽골제국의 영토는 최대 3,300만㎢에 이르러 유럽과 중근동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6.6배나 되었다고 한다.고려는 칭기즈 칸 사후인 1231년에 첫 침공을 받은 후 1257년까지 몽골과 아홉 차례의 전쟁을 치른 끝에 결국은 패배하여 몽골의 간섭을 받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삼별초의 대몽 항쟁과 같은 끈질긴 저항과 협상을 통해서 명목상으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경기도 강화 고려궁터, 용인 처인성, 제주도 항파두리 토성, 그리고 경상북도 상주 백화산성 등 우리나라 곳곳의 항몽 유적지는 몽골의 침략과 간섭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고 또 고려의 민중들이 얼마나 거세게 저항하였는지를 엿보게 해 준다.전 세계를 말발굽 아래 초토화시켰던 몽골제국은 1271년 국호를 원으로 개칭한 후 100년도 되지 않은 1368년에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몽골이라는 이름만 겨우 이어받은, 러시아와 중국의 사이에 위치한 영토도 경제력도 미약한 나라로 쪼그라들었다.우리나라에는 여성 한복의 족두리, 신부의 뺨에 찍는 연지 등의 풍습과 ‘송골매, 보라매, 가라말, 조랑말, ~아치’ 등 몽골어의 흔적만을 남겨 놓았다.몽골제국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던 로마제국도 사라지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었던 대영제국도 찬란했던 빛을 잃어버린 오늘날, 코로나가 지구 전체를 휘감은 채 세계인을 위협하고 있다.2020년 8월 18일 낮 3시 현재, 코로나는 2천2백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78만2천여 명의 사망자를 기록하며 세계 214국에 퍼져 있다. 가히 코로나제국이라고 할 만하다. 창칼과 총도 없고 기마대도 탱크도 비행기도 없는 코로나 군단은 조용히 그러나 세차게 전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 그 강하고 무서운 힘을 우리는 지금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잦아드는가 했던 우리나라의 코로나도 최근 다시 확산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칭기즈 칸은 죽었지만, 코로나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제국과 몽골제국과 대영제국이 사그라든 것처럼, 14세기 유럽에서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이 종식된 것처럼 결국에는 코로나제국도 사그라들 것이다. 그렇다고 피해를 빤히 바라보면서 사그라들 때까지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방역 당국과 더불어 우리 국민들은 더 철저한 방역과 재난 극복의 노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지금은 함께 할 때이다.

2020-08-18

민심무상(民心無常)

민심은 말 그대로 백성의 마음이다. 통치자 입장에서 보면 대중의 심리를 이르는 말이다. 통치권자가 법보다 대중의 요구를 중시하게 되면 국가의 통치기능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심이다.국민정서법도 이런 배경의 용어다. 실정법에는 어긋나지만 국민의 법 감정에 호소하여 법보다 우선하여 판단하는 경우다. 법 경시 풍조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그럼에도 국민정서법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민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예로부터 민심을 천심이라 불렀다. 세상 민심이 곧 하늘의 뜻이란 말이다. 민본주의나 민주주의의 민(民)은 백성을 말한다. 맹자가 민본사상을 주장한 것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민(爲民)정치가 같은 말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같은 의미다. 헌법 1조에 표기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민심무상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다(民心無常). 군주가 선정(善政)을 베풀면 사모(思慕)하고 악정(惡政)을 하면 앙심(怏心)을 품는다”고 했다. 불교에서 무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민심무상은 백성의 마음이 혜택을 주는 쪽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민심을 요즘 말로 표현하면 여론이다.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에 줄곧 뒤져왔던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으로 여당을 앞섰다. 100년 집권을 운운하던 여당에 비상이 걸리고 야당은 야당대로 민심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예로부터 민심을 물에 비유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정치권이 민심무상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18

靑, 야당 초청 놓고도 ‘남탓’장난…대체 왜 이러나

청와대가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에 회동을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있다고 공개해 논란이 폭발하고 있다. 통합당은 공식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이 진실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설사 어떤 형식으로든 제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초청 의사를 다시 전해 회동을 성사시킬 사명이 있는 청와대 정무수석이 야당 탓을 하며 떠들어 정치공방으로 만드는 일은 백번 잘못된 행태다. ‘협치’마저 ‘남탓’ 소재로 삼는 모습이 참으로 실망스럽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17일 브리핑에서 “8월에 (통합당) 당 대표를 초청해 국정 전반에 대해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다”며 “강기정 전 정무수석이 실무적으로 협의했고, 제가 13일 김종인 위원장을 예방해 재차 대통령의 초청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회동 일자를 21일로 제안했지만 통합당이 지난 16일 불가 입장을 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하지만 통합당은 최 수석이 김 위원장을 만나긴 했으나 회담을 공식 제안한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만나자고 한다면 절차와 방식이 있을 텐데 최재성 수석이 취임 인사차 와서 (김 위원장에게) 의례적이고, 지나가는 말로 한 번 만나는 게 어떻겠냐는 정도로 이야기했다고 들었다”며 “대화하려는 모양새를 갖췄다는 알리바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비판했다.실무 채널에서 조금만 확인해도 될 일을 놓고 볼썽사나운 공방 거리를 만들고 있는 청와대의 행태에 모종의 저의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문 대통령은 여야 원내대표와의 5월 청와대 회동에선 ‘여야 협치’를 말해 놓고 실제 원(院)구성은 여당 독식으로 밀어붙였다. 이후 국회는 통법부로 전락해 야당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이런 일방 독주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화된 뒤에나 대화 쇼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 야당을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하면서 조건 없이 사진 찍으러 나오라고 요구하고,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고 까발리는 속내를 모르겠다.대화하려는 진심이 도무지 읽히지 않는데, 대체 왜 이러는지 답답하다.

2020-08-18

때로는 말씀보다 무거운 침묵으로… 영동 영국사(寧國寺)

산세가 빼어나 충청북도의 설악산이라 불리는 천태산, 그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영국사를 찾아 내비게이션에 하루를 맡긴다. 차는 산길을 한참 올라 화전민들이 살았을 법한 평평한 고원지대로 들어서고, 한 때는 밭이었을 것 같은 평지와 드문드문 몇 그루의 호두나무들이 보인다.영국사는 법주사의 말사로 527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했다. 그 후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해 절을 국청사라 부르고 지륵산이던 산 이름을 천태산이라고 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원 마니산성에 머물며 이절에 와서 기도를 드린 뒤 국태민안이 찾아와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천연기념물 제 223호인 영국사 은행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반길지 내심 기대가 컸는데 첫 만남이 실망스럽다. 축대 아래에 자리를 잡은 터에 700년 된 고령의 은행나무는 나이에 비해 어딘지 왜소해 보인다.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 내어 운다는 나무, 불교가 전래되어 들어올 때 같이 들어 왔다는 설로 수령이 부풀려지기도 하는 은행나무가 사진과는 많이 다르다.절 앞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하고, 만세루는 보수 중이라 분진 방지막을 두른 채 어수선하다. 고령의 은행나무와 절 사이에 주차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먼 길을 달려왔지만 나무와 나는 어떤 교감도 나눌 수 없다. 축대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서자 나무의 웅장함이 비로소 보인다.또 하나의 길이 계단 아래로 이어져 있고 그 길을 따라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일주문 쪽의 광경이 그제서야 잡힌다. 나는 두 갈래의 길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힘이 빠진다. 어떠한 노력이나 수고로움도 없이 무례하게 절의 옆구리를 박차고 들어온 셈이다.한참 동안 나무를 올려다보지만 그의 시선은 먼 곳을 응시할 뿐이다. 쉽게 얻은 것일수록 감동은 적고 쉬이 잊혀질 수밖에 없다. 편리함에 중독되어 가는 현대인들의 난치병과 우리가 잃어야 할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마음을 씻으며 일주문을 들어설 때의 감회와 고령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나무는 품격이 넘치지만 미동도 않고, 나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언어 이전의 언어를 애타게 불러본다. 풀벌레 소리 가득한 산중에 밤이 찾아오면 달과 별들 모두 내려와 은행나무에 깃들리라. 새벽을 여는 도량석 목탁소리에 밤새 피안에 들었던 나무는 또 하루를 열 것이다.양산 팔경 중 일경에 속한다는 곳, 영국사를 찾는 방문객은 의외로 많았다. 그에 비해 절은 소박하다. 마당을 지키는 단아한 수형의 단풍나무가 눈길을 끌고, 그 옆에는 오래된 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보물 제 533호인 삼층 석탑을 지킨다. 그 석탑은 또 대웅전을 지킨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시선은 오로지 한 곳으로 모아져 있다. 나만 홀로 무언가를 찾아 절간을 두리번거린다.바깥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대웅전 법당에서 바라보는 한여름 풍경은 여유롭다. 낯설고 어색한 마음을 가라앉힐라치면 모습을 감춘 만세루의 정경이 안타깝게 아른거린다. 오늘따라 부처님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법당에 앉아 정신없던 한 주를 돌아보고 싶은데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다.경내는 약속이나 한 듯 침묵 속에 잠겨 있고, 7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도,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백팔 배를 올린 부처님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다시 먼 길을 돌아갈 생각에 마음만 초조해져 온다. 법당을 나와 천태산 주봉 쪽으로 100m쯤 올라간 곳에 있었다는 옛 절터를 멀리서 더듬어 보다 발길을 옮긴다.또 다른 보물이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오른다. 개발을 서두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 말을 걸어온다. 당신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고. 보물 제 534호 원각사비와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를 보물 제 532호 팔각원당형 승탑조차 감흥 없이 둘러본다. 한여름의 태양을 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산길을 무작정 걷고 싶다.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나를 석종형 승탑이 지긋이 바라본다. 내 앞에는 높은 곳을 향해 모든 것을 버렸을 맑은 생 하나 말없이 서 있다.조낭희 수필가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나는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음에도 단호히 뿌리치지 못했다. 절 기행은 자연히 뒤로 밀려났고 나는 시간을 다투며 절을 찾아 나서야 했다. 어쩌면 영국사의 침묵은 예고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모든 일에는 과정의 무게가 따르는 법, 그것을 기꺼이 짊어질 용기도 없이 섣불리 절 문을 두드렸다.솔밭에서 만난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끊어진 길 앞에서 홀로 서성이고 있는 나, 그 모습은 장마가 할퀴고 간 상흔보다 더 남루했다. 영국사의 침묵은 그런 나를 향한 엄중한 경고였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내려오는 길에 대웅전을 향해 두 손 모을 때 내 안에 길이 보인다. 희미하게 영국사도 보인다.

2020-08-17

거대한 풍경에 놓인 정물(사람)의 삶

‘2천년의 도시가 2년만에 잠겨 버린 곳’ 샨사는 차오르는 댐의 수위와 함께 떠나가고, 잠기고, 무너지는 과정을 겪는다.영화 속 모든 풍경은 잠긴 것과 잠길 예정인 것, 무너져 내리는 것들과 그 위에 새롭게 건설된 것들의 연속이다.이러한 풍경 속에서 사람은 댐의 수위에 따라 떠나가고 이동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어느 누구도 감격스러워 하거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자가 말한 물의 이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화 속 산샤에 들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간은 댐의 수위가 차오르는 과정까지의 시간이며, 그 시간 속에서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긍정과 부정이 없으며, 기쁨과 분노가 모두 차오르며 흘러가는 물을 닮은 사람들.‘스틸 라이프’는 산샤댐 건설의 과정과 피해, 개발에 밀려 황폐해져가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새롭게 건설되는 것보다 무너지고 잠기는 것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내는 곳에서 과거에 묶여, 혹은 그 과거를 확인하기 위해 산샤를 찾거나 산샤에 머문다.산샤(三峽)로 한 남자가 스며든다. 16년 전 떠난 아내가 남긴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들고 아내를 찾는다. 이미 그 주소는 수몰지역이 되었으며, 철거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휴일이면 아내를 찾아 나선다.소식이 끊긴지 2년 째 남편을 찾아 산샤로 찾아든 또 한 명의 여자. 그녀 역시 산샤의 풍경을 배경으로 남편을 찾아 산샤를 떠돈다.지아 장 커 감독의 영화 ‘스틸 라이프’는 산샤라는 공간, 하루 하루 모습을 달리하는 그곳이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이 배경이 되고 은유가 되어 풍경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가는 인생들을 배치시킨다.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가 16년의 공사를 거쳐 단 2년만에 물에 잠겨 버린 곳으로 16년전 헤어진 아내를 찾아 2년 째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 산샤를 찾아 온 것이다.샨샤가 변화를 거친 기간과 그곳으로 스며든 이들의 시간이 나란히 병치된다. 지폐속에 남은 산샤의 아름다웠던 풍경을 이야기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화면에 놓는다. 그 속에 1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이주했으며, 유구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했던 장소가 어떻게 수몰되어갔는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아름다웠던 과거의 풍경과 아름다운 지금의 풍경이 교차된다. 자연이 만든 풍경과 인간이 만든 풍경이다.자연이 만든 풍경이 물 속에 잠겨 갈 때, 인간이 만든 풍경은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을 허무는 과정에 드러나는 폐허의 아름다움이며, 그 폐허 위에 장엄하게 건설된 다리와 댐의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두 번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 스스로가 만들어 낸 아름다움 위에서 인간은 춤을 춘다.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그저 지금, 이 영화의 시간 속에서 제3기 수위가 차오르기 직전인 2기와 3기 사이의 한정된 시간이 보여주는 풍경과 그 풍경에 둘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놓인다. 짧게 등장하고 퇴장하는 이들의 모든 사연은 깊이와 넓이가 있겠지만 카메라는 그 속에 머물지 않는다.그렇게 영화는 끝까지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몇 개의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그렇다고 불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현재의 모습이 불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다.철거의 과정에 유적이 나와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이들과 철거 현장에서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이들과 그 위에 거대한 공사를 완성한 이들 모두가 산샤댐 수위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다. 거대한 공간(혹은 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인간은 영화의 제목처럼 하나의 ‘정물’로 머문다.그 ‘정물’은 댐의 수위에 따라 위로 이동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갈 것이다. 영화 속 풍경과 정물 속에서 UFO가 하늘을 날고, 창밖으로 보이던 건물이 갑자기 로켓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놀랍거나 당황스럽지 않다.그것은 영화 속 풍경(산샤)에 놓인 정물(사람)의 삶이 어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놀랍지 않은 모습으로, 역사가 수몰되고 새로운 건설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문화기획사 엔진 42 대표

2020-08-17

공인의 봉사활동

강희룡서예가공자가 제시한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은, 먼저 그 행위를 보고, 다음은 어떤 동기에서 그런 행위를 했는지를 살펴보고, 진정으로 기꺼운 마음에서 한 행위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사람이 어찌 자신의 속마음을 숨길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하지만 드러난 행위 이외에 그 동기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측은지심이나 즐거워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늘 남의 행위에 대해 의심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것이 위선자가 선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면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그럴듯하게 궤변으로 포장해서 남의 이목을 속이려 드는 행위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게 되고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특히 공인의 경우에는 국민들은 더욱 화가 치밀게 된다. 예컨대 2017년 7월 봉사활동을 위해 청주 수해 현장을 찾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황제 장화 논란이다. 당시 홍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 불참하는 대신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수해현장을 찾았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준비된 장화를 신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장화를 신은 게 아니라 관계자가 허리를 숙여 신겨줬다. 봉사활동 시간도 45분 늦게 현장에 도착해서 실제 작업한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날 자신의 봉사활동을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해 보는 삽질이라 서툴렀지만 흡족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피해를 당한 주민들에게는 봉사로서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친 것이다.올해 장마는 유난히도 길고 국지적으로 폭우가 쏟아져 그 피해가 엄청나다. 정의당 대표 심상정 의원이 경기도 안성의 한 수해현장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허나 수해복구를 도왔다기엔 옷차림과 신발이 누가 보아도 너무 깨끗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정의당에서는 심 대표가 보여주기식 봉사를 한 게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긴급복구 현장에 실질적 도움이 못되면서 민폐만 끼친 예견된 결과가 입증된 것이다. 또한 청와대가 ‘문의가 많아 알려드린다.’며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수해 복구 현장 봉사활동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이 사진을 두고 여당 인사들이 김 여사 ‘예찬경쟁’에 나섰다. 정청래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에 ‘그 어떤 퍼스트레이디보다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썼으며, 민주당 8·29 전당대회 최고위원에 출마한 노웅래 의원이 김 여사와 2017년 허리케인 하비의 상륙으로 멜라니아 여사가 하이힐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등장한 재난패션을 비교하며 ‘클래스가 다르다’는 찬사를 보냈다. 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도 김 여사의 ‘진짜 봉사’라고 칭찬했고,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는 ‘진정성과 순수함을 느끼게 된다며 측은지심을 구비한 분에게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어떤 이들이 청와대에 김 여사 봉사를 문의해서 사진을 올렸는지 모르지만 눈치 살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런 얄팍한 아부성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행위에 국민들은 혀를 내두른다. 봉사는 음덕(陰德)의 일종이다. 누구라도 봉사활동을 여러 통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 이익을 취하려 한다면 이미 ‘봉사’로서의 가치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2020-08-17

창백한 푸른 점

김현욱시인보이저(Voyager) 호는 1977년 8월 20일과 9월 5일에 각각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무인 우주탐사선이다.8월 20일에 발사된 것이 보이저 2호, 9월 5일에 발사된 것은 보이저 1호다. 보이저 2보다 보름 정도 늦게 출발했지만 보이저 1호는 지름길을 이용하여 1979년 3월에 목성을, 1980년 11월에는 토성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1990년 2월 14일, 태양에서 61억km 떨어진 지점에서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촬영한 사진을 전송하였다. 그 사진이 바로 칼 세이건(1934~1996·미국의 천문학자)의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다. 당시 보이저 계획의 화상 팀을 맡았던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동명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저서에 이렇게 소감을 적었다.“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중략)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앨 고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의 마지막에 이 사진이 삽입되었는데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라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했다. 지구 온난화를 지금 당장 멈추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앨 고어는 이 사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상 기후의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창백하게, 두렵다.

2020-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