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팔월, 여름날의 절정이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이 느슨해진 어정칠월의 틈을 타고 들이닥친 4차 대유행에 수도권과 지역별 감염세가 좀처럼 꺾이질 않다 보니, 동동거릴 수밖에 없는 8월이 되고 말았다. 연일 폭염지수 경신 예보와 무관중 올림픽 경기의 열기 못지않게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초미의 관심사가 돼버린 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세에 여전히 불안하고 동동거리듯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화살 같은 땡볕과 난마 같은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어도 여름꽃은 쉬엄쉬엄 하나씩 피어나고 있다. 개망초와 쑥부쟁이가 청록의 캔버스를 군데군데 하얗게 수놓는가 하면 낮은 언덕 한 켠에 긴 목을 뽑아내는 산나리 꽃잎이 살랑거리고 있다. 주위로는 배롱나무 가지마다 분홍빛 꽃망울이 등불처럼 켜지고 있고, 그 너머 능소화 덩굴은 수북한 줄기와 잎새를 드리우며 작은 나팔 같은 주황색 꽃을 촘촘하게 매달고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거의 매일 접하게 되는 우거(寓居)의 뒤뜰 풍경이다.
대체로 7월 초부터 집 안 뜨락이며 거리, 담벼락에 누런빛이 감도는 주홍빛 꽃을 피우는 능소화는 곳곳에 공기뿌리가 나와 다른 물체를 붙잡고 생육하는 덩굴나무이다.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 능소화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에게 임금이 관모에 꽂아주던 어사화로 쓰이면서 특히 양반들이 좋아한 꽃이기도 했다. 덩굴로 뻗어가며 꽃이 피고지기를 반복하고, 시들지도 않은 꽃이 통째로 떨어져 품위 있게 진다 해서 양반들이 흠모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옛날에는 선비나 양반집 담장에만 심을 수 있다고 해서 ‘양반꽃’ 또는 ‘선비화’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한 뒤뜰의 ‘양반꽃’이 올 여름엔 두벌로 피어나서 이채롭기만 하다. 분명 지난 6월초부터 몇 송이씩 피어나는 걸 보고 올해는 더위가 빨라서 좀 일찍 피는가 싶었었는데, 그렇게 2~3주 정도 맛보기로(?) 피고는 잠잠하다가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피는 것이 아닌가! 드문 현상이거니와 십 수년째 서옥(書屋)엘 살면서 처음 보는 일이라 희한하기만 했다. 그러고보니 무언가 유추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하순부터 필자의 서실(書室)에서는 회사의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창단한 ‘붓글씨재능봉사단’의 단원들을 대상으로 서예기초과정 단체수업을 시작했었다. 서예에 관심있는 직원들이 모여 붓글씨를 배우고 익혀서 지역사회의 필요한 곳에 재능을 기부하고 전통문화를 나누자는 취지의 강습이었다.
도심 속의 서실에서 묵향을 피우며 붓글씨를 배우는 서생(書生)들의 붓놀림이 궁금해선지 뒤뜰의 능소화가 서둘러 망울을 터트린 것은 아닐까? 선비의 기품 같은 능소화가 ‘어른학생’들이 먹을 갈아 붓으로 정성껏 점과 획을 긋고 연습하는 모습이 반갑고 가상해서(?) 애써 담장을 넘어 축화(祝花)처럼 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무렵 때맞춰 담장 아래 붓꽃이 피어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붓은 선비의 또 다른 손이다. 코로나의 난국에도 삼복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서예기초 학습에 열기를 더해가는 수강생들에게 저만치 능소화가 넌지시 격려의 손을 흔드는 듯했다.